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보 및 독자의견
후원안내 정기구독 미디어워치샵

기타


배너



"우리를 죄고 있는 밧줄이 점점 더 조여오고 있다." "나는 기다리다 죽는 동물처럼 되어가고 있다."

나치 독일 시절에 탄압받던 14세 유대계 폴란드 소녀가 당시 일기에 적어놓은 글이다.

유대인 집단거주구역에서 성숙해가던 소녀 루트카 라스키어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끌려가기 전의 일상 생활을 기록한 일기가 4일, 사후 60여년 만에 공개됐다.

1943년 1월부터 4월까지 공책에 작성된 이 60쪽 짜리 일기는 왜 루트카가 `폴란드의 안네 프랑크'로 불려야하는 지를 잘 말해준다.

1943년 2월5일자 일기에는 "내가 노란 별(나치가 착용토록 한 유대인 신분 표시)을 떼어내고 이 집을 떠나갈 수 있도록 허락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심지어 이 전쟁이 언젠가 끝날 것이라고도(믿을 수 없다). 그렇게만 된다면 정말 기뻐서 미쳐버릴 지도 모른다."고 적혀있다.

"내가 가졌던 작은 믿음이 완전히 산산조각 나버렸다. 신이 존재한다면 사람이 산채로 화로에 던져지거나 아기들의 작은 머리가 총 개머리판에 맞아 박살이 나고 자루에 넣어져 가스에 살해되도록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스라엘의 야드 바셈 홀로코스트 자료관에서 낭독된 이 일기는, 루트카가 당시 겪고 보고 들었던 유대인들의 운명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야드 바셈의 전문가는 당시 루트카 가족이 살았던 베드진 유대인 집단거주구역이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가까왔으며 일기 내용으로 보아 서방측에 당시에는 잘 알려져있지 않았던 나치 독일의 유대인 가스 처형이 베드진에는 이미 널리 알려졌던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 다음날 일기는 나치 독일의 고문에 대한 격렬한 증오심으로 시작되지만 곧 주제가 바뀌며 야네크라는 소년에 대한 찬사와 첫 키스에 대한 기대감이 표현된다.

루트카는 이어 "나의 여성성이 이제 깨어난 것 같다. 어제 목욕을 하면서 물이 나의 몸을 스칠 때 나는 누군가의 손길이 그리웠다. 무언지 잘 몰랐지만 전에는 그런 감정을 한번도 느낀 적이 없다"고 적었다.

하지만 루트카는 이날 저녁 다시 나치 군인이 유대인 아기를 엄마로부터 떼어내 맨손으로 죽이는 것을 묘사하면서 잔혹한 현실로 되돌아 갔다.

매우 이례적인 상황에 빠진 한 사춘기 소녀가 써놓은 이 비밀스러운 이야기에는 10대 소녀의 악의없는 놀림과 걱정, 첫사랑이 당시 유럽의 유대인들이 처했던 운명에 대한 차가운 분석과 함께 담겨있는 것이다.

이 일기는 지난해 당시 루트카와 친했던 폴란드 여성이 기증했다.

루트카는 단짝이었던 스타니슬라바 사핀스카에게, 자신이 죽더라도 일기를 잘 간직해줄 것을 부탁했다. 사핀스카는 이를 집안 바닥 밑에 감추어 두었다가 전쟁이 끝난 후에 되찾아 줄곧 개인적으로 보관해왔다.

지금 80세가 된 사핀스카는, 루트카가 당시 "내가 살 수 있을 지는 모르지만 일기는 살아 남아 모든 사람들이 유대인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 지를 알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한 것으로 4일 전했다.

사핀스카는 이 일기가 매우 귀중한 기념물이며 공개하기에는 너무나 사적인 기록물이라고 생각해왔으나 조카가 "매우 귀중한 역사적 자료"라며 기증을 권해 그에 따랐다고 밝혔다.

루트카는 나치가 이웃 유대인들을 모아 송환하던 1943년2월20일 자 일기에 "마지막으로 일기를 적게될 것 같다"고 써놓았다.

"벌써 끝장났어야 했다. 이 고문:이건 지옥이야. 내일을 생각하는 상황에서 벗어나려고하지만 성가신 파리처럼 나를 계속 괴롭힌다." "'다 끝났어.언젠가 죽게 마련이야..'라고 말할 수만 있다면.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어. 이 모든 잔학 행위에도 불구하고 나는 살고 싶고 다음날을 기다리고 있어"

루트카의 일기는 그러나 여기서 끝나지 았았고 1943년 4월24일까지 이어진다.

이날 루트카는 "지겹다. 하루종일 방안에서 서성거렸다. 아무것도 할게 없다"라고 적었다. 루트카는 당시 안네 프랑크와 동갑 나이였다.

루트카의 가족은 8월에 아우슈비츠로 끌려갔으며 루트카는 도착하자마자 살해된 것으로 보인다.

유일한 생존자인 아버지 야코브는 이스라엘로 이주해 다시 가정을 꾸리고 1986년 사망했으나 생전에 이전 가족에 대해 전혀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가 이스라엘에서 낳은 딸 자하바 셰르즈(57)는 이 일기로 인해 몰랐던 가족을 알게 됐다며 "루트카에게 깊은 유대감을 느끼는 내 자신에게 놀랐다"고 말했다.


(예루살렘 AP=연합뉴스) maroonje@yna.co.kr



배너

배너

배너

미디어워치 일시후원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현대사상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