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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훈의 <7광구>와 봉준호의 <괴물>

CG와 3D 영상기술의 발전은 상상력과 창의력의 날개


【김휘영의 문화평론】<디워> 4주년에 나타난 <7광구>
2007 년 8월 1일 우리 앞에 나타난 영화 <디워>는 한국 사회 전체에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이전의 한국 영화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모습이 마치 꿈처럼 스크린에 펼쳐지고 있었던 것이다. 약간 늦은 감은 있지만 4년의 터울을 두고 그때의 CG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3D라는 영상기술의 옷을 입은 영화 <7광구>가 우리 앞에 등장했다. <디워>태풍이 불 때, <디워>와 경쟁하며 휘청했던 <화려한 휴가>를 만든 김지훈 감독이 한국 최초의 3D 영화 <7광구>를 출품했다는 사실은 참으로 절묘한 역사의 아이러니다.

네이버 평점과 관전평에서 너무나도 악평이 많이 나왔지만 필자가 한국 최초의 3D 영화를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고 싶다는 욕구를 제어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심야상영이었는데도 객석의 절반 이상이 차 있었으니 상당히 괜찮은 반응이었다. 엘리베이터를 나오면서 옆에 있는 30대 중반의 남자관객에게 툭 던졌다. 무척 궁금했던 질문을.

필자 : " (영화가) 어땠나요? "
관객 : " 뭐, 볼만 하던데요! "

필자의 질문이 못마땅한 듯이 시큰둥한 답변 태도로 보아 이 분도 필자처럼 네이버 평점 코너 등에서 올라온 온갖 악평을 미리 접하고 온 사람 같았다. 그런데 필자도 같은 느낌이었다. <7광구>가 최상의 영화 목록에는 못 들지만 한번 쯤 충분히 볼만한 영화였다. 더군다나 이 영화는 한국 최초의 3D 영화인데.....이 분과 헤어진 후 필자는 속으로 한마디 더 했다.

"이제 한국 영화도 기술적으로는 헐리웃에 결코 밀리지 않겠네요. 앞으로 충무로도 진짜 머리만 잘 굴리면 충분히 헐리웃과 경쟁할 수 있을 것 같죠?"

개인적으로 참 잘 보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지 않았다면 상당히 찜찜했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뭐, 볼만 하던데요!"

에누리 없이 짧고 퉁명한 대답, 이 이상으로 적당한 평가가 없을 영화가 <7광구>였다. 사실 필자의 취향과는 전혀 안 맞는 영화가 <7광구>였다. 누차 밝혀 왔듯이 필자는 아름다운 배경, 멋진 음악과 춤이 있는 무도회, 화사한 의상과 색상 그리고 멋진 등장인물, 특히 여배우까지 아름다울수록 더 좋은 영화라고 평가한다. 소위 예술영화 타입에다 진한 휴머니즘과 감동이 있으면 필자에겐 최상의 영화다. 그런데 이런 걸 다 충족하는 영화를 만나기란 정말 어렵다. 사실 평생을 통해 그런 영화를 몇 편이나 만날 수 있을까? 고작 7000-8000원을 대가로 너무 많은 요구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요즘은 3D 효과 때문에 티켓 값이 제법 인상되었지만 필자는 시사회 또는 홀로 심야영화를 즐기는 편이라 다른 사람들보다 좀 경제적으로 영화를 즐긴다. 수백억, 수천억 원이 투입된 대상을 단돈 만원 정도로 즐길 수 있는 상품이 바로 영화다. 물론 그들의 수천억보다 내 돈 만원이 훨씬 아까운 건 맞다. 게다가 귀중한 내 시간까지 빼앗아 간다고 생각하면 어떨 땐 화도 날 만하다. 하지만 영화 한 편을 보면서 이것 저것 많이 따지는 나라를 꼽는 데 한국 이상 있을까? 디워 논란 때, 일본의 한 교수도 지적했지만 SF 영화가 발전하기에 한국은 이래저래 '너무 진지한 나라'임에는 확실하다. 이 점은 시간이 많이 주어지는 드라마시리즈가 발전하는 데는 유리하게 작용할지는 몰라도 해마다 신기술이 도입되고 있는 영화는 세계시장을 선도하기는 커녕 국내시장을 지키게 하기도 힘겹다. 그래서 20세기 중반 이후 헐리웃의 전 세계 시장에 대한 지배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세계 예술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영화는 그야말로 실험 정신의 장(場)이었다. 이에 반해 드라마는 그 뒤를 쫒아 다녔고 늘상 실험보다는 안전한 길을 걸어왔다. 실패를 무릎서야 하는 과감한 도전과 실험정신에도 냉혹하기 그지없는 평가를 내려야 직성이 풀리는 한국인의 문화특성이 한국 영화의 발전을 막아 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 점은 확실히 헐리웃이나 이웃 나라 일본과도 다른 한국인 특유의 영상 콘텐츠 수용방식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영화에만 그런 것도 아니며 거의 모든 분야에서 그렇다. 이 때문에 탁상공론과 비평과 비난의 기술은 발전했으되, 정작 중요한 과학 기술의 발전을 지체하게 했고 또 영웅이 부재한 사회를 만들었다고 본다. 찌드러지게 가난하게 살며 마누라 자식까지 궁핍한 삶을 살게 한 황희 정승이나 목숨까지 대가로 바친 이순신 정도나 되어야 위인과 영웅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나라가 한국이다. 미국의 경우는 전쟁포로였다가 탈출을 해도 영웅 취급을 해주는 데 한국은 아무리 영웅적인 행적이 있어도 과거에 약간의 흠결이라도 있으면 그걸 크게 확대하여 비난하면서 끄집어 내려야만 직성이 풀리는 나라다. 그래서 실패를 두려워 않는 진취적인 도전과 실험정신이 숨쉬기는 너무 갑갑하다. 헐리웃의 본고장은 아무도 가지 않았던 우주 개척의 길을 몇 번이나 그것도 유인 우주선이 폭파되는 실패를 겪으면서도 국가가 예산을 들여 계속 시도하는 나라다. 이런 나라 미국이 문화가 훨씬 깊고 세련된 유럽 제국까지 제치고 세계 영화시장을 석권하고 있음은 오히려 당연하다.

김지훈의 <7광구>와 봉준호의 <괴물>
<7광구>가 한국 영화사에 가지는 의의는 최초의 3D 영화라는 점 이외에도 하나가 더 있다. '한국 최초의 괴물영화다운 괴물영화'라는 점이다. 봉준호 감독의 <괴물>은 사실 괴물을 빙자한 가족영화였고 괴물은 까메오나 들러리에 불과했다. 비틀비틀 걸어다니는 게 거의 다였던 봉준호의 <괴물>보다 <7광구>의 괴물은 그야말로 명실상부한 괴물이다. 괴기스럽고 흉칙하고 압도적인 공포 그 자체인 괴물이 제대로 등장한 것이다. <킹콩><삐라냐>등 헐리웃에서 출품된 괴수영화에는 상업적 성공을 위한 오락이 위주다. 드물게 휴머니즘이나 사상이 있을 지언정 촌스럽고 불편한 이념은 찾기 힘들다. 하지만 봉준호의 <괴물>에는 이데올르기가 상당 부분 녹아 있었음을 누구도 부정하지 못한다.

한국의 유명 기업이나 제약회사 또는 어떤 대학의 실험실이 아니라 하필이면 미국 사람, 그것도 보통 사람이 아닌 미국의 군인이 원흉이었다. 미군(美軍)에서 한강에 흘려보낸 화학약품에 의해 뜬금없이 괴물이 탄생하고 그 괴물에 의해 미선이 효순이 같은 여중생이 납치되는 구조는 반미 이데올르기를 저절로 연상시키는 멋진 구조였다. 쇼펜하우어는 그의 논리적 사기술을 밝힌 '토론의 38가지 법칙'에서 제 1법칙으로 적군과 아군으로 편을 갈라 적군을 증오하게 할 수만 있다면 나머지 37 가지의 사기술은 배울 필요도 없다고 단언했다. 하여간 반미의식이라는 감정에 기댈 수 있었던 까닭에 한강에 화학약품을 부은 것하고 수십년 후 괴물이 탄생하는 인과관계에 대한 특별한 설명도 없이 그야말로 얼렁뚱땅 괴물이 등장했음에도 그 잘난 평론가들의 비난을 요리조리 피해 갈 수 있었다. 사실 <화려한 휴가>의 적이라는 편 가르기, 즉 쇼팬하우어의 제 1 법칙에 경도된 사람들만 적었다면 <디워>에 대한 극렬한 안티 활동들도 훨씬 적었을 것이다. <디워>가 얼마나 많은 '악의적인' 비난에 시달렸던가? 악의적 비난에 열을 올렸던 분들은 무엇이 진정으로 한국 사회를 위하는 길인지 세상을 조금만 더 넓게 보는 시각을 가져 주셨으면 한다.

필자는 봉준호 감독의 <괴물>의 탄생구조를 두고 '과학적 인과관계의 구조가 아니라, 미루어 짐작하고 두 팔을 든 채, "믿쑵니다! 아멘!" 이라고 고백해야 하는 신앙이나 마술적(magic) 구조'라고 평한 적이 있다. '한강의 괴물과 전설의 이무기(2007.12.02, 빅뉴스)'라는 칼럼인데, 필자가 상당히 신경을 쓴 칼럼이니 혹시 괴수 또는 괴물영화에 관심있는 분이나 이 분야에 욕심이 있는 감독님이라면 참고할 점이 많으리라 자신한다. 이에 반하면 <7광구>에서 괴물이 탄생하는 건 봉준호의 그것보다 훨씬 촘촘하고 과학적인 서사구조를 갖고 있다. 극 중 대장(안성기)에 의해서 밝혀지는 괴물 탄생의 비화는 절로 경탄이 나올 정도로 멋진 아이디어였다. 여태까지 한국 영화에 보기 힘들었던 '격리된 공간 안에서의 괴물과의 생사를 건 투쟁'을 그린 점도 흥미로왔다.

일단 한국산 3D효과를 직접 체험하는 장점을 제쳐두면, 필자가 <7광구>를 관람하면서 확실히 만족한 것은 석유시추선의 내부를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세상 어디를 가면 8000 원에 석유시추선의 내부를 볼 수 있다는 말인가? 이것 하나만 해도 필자가 들인 비용의 가치는 다 했다고 생각하며 충분히 만족한다. 한국 관객들도 필자처럼 조금만 더 너그러운 시각을 가져보면 안될까? 필자에게 석유시추선의 내부를 둘러보게 할 기회를 준다면 8만 원도 기꺼이 지불하겠는데 말이다. 60억 인류 중에서 석유시추선의 내부를 볼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강우석 감독의 <실미도>를 보면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건 영화 초반의 한 사형수가 교수형을 받는 모습이었고 그 장면 또한 영화라는 상품이 없으면 평생 볼 수 없는 장면이었다. 역시 강우석 감독은 관객이 무얼 원하는가를 제대로 포착할 줄 아는 역량있는 감독이었다. 혹자들은 버스 안에서 최후로 각자 이름을 부르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하나 그건 중국 본토의 대박흥행영화 <집결호> 등의 여러 영화에도 나오는 장면이라 특별한 감흥이 없었다.

봉준호의 <괴물>이 가진 한국 영화사의 의의
봉준호 감독이 매우 뛰어난 감독이고 그의 최고작 <괴물>이 매우 훌륭한 영화인 건 어김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 영화사에서 <괴물>이 가진 의의를 찾으라면 단 하나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뭘까? 분단 상태에 있는 한국에서 최고의 흥행동원력이 얼마나 될까 하는 의문에 대한 예상 답안을 내놓은 것이다. 1320만명이 한국 영화 흥행의 최고치다. 이는 남북통일이 되기 전까지는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적지않은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무엇보다 내수 시장을 목표로 하는 한국영화에 대한 투자의 한계선(limit)을 정해주는 잣대가 된다. 이 한계선을 넘는 투자는 해외시장개척이니 2차 판권이니 하는 다른 수익원을 창출해야만 한다는 확실한 자료다. 필자가 남북통일을 강렬히 희망하는 이유는 바로 한국의 문화가 발전할 시장을 확충하기 위한 목적도 매우 강하다. 중요한 영화가 비슷한 시기에 개봉할 때 마다 온갖 악평과 악의적인 낮은 평점도 나오고 하는 이유 또한 한국 문화시장의 크기와 관계가 있다. 시장이 작다 보니 상대를 죽여야 내가 사는 구조, 즉 제로섬 게임이 계속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런 부정적인 현상을 타파하려면 해외시장을 개척하는 길 밖에 없다. 그 선도자가 심형래 감독이었다. <디워>가 선보인 혁명적인 기술력이 가진 의의를 제외하고서도, 그의 해외 시장 진출은 성공과 실패에 상관없이 한국 영화에 큰 동기를 부여하고 획기적인 전환을 주었던 건 아무도 부정할 수 없다. 선도자는 그가 겪어야 하는 시행착오들 조차 그 사회의 후진들에게 많은 분석과 더 좋은 접근 방식을 제공해 준다. 이는 그 사회에 매우 유용한 자료가 된다. 심형래 감독은 해외시장 진출 과정에서 체험한 수많은 에피소드와 시행착오 등을 상세하게 책으로 발간해서 후배 감독들에게 중요하고 좋은 자산을 남겨주시기를 바란다.

자존심 상하게도 봉준호 감독의 <괴물>이 가진 최고 흥행의 기록 마저도 3D 기술력으로 무장한 <아바타>에게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그것도 티켓 요금이 무려 1.5배 이상이었는 데도 말이다. 가족코드, 반미 이데올르기, 한국적 코믹 요소 등을 종합한 '최고로 한국적인 영화'가 '최고로 세계적인 영화'에 밀린 현상이다. 기술과는 달리 코믹은 다른 문화권에 가면 힘을 못쓰는 게 일반적이므로 '한국적 코믹'으로는 해외 시장에서 성과를 거두기 힘든다는 것도 상식으로 알아 두자. <라스트 갓파더>가 대표적인 경우다.

선도자의 법칙
세상 어느 곳의 어느 분야에서도 최초는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에베레스트 산을 처음 오른 사람과 대서양을 처음 횡단한 사람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많지만 두 번째 인물은 첫 인물보다 훨씬 짧은 시간에 더 효율적인 방법으로 등반하고 횡단을 했다 하더라도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이는 전혀 억울한 게 아니다. 왜냐하면 처음이 없었다면 그만큼 역사적 진보가 늦었을 거라는 판단때문이다. 명저 <마케팅 불변의 법칙>에는 사람들은 불완전한 선도자가 완전한 후발주자보다 훨씬 낫고 위대하다는 평가를 내리는 데 결코 주저하지 않는다. 이걸 그 유명한 '선도자의 법칙'이라 하는 데 사람들이 신제품에 열광하는 이유는 단순히 그 품질이 뛰어나기 때문이 아니다. 신제품을 소비함으로써 새로운 역사에 동참하고 있다는 자존감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자동차에서는 새롭게 선보이는 차가 기존의 모델보다 더 많이 팔리는 현상을 신차효과라고 한다. 한국 최초의 3D를 보았던 필자도 한국 영화의 발전에 작은 기여를 했다는 느낌으로 참 기분이 좋은 건 부인할 수 없다. 작은 돈으로 이런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기회는 결코 많지 않다. <7광구>는 불완전한 점이 더러 있긴 했지만 나름 재미있고 그 관객의 대답처럼 "볼만 했다."

<7광구>에서 보인 옥의 티
한국 영화사에 한획을 그은 첫 3D 영화이기에 실례를 무릎쓰고 상영 중인 영화에 대한 조심스런 비평을 하고자 한다. 이해를 바라고 필자의 분석을 다른 감독들도 참고로 하기 바란다. 아이디어도 매우 좋았고 기획도 참신했고 스토리 라인도 좋았던 영화 <7광구>에 보인 옥의 티는 무엇일까? 먼저 촬영 기법부터 보면 이 영화는 특별히 3D의 장점을 살리기 힘든 영화였다. 즉 2D로도 충분했다는 점이다. 3D는 말 그대로 3차원을 말하기에 평면이 아니라 입체다. 따라서 3D가 시각적 효과를 충분히 발휘하려면 캐릭터들이 서로 공중에서 맞대고 싸우는 장면이 많은 <디워>,<아바타>,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2>같이 소위 공중전이 많이 나오는 영화여야 좋은 데 <7광구>는 석유시추선의 선반인 평면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거의 전부인 영화다. 그래서 3D의 장점을 다 살리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즉 아이템 선정에서 실수를 한 것이라 평할 수 있다. 솔직히 <7광구>의 3D 효과보다는 영화 상영 직전의 모기업 3D 모니터 광고에 나온 입체감이 훨씬 뛰어나다. 왜냐하면 공중에 매달려 움직이는 모빌 조각품이 그 효과를 더해 주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 영화를 보면서 맨 앞줄에서부터 뒷줄로 움직여가면서도 보았고 중간 중간에 3D안경을 벗어가면서도 보았다. 공중을 날아다니는 캐릭터가 괴물뿐이고 그 맞상대는 평면에 있어야 하는 설정은 3D 기술력의 효과를 상당히 반감시켜서 아쉬웠다. 3D효과를 충분히 살리고자 했다면 허리에 총을 차고 타잔처럼 공중 줄타기를 하면서 타타타-탕! 총으로 괴물을 공격하는 방식의 씬이라도 몇 개 넣었더라면 했다.

둘째, 한국 영화 대부분에서 드러나는 속성인데 섬세함의 부족 즉 궁극적으로 감독의 역량인 연출상의 미비다. 이 점은 <디워>의 경우보다 <7광구>가 훨씬 심했다. <7광구>는 괴물과 투쟁하는 인간의 입장이나 상황이 가장 중요한 요인인 만큼 괴수끼리의 싸움위주인 <디워>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섬세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절박감이나 패닉 등의 감정을 관객에게 전달하려면 대부분 배우들의 표정과 몸짓 그리고 비명소리 등과 특수 분장 효과인 상처, 오물에 더럽혀진 육체, 찡그림, 진저리치는 액션, 목덜미의 식은 땀 등에서 미세하게 잘 드러나야 하는데 이런 점에 대한 섬세한 장면 포착이나 고려가 별로 없었다. 그래서 하지원의 액션과 절규는 관객과의 공감이 별로 없이 유리되는 결과가 되고 말았다. 그런데 필자가 보기엔 아직까지 이런 점을 제대로 살려내는 한국 감독을 몇 분, 아니 거의 보지 못했다. 한국 감독님들 정말 분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강동원 주연의 흥행영화 <전우치>를 보면서도 눈에 확 띄게 날림공사를 한 듯한 느낌에 기분이 참 상했었다.

세째, 무엇보다 격리된 공간에서 목숨이 걸려 있는 공포의 순간들로 짜여진 영화라면 반드시 나와야 하는 극도의 긴장감이나 스릴감이 별로 없다. 한국 영화계 전체에서 이런 부분에 대한 과학적 연구 분석이 덜 되어 있다고 보면 된다. 긴장감과 오싹한 스릴은 숨쉬는 소리 또는 땀방울이 떨어지는 소리 까지 들리는 정적과 찢어지는 비명, 칠흙 같은 어둠과 섬전 같은 조명, 실루엣과 실체, 흔적과 추격(도망), 꼬리와 몸통 같은 부분과 전체의 극적인 대비와 거리의 순간적 이동과 속도의 변화 등 물리적이고 과학적인 기법들이 다양하게 조합되어야만 가능한데 한국에는 이런 것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 자료도 거의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 필자가 위에 든 과학적 대조기법 또한 필자가 이 글을 쓰기 위해 순간적으로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것들을 정리해 본 것 뿐이다. 마땅히 참고할 서적도 없으므로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필자가 장르 영화별로 그 기법을 정리해서 책으로 발간해 볼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눈여겨 볼 것은 필자가 제시한 방법들은 기법의 문제이지 돈이 별로 들어가지 않는 부분이라는 점이다. 연출이 잘 되면 100억 짜리 영화가 능히 300억짜리 영화로 보이게 할 수 있다.

<7광구>에서 드러난 몇가지의 약점은 사실 김지훈 감독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영상 중진국인 한국 전체의 비애임이 분명하다. 그동안 한국 영화계는 울고 짜고 웃기고 뒹굴고 하는 등의 스토리만 지나치게 중시여기고, 실제로 영상화에 필요한 기술적이고 과학적인 자료가 축적된 게 없으니 뒤늦게 아무리 거금을 투자해서 선진국과의 격차를 줄이려 한들, 그에 비해 결과물이 흡족할 수가 없다. 한국 관객들의 눈높이는 이미 헐리웃의 최첨단 영상기술과 섬세한 연출력에 익숙해져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건 한 술에 배부를 수 없는 노릇이다. 비록 실패가 있다 하더라도 계속 격려하고 시도되어야만 하루라도 더 빨리 해결될 문제지 대책도 없이 비난만 한다고 해결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네째 스포일러성이라 말할 수 없지만 마지막에 괴물을 처치하는 방식도 매우 뛰어난 발상이었다. 그러나 이 역시 미세한 부분이 부족했다. 특히 여주인공인 관계로 마지막 액션은 진저리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게 훨씬 좋았고 괴물의 점액이나 뜯겨나간 파편이 온 사방으로 스크린을 덮치는 방식이었다면 훨씬 좋았는데 그런 점을 살리지 못한 것도 아쉬웠다. 괴물이 다가설 때도 극도의 긴장감으로 목젖이 움직이는 장면이나 식은 땀이 흐르는 장면 등이 클로즈업 되고, 그 후 괴물을 해치우고 나서 미친 듯이 발작 또는 절규하는 해준(하지원)의 모습이라도 제대로 그려냈어야 관객과의 오만가지 감정이 교류될 수 있었는데 이 점도 아쉬웠다.

스토리?

유독 “스토리가 중요하다”는 평론가들을 많이 본다. 이는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다. 영화에서 스토리는 기본이 아닌가? 어린 아이들도 다 알고 있는 이야기를 ‘평론가’라는 먹물들까지 마치 앵무새처럼 되풀이하고 있는 것은 그야말로 사회적 낭비에 불과하다. 이들의 말을 들으면 충무로가 매년 방학 황금기 때마다 헐리웃 영화에 밀리는 것이 마치 한국 영화가 헐리웃 영화에 비해서 스토리가 빈약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것 같다. 천만의 말씀이다! 이번 여름방학의 <트랜스포머 3> 도 한국 영화보다 스토리가 좋아서 흥행을 질주했다는 말인가? 언제까지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평론을 하고 있을 참인가? 솔직히 지면이 아깝다. 한국 평론가들 정말 너무나 게으르다. 공부를 안한다는 뜻이다. 공부를 안해서 그런지 사고능력까지 오래 전에 멈춰 버린 것 같다. 한국 영화를 두고 스토리 운운하는 건 마치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주에게 “공부 열심히 해서 훌륭한 사람 되거라!” 하고 말하는 것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 이런 말을 백 번 해도 손주가 공부를 잘 하게 될 리 만무하다. 어떻게 하면 공부를 잘할 수 있을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에 접근해야할 한국영화 평론가들이 이처럼 영양가 없는 덕담 수준의 말이나 하고 앉아 있었기에 한국 영화의 발전이 늦었다는 것을 알고나 있을까?

문제는 '무엇'이 아니라 역시 ‘어떻게’ 에 대한 해답인 것이다. 게다가 역사적으로 기술의 발전은 그 자체로 상상력과 창의력의 날개가 되어 왔다는 것도 알 필요가 있다. 음악 평론가들은 만약 베토벤 시절에 색스폰이라는 악기가 있었다면 그의 교향곡이 많이 달라졌을 거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미술사에서는 안료를 담아 야외로 가져 나갈 수 있는 '튜브(Tube)'의 발전이 근대 미술의 혁명이랄 수 있는 인상파, 야수파의 출현을 가능하게 했다는 점을 <디워>논쟁 때 필자가 밝힌 바 있다. CG 기술력에 대한 자신감과 그의 뒷받침이 없었다면 한국에서 심형래 감독의 <디워>나 김지훈 감독의 <7광구> 같은 괴물 스토리가 나오기 힘들었을 것도 말할 필요도 없다. 하루가 다르게 영상기술이 발전해 가고 있는데 아직도 구태의연하게 스토리 타령이나 하고 있으면 점점 뒤로 밀려날 뿐이다. 필자가 보기에는 한국 영화의 문제는 스토리가 아니라 언제나 기술력 즉 CG같은 과학 기술력이나 감독의 연출력이 문제였다. 정말로 헐리웃과 충무로의 결정적인 차이가 스토리였다면 그 정도는 충분히 따라 잡았을 것이다. 가장 큰 격차는 기술력의 차이에서 비롯되었고 기술이 안 따라가니까 상상력도 고갈될 수 밖에 없는 악순환이 계속되어 왔을 뿐이다. 물론 자본을 제외하고 말이다.

영화에서 스토리는 줄거리 즉 거시적 관점이다. 하지만 영화의 작품성을 살리는 건 미세한 부분과 부분들이 살아 숨 쉬어야 하는 미시적 관점에 달려있음을 너무 간과하고 있다. 이 미시적 관점들이 모두가 기술적이고 과학적인 영역이다. 연기력과 연출력 또한 타고난 감각적 자질에다 동시에 미시적이고 체계적인 연구 자료를 바탕으로 한 훈련이 필요한 과학적 영역인 것이다. 물방울의 모양에 관심을 가지지만 그 물이 수소 2 분자와 산소 1분자의 결합이라는 미시적이고 과학적인 분석을 등한시 해온 동양의 문화 속성상 서양보다 영상화법이 뒤쳐져 있는 건 충분히 이해가 된다. 하지만 이젠 바뀌어야 할 때다. 한국에만 해도 연극영화과를 전공과목으로 하는 대학이 많이 생겼다. 심형래의 CG 영화 <디워>이후 4년 만에 나타난 김지훈의 3D 영화 <7광구>를 보면서 한국의 영상 기술도 이젠 헐리웃에 특별히 뒤쳐짐이 없다는 사실을 재차 확인했다. 정말 이젠 헐리웃과 좀 더 공정한 입장에서 경쟁할 수 있게 되었구나 라는 걸 느낄 수 있는 영화였다. 물론 가장 큰 헌사는 심형래 감독에게 바쳐야 할 것이다. 그는 헐리웃에 비해 턱없이 적은 자금으로도 전혀 밀리지 않는 기술적 성취를 이루었다. 충무로가 헐리웃에 비해 자금력이라든지 아직까지 부족한 부분이 많기는 하지만 현재의 기술력에 연출력만 잘 뒷받침된다면 앞으로는 자본의 열세조차도 충분히 만회할 여지가 생긴 것이다. 자동차, 조선, 전자, 휴대폰, 영화 등 언제 우리 대한민국이 선진국에 비해서 유리하거나 공정한 입장에서 출발한 적이 있었던가? 역사란 이렇게 불리한 입장에서도 때로는 무모해 보일 정도로 용기있게 도전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한 걸음씩 성큼성큼 전진해 왔다.

이런 저런 결점에도 불구하고 <7광구>는 충분히 볼 가치가 충분한 영화였다. 한국 최초의 3D 영화인데 안보면 오히려 나중에 후회할 사람들이 더 많을 영화임은 확실하다. 원래 생각이 젊고 진취적인 사람일수록 새로운 기술과 문화에 대한 수용도가 빠르고 높다고 한다. 이렇게 난무하는 악평에도 불구하고, 한국 관객들이 새로운 기술로 한국 영화사의 새장을 열어가는 영화 <7광구>에 관심을 표하고 있는 일에서 21세기 한국인들이 정말 약동적이고 자신감이 넘치는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확인한다. 개봉 3-4일 만에 <7광구>가 동원한 누적 관객수가 무려 135만명에 이른다. 에이리언 같은 괴물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필자가 보기에도 나름 괜찮았고 또 어느 정도의 흥행을 충분히 예상했지만 솔직히 놀랍다. 타인의 악평보다 자신의 개성을 더 중시하고 있다는 반증임과 동시에 정말 에너지가 넘치는 사회가 아니면 일어나기 힘든 일이라고 평가한다. 이런 관심은 한국 영상기술의 발전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갈 동력이 된다. 이는 돌고 돌아 한국 관객 전체, 아니 한국인 전체에 혜택을 주게 되는 선순환 구조가 된다. 현재 대한민국은 심형래 감독 이후 CG 기술의 발전으로 놀라운 혜택을 받고 있다. 뽀롱 뽀롱 뽀로로가 그 증거다. 요즘 디자인과 영상 기술은 한 공동체의 최첨단 기술인데 그것의 혜택을 영화에만 국한해서 분석하는 건 참으로 근시안적인 사고에 불과하다.

때깔이 달랐던 영화, <디워>
2007 년 8월의 디워를 그 이전의 한국 영화들과 비교해서 단 한마디로 요약하면 "때깔이 다른 영화"였다. 3D가 결국은 CG가 좀더 고도화된 단계임을 생각할 때, 영상기술적 발전의 측면에서 본다면 <7광구>가 약진이라면 4년 전의 <디워>는 가히 한국 영화계의 혁명적인 변화였다. 그래서 필자는 <디워>를 보자 마자 한국 영화는 <디워>이전의 영화와 <디워> 이후의 영화로 나누게 될 것이라고 공언했던 것이다. <디워>에 열광적으로 반응한 한국 관객들의 정신 또한 참으로 젊고 건강했다는 사실 또한 재삼 확인한다 ( 2부에서 계속) - 김휘영 대중문화평론가 (wepass@naver.com)

: 한국 최초 3D 액션 블록버스터 ‘7광구’가 3점대 낮은 평점에도 불구, 개봉 5일 만에 150만 관객을 돌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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