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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헌 니콜 키드만 최민식 다이엘 크레이그 4인 인터뷰

감독과 배우의 철학과 소양이 영화의 질을 결정해


【서울=빅뉴스】김휘영의 문화평론 = 대중 예술의 총아인 영화, 감독과 배우의 소양

현대 사회에서 최고의 대중 예술은 영화다. 어느 예술 또는 문화 상품도 영화만큼 짧은 시간에 또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 건 없다. 영화는 그 나라의 대중문화예술의 총아이며 또 요즘에 와서는 그 나라의 과학 기술의 총아이기도 하다. 영화에는 그 나라의 예술, 기술, 사상, 문화 등 축적된 사회적 역량이 종합적으로 드러난다. 따라서 그 나라에서 출품되는 영화의 수준은 곧 그 나라의 대중문화의 수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를 종합적으로 지휘하여 제작하는 사람이 바로 감독이며 감독이 영화에서 관객에게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구현해 주는 사람들이 배우다. 이 중에서도 대중에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는 배우를 우리는 스타라 부른다. 영화가 그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이나 스타들의 영향력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그들의 패션이나 행동 및 사소한 말 한마디도 대중의 관심을 받으며 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또한 스타배우들의 출연여부는 그 영화의 흥행 뿐만아니라 투자 단계에서 부터 막대한 영향을 끼쳐 제작 자체를 결정지을 정도로 막강하다. 헐리웃에서도 그렇지만 스타배우가 감독보다 더 영향력이 강한 경우도 많다. 전 세계적으로 볼 때, 스타배우의 개런티가 감독보다 고액인 경우는 부지기수다.

자본의 논리와 인간의 논리

2010년 8월 중순에 한국 관객의 치를 떨게 하면서 우리 앞에 나타난 잔혹 폭력영화 <악마를 보았다, 2010.8. 김지운>(이하 '악마를'로 약함)는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킨다. '나오지 말았어야 할 영화'라는 혹평이 있는 가운데 고어 영화라는 '새로운 장르의 개척' 이라며 두둔하는 관전평도 있다. 필자는 <악마를 보았다>는 한국 영화계, 즉 충무로의 부패한 구조에서 필연적으로 나올 수 밖에 없었던 일종의 사생아로 진단한다. 문화평론가로서의 필자의 관심은 이 영화 한 편보다 이 사생아가 충무로에서 왜 나와야 했는지, 또 기어코 나올 수 밖에 없었는가에 있다. 물론 이런 해괴한 영화가 우리 사회에 출몰하고 만 가장 큰 원인은 흥행이라는 자본, 즉 돈의 논리임은 확실하다. 문제는 이 돈에는 인격이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를 자본의 문제로 치부해 버리고 먼 산 보듯 하면 우리는 어떤 방안도 모색할 수 없고 이런 문제는 계속 반복순환될 뿐이다. 따져 보면 이 자본 또한 거기에 관계되는 사람의 의지에 의해서 쓰임이 결정되고 방향이 잡힌다. 자본으로 더 많은 자본을 확충하고자 의도하더라도 궁극적으로 그 방식(how)은 관계 당사자들인 사람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따라서 필자는 여러 원인들 중에서 일단은 영화를 만들어 내는 당사자,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감독과 유명배우의 철학과 소양의 입장에서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 접근법은 가장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최고의 방법이기도 하며 동시에 인류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유효하다.



명배우 니콜 키드만

영화가 감독과 배우의 철학과 소양,그리고 기술적인 역량을 다 나타내지 못하는 경우는 있을지라도 결코 그것들을 벗어나는 경우는 없다. 이런 점에서 영화는 영화를 제작하는 사람들의 능력이이기도 하지만 철학이기도 하며 또 그의 소양의 정도를 보여주는 거울이랄 수 있다. 또한 감독과 유명배우들의 영화에 대한 철학과 소양은 그들이 참여한 영화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잣대가 될 수 있다. 일반 배우를 생략한 건 그들이 영화에 미치는 영향력이 미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충무로가 처해 있는 구조적 모순은 차후에 논하기로 하겠다. 그보다도 훨씬 중요한 것이 영화 종사자들의 소양과 철학이기 때문이다. 영화에 한해 구체적으로 말하면 과연 '어떤 영화'를 만들어서 흥행하고자 하느냐에 대한 문제다. 영화인들의 소양과 철학에 대한 엿보기를 위한 좋은 모델을 소개한다. 세계적 스타 니콜 키드만과 다이엘 크레이그의 인터뷰다. <황금나침반>에서 호흡을 맞추었던 두 사람이 영화 인베이젼(The Invasion, 2007. 올리버 히르비겔)에서 보조를 맞추면서 함께 인터뷰에 응한 내용이다.

두 헐리웃 스타의 영화관

톰 크루즈의 전(前) 부인이기도 했던 니콜 키드만은 영화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함께 인터뷰에 응한 다이엘 크레이그는 전 세계 모든 남자배우들이 한 번 쯤 꿈꿔봄 직한 007 시리즈의 최근작 <퀀텀 오브 솔라스, Quantum Of Solace, 2008 >에서 주인공 제임스 본드 역을 맡았던 배우다. 좀처럼 접하기 힘든 두 유명 배우의 인터뷰에는 이들의 영화관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Channel 2.0에서

이 인터뷰와 한국의 스타배우 최민식, 이병헌 그리고 유명감독 김지운의 인터뷰를 함께 보며 비교 분석해 보는 것은 매우 흥미롭고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줄 것이다.

감독과 배우의 영화에 대한 철학에 대하여

Q. 영화배우로서 영화 감독과 배우와의 관계에 대한 (본인의) 생각은 무엇입니까?

니콜 키드만 : 영화에는 분명 감독의 시점이 들어있고 배우는 그 일부가 된다. 뚜렷한 비전을 가진 많은 감독들과 작업해 봤는데 일부는 정치적이고 일부는 철학자였다. 배우로서 그 일부가 될 뿐이어도 그 비전에 끌려 일하게 된 거 같다. 진실을 얘기하는 영화에 도움이 되길 바라면서 연기에 최선을 다했다. 그(감독)와 일하는 건 재밌다. 그는 기발한 사람이다. 섬세하면서도 열정적이다. 그의 작품은 정말 대단히 섬세한데 그래서 매력적이다.

김휘영 해설 :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건 감독의 철학이다. 사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시나리오가 아무리 좋다고 한들 감독의 철학과 마음에 맞지 않으면 선택될 수 없으며, 배우의 연기가 아무리 뛰어난들 감독이 OK 하지 않으면 영상에 담길 수 없다. 또 영화 속의 주제와 흐름, 그리고 캐릭터, 그 중에서도 주연급은 아무리 부인해도 감독의 시각이 반영되지 않을 수 없다. 3 년 전 디워 토론 와중에 필자가 강우석 감독의 <공공의 적, 2002>을 한국 영화사상 최악의 영화로 규정하면서 지적했던 게 바로 감독의 눈(The director's Eye)이다. 필자의 칼럼 <영화 '디워'를 보는 눈(EYE), 2007.9.3>중에서 중요한 부분을 그대로 참조하면 다음과 같다.

강우석 감독의 눈(Director Gang's Eye)

강우석 감독이 만든 영화 ‘공공의 적(敵)’은 ‘충무로의 눈‘을 대표하고 있다. 이는 작품성이나 예술성보다는, 돈이 되면 어떤 소재나 어떤 주제라도 찍어 내겠다는 철저한 자본의 눈이다. ‘공공의 적(敵)’에서 형사 강철중은 영락없이 감독 강우석의 눈이다. 논란이 되는 마지막 부분에서 공공의 지팡이 강철중이 규완과의 결투신이 끝나고 규완의 몸 위에다 흰가루(마약)을 뿌리는 장면은 논란이 많은데, 필자가 보기에는 강철중이 규완을 살인한 것이 분명하다. 이는 강우석 감독이 TV에 나와서 “그런 인간은 죽인다. ‘내(我)‘가 영화에서라도 반드시 죽이고 만다”라는 말로 확인해 준 것에 방점을 찍을 필요도 없다.(중략)

비평가의 눈-김휘영의 눈(Critic's Eye-Kim's Eye)

펀드 매니저 규완(이성재粉)이 사악한 존재인데도 불구하고 ‘법으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서 직접 처벌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한다면, 그건 너무 평면적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조금만 더 심층적으로 보면, 사실 규완은 강우석 감독이 가지고 있는 증오의 철학이나 특이한 세계관(세계를 보는 눈)을 피력하기 위해서 만들어 낸 캐릭터 일 뿐이다. ‘감독의 눈(The Director's Eye)' 때문에 규완은 어쩔 수 없이 냉혈한이 되어야 했고, 더 나아가 친부모까지 잔인하게 살해하도록 설정되어졌을 뿐이다.

‘법으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고 상대(antagonist)가 악마와 다를 바 없는 인간이라서 반드시 처벌해야 한다고 치자. 그 라스트 신은 절벽 위나 고층 빌딩 옥상 정도로 잡아서 해결하면 된다. 격렬한 격투신의 마지막에 주인공이 그를 제압해 놓고, -회개의 기회를 주었는데도- 스스로 악마적 본성을 표출하며 더욱 발악하다가 낭떠러지나 빌딩 아래로 추락사하는 구조로 간단히 해결된다. 빌딩옥상이나 절벽이 아닌 보통의 공간에서라면, 뾰쪽한 돌출부같은 것에 머리가 부딪치는 등의 우발적인-그러나 필연적인- 사고로 천벌을 받는 형식으로도 충분하다. 그러면 최소한 공공의 지팡이가 공공의 킬러로 변하는 일만은 피할 수 있었다.

자본의 눈 (The Capital's Eye)

그러나 강감독은 그런 방식을 취하지 않고 직접 분노를 표출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대중의 감정에 철저히 영합해서 돈을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한 장치라고 생각된다. 곽경택 감독의 영화 ‘친구’의 마지막 장면에서, 장동건에 대한 별로 필요도 없는 수 십 번의 난도질도 같은 맥락이다 (중략- 다만 친구의 경우엔 유혈낭자하고 잔혹한 장면 자체는 없었다) <참고> 이 인용부분은 3년 전에 쓴 필자 칼럼 <영화 '디워'를 보는 눈(EYE)-네이버 뉴스 검색, 2007.9.3>에서 따왔다.

<공공의 적.2002>에서 <추격자.2008>를 거쳐 <악마를 보았다.2010>까지

한국 영화판에서 보기 드물게 흥행에 성공한 시리즈물인 <공공의 적,2002, 강우석>과 <악마를 보았다,2010,김지운>는 여러모로 닮아 있다. 사이코 패스 성향의 악인--국가공무원 신분의 보복자--사법적 심판이 아닌 사적인 처벌 등 이 세 줄기가 완벽하게 닮아 있다. 다만 세부적으로 사이코 패스적 인물(규완: 이성재역)이 진짜 악마같은 인물(경철)로 레벨 업 되고, 이를 추격하는 캐릭터는 경찰(강철중)에서 국정원 직원(수현)으로 변했고 거기다 '응징'이 더 처절한 '복수'로 바뀌었을 뿐이다. 유교가 1000년 이상 지배해 온 나라임을 감안하면, " 그 많은 유산을 자식에게 안 물려주고 고아원에 기증을 해? 네 놈이 그러고도 애비야?" 라는 비정한 독설을 내갈기며, 오직 돈을 위해 친부모를 살해하는 장면을 적나라하게 담은 일 또한 도저히 상상하기 힘든 쇼크였음은 분명하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으로서 상상하기조차 끔찍한 친부살해(親夫殺害)가 <악마를 보았다>에서 여러 사회적 약자들을 무참해 살해하는 것으로 변하는 동안 그 표현방식은 실로 섬뜩할 만큼 잔혹해졌다. 더 강한 자극을 주어야만 흥행을 담보할 수 있다는 속성에서 보면 8 년이란 시간의 흐름에 따른 필연적인 진화였을 뿐이다. 흉칙한 괴물의 진화물인 것이다. 다만 <추격자, 2008,나홍진>는 잔혹한 장면이 일부 드러나고 있지만 마이너리티 즉 사회의 약자에 대한 인간적 연민의 시점을 끝까지 견지하면서 카메라로 추적해 낸 나홍진 감독의 의지와 철학이 그대로 관객에 전해져서 상당 부분 작품성을 담보했다.

표현의 자유와 감독의 철학과 소양

이에 반하여 사회적 약자들인 여성과 미성년자들까지 연민이 아니라 철저하게 학대하고 유린하면서 그 잔혹성을 볼거리로 이용한 <악마를 보았다>는 표현의 자유를 악용한 대표적 사례다. 김지운 감독이 방패막이로 둘러대고 있는 헐리웃의 <양들의 침묵>이나 <쏘우> 시리즈는 <악마를 보았다>와 전혀 차원이 다르다. 그 영화의 바탕에 깔린 철학을 짚어 보느라면 이 두 영화에 비교하는 건 그 자체가 모독이다. 선진국에서는 동물학대에 대한 영상조차도 끔찍해 하는 문화인데 충무로에서는 이렇게 인간을 무자비하게 학대하고 유린해 가는 모습을 세세하게 담은 걸 영화라고 대중 앞에 내놓고 있다. 한마디로 한국 관객들의 수준을 철저하게 무시하고 있는 짓이다. 어떤 영화라도 만들어서 거대 자본의 힘으로 배급망을 독점적으로 장악 해버리면 흥행은 절로 따라 오리라는 계산이 깔려 있다. 2010년 8월 충무로의 찌끄러진 얼굴이다.

표현의 자유의 한계는 감독과 배우의 소양과 철학에 달린 문제임을 다시 새삼 확인한다. 김지운 감독이 얼마나 소양이 부족하고 철학이 빈곤하기에 여기에다 '겨자의 톡 쏘는 맛'이 나오고 '더 심하게 했어야 했는데...' 라는 말이 나온단 말인가? 이미 썩어서 구역질 나는 음식에 겨자가 있고 없고가 별반 차이가 있을까? 대한민국 유명 감독으로서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 단 한번이라도 생각해 보았단 말인가? 1류 감독과 1류 배우가 의기투합해서 3류 잔혹영화를 대중 앞에 내놓은 행위는 그 자체가 우리 사회에 대한 '잔혹한 폭력'이라는 사실 조차도 모르고 있는 것 같아 참으로 안타깝다. 우리 사회가 이런 영화에 흥행이라는 자양분을 주면서 꾸준히 키워 온 일에 대한 자성을 해야 할 때다.

배우로서 영화에 임하는 자세에 대하여

Q. 배우로서 이 영화에 출연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또 영화 작업을 하는 동안의 자세와 느낌은?

니콜키드만: 출연 이유 중 하나는 감독 때문입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내게 영감을 주거나 능력있는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나를 존중해 주고 일에 있어서는 능숙하길 바랍니다. 그래야 매일 일하러 가는 게 즐거워 질 테니까요. (계속) 몇 년간 영화를 만들어 봤는데 어릴 때도 그랬고 지금도 역시 액션과 컷 사이의 순간이 너무 좋습니다. 모든 것이 가능해지는 시간이니까요. 내겐 (이번 경우가 굳이) 특이한 경험은 아니었습니다.

한국 스타배우 최민식: 이 지독한 영화 <악마를 보았다> 를 찍는 동안 진절머리 칠 정도로 몹시 힘들고 괴로왔다. 빨리 이 영화에서 벗어나 다른 영화를 찍고 싶다. 다음에는 블랙코메디였으면 좋겠다. (물론 이 말이 자신이 이런 영화에 출연한 일을 변명하기 위한 연극적인 멘트이거나 연기자인 자신조차도 괴로울 만큼 잔혹한 장면이 많이 나온다는 걸 내세워 영화 흥행을 위한 고도의 전략일 수도 있다)

김휘영 평론가: 헐리웃 스타 니콜 키드만과 한국의 유명 배우 최민식, 이 두 배우의 영화 출연에 대한 입장을 보면 기본적인 관점에서부터 너무나 큰 격차가 있음을 확인한다. 니콜 키드만은 영화찍기가 하나의 즐거움이고 감독과의 만남은 영감을 얻고 (자신을 성숙시키기 위한) 배움을 얻는 과정으로 생각하고 있다. 액션과 컷 사이의 순간을 매우 즐겁게 여기는 헐리웃 배우 니콜 키드만이 너무나 부럽고 존경스럽게 보일 것이다. 충무로에서 이런 시각으로 영화에 임하는 배우가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자문해 본다. 이런 환경이 될 수 있도록 한국 관객들 모두가 한국 영화와 영화인들에 대해 좀 더 따뜻한 관심을 보여야 한다. 더불어 그들에 대한 한국 관객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질적인 타락을 향해 가는 사람들에 대한 따끔한 질책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반면에 한국의 대표적 연기파 배우로 꼽는 최민식에게 영화찍기가 즐거움의 대상이 아니라 일종의 노동(labor, 勞動)이다. 그것도 보통의 노동이 아니라 정신적인 괴로움을 동반한 고문과도 같은 노동이다. 자신이 하는 일에 즐거움이 없고 고통을 억누르면서 마지 못해 해야 하는 경우에는 좋은 작품이 나오기 힘든다. 당연히 그런 작품은 관객들에게도 고통을 안겨줄 수 밖에 없다. 한국 관객으로서 당연히 떠오르는 의문은 이렇게 괴로운 일을 해야만 하는 '너무나도 특이한 시나리오를 가진 영화'에 굳이 왜 참여했느냐 하는 아쉬움이다. 이게 그가 처한 경제적 빈곤 때문일까 아니면 이와는 상관없이 그의 영화에 대한 철학의 빈곤에서 기인한 일일까? 이는 배우 최민식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이는 한국 최고의 스타배우 이병헌과 스타감독 김지운에게도 적용되는 질문이다. 아마도 이 세 스타 중 단 한사람이라도 이런 저질 영화를 찍어내는 일에 반대입장을 표명했더라면 사정이 많이 달라졌을 것은 틀림없다. 적어도 잔혹과 폭력의 수위라도 상당히 누그러뜨러졌을 것이다. 한국은 2010년 8월 두 명의 스타 배우와 한 명의 명감독이 3류로 추락하는 걸 또렷이 목격했다.

한국과 헐리웃의 두 배우가 영화에 임해서 가지게 된 상반된 입장은 무엇보다 두 배우가 영화를 선택하는 순간부터 이미 노정된 문제였다. 배우로서 어떤 영화에 참여할까를 결정하는 일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다만 그가 스타급 명배우라면 경제적으로 곤궁한 경우는 비교적 적을 것이고 그 배우의 영화에 대한 철학이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건 사실이다. 돈이 절실한 상태이거나 돈을 더 벌고 싶거나 하는 돈의 문제가 아니라면 자신의 철학이 틀렸거나 아니면 이도 저도 아닌 아무 생각(철학)이 없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물론 어떤 종류의 영화라도 감사한 마음으로 참여하여 돈도 벌고 이름도 세간에 알리고 싶은 욕구가 앞 설 수 밖에 없을 무명배우들에게 까지 높은 수준의 철학과 소양, 그리고 사회적 책임까지 요구하는 건 너무 심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한국 관객이 이병헌 최민식 정도의 스타급 배우들에게 이 정도의 의문을 가지는 건 당연한 권리로 보인다. 왜냐하면 스타없는 대중은 있을 수 있지만 대중 없는 스타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솔직히 한국 영화가 외국 시장에서 돈을 벌어 온 일은 거의 없다. 따라서 한국 영화판, 즉 충무로의 이익구조를 객관적으로 말하면 '오로지' 한국 관객들의 쌈짓돈을 끌어 모아 스타들과 영화제작자들의 배를 채워주는 구조다. 따라서 스타 배우 스타 감독은 대중들에게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지는 못할 지라도 최소한 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동안 한국 관객들은 충무로를 너무 짝사랑만 해 온 것 같다. 이 상태에서 한국 감독과 배우들의 소양과 철학이 업그레이드 되지 않는 한 우리 영화가 세계 1 류 대열에 합류할 일 또한 요원하다.
/ 김휘영(문화평론가) wepa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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