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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푸팬더에 나타난 장자와 동양문화코드 읽기

문화의 이해는 문화상품의 경쟁력

【서울=빅뉴스】김휘영의 문화평론= 쿵푸팬더2 : 400만을 넘어 500만 고지로 질주 중

쿵푸팬더 2는 6월 12일, 개봉 후 18일 만에 누적관객수 400만명을 넘어서며 3 주째 박스 오피스 정상을 지키고 있다. 과연 500만 명의 고지를 넘어 한국 애니매이션 영화의 전설이 될 수 있을 지가 초미의 관심사로 이는 단지 시간 문제로 보인다. 한국, 중국을 시작으로 LA, 뉴욕, 런던, 베를린까지 전세계에서 진행된 월드 투어까지 성황리에 마친 <쿵푸팬더2>는 전세계 관객들을 사로잡으며 흥행몰이를 하고 있지만 무엇보다 한국, 중국 등 동양권에서 압도적인 호응도를 보인다. 쿵푸팬더 2의 어떤 점이 동양인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는지 이 시리즈에 나타난 동양적인 문화코드를 읽어 보자.



도화(桃花)와 도원(桃源: 복숭아꽃밭, Peach Garden)

쿵푸팬더 1 편에서 영화 전반에 걸쳐 밝고 화사한 꽃이 아름답게 휘날린다. 도화(桃花) 즉 복숭아꽃이다. 복숭아꽃이 만발한 공간은 중국인들의 무의식 깊숙히 자리매김한 유토피아이며 이데아의 세계다. 특히 멘토인 시푸가 어린 주인공 푸에게 사명(Mission)을 자각시키고 중국 전통무술을 전수하여 서사시적 영웅인 용의 전사(Dragon Warrior)로 재탄생시켜 가는 공간에는 어김없이 '생각 하는 나무(= 복숭아 나무)'와 그 꽃인 도화가 등장한다. 21세기 헐리우드의 애니매이션으로 부활한 쿵푸팬더 안에 도화꽃이 만발한 공간은 자신감도 없고 사명의식도 없는 뚱보 푸를 영웅으로 성숙시키는 엄마의 자궁이며 인큐베이터로 활용되었다. 이 얼마나 절묘한 배치인가? 새삼 헐리우드의 저력을 느낀다.

필자가 중국이 낳은 세계적인 환타지 소설로 평가하는 작품이 서유기(西留記)다. 이에서 일개 원숭이에 불과한 손오공이 불사의 능력을 갖게 되는 것도 천계에서 훔쳐 먹은 천도복숭아의 신비한 힘 때문이다. 동양 사회에서 시대를 초월한 베스트 셀러인 삼국지의 경우, 유비 관우 장비가 모여 의형제를 맺으며 웅대한 포부와 결의를 다짐했던 장소가 또한 복숭아 밭이다. 이 세 사람의 의형제 결의를 도원결의라 하는데 이때의 도원(桃源)이 복숭아꽃밭이다.

영어로 번역하면 peach field 보다는 peach garden이 더 적절하지만 무릉도원이라 할 때의 도원은 이 두 영어 단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그건 무의식에 깃든 이상향으로서의 문화코드다. 따라서 중국 문화예술에서 복숭아꽃은 일본 문학과 애니메이션에 자주 등장하는 벚꽃 이상의 문화적 의미를 가진다. 더 나아가 일본이 대동아공영권을 기치로 제국주의적 침략을 했던 역사적 과오를 저지르는 바람에 일본의 국화인 벚꽂이 주변 동양사회에 상당한 거부감을 주는 약점이 있는 반면에 복숭아꽃은 그런 반감 조차 주지 않는 매우 매력적인 문화코드다. 게다가 도화가 가진 밝고 화사한 핑크 칼라는 서양인들에게도 좋은 이미지를 준다.


이 즈음에서 우리 한국에도 영국의 장미, 중국의 복숭아꽃, 일본의 벚꽃, 네델란드의 튜울립, 페루의 해바라기처럼 한국을 쉽게 상징할 수 있는 꽃이 있다면 참 좋겠다. 현재 한국의 국화인 무궁화꽃이 무척 아름답고 향기롭다. 하지만 영국이 그들의 국화인 장미의 품종개량을 위해 들였던 지난한 노력처럼 한국도 무궁화를 좀 더 개량하고 더불어 또 세계 만방에 알리는 노력을 더 많이 해야 할 것이다.

노장사상와 한국의 몽유도원도

시공을 초월하여 중국인의 무의식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사상은 유교, 불교, 현재의 공산주의도 아닌 도교다. 이는 종교적인 신앙의 차원이 아니라 하나의 사상(思想)이기도 하고 생활 깊숙히 자리매김한 문화적이고 무의식의 차원이라 더욱 뿌리깊다. 도교에서 매우 중요한 위상을 차지한 꽃이 도화다. 장자가 꿈 속에서 신선이 되어 거닐었다는 장생불로의 공간 또한 무릉도원이다. 한국 동해안의 무릉계곡은 이 무릉도원의 절경을 본따 지은 것이다. 이렇듯 도교는 한국에도 매우 강한 영향을 끼쳤다. 고대 삼국시대 고구려의 보장왕 시절 국가적 차원에서 번성하였고 신라의 화랑도에도 강한 도교 사상이 깃들어 있으며 백제의 사택지적비 등에도 노장사장이 짙게 드러난다. 이는 고려를 거쳐 조선 시대에도 이어진다.



15세기 중반 세종대왕의 세째 아들인 안평대군이 꿈에서 무릉도원을 거닐었는데 이를 천재 화가 안견에게 부탁하여 그리게 한다. 이 작품이 바로 한국 관념산수화의 최고봉인 몽유도원도다. 안타깝게도 현재 한국이 아니라 이웃나라 일본의 국보로 지정되어 일본(日本) 천리대(天理大)에 소장되어 있다. 한국 정부에서 이 작품의 반환을 위해 외교적 노력을 다 해주기 바란다. 필요하다면 재정적 지원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미인도(2008, 전윤수)나 전우치(2009, 최동훈)처럼 언젠가 이 몽유도원도를 소재로 하는 환타지 영화도 나올 법한 좋은 콘텐츠이기도 하다. "무릉에 사는 한 어부가 복숭아꽃이 떠내려오는 걸 보고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 보니 복숭아꽃이 만발한 평화로운 마을이 있었다. 어부는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꿈같은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집 생각이 나서 돌아 가려고 하니 절대로 바깥 세상에는 알리지 말라고 한다. 떠나 오는 길에 군데 군데 표시를 해 두었다. 하지만 나중에 찾으려 하니 그 마을은 종적조차 없었다" 이 스토리가 몽유도원도의 바탕이 되었으리라고 생각되는 도연명(陶淵明)의 시(詩) 도화원기(桃花源記)의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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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생불로(長生不老)의 이상적 모델인 신선이 되어 무려 1억 8천년인 삼천갑자를 산다는 동방삭을 그린 한국의 민속화에는 어김없이 도화꽃이 등장하고 있다. 한국의 민속화 중에서 일반 신선도와 동방삭을 대상으로 하는 그림의 차이를 논할 때 전문가들이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게 바로 그 신선의 손에 들려 있는 복숭아 나무 가지의 유무다. 한국의 태극기에 나타나는 태극 모양과 건론감리도 음양오행설과 팔괘 등 도교사상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 (*장생불로 : 영원히 살고 늙지도 않는다는 도교의 이상적 삶으로 한국에서는 불로장생으로 표현된다)

도화꽃에 깃든 노장 사상의 문화코드는 고대 중세를 넘어 현대에 까지 이어지고 있다. 80년대 중후반 범아시아권을 태풍처럼 휩쓸었던 대중 무협소설 영웅문(英雄門,고려원/ 나중에 김영사에서 사조영웅전이란 이름으로 재출간한다)에 등장하는 초절정 고수 황약사가 살아가는 공간 또한 도화도로 복숭아꽃이 만발한 섬이다. 황약사는 그가 사랑하는 아내가 죽자 가급적 세속을 멀리하며 그녀를 영원히 사랑하면서 살아간다. 이 소설은 신필(神筆)이라 불리는 진융(金庸, 김용)의 작품인데 중국 홍콩 대만 뿐만 아니라 한국 일본 등에서 까지 초대형 베스트셀러로 한 시대를 풍미했고 현재도 영화 드라마 게임 등으로 반복되고 있다. 여주인공 황용의 아버지이기도 한 황약사의 이름에 약(藥)이 있고 그가 하필이면 동사로 불리는 동쪽의 최고수로 장치한 점은 진시황이 장생불사의 묘약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동쪽으로 동남동녀들을 파견한 일을 연상시키기에 예사롭지 않다. 이처럼 노장사상과 복숭화꽃은 중국 문화예술 뿐만아니라 동양 문화 전반에 시대를 초월하여 깊고도 광범위하게 그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 아이콘이다.



현재 중국에서 자랑하는 세계적인 관광지로 꾸이린(桂林, 계림)의 샹그릴라 라고 불리는 곳이 있다. 대만의 한 사업가가 사들여 일종의 민속촌으로 꾸민 곳인데 공식적인 이름은 '세외도원(世外桃源)'으로 표기되어 있다. 연자호 등 이곳 주변 호수 주변에는 수십만 그루의 복숭아 나무를 심고 1년 내내 도화가 피게 조성되어 있다고 한다. 한국 현대문학에서도 복사꽃이 많이 등장하고 있고 해마다 4월 하순 경북 영덕 일대와 강원도 강릉, 충북 음성, 원주 치악산 그리고 주문진 등 방방곡곡에서 복사꽃 축제가 열리는데 이 복사꽃이 바로 복숭아꽃이니 이 복사꽃이 한국인의 문화생활에도 얼마나 깊게 연관되어 살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세속의 영욕을 초월한 노자와 장자의 삶

쿵푸팬더I 에서 주인공 푸는 초절정 고수인 용의 전사(Dragon Warrior)로 일세의 영웅이 되지만 신분의 상승이나 세속적인 출세에 무관하게 여전히 중국의 전통 음식인 국수를 만드는 일에 주력한다. 이것 또한 세속의 명리에 초월하여 유유자적하게 사는 걸 이상적 모델로 보는 노자 장자의 도교 사상의 뿌리에 깊이 닿아 있다. 더구나 최고의 명대사로 꼽히는 "어제는 흘러간 역사요, 내일은 알 수 없는 미스테리다. 오늘은 신이 준 선물(gift)이다. 그래서 현재(present)라고 부른다"의 영어 원문에서 보는 절묘한 라임(rhyme)의 배치와 그 의미의 배열을 차치하더라도 새삼 현재를 강조하고 있음을 확인한다. 이 또한 사후 세계인 천당이나 극락 보다는 장생불로를 희망하며 현세를 중시하는 노장사상과 관련이 깊다. 이렇듯 쿵푸팬더 1편은 처음부터 끝까지 동양문화에 대한 세심한 문화적 배려와 기술적인 세련성이 바탕이 된 영화다. 이 영화가 중국 본토가 아닌 헐리우드에서 나온 영화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이런 쿵푸팬더1에 대해 중국 관객들이 높은 호응을 보일 것은 당연하다. 특히 지식인들과 오피니언 리더들로 부터 우호적인 반응을 얻기에 매우 유리하다. 이런 문화코드들이 많이 배제된 채 오락성이 상대적으로 강조된 쿵푸팬더 II 는 일부 중국 지식인들에게 '단순폭력영화' '미국의 중국문화침략' 이라는 말도 안되는 반감을 살 수 있는 핑계꺼리를 제공했고 이를 빌미로 관람거부운동을 부추기는 다소 황당한 신문광고까지 등장하게 했다. 쿵푸팬더 2 는 대포 등의 신병기로 상징되는 서양 제국주의의 침략을 등장시키고 이에 맞서는 용의 전사와 무적 5인방의 활약에 주안점을 두었지만 극적인 대비가 다소 미흡했고 또 오락성의 부각만큼 예술성이 상당히 뒤쳐진 아쉬움이 있다. 재미를 별개로 산업디자인이나 여인영 감독처럼 이 방면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1편과 함께 3D로 기술적인 진보를 이룩한 2편 또한 꼭 볼 필요가 있는 고전으로서의 가치도 있다.


다른 많은 의미를 다 제쳐 두고서 13억이 넘는 중국인 자체 시장만 해도 엉첨나다는 것을 감안할 때, 쿵푸팬더 시리즈에 도화꽃과 노장사상을 작품 전반에 잘 활용하고 있는 건 헐리우드와 드림웍스의 문화적 소양과 그 역량을 잘 엿볼 수 있게 한다. 또 이들이 세계 최고의 영상상품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는 아시아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얼마만큼이나 노력하고 있는지도 잘 알 수 있다 / 김휘영 대중문화평론가(wepa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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