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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범,박정현과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공통점

공연예술가의 최고 자질은 감정몰입능력


【서울=빅뉴스】김휘영의 문화평론=털보 아저씨 파바로티를 생각하며

4 년 전 2007년 9월 6일은 필자에게 매우 서글픈 날이었다. 인류 역사상 필자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쳐 왔던 한 예술가가 하늘로 돌아간 날이다. '신이 준 최고의 악기'를 연주하며 은하수 처럼 아름다운 빛을 이 세상에 수놓다 하늘로 부터 날개를 얻어 다시 올라갔다. 그와의 이별 소식을 듣고 가슴이 먹먹해졌다. 이후 며칠 동안 식사도 잃었다.

덥수룩한 턱수염에 환한 미소가 너무나 잘 어울렸던 아저씨,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바로 그 천사다. 단 한번도 직접 만나 본 적이 없지만 그는 내 감성을 가장 많이 울려준 사람이며 내 인생에 무수히 영감을 준 사람이다. 간혹 어려움이 닥쳤을 때, 난 그의 음반을 들으며 삶이 참 아름답다고 느꼈고 시름을 잊고 내일을 위한 에너지를 재충전하곤 했다. 지금도 그렇다. 비록 서투른 아마츄어 수준이지만 그가 사랑한 아리아들과 나폴리 민요들을 흉내내어 맘껏 부르다 보면 어느 새 힘이 솟아난다. 때때로 필자의 사진 첩을 펼치면 파바로티 아저씨의 모습들도 환하게 웃으며 나를 맞아준다.

한 비평가가 루치아노 파바로티에게 성악가로서 연주할 때의 가장 중요한 자질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때 그는 '집중력(Concentration!)'이라 했다. 직업 공연가가 아니더라도 노래를 자주 부르는 사람은 이 '집중'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것으로 생각한다. 아무리 오랫동안 불러온 노래라도 집중을 못하는 경우, 공연 중에 가사마저 잊어버리는 일이 빈번할 정도다. 라이브 공연에서 이런 위기가 닥치는 경우 마이크를 앞으로 내밀어 청중들에게 그 부분을 부르게 하여 모면한다는 건 다 아는 센스에 속한다.

<나는 가수다>와 표정의 재발견

나가수가 몇몇 가수들을 명예졸업시킨 후 시청률이 한자리수로 떨어졌다. 초기 멤버들보다 무엇이 부족했기 때문일까? 이는 초기 멤버들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무엇보다 나가수가 한국 가요계에 준 의의를 말하라면 필자는 가창력 이외에도 ‘표정의 재발견’으로 정의한다.

초창기 멤버들의 위대함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가수들의 진실한 감정 표현을 대중들이 볼 수 있게 한 점에 있다. 근래 들어 오랫동안 TV 브라운관을 점령했던 아이돌들의 공연은 ‘화려한 율동’이나 ‘관능적인 몸짓’을 보게 해 주었다. 하지만 대중의 감성을 울려줄 다양한 표정들을 브라운관 밖으로 밀어내 버렸다. 걸 그룹 등 아이돌 가수를 위주로 한 방송편성은 대중가요가 관객과 밀도 있게 교감할 때 가져야할 가장 중요한 요소인 가수들의 표정을 질식시킨 것이다. 아이돌 가수들의 생기발랄한 몸짓, 화려한 노출, 섹시한 웨이브는 가볍고 톡톡 튀는 감각을 선보여 주었지만 깊은 감성으로부터의 공명을 울려내는 데는 뚜렷한 한계가 있었다. 아이돌 공연을 보여주는 브라운관에는 주로 엔터테이너들의 춤과 바디라인을 강조하는 전신이 부각되지만, <나는 가수다>에 초대된 가수들의 연주는 주로 그들의 얼굴이 클로즈업된다. 후크 송 같은 단순하고 반복적인 리듬, 강한 비트와 현란한 몸짓은 표피적인 표피적 감각에 터치하지만 심도 깊은 표정은 시(詩)적인 가사와 함께 우리의 섬세한 감성을 터치한다.

공연 예술가의 몰입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부른 곡을 말할 때, 많은 사람들이 <라보엠>의 가난한 시인 루돌프가 외로운 여인 미미를 위해 부른 아리아 <그대의 찬손>을 말한다. 이 곡은 과연 <하이 C의 제왕>이라는 파바로티의 명성에 손색이 없다. 또 혹자들은 <투란도트>에서 득의만만한 칼라프 왕자가 부른 <공주는 밤못 이루고>를 말하기도 한다. 마지막 부분 "Vincero, Vincero"는 그야말로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무리처럼 찬란하게 퍼져나간다. 둘 다 필자가 즐겨 부르는 아리아다.

하지만 필자는 파바로티의 최고 명곡으로 베르디의 오페라 루이자 밀러(Luisa Miller) 2막에서 로돌프(Rodolfo)가 연인이 자신의 사랑을 저버렸다고 오해한 나머지, 비탄의 심정을 표현한 '해 저무는 고요한 저녁에(Quando le sere al placido)'를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세간에 널리 알려지지도 않은 곡이라서 의아할 것이다. 하지만 이 곡을 해석하는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모습을 감상해 보라(http://www.youtube.com/watch?v=33o9gswipJw). 그의 탁월한 벨칸토 창법을 제외하고서라도 무엇보다 그가 얼마나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인지 알 수 있다. Ah! Ah! mi Tradia!(O! O! my Tragedy!로 아, 아, 나의 비통함이여!) 등을 표현하는 슬픈 대목에서 그는 진짜로 눈물을 글썽인다. 그야말로 완전한 몰입으로 고도의 감정이입이 없이는 절대로 불가능한 경지다. 더구나 감정이입이 쉬운 오페라 공연 실황이 아니라 유명 아리아들만 따로 부르는 이벤트 성격인 갈라 콘서트인데도 이 정도의 몰입도를 보이고 있음을 생각하면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단순히 뛰어난 성악가의 차원을 넘어서 얼마나 대단한 예술가임을 느낄 수 있다.

감성의 교류

공연예술의 성공은 공연자와 청중들 간의 교감의 정도에 달려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대중가수의 공연에는 더욱 그러하다. <나는 가수다>가 대중의 뜨거운 갈채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에는 임재범이나 박정현 같이 몰입도가 대단히 뛰어난, 그야말로 진정한 가수들의 연주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 생각한다. 임재범의 <여러분>에 대한 재해석은 나가수의 백미 중에서도 백미였다. 임재범이 웅크린 모습으로 애절함을 부르는 모습을 보면 그가 얼마나 몰입이 강한 가수임을 알 수 있다. 배우도 그렇지만 가수에게 그 곡에 맞는 감정적인 몰입능력은 천재 가수와 그냥 뛰어난 가수들을 구분짓는 결정적인 요소이기도 하다. 사실 아티스트로서의 감정 몰입은 가창력과 곡에 대한 완전한 해석력이 뒷받침되지 않고는 거의 불가능하다. 역시 감정몰입능력이 대단한 디바 박정현의 <그것만이 내 세상> 등의 연주도 너무나 뛰어났다. 물론 가수로서 가창력은 기본으로 갖추어야 할 사항이다. 김범수,김조한,이소라,자우림(김윤아),윤도현,BMK 등 그동안 나가수에 초빙된 가수들 모두 가창력에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좋은 가수들이 어느 그늘에 웅크리고 있다 우리 앞에 일제히 나왔단 말인가? 이들을 우리 앞에 불러낸 김영희 PD 등 프로그램 관계자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나가수 프로그램의 장기 흥행, 그리고 한국 대중음악의 발전을 위해서도 계속해서 이런 분들을 우리 앞에 초빙하고 또 발굴해야 한다.

<나가수>를 초대박 프로그램으로 만든 MBC 김영희 PD 또한 ‘쌀집 아저씨‘라는 별명에 어울리게 감성적인 사람이다. ‘탈락 가수의 재도전’ 문제로 쿨하게 사퇴했던 일이나 ’칭찬합시다‘ ’느낌표!‘ 같이 그가 맡았던 MBC 예능프로그램들의 이름만 봐도 알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이 기존의 음악 프로그램과 다른 점은 노래에 감동받은 관객들의 표정조차 브라운관에 생생하게 잡아내어 공감의 폭을 넓혀 주었다는 데에도 있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다른 프로그램들과 확연히 차별화된 나가수의 경쟁력이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공연 중 등장하는 관객은 형형색색의 막대봉을 흔드는 모습이 아니라 나가수 출연진들이 울려주는 파동에 떨려 얼굴을 감싸며 눈물을 글썽이는 등 강하게 몰입된 모습들이다. 의도했던 아니든 감성에 호소하는 방식으로는 이 이상 좋을 수 없었고 이는 방청객을 넘어 TV 시청자까지 최고도로 몰입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 프로그램의 성공은 ‘감성파 PD의 뛰어난 연출-감성을 잘 표현해 내는 실력파 가수들-감성에 목마른 관객‘이 삼위일체로 잘 어울어져서 나온 결과다.

한국 대중음악 생태계의 복원

나가수의 성공은 한국 대중음악계의 건강한 생태계 복원이라는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아이돌의 음악성이나 의의를 폄훼하고자 하는 의도는 결코 없다. 대중음악은 대중성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다. 대중성은 대중과의 성공적인 교감이 없다면 확보되기 힘든다. 이는 곧 시장성을 말하는 상업성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이 점에서는 본다면 어쩌면 아이돌의 부상은 시대의 흐름에 가장 적합하게 부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아이돌이 너무 많이 부상하여 다른 장르의 대중 음악을 질식시킬 정도라면 절대로 건강한 문화생태계로 진단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굳이 아이돌 기획사들만 탓할 수는 없다. 이들은 새로운 장르를 우리 앞에 내놓았다고 할 수 있다. 또 최근 세계 속으로 한류가 전파하는 데 K-pop이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가치가 있다. 다만 지상파 방송프로그램들이 손쉽게 시청률을 확보하기 위한 방편으로 그동안 너무 아이돌의 열기에만 편승해 왔다는 비판에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 나머지 다른 장르 뮤지션들의 활동을 질식하게 만드는 데 일조해 오지 않았나를 반성할 필요가 있다.

종(種)의 다양성이 확보되지 않은 생태계는 매우 위험하다. 이런 상황에서 참신한 기획과 감성적인 연출로 <나는 가수다>같은 프로그램의 성공을 거둔 일은 한국 문화예술계에 많은 것을 시사한다. 나가수 출연진 중 몇몇은 전국 순회 공연까지 성공적으로 개최할 수 있게 했다. 이는 가수, 작곡가, 작사가, 편곡가 및 연관 음원 사업 등을 활성화시켜 한국 대중음악 생태계에 건강성을 회복시켜주고 더 나은 대중문화를 창출할 수 있는 동력이 된다는 점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김휘영 대중문화평론가(wepass@naver.com)

[유튜브 감상] 1.루치아노 파바로티의 ‘해 저무는 고요한 저녁에(Quando le sere al placido)’
http://www.youtube.com/watch?v=33o9gswipJw


2. 임재범의 <여러분>



[유튜브 감상] 3. 박정현의 <그것만이 내 세상>
http://www.youtube.com/watch?v=-_lZa6WCD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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