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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시오카 쓰토무, “트럼프, 김정은 만날때마다 납치문제 거론”… 文은?

“트럼프, 핵 ‧납치 문제를 같이 해결한다는 자세… 아베도 납북자 문제 양보하지 않을 것”

이전기사 : 니시오카 쓰토무, "한일 간 역사적 인식은 다르지만 역사적 사실은 오직 하나"



트럼프 대통령은 핵 문제와 납치 문제를 같이 해결한다는 자세다”, “아베 총리는 이(납북자) 문제만큼은 양보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니시오카 쓰토무(西岡力) 레이타쿠 대학(麗沢大) 객원교수(북한에 납치된 일본인을 구출하기 위한 전국협의회 회장). 그는 지난 15일 조갑제TV에 출연해(‘납치자문제 해결 없이는 日北 수교 불가능’) 북한 납치 피해자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이같이 전했다. 그는 일본에서 손꼽히는 납북자 문제 전문가로, 이 문제를 공론화하는데 앞장 서 온 인물이다. (해당 영상 바로가기)



먼저 니시오카 쓰토무 교수는 일본에서 납북자 문제가 어떻게 전개됐는지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일본에서 북한 납북자 문제가 공론화 된 것은 1997년이다. 당시 일본 정부가 요코타 메구미(당시 13, )가 북한에 납치됐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기 때문이다.

 

이후 가족들은 피해자의 실명, 사진 공개 여부에 대해 고민했다. 당시 북한이 납치 사실을 부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의 사진실명을 거론하면 증거인멸로 죽임을 당할 수 있다는게 전문가들의 의견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족들은 1977년부터 1997년까지 20년 동안 일본 정부가 진정성 있게 납치 문제 해결에 나서지 않았다며, 일본 국민들에게 직접 호소하는 방식을 택했다. 피해자들의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사진과 이름을 공표한 것이다.

 

이어 피해자 가족들이 뭉친 가족회가 생겼났고, 니시오카 쓰토무 교수도 이 가족회를 지원하는 구출회를 만들면서 납북자 문제 운동에 박차가 가해졌다.

 

2002년에는 문제 해결에 진척이 있는 듯 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난 자리에서 납북자 문제를 의제로 삼은 것이다. 이에 김정일은 납치 사실을 일부 시인하면서도, 자신들이 ‘13명을 납치했으며 이중 5명은 살아있고 8명은 죽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니시오카 교수는 사망했다는 8명에 대해선 객관적인 사망 증거가 안나왔다. 2명의 유골이 나왔지만, DNA 검사결과 가짜였고 사망진단서도 가짜였다지금까지 일본 정부는 북한쪽에서 납치하지 않았다’, ‘사망했다는 사람들이 살아있다는 전제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모든 사람이 돌아오지 않으면 (북한과) 국교정상화도 할 수 없고 경제 지원도 할 수 없다는 자세라고 설명했다.

 

이날 니시오카 교수는 납북자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일본 아베 신조 총리에 대해 기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아베 신조 총리는 국회의원이 되자마자 북한 납치 문제를 계속 (제기)해왔다. 1차 아베 정부가 성립되자마자 납치대책본부가 만들어지고 납치 장관까지 신설됐다아베 총리는 이 문제만큼은 양보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중략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을 만날때마다 납치 문제를 거론했다하노이에서 만나자마자 납치 문제를 거론했는데 김정은이 화제를 바꾸고 회피했다고 한다그래서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다시 납치 문제를 얘기했다트럼프 대통령은 핵 문제와 납치 문제를 같이 해결한다는 자세다.”

 

한편, 이와 반대로 문재인 대통령은 국내의 전쟁 납북 피해자 가족단체로부터 질타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3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이사장 이미일)북한의 범죄로 고통 받는 납북피해자를 외면하는 문재인 정권을 규탄한다문재인은 전쟁납북피해자들 앞에서 석고 대죄하라는 성명서를 발표한 바 있다.



            [ ‘조갑제TV’ 니시오카 쓰토무 교수 인터뷰 '일본의 속내를 듣는다' (3) 방송 녹취 전문 ]

 



[조갑제TV] 마지막 주제는 일본인 납북자 문제를 얘기해보려 합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일본에서 납북자 문제를 대중화 시킨 것이 니시오카 선생님으로 알고 있는데, 당시 어떤 글을 쓰셨고, 왜 이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셨는지요.


[니시오카 쓰토무] 제가 일본인이 북한에 의해서 납치됐다는 논문을 1991년도에 썼습니다. 우리 납치가족구출회가 1997년도부터 활동하기 시작했으니 그 6년전입니다. 요코타 메구미 씨 납치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는 상황에서, (1990년에) 가네마루 신이라는 자민당 간부가 평양을 방문해서 일북 국교정상화 회담을 하니까 ‘안된다. 납치가 있다. 납치를 해결하지 않으면, 일본은 경제 지원을 하면 안된다’는 취지로 논문을 썼습니다.


[조갑제TV] 당시 그게(논문이) 큰 반향을 일으켰나요.


[니시오카 쓰토무] 전혀, 전혀 없었죠. 저는 무시당하고... 그런데 협박장이 왔었어요. 죽이겠다는. 협박 전화도 왔습니다.


[조갑제TV] 어떤 분들이(보냈는지)?


[니시오카 쓰토무] 글쎄 그건 모르겠는데, 일본 국내에는 북한 취재하던 세력이 있잖습니까. (이들을) 납치까지 할 수 있다는 거니까, 그러면 일본 국내에서도 테러를 할 수도 있다는 긴장감이 있었어요. 논문을 쓰니까 경찰, 자위대, 외무성 사람들이 신변에 안전이 괜찮냐고 질문했어요. 근데 사회 전체에선 무시당했어요.


[조갑제TV] 그러다가 이게 이슈가 된게 언제인가요?


[니시오카 쓰토무] 97년에 13살의 요코타 메구미가 납치됐다는 정보를 한국 정보기관이 일본한테 알려줬어요. 일본 정부가 그 정보를 받고도 움직이지 않아서, 그래서 민간한테 링크를 했습니다. 제가 그때 편집장을 하고 있었던 월간 현대코리아 잡지에 96년도에 그런 정보가 있다는 기사를 어떤 DB 기자가 서울로 가져가서 취재해서 썼어요. 메구미라는 것은 그땐 몰랐고, 70년대 후반에 일본회 쪽에서 ‘13살의 전학생이 납치됐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게) 누구인지 모른다’(고 했어요) 


근데 우연히 우리연구소 소장님이 니가타 출신인데, 77년도에 요코타 메구미 13살 소녀가 없어진 큰 사고가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계셨어요. 니가타까지 가서 알아봤더니, 자세한 정보가 일치됐어요. 상황이나 가족관계가. 그래서 그게 현대코리아 잡지에서 처음으로 보도했고 그랬더니, 안명진이라는 탈북 공작원이 ‘공작기관에서 메구미를 봤다’고 증언해서, 일본 정부도 납치 피해자로 인정했습니다. 그게 1997년입니다.


[조갑제TV] 고이즈미 총리가 북한에 갔을 때 김정일이 그걸(납치를) 처음으로 (인정하지 않았나요.)


[니시오카 쓰토무] 가네마루 씨가 평양에 갔을 때 (납치 사실을) 인정받아야 했는데, 그때는 일본 정부, 가네마루 씨도 납치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어요. 1997년도에 메구미 사건 터지고 나서 가족들이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실명, 사진을 공개해서 운동을 할 것인지. 그때는 북한 노동당은 (납치한 사람은) 없다고 말하니까, 실명을 거론하면 증거인멸로 죽임을 당할 수 있다고 공안기관에 있는 전문가들이 말했습니다. 그래서 가족들이 많이 고민했죠. 그러나 ‘77년부터 97년까지 20년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중간에 가네마루 씨가 김일성까지 만났는데, 그 후 외무성이 8번이나 조사와 회담을 했는데, 진정성 있게 납치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가 움직이지 않았다’고 해서 일본 정부를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일본 국민들을 믿자’ 국민들한테 직접 호소해서, 우리 일본은 자유 민주 국가니까 국민들이 마음만 먹으면 정부를 움직일 수 있다고 해서 거기에 있는 딸‧아들한테 위험이 있지만 사진과 이름을 공개했습니다. 그랬더니 다른 가족들도 그렇게하자고 해서 가족회가 생겼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학자였습니다. 운동가가 아니었고 운동은 하지 않았는데, 가족들이 그렇게 심각한 결단을 내렸는데, 학자로서 연구만 하고 있을 수 없다고 그래서... 가족은 가족회를 만들었으니까, 가족회를 지원하는 구출회를 만들었습니다. 


22년 동안 같이 해왔지요. 처음에 5년 동안 납치가 있다는 것이 우리쪽 주장이고, 없다는 곳이 조총련, 아사히 신문 등의 주장이었고... 근데 5년 후에 고이즈미 총리가 갔을 때, 일본 정부가 납치 문제를 의제로 (다루니까) 김정일이 인정했다. 인정했지만 일부분만. 13명만 납치했다. 5명은 살아있다. 8명은 죽었다고 새롭게 말했습니다다. 그전에는 납치가 없다는 고증만 했는데, 그때는 13명만 납치했고, 8명은 죽었고, 5명은 (일본에) 보냈으니, 납치가 해결됐다고 했습니다. 


근데 사망했다는 8명에 대해서도 객관적인 사망 증거가 안나왔다, 2명의 유골도 나왔지만 DNA 검사결과 가짜였고, 사망진단서도 가짜였습니다. 지금까지 일본정부는 메구미씨를 비롯한 북한쪽에서 사망했다고 발표한 사람, 납치하지 않았다고 발표한 사람들이 살아있다는 전제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모든 사람이 와야한다, 오지 않으면 국교정상화도 할 수 없고 경제 지원도 할 수 없다는 자세입니다.


[조갑제TV] 아베 수상이 그때 북한에, (고이즈미랑 같이 가지 않았나요)


[니시오카 쓰토무] 그때 고이즈미 수상이랑 같이 갔었죠. 그때 관방부장관이었습니다. 아베 총리는 우리가 91년도에 논문을 썼잖습니까. 그때 국회의원 비서였어요. 그때부터 납치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어서 국회의원이 되자마자 납치 문제를 계속해왔습니다. 그래서 아베 총리는 이 문제만큼은 양보하지 않을 것이라고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조갑제TV] 확실히 이전 정권과는 전혀 다른...


[니시오카 쓰토무] 전혀 다르죠. 1차 아베 정부가 성립되자마자 납치 장관 만들고, 납치대책본부를 만들었습니다. 외무성 바깥에. 납치대책본부의 본부장이 수상입니다. 그리고 납치 장관까지 신설했습니다. 그런 기관을 만들어서 12년 동안 해왔죠. 2차 아베 정부가 되고 이제 6년 째니까 ‘이제 지금 해결하지 않으면 절망적이다’ 마지막 찬스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조갑제TV] 그분들도 이제 연세가...


[니시오카 쓰토무] 가족들도 연세가 되고... 북한도 경제 제재 때문에 어렵잖아요? 근데 아베 총리가 열심히 외교를 하시고 우리도 2001년부터 미국을 다니니까... 미국 트럼프 정부는 완전히 우리 편이고.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을 만났는데, 만날때마다 납치문제를 거론해줬습니다. 하노이에서는 첫 번째 만나자마자 1대1 회담에서 납치 문제를 거론했고, 근데 김정은이 화제를 바꾸고 회피했답니다. 그래서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다시 납치 문제를 얘기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핵 문제와 납치 문제를 같이 해결한다는 자세입니다. 그러니까 핵 미사일 완전히 포기하면 제재를 완화시켜준다, 국교정상화하게 해준다, 경제 지원은 안해준다는 자세입니다. ‘경제 지원은 아베 신조한테 가라’. 아베는 핵미사일 문제가 해결되고, 납치문제가 해결되면 1965년 한국처럼 경제 지원을 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입장입니다). 트럼프의 빅딜 안에 납치문제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거기까지 왔습니다.


[조갑제TV] 오랫동안 해오셨는데, 계속 진전은 있다고 보시는지.


[니시오카 쓰토무] 지금 마지막 찬스라고 봅니다. 여태까지는 지지않는 싸움을 해왔는데, 이제는 이길수 있는 싸움까지 왔다. 마지막 희망입니다. 그런데 우리 가족들이 살아계실 때 해결해야 하는데...


[조갑제TV] 메구미 씨의 아버지가 지금 편찮으시다고...


[니시오카 쓰토무] 지난해 4월부터 병원에 누워계십니다.


[조갑제TV] 활동을 지금못하시고.


[니시오카 쓰토무] 네.


[조갑제TV] 어머니는 괜찮으신가요.


[니시오카 쓰토무] 네. 그러니까 부모 세대에서 살아 계시는 분들이 메구미 씨의 부모, 아리모토 게이코 씨의 부모 그 외에는 세상을 떠나시고 지금 형제들이 가족회의 주축입니다.


[조갑제TV] 제가 예전에 메구미 씨 남동생을 인터뷰 했는데, 아직도 기억에 남는 말이 있습니다. ‘인간의 목숨을 멸시하는 국가가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한때, 히틀러나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 같은 사람들이 결국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이것저것 하다가 결과적으로 살해됐습니다. 김정은도 그렇게 되지 않도록 빨리 사람의 마음을 되찾기 바랍니다’라고 이런 말을 하셨는데, 니시오카 선생님은 북한에 어떤 말씀을?


[니시오카 쓰토무] 아베 총리는 조건없이 만난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완전히 핵 문제, 미사일 문제, 플러스 납치 문제가 해결되면 국교정상화에 반대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출구는 있다, 정상적인 국가가 되어라, 그렇지 않으면, 경제제재로 어려운데 어려운 상황이 될 것이다, 압박은 계속 될 것이다, 출구는 준비됐다, 일단 아베 총리를 만나서 북한 인민들을 위해서 한 번 결단을 내리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현명한 결단을 내리길 기대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조갑제TV] 일본에는 이것에 대해서 보수, 진보가 있나요. 납북자 문제를 비판하는 사람도 있나요.


[니시오카 쓰토무] 있죠. 인권 문제라는 차원에서는 보수 진보가 없지만, 우리는 인권 문제이기도 하고, 주권 문제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죠. 그리고 국교정상화를 먼저해야 한다는 사람도 있고. 조총련 쪽, 좌파들의 영향은 아직 셉니다.


[조갑제TV] 시작이라도 해야지 뭐라도 풀리지 않겠느냐는?


[니시오카 쓰토무] 네. 선 지원, 후 해결. 햇볕정책. 해결해야한다는 결론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어요. 방법의 차이. 선 지원, 후 협상. 아베 총리는 선 압박 후 협상, 그런 차이가 있죠. 우리는 아베 총리 노선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니시오카 쓰토무 인터뷰 기사 :


니시오카 쓰토무, “일본은 문재인 정권 신뢰하지 않는다”


니시오카 쓰토무, “한일 간 역사적 인식은 다르지만 역사적 사실은 오직 하나”



한일 납북자 문제 관련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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