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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의 아름다운 사퇴와 곽노현의 용퇴?

정관계 엘리트들의 청렴과 약속이행은 신뢰사회로 가는 시발점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약속을 한다. 친구를 어디서 몇 시에 만나겠다는 작은 약속에서부터 상거래에서의 계약 등이 그것이다. 우리가 잘 모르고 이행하는 약속도 많다. 교통신호를 지키겠다는 약속, 스포츠 경기에서 페어플레이를 하겠다는 약속, 유통기간을 지켜 소비자에게 피해를 주기 않겠다는 약속, 은행의 자기자본 비율을 지켜 예금자를 보호하겠다는 약속 등이 그것이다. 개인과 개인 간의 약속뿐만 아니라 사회와 개인, 집단과 집단, 개인과 국가와의 약속인 준법의 약속, 국가와 국가 사이의 조약 등 이 모든 것을 잘 지키는 건 신뢰사회를 구축하기 위한 주춧돌이며 디딤돌이다. 이것이 취약한 사회는 위험과 위기가 상존하며 그 발전의 범위에도 제약을 준다. 과거 삼풍백화점 붕괴나 성수대교의 붕괴 또한 안전을 위한 약속이 지켜지지 않은 사례다. 최근 부산 저축은행사건 또한 BIS 비율 등의 사회적 약속을 지키지 못한 이유에서 왔다. 공무원들의 부정과 부패 또한 알고 보면 국민에 대한 봉사를 하겠다는 약속이 지켜지기 않았기에 생기는 현상이다.

정치인은 거짓말보다 약속 번복이 더 큰 피해를 끼쳐
특히 전문가와 리더들의 약속이행여부는 그 사회의 신뢰도를 좌우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다. 대한민국의 역대 대통령 중에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라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일 뿐”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특이한 위인이 있었다. 그는 대국민 약속을 번복하고 대통령까지 되었다. 그 분에 대한 지지여부를 떠나 참으로 부끄러운 한국의 역사다. 사실 정치인에만 국한해서 말한다면 거짓말보다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이 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왜냐하면 정치인의 약속에는 많은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얽혀있고 이에 준하여 합리적인 경제행위 등 여러 가지 행동을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수도 이전이나 특정화 도시 개발 등을 공약으로 내건 후보가 당선되거나 또는 당선될 가능성이 높으면 이 약속을 기준으로 해서 예정지에 많은 사람들의 투자가 몰린다. 그런데 수도 이런 공약들이 물거품이 되면 많은 사람이 피해를 입게 된다. 신뢰는 예측가능성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데 약속 불이행은 이를 믿은 사람들에게 낭패를 초래한다. 주민투표 참여율이 33.3%를 넘지 못하면 서울 시장 직을 사퇴하겠다는 오세훈 시장이 말 그대로 시장 직을 즉각 사퇴했다. 한나라당의 만류에도 불구하도 그가 말한 대국민 약속을 이행하는 모습에 우리는 아낌없는 박수를 보낼 이유와 충분한 필요가 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에게 불공정했던 주민투표
따지고 보면 이번 투표는 사실상 불공정하고 편법이 판친 선거였다. 참여 민주주의의 근간을 파괴하는 투표 거부운동이 그것이다. 이것이 왜 문제가 되느냐 하면 투표행위는 직접선거 보통선거 평등선거 비밀 선거가 원칙인데, 이중 어느 하나라도 흠결이 있으면 투표의 공정성과 정당성에 문제가 생긴다. 그런데 야당이 투표 거부운동을 광범위하게 펼침으로 해서 ‘비밀’선거 원칙에 큰 흠집을 내고 말았다. 누구를 지지하고 어느 안을 지지했는지에 대한 투표행위는 며느리도 몰라야 하는 게 비밀투표다. 그런데 야당이 투표거부운동을 노골적이고 광범위하게 펼친 까닭에 투표장 앞에 대기하거나 투표장에 들어서는 사람은 여당과 오세훈 시장을 지지하는 사람들이라는 걸 뻔히 드러내게 되는 바람에 참여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투표원칙을 심하게 어그러졌다.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비밀투표의 원칙이 심하게 훼손당하고 만 것이다. 이런 노출효과는 많은 유권자들에게 투표행위 자체를 주저하게 만든다. 무상 급식안에 대해 찬반 여부를 떠나 이웃 주민에게 자신의 정치성향을 노출시켜야 하는 원치 않는 부작용 때문에 투표장에 나가지 않은 사람도 상당히 많을 것으로 추산할 수 있다. 같은 강남구라도 아파트에 밀폐되어 이웃에 누가 살아가는 줄도 잘 모르는 타워 팰리스에서 59.6%의 투표율이 나오고 다세대 주택이 많아서 혹시 투표장에서 만날 지도 모르는 이웃 서로간의 눈총이 껄끄러운 역삼1동에서는 19.5 %의 투표참여율 밖에 안 나온 사실에는 이 ‘비밀투표 원칙의 훼손’과도 상당한 연관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투표일이 휴일이 아니었다는 점과 야당의 방해공작 등 이런 저런 이유로 투표 참여율이 오세훈 시장의 신임투표로 보기로는 너무나도 불공정한 게임이었음은 확실하다. 하지만 오세훈 시장은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아무 조건 없이 그 약속을 이행했다. 참으로 아름답다!

오세훈의 아름다운 사퇴
대국민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려왔던 게 여태까지의 한국의 정치사다. 지난 시절의 많은 정치인들이 해괴한 이유를 들면서 지저분하게 약속을 어기면서도 정치생명을 연장할 수 있었던 것은 두가지 이유에서 연유한다. 첫째로 그런 일을 감행한 정치인들의 의식세계 자체가 수준낮고 낡은 구시대의 사람이었다. 그래서 민주공화국의 주인인 국민을 업신여길 수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둘째로 그런 황당한 일을 용납할 정도로 국민의 의식수준이 낮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순전히 과거 20세기에나 가능했던 일이다. 이젠 이런 정치인들이 정치계에 버티기 힘들 정도로 국민 의식도 한층 업그레이드 되었다.

과거 유명 정치인들의 무수한 약속위반과 지저분한 번복으로 얼룩져온 한국 정치사를 생각하면 오세훈의 처신은 매우 깔끔하고 신선하다. 그에 대한 지지여부를 떠나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오세훈의 패배가 단순한 패배에 그치지는 않으리라 판단되는 이유는 이런 그의 깔끔한 뒤처리에 있다. 수도의 인구 수와 국무총리가 선출이 아닌 임명직이고 그 권력이 약한 점을 감안하면 서울시장은 한국에서 대통령의 권력에 가장 근접한 자리다. 그의 약속은 서울 시민에 대한 약속이기도 했지만 국민에 대한 약속이기도 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유력 정치인으로서 약속을 지키는 좋은 선례를 남겼고 개인적으로 그만큼의 정치적 자산도 얻었다. 이는 한국인 전체가 새롭게 얻게 된 자산이기도 하다. 오세훈의 약속이행은 한국 정치사에 새장을 열 것이 확실하고 이후의 다른 정치인들에게도 한번 공언한 약속은 꼭 지켜야 한다는 상당한 압박감으로 작용할 것임은 분명하다. 이는 참 바람직한 일이다.

신뢰는 선진국으로 가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
신뢰도는 한 국가의 품격인 국격을 결정짓는 중요한 척도다. 최근의 여러 연구 결과는 신뢰(trust)가 선진국으로 가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밝히고 있다. 2002 월드컵 기간 중에 프랑스 바이어를 만나 의미심장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그는 타이완(대만) 업체와도 오랫동안 거래를 했는데 대만에는 거의 다 가족경영(family business)위주라고 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직원들이 거래대금을 갖고 도망가는 일이 잦아서 믿을 수 있는 가족을 중심으로 소규모 기업을 운영할 수 밖에 없는 사회라고 했다. 필자는 그의 말을 듣고서야 대만에 왜 중소기업이 많은 대신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기업을 찾아보기 힘든지를 알게 되었다. 이런 까닭에 현대 사회에서 기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마이크로 소프트,애플, 소니, 도요다,삼성, 현대, LG 같은 고품위 브랜드를 갖춘 기업을 대만에서는 찾아내기 힘들다. 한때 반도체와 컴퓨터 부품 생산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졌던 대만 기업들이 거대 기업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정체된 이유와 대만 사회의 신뢰도는 밀접한 연관이 있을 것으로 필자는 생각한다. 이를 알면 유럽 국가들 중에서 특별히 신뢰도가 낮은 등급인 이탈리아가 가족경영이 만연한 이유도 새삼스럽지 않다. 부정부패집단의 온상인 마피아로 유명한 나라, 마니 폴리테(깨끗한 손)를 기치로 부패척결에 나서며 국민적 영웅으로 부상했던 검사가 백주 대낮에 암살당한 나라, 중국처럼 거의 매년 축구 경기 부정시비가 일어나는 나라(세계적인 명문 구단이었던 유벤투스는 경기부정으로 1부 리그에서 퇴출당했다), 관광객들이 지하철에서 소매치기를 조심해야 한다고 공공연히 말하는 나라, 지금도 베를루스코니 수상의 부정부패 스캔들로 세계의 웃음거리가 되고 있는 나라가 이탈리아다. 만일 이 나라에 과거 로마 시대의 문화유산으로 벌어들이는 관광수입과 패션이라는 특화된 분야가 없었다면 경제적으로도 얼마나 후진 국가가 되었을지 능히 짐작가능하다. 이탈리아에도 역시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기업들이 없다. 신뢰도가 약한 사회일 수록 가족 중심 사업이나 중국의 꽌시(관계) 문화 같이 전근대적인 틀을 벗어나기 힘든다.

신뢰도와 성장의 한계
지반이 약하고 기초가 튼튼하지 않으면 큰 건물을 세울 수 없듯이 사회 공동체의 기반이 되는 신뢰도가 약한 나라에서는 삼성 현대 LG 같은 규모의 대기업이 여럿 나오기 힘든다는 것도 충분히 추정가능하다. 이들 기업은 해외 고객들의 신뢰까지 담보해야만 수출이 가능하기에 그 생존과 번영의 기본 조건이 또한 신뢰도이다. 금융부분에서 신용평가 등급은 그 은행과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기도 한다. 태국 한국 핀란드 미국 등의 금융위기가 그 증거다.

필자는 대학 시절 재벌로 상징되는 대기업이 많은 한국이 문제고 중소기업이 번성한 대만이 좋은 국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좀 더 깊이 생각해보니 대만에는 중소기업이 많아서 좋은 게 아니라 중소기업 수준 밖에 발전할 수 없는 한계를 가진 나라임을 알게 되었다. 그 이유 또한 신뢰도에 문제가 있기 때문임을 파악했다. 더불어 한국 사회에 발전한 대기업 또한 상당한 장점이 있다고 생각된다. 특히 신뢰도를 의미하는 ‘브랜드 경영’에서는 중소기업보다 대기업이 월등하게 유리하다. 비슷한 규모와 기술을 가진 기업이라도 그 기업에 대한 신뢰도에 따라 제품의 가격이 차이가 난다. 기술적 신뢰도, A/S에 대한 신뢰도 등이 그것들이다. 또한 유명 대기업의 브랜드 가치는 꺼꾸로 그 나라의 브랜드를 높혀 주는 효과도 있다. SONY와 TOYOTA가 일본에 주는 효과와 세계 시장을 누비는 삼성 현대 LG 제품이 대한민국에 주는 브랜드 효과가 그것이다. 물론 중소기업이 대기업이 되기 위한 조건 또한 높은 신뢰도의 확보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세계 문화를 깊게 연구하고 탐색해보니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기업은 그걸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인 신뢰도가 구축되어 있음을 발견했다.

한국은 상위 4번째 단계의 신뢰를 구축한 국가
굳이 신뢰도에 따라 저 신뢰국가, 중 신뢰국가, 고 신뢰 국가로 세 등급으로 나누면 한국은 중간 등급의 신뢰국가(mid-level trust country)라고 필자는 평가한다. 미국 일본 독일 핀란드 싱가폴 등 선진국이 고(high-level) 신뢰국가들이고 싱가폴을 제외한 아시아의 3마리 용인 한국 대만 홍콩 등과 유럽의 이탈리아, 체코 공화국 등이 중(中) 신뢰국가, 중국, 인도, 동남 아시아, 멕시코 등의 남미의 일부 국가 및 아프리카 저개발 국가 등이 저(low-level) 신뢰국가다. 순서대로 선진국, 중진국, 후진국 또는 개발도상국으로 분류되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저,중,고의 3단계로 나눈 후 각 단계별로 또 다시 3단계로 세분하면 ‘상-상’ 단계에서부터 ‘하-하’ 단계까지 9 등급이 나오는 데 현재의 대한민국은 중-상(中-上)단계로, 즉 위에서 4번 째 레벨의 신뢰도를 구축한 국가라고 필자는 평가한다.

늙은이들의 부산저축은행 부정과 젊은이들의 승부조작
최근에 일어난 부산 저축은행 사건과 축구경기에서 대단위로 자행된 부정경기는 한국 사회의 신뢰도가 점점 후퇴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심각한 우려를 준다. 소위 물주라는 조종자와 중간책 그리고 부정행위 가담자 등의 대단위 조직적인 연계가 없이는 불가능한 게 축구경기 부정이다. 은행의 BIS 비율 준수는 사회와 예금자에 대한 약속이고 회계를 정확하게 하는 것 또한 사회와의 약속인데 부산저축은행 부정을 저지른 사람들은 이를 철저히 속이고 어겼다. 저축은행의 부정부패 또한 행위자 로비스트와 정책을 담당하는 정관계 엘리트들이 부패의 사슬로 뒤엉키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라는 점에서 보면 한국 사회가 전방위적으로 타락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중 축구경기 부정은 한국의 미래인 젊은이들이 대규모로 끼어든 행위이기에 더욱 놀랍다. 부패한 정신을 가진 젊은이들이 자라나는 사회의 미래는 암울하다. 한국 사회 전반을 점검해 보고 모범이 되어야 할 사회지도층부터 특별한 각성을 해야 할 때다.

게임부정에 가담한 40여 명의 축구 선수들을 축구계에서 영구히 방하는 중징계를 했다.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페어 플레이라는 말 그대로 공정하고 정당한 플레이를 하겠다는 약속에 대한 약속을 어긴 대가를 엄하게 지불하게 한 조치다. 설사 이 조치로 한국이 월드컵 우승의 기회를 놓친다고 할지라도 이런 조치로 사회의 신뢰도가 더 이상 저하되지 않도록 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부정을 한 사람들에 대한 엄벌이 없는 사회는 ‘법을 지키면 손해’라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져 사회를 급속하게 타락시킨다. 따라서 이런 일은 미디어 언론에서 대대적으로 보도해서 전 국민에게 각성효과를 줄 필요가 있다. 부산저축은행 부정을 저지른 사람들도 철저히 조사해서 엄벌을 받게 해야 마땅하다. 솔직히 한국 사회는 경제범죄에 대한 처벌이 너무 가볍다. 이 또한 사회의 신뢰도를 낮추는 데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21세기의 한국 정치인들과 신뢰도
20세기 말미에는 몇 번이나 정계은퇴를 번복하면서 성공한 정치인이 있었다. 특정 지역의 한(恨)이 없었더라면 그 분에 대한 압도적 지지가 반복되지 않았으리라는 점에서 매우 특별했던 경우로 치부하고 싶다. 하지만 21세기에 그런 부끄러운 정치 문화적 유산은 하루빨리 청산하고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가야 한다. 우리 손에 달렸다. 앞으로 대한민국 국민 앞에 등장하는 유력 정치인들 중 어느 누구라도 그가 한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선거로 철저히 응징하는 문화를 만들어 가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의 아들 딸들이 살아 갈 한국이 고(高) 신뢰사회로 진입하고 그들의 미래가 더 밝아지리라는 건 말 할 필요가 없다. 그런 점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의 사퇴약속을 이행하는 모습에 감사의 박수를 보낸다. 물론 필자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2012 대선에도 불출마 하겠다는 대국민 약속까지 굳게 믿고 있다. 그것이 오세훈에게 ‘신뢰할 수 있는 정치인’이라는 새로운 자산을 줄 것이므로 결코 손해만 보는 일은 아님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차차기에 대권 도전을 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신뢰는 시스템과 리더의 관리능력에 의해서도 확보될 수 있다. 중-하 단계(6~7 등급) 신뢰국가에 불과했던 싱가폴의 경우다. 싱가폴은 신뢰도와 투명도에서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한 국가로 변신했다. 한국도 시스템 측면으로는 상당 부분 선진국의 레벨에 진입했다고 판단된다. 이젠 이 시스템을 어떻게 운영하느냐가 중요한 관건이 된 것이다. 이는 시스템 운영자, 즉 사회 구성원들의 신뢰도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조건 없이 사퇴약속을 지키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임으로서 한국 사회의 신뢰도 구축에 큰 밑거름이 되어 준 일에 감사드린다.

신뢰는 예측가능성(expectability)을 높여 사회의 안정성을 높이고 거래를 원활하게 해서 그 만큼 사회를 발전시킨다. 예를 들어 운전자의 좌측 깜박이 신호는 좌측으로 운행하겠다는 무언의 약속이다. 이는 상대방에게 예측을 가능하게 해서 다른 사람들의 운행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이 약속이 지켜지지 않으면 관련 당사자들은 상당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은 사퇴해야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은 박명기 교수와의 선거부정 또는 뇌물 스캔들로 사퇴를 해야 할 것으로 판단한다. 정직 공정 청렴을 강조해 온 곽교육감의 2억원 논란은 마치 과거 김대중 야당총재가 광주학살주역인 노태우 일파로부터의 20억 수수논란을 연상시킨다. 충격적이다. 법대 교수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기자회견을 통해 결정적 증거를 발표하여 불리함을 감수한 건 플러스 알파에 대한 도마뱀 꼬리 짜르기 전략으로 보인다. 그가 사퇴를 하지 않고 버틴다 하더라도 식물인간 상태의 교육감신세를 벗어날 수 없을 것이기에 교육행정이 바르게 추진되기 어렵다. 김대중의 20억 사건은 그야말로 20세기의 일이었다. 하지만 곽교육감에 관한 사건은 새로운 사회, 고신뢰 사회를 구축해서 선진국으로 가야 하는 단계에 와 있는 21세기의 일이다. 표적사정이니 하는 논란을 떠나 사퇴해야 함이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해 바람직하다. 또 선거과정과 그 이후에 범법사항이 있다면 그 죄과를 충분히 받게 해야 옳다. 특히 그는 한국 사회의 가치관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가진 교육계 수장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이런 식으로 조금씩 조금씩 신뢰도를 구축해가야만 한국사회에 미래가 있다. 무엇보다 우리의 아들 딸들은 좀 더 투명하고 신뢰도가 높은 사회에서 살아가도록 해야 한다.

신뢰사회로 가기 위한 역설
인간에 대한 터무니없는 신뢰는 오히려 부정부패의 온상이 된다. 신뢰사회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차라리 물욕과 권세에 대한 인간의 취약성을 인정하고 그를 방지하기 위한 '합리적 불신'이 필요하다. 필자는 이를 ‘신뢰의 역설(The paradox of trust)’이라 불러 왔다. ('신뢰사회로 가기 위한 역설'을 주창함‘-2005. 03월 09일, ⓒ 대자보 칼럼). 따지고 보면 민주국가의 근간이 되는 삼권분립 또한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불신에서 시작되었다. 공정과 청렴을 표방하며 그것도 교육의 수장에 당선된 진보진영의 인사인 곽노현 교육감 조차도 부정과 부패에 자유로울 수 없는 취약한 인간이라는 점을 확실히 드러낸 일은 한국인들에게 좋은 학습효과를 줄 것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조차도 ’합리적인 불신‘을 태만히 하면 안된다는 교훈은 덤으로 얻는다. 그리고 진보와 도덕성을 주창해온 인사들에게 특별히 더 엄격한 잣대를 갖다 대는 건 한국만의 예외 사항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공통된 문화 현상일 뿐이다. 미국만 하더라도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이는 도덕성을 앞세운 사람들에게 더 높은 신뢰를 보내온 사람들의 기대치에서 비롯되는 현상이자 비용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도덕성을 무기로 내세우지 않았다면 현재의 그 자리에 오르지도 못했을 거라고 유권자들이 판단하기 때문이다.

정관계 엘리트들의 청렴도와 사회의 신뢰도
중-하 등급의 신뢰국가였던 싱가폴이 세계 최고 등급의 신뢰국가가 된 이유에는 이광요라는 탁월한 리더에 의한 결과라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이 없다. <문명의 충돌>이란 책으로 유명한 문화인류학자 새무얼 헌팅턴도 이 점을 언급하며 리더의 중요성에 대해 몇 번이나 언급하고 있다. 이광요 수상은 싱가폴 공무원의 봉급을 올려주는 대신 부정부패를 매우 엄하게 처벌했다. 신뢰도가 낮게 평가되는 중국인인 화교가 대부분인 싱가폴이 고(高)신뢰국가가 된 일에 세계가 놀라고 있다. 고위 관직으로부터 하위 공무원까지 사회의 중추기관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먼저 부정부패를 못하게 철저히 단속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처럼 그 사회 엘리트들의 청렴도는 그 사회의 신뢰도를 형성하는 데 근간이 된다.

손봉호 교수는 말한다. “못사는 사람들은 유혹이 별로 없지요. 하지만 힘있는 사람들에겐 유혹이 많지요. 조금만 정직하지 않아도 얻을 이익이 크지요. 강자들이 조금 부정직해지면 큰 이익을 얻지만, 그로 인해 사회의 약자들이 결국 큰 해를 입지요. 지도층과 강자들에게 윤리와 도덕이 절실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이지요.” 한국 사회에서 강자들은 유명 정치인들과 고위 공무원이 첫째로 꼽힌다. 곽노현 교육감의 주장대로 그가 준 돈 2 억원이 아무리 선의로 준 돈이라고 쳐도 그만큼 다른 데서 보충하려 할 것이다. 그 ‘다른 곳’은 돌고 돌아 결국은 못 살고 힘없는 사람들의 호주머니일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더불어 한국도 싱가폴처럼 청렴한 공직자들을 양산할 수 있도록 그들의 월급을 올려주고 선거비용에 대한 부담도 확연히 줄여야 할 사회적 필요가 있다 / 김휘영 문화평론가(wepa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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