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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타 메구미와 납북피해자들은 아직도 살아있다!”

어린 시절 납치되어 간첩교육까지 담당하게 된 일본인 요코타 메구미 양와 한국인 이민교 씨의 비극 ... 한일간 중요한 인권 연대 이슈인 납북자 문제는 반드시 해결되어야

북한에 납치된 일본인들의 명수(名數)와 관련, 북한 정부는 공식적으로 13명이라고 말하고 있고 일본 정부는 공식적으로 17명이라고 밝히고 있다.

북한 정부는 2002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 총리 방북 당시 납북 일본인 5명을 귀환시켰고(북한 입장에서는 일단 이들의 일본 방문만을 허락한 것이었으나 일본으로 돌아간 당사자들은 전원 재입북을 거부했다), 나머지 8명은 사망했으므로 납치 문제는 완전히 해결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납치된 일본인들이 17명이 아니라 13명이라는 북한 정부의 발표는 도저히 믿기가 어려움을 지적하고 있다. 아울러 납치된 일본인들 중에서 나머지 8명이 전원 사망했다는 북한 정부의 입장도 역시  절대로 믿기가 어렵다고 강조한다. 

일본 정부는 왜 납치 일본인 피해자를 17명이라고 지적하고, 또 다른 피해자 8명이 전원 사망했다는 북한 정부 주장도 허위라고 하는 것일까.

‘북조선에 납치된 일본인을 구출하기 위한 전국협의회’ 회장인 니시오카 쓰토무(西岡 力) 레이타구(麗澤) 대학 교수는, 2015년 11월 15일 오피니언 사이트인 이론나(iRONNA)에 공개한 ‘북한의 납치 관련 두 가지 거짓말,  ‘사망’한 8명은 살아있다(北朝鮮が拉致でついた二つのウソ 「死亡」の8人は生きている)‘ 제하 칼럼을 통해  바로 이 문제를 짚었다.



납북자들은 지금도 애타게 고국의 구출 시도를 애타게 기원하고 있다

그는 “요코타 메구미(横田めぐみ)를 비롯한 많은 일본인 납치피해자가 지금도 북한땅에서 구출을 기다리고 있다”고 강조하며 칼럼을 시작했다.

그는 일본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납북피해자 5명 중 한명인 소가 히토미(曽我ひとみ)에게 “언제까지 일본에서의 구출을 기다리셨습니까?”라고 질문한 적이 있다고 한다. 히토미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1990년 북한 방송에서 가네마루(金丸)라는 일본의 거물 정치가가 방북하여 김일성을 만났다고 보도했습니다. 그 때 일본의 정치인이 북한에 왔기 때문에, 이번에 일본에서 납치된 제 문제를 의제로 다루어 줄 것이라고 내심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실망했어요. 낮에는 가사일이나 육아가 바빠서 생각할 틈이 없는데 밤이 되면 달이나 별을 보면서 같은 달, 같은 별을 고향 사도(佐渡)의 부모님이나 동네 사람들도 보고있겠지. 언제 일본에서 구출단이 올까… 라고 매일 생각했어요”


소가 히토미는 일본 사도(佐渡)의 자택 근처에서 북한 공작원들의 습격을 당했을 때 어머니인 소가 미요시(曽我ミヨシ)와 함께 있었다고 한다.

그녀는 북한에 도착한 후에 어머니는 일본에 남겨졌다고 들었기 때문에 그렇게 믿었고, 어머니는 사도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소가 히토미는 2002년 10월에 귀국해서 고향을 찾았을때 어머니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큰 충격을 받아 자택의 옷장에서 어머니의 기모노를 꺼내 울었다고 한다.

니시오카 교수에 따르면 납치 문제는 원래 납북피해자 가족들과 납북피해자 가족들을 믿어준 일부 활동가들이 1997년부터 제기했던 것이다. 북한은 물론 이를 부정했었다.

‘북한에 의한 납치 피해자 가족 연락회(北朝鮮による拉致被害者家族連絡会)’, 그리고 니시오카 교수가 지금 회장으로 있는 활동가들의 모임인 ‘북조선에 납치된 일본인을 구출하기 위한 전국협의회(北朝鮮に拉致された日本人を救出するための全国協議会)’(약칭으로 ‘구출하는 모임(救う会)’이라고 부름)가 일본에서는 관련 문제로 중요한 모임들이다.



북한이 인정하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납북자들이 존재한다

니시오카 교수는 “2002년에 방북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수상 앞에서 김정일은 납치를 인정하고 사죄했다. 그것은 큰 승리였다”면서 “하지만 북한은 그 때 다시 두 가지 거짓말을 했다. 납치한 것은 13명이라는 거짓말과 그 중 5명은 생존, 8명은 사망했다는 거짓말이다”라고 지적했다.

왜 일본 정부는 북한 정부의 주장보다 납치 피해자가 더 있다고 주장하는가. 이는 앞서 언급한 소가 히토미의 모친인 소가 미요시의 경우와 관계된다.

북한은 소가 히토미를 납치한 것은 일본 국내 하청업자이고, 소가 미요시에 대해서는 모르겠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문제는 소가 모녀가 자택 근처에서 둘이 같이 이야기하면서 걸어가던 중에 여자 한 명, 남자 세 명의 북한 공작원들한테 습격을 당했다는 것이다.

니시오카 교수는 “히토미는 모녀를 습격한 공작원들도 같은 공작선을 타고 북한으로 갔다고 증언하고 있다”면서 “그 과정에서 어디론가 은신처에 감금하는 등을 겪었는데, 일본 국내의 ‘하청업자’와 같은 존재의 관여는 일절 없다고 밝히고 있다”고 전했다.

납북피해자를 돕는 일본의 관련 운동가들은 정부가 인정한 17명 이외에도 납북이라고 볼 수 밖에 없는 경우를 더 제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아베 정권은 “(북한의) 인정 유무와 상관없이 모든 피해자를 귀국시킨다”는 방침을 내세우고 있다.

북한이 사망했다고 주장하는 납북일본인 8명은 전원 생존해 있다

니시오카 교수는 이어서 북한은 사망했다고 주장하는 8명을 왜 일본에서는 생존설을 주장하는지에 대해서 설명했다. 첫째 이유는, 북한이 ‘사망’했다고 통보한 8명에 대하여 사망을 증명하는 객관적 증거가 제시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이 제공한 ‘사망의 증거’가 모두 날조된 것으로 드러났기에, 이미 2006년도에 제1차 아베 정권도 납치피해자들은 전원 생존하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 전원의 안전확보 및 귀환을 요구하는 기본방침을 발표한 바 있다. 

니시오카 교수는 이 방침은 일본 정부가 지금까지도 유지하고 있는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는 가족회 및 구출하는 모임만이 전원생존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전원생존이라고 주장하고 있음을 눈여겨 봐달라고 강조했다.





일본 정부가 납북피해자 전원 생존을 주장하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1. 사망했다고 하는 8명 {요코타 메구미(横田めぐみ), 다구치 야에코(田口八重子), 이치카와 슈이치(市川修一), 마스모토 루미코(増元るみ子), 하라 다다아키(原敕晁), 마츠키 가오루(松木薫), 이시오카 도오루(石岡亨), 아리모토 게이코(有本恵子)}에 대한 사망을 증명하는 객관적 증거가 전혀 제시되지 않고 있다.

(1) 사망을 증명하는 진정한 서류가 일절 존재하지 않는다. : ‘사망확인서’는 일본정부조사단의 방북시에 급히 작성된 것. 또한 교통사고기록에는 피해자의 이름이 없다.

(2) 피해자의 유골이 일절 존재하지 않는다. : 사망했다고 하는 8명에 대하여 북한은 그 중 6명의 유골은 호우로 유출했다고 설명. 제공한 2명의 유골이란 것도 본인과는 다른 DNA가 검출되었다는 감정결과가 나왔다.

2. 8명의 피해자의 생활상황, ‘사망’에 이르기까지 상황에 관한 북한 측 설명에는 부자연스럽고 애매한 점이 많고 일본측의 수사를 통해 판명된 사실 및 귀국피해자의 증언과 모순되는 점도 많아 설명 전체의 신빙성이 의심된다.


둘째 이유는, 이 밖에도 납북 일본인 피해자들에 대한 다른 생존정보가 있다는 것이다. 일단 일본 정부가 나름의 정보활동을 벌이고 있으며 관련 정보를 축적 중이고 단서가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간 나오토(管 直人) 관방장관은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다.

“당연히 생존하고 있다고 우리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정부의 생각은 모든 납치피해자의 생존을 전제로 정보수집과 분석, 기타 노력을 전력을 다해서 지금 계속하고 있습니다” (2013년 10월 9일)


니시오카 교수의 ‘구출하는 모임’도 갖고 있는 정보가 있다. 전달자, 당사자 등에 대한 위해 우려 때문에 모두 공개할 수는 없지만, 일부 공개를 하고 있는 사항은 다음과 같다.

- 요코타 메구미(横田めぐみ)에 대하여 북한은 “94년에 사망했다”고 통보했으나 ‘구출하는 모임’은 2001년까지 평양 용성구역의 칠보산 초대소에서 생활했다는 복수의 정보원을 통해 얻은 정보를 갖고 있다. 1987년에는 순안구역 초대소로 옮겨 그곳에서 김영남과 만나 동거, 결혼했다. 1993년에 남편과의 불화로 이혼했다. 94년 4월, 의주의 49호 예방원에 입원했으나 하루만에 되돌아오게 하여 평양의 49호 예방원에 들어갔다. 94년 9월, 대일공작원과 재혼하여 96년 11월에 남아를 출산했다.

- 이치카와 슈이치(市川修一)에 대하여 북한은 “79년에 사망했다”고 통보했는데 구출하는 모임의 정보원을 통해 입수한 내용에 의하면 96년까지 김정일정치군사대학에서 용성초대소까지 일본어를 가르치러 다녔다.

- 다구치 야에코(田口八重子)에 대하여 북한은 “86년에 사망했다”고 통보했는데 구출하는 모임은 그녀가 2014년에 간 질병으로 치료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복수의 정보원을 통해 확인했다.


납북자들의 정신적 고통을 생각했을때 하루라도 빨리 고향인 일본으로 돌려보내야


시간이 흘러갈수록 납치피해자 가족들은 물론, 납치피해자 본인의 정신적 고통은 커진다. 역시 납북피해자였던 하스이케 가오루(蓮池薫)는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다.

“저쪽에 있는 사람들의 정신안정이 가장 걱정스럽다. 물질적으로는 일정한 공급이 있어 그다지 어렵지 않은데 정신안정을 유지하는 것이 아주 힘들다. 그들은 작년부터 일·북간 납치문제에 대한 협의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만약에 이번에도 해결이 안된다면 정신안정을 유지할 수 없을 지도 몰라서 걱정을 하고 있다”

니시오카 교수는 “가장 괴로운 것은 북한에 남아있는 납북피해자들로, 그들 중에는 가족이 겉으로 나오지 않은 경우도 있다. 이름도 모르는 미인정 납북피해자도 있다”면서 “그런 사람들을 포함하여 이번에 몇 명이라도 남게 되면 또 몇 년이 더 걸리는가. 이미 5명이 먼저 귀환한지도 벌써 13년이 지났다”고 개탄했다.


니시오카 교수는 반문했다.

“이번에 남겨지는 사람들이 또 있다면 앞으로 또 10년, 그들의 정신안정은 과연 온전할 수 있을까(今回積み残された人がいたら、あと10年、その人たちの精神状態がもつだろうか)”


이에 니시오카 교수는 “전원의 일괄귀국이란 목표는 절대로 양보할 수 없다”면서 “‘몇 명만 돌려받으면 된다’는 말은 절대로 하면 안된다”고 일갈했다.



현재 아베 수상은 거듭 “납치문제의 해결 없이 북한은 미래를 그릴 수 없다”고 강조한다. 니시오카 교수는 아베 수상이 분명 “납치문제의 진전 없이”가 “납치 문제의 해결 없이”라고 말한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몇 명만이라도 돌려주면 ‘진전’이라고 생각할 수는 있지만 그건 ‘해결’이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니시오카 교수는 거듭 “‘북한의 인정 유무와 상관없이 전원의 안전확보 및 귀국’에 관해서 절대로 양보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것이 실현되지 않으면 아베 수상의 발언대로 김정은 정권이 미래를 그릴 수 없을 정도의 강력한 제재를 가하는 길밖에 없다”면서 “그 결단을 해야 할 때”라고 말하며 칼럼을 마무리했다.




관련기사 : 


* 본 기사에서 니시오카 쓰토무 교수 칼럼 내용 번역은 박아름 씨의 도움을 받아서 이뤄진 것입니다.


[편집자주] 그동안 한국의 좌우파 언론들은 중국과 북한의 갓끈전술 또는 이간계에 넘어가 늘상 일본의 반공우파를 극우세력으로, 혐한세력으로만 매도해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일본의 반공우파는 결코 극우나 혐한으로 간단하게 치부될 수 없는 뛰어난 지성적 정치집단으로, 현재 문재인 정권을 배출하며 중국과 북한에 경도된 한국이 경계하거나 대비해야할 것들에 대해서 국외자와 제 3자의 시각(또는 devil's advocate의 입장)에서 한국의 그 어떤 언론보다도 도움이 되는 얘기를 많이 해주고 있습니다. 미국에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만 있는 것이 아니듯이, 일본에도 아사히와 마이니치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미디어워치는 한국 외신 시장에서 검열되어온 미국의 자유보수 세력의 목소리는 물론, 일본의 자유보수 세력의 목소리도 가감없이 소개해 독자들의 국제감각과 균형감각을 키워드릴 예정입니다. 한편, 웹브라우저 구글 크롬은 일본어의 경우 사실상 90% 이상 효율 수준의 번역 기능을 제공하고 있으며, 이는 일본의 고급시사지라도 웹상에서는 한국 독자들이 요지를 파악하는데 전혀 장애가 없는 번역 수준입니다. 미디어워치는 한국 독자들이 일본쪽 외신을 접하는데 있어서, 편향되고 무능한 한국 언론의 필터링 없이 일본 언론의 정치적 다양성(특히 자유보수 세력의 목소리)과 뛰어난 정보력(특히 중국과 북한, 동아시아 문제와 관련)을 가급적 직접 경험해볼 것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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