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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퇴하고 있는 중국에서의 한의학

허위의학에 불과한 한의학은 국가의료시스템에서 퇴출되어 제자리를 찾아가야 한다!


본 콘텐츠는 '과학중심의학연구원(http://www.i-sbm.org)'이 제공하는 공익콘텐츠입니다. 이 글은, 의료일원화국민연대(과학중심의학연구원의 전신)가 주최한 ‘의료일원화 국제토론회’(2008년 3월 29일, 광주광역시 풍암동 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 장궁야오(张功耀) 교수가 강연한 원고(원문 제목 '중의중약(中医中药)의 현황(现状)과 미래(未来)')를 재편집한 것입니다. 전남대학교 중어중문학과 박사과정 박혜은씨가 번역하고, 과학중심의학연구원 황의원 원장이 편집했습니다. 장궁야오 교수는 중국 중난대학 과학기술사회연구소(中南大学科学技术與社会发展研究所), 长沙, 中国, 410083)에 재직하고 있는 과학철학 전공 교수로, 지난 2006년에 ‘고별한의한약’이라는 논문을 발표하면서 한의학 퇴출론으로 중국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던 바 있는 학자입니다. ([세계의 창]중국 한의학 ‘탱자’ 될라)



Ⅰ. 한의학은 도대체 무엇인가?

병들지 않는 생명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생명체에 병이 발생한 후, 생겨날 수 있는 고통과 위해(危害)를 없애기 위해, 인류는 ‘의학(醫學)’을 만들었다. 인류를 위해 일(奉仕)하는 ‘의학’은 대체적으로 아래와 같은 몇 가지 발전 형태를 거쳤다.

본능의학(本能医学)

초기 인류는 야생동물처럼 스스로의 생존본능에 의거해 질병을 정복하였다. 사람들은 어떤 부분이 몹시 뜨겁다고 느껴질 때, 시원한 물체를 이용해 아픈 곳(患部)을 “냉각(冷却)”시키려 했을 것이다. 또한 일부 통증을 눌러서 완화시킬 수 있다고 느꼈을 때에는 손이나 돌, 혹은 다른 어떤 물건을 이용하여 통증부위를 눌러놓으려 했을 것이다. 여러 차례 이러한 시도를 거친 후, 효과를 발휘한 몇몇 방법은 정착되었는데, 바로 이것이 본능의학(本能醫學)의 효시라고 할 수 있다.

주술의학(巫醫)

질병 현상은 본래, 흔히 보는 자연 현상이다. 그러나 초기 인류는 결코 이를 이해할 수 없었는데, 바로 여기에서 질병의 곤혹(困惑)과 공포(恐惧)가 발생하였다. 이러한 곤혹과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초기의 지식인(智者)들은 제사를 드리고 기도한다든가 아니면 무당의 술법(巫術)을 시도해 보았는가 하면, 일부 초자연적 힘으로써 질병을 극복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활동과 질병의 자연치유(spontaneous recovery), 자연완화(spontaneous remission), 혹은 자연회귀(spontaneous regression) 과정이 운 좋게 우연히 일치할 때, 이는 사람들에게 “효력이 있다(有效)”라는 이미지(印象)를 남기게 된다. 이로써 제사를 지내거나 기도를 드리며 무당의 술법(巫术)에 의한 “질병” 치료 방법이 유행하게 되었다.

신앙요법(信仰治療)

신앙으로 샤머니즘(巫術)을 대체한다는 것은, 다른 치료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그 “유효성(有效性)”은 주술의학과 완전히 동일하다. 그래서 불교(佛敎), 기독교(基督敎), 이슬람교(回敎) 등의 종교에서 신앙요법이 흥기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늘 환자들에게 시약(施藥)하거나 시술(施手術)을 하기 전, 혹은 그 일을 행할 때, 종교의 경문(經文)을 소리 내어 읽고 시(詩)를 읊으며 찬미하였는데, 그들은 이를 질병을 정복하는 보완수단으로 삼았다. 오늘날 우리들은 종교신앙(宗敎信仰)이 환자들에게 질병을 완치할 수 있다는 신념을 증진시킬 뿐 아니라, 심지어 일부 위약효과(安慰剂效应)를 발생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체내(體內) 기관의 조직성 질병들에 대해, 신앙은 어떠한 실제적인 치료 효과도 낳을 수 없을 것이다.
 



철학의학(哲學醫學)

철학은 사람들의 인체에 대한 전체론적 견해와, 사람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기본적 이해를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견해와 이해는 사람들에게, 본능방법(本能方法)과 무당의 술법(巫術) 및 종교(宗敎)가, 병을 치유하는데 있어 미치는 영향을 새로이 고찰하고 숙고할(審査)할 이유를 갖게 하였으며, 또한 나름대로는 “유효한 치료”를 본능행위(本能行爲)와 무당의 술법(巫術) 및 종교로부터 벗어나도록 하였다. 이것이 바로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 460~377BC)의 “체액설(體液說)”, 아스클레피오스(Asclepiades, 124~40BC)의 “입자설(粒子說)” 및 갈렌(Claudius Galen, 129~216)의 “정신설(靈氣說)”을 대표로 한 철학의학(哲學醫學)을 형성하였다. 그 중, 갈렌의 철학의학은 유럽에서 1,300년 동안이나 지배적 위치를 차지하였다.

경험의학(經驗醫學)

경험의학의 기본 방법은 관찰과 실험 및 측량을 통해, 끊임없이 유효성을 누적시키고 무효성은 바로잡으며, 유해함을 배제시키는 것이다. 경험의학에 있어, 그 결점은 유효성과 무효성 및 유해성에 대한 원인관계와 원리관계 연구를 경시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경험의학 방법으로 질병을 정복하기도 전에, 이미 구체적인 이론적 가리킴(指導)이 결핍되어 있었다. 사실 한의학은 오늘날까지 어떠한 경험적 방법도 배워 사용한 적이 없는데, 체온측량과 같은 간단한 경험방법조차도 한의사들은 아직까지 발명해낸 적이 없다. 한의학은 보고(望) 들으며(闻), 묻고(问) 진맥을 해(切)”보는 것을 통해, 질병의 진단 문제를 해결해보고자 하였으나, 이러한 진단방법은 구체적으로 조작할 수 있는 함의(內涵)가 불명확할 뿐만 아니라, 그 진단의 생리학과 병리학의 근거 또한 불명확하다. 이로 봤을때 한의학은 경험의학에 속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직관의학(直覺醫學)

유사(相似)하거나 상이(相異)한 몇몇 직관에 의거하여 채택한 치료 방법은 직관의학(直覺醫學)에 속한다. 사람들은 일부 식물의 잎이 폐(肺)처럼 생긴 것을 보았을 때, 곧바로 이러한 잎을 이용해 폐의 질병을 치료하였다. 또한 소가 힘이 세고, 호랑이가 맹렬한 것을 보게 될 때, 어떤 사람은 이러한 동물의 뼈나 생식기를 먹으면 남성의 정력 저하(低下) 혹은 성기능 감퇴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고 여긴다. 이러한 사례들이 곧 직관의학에 속한다.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전반기에 걸쳐, 유럽에서는 사무엘 하네만(Samuel Hahnemann)을 창시자로 한, “동종요법(homeopathy, 顺势疗法)”[1]이 생겨났다. 이러한 치료방법이 바로 전형적인 직관의학에 속한다. 동종요법은 두 가지 방법을 가지고서 병을 치료하는데, “같은 것으로 같은 것을 고친다(similia similibus)”거나 혹은 “다른 것으로 다른 것을 치료한다(contraria contrariis)”. 전자(前者)는 한의학에서 “독으로써 독을 물리치다(以毒攻毒)”라고 나타나며, 후자(後者)는 한의학에서 “음양의 조화(阴阳調和)”로 표현된다.

동종요법의 기본의학사상은 질병의 외적 증상에 의해 치료를 결정해내는 것이지, 질병의 내적 원인(病因)으로 치료를 결정짓는 게 아니다. 이런 면에서는 한의학에 있어, 환자의 발병 원인과 증상 및 맥박 등을 한의학 이론에 의거하여 진단하고 치료하는 “변증시치(辨证施治)”와 서로 비슷하다. 그러나 직관의학이 너무나 많은 맹목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요법으로 치료한 환자들에게 보통 지나친 상해(傷害)를 초래할 것이며, “(없는) 병이 새로이 발생하는(再造病)” 결과를 야기할 것이다.

중국에서는 일찍이, 한의사가 “사간(泻肝, 편집자주 : 분뇨 등을 활용함)” 방법을 환자에게 사용하여 “요독증(尿毒症)”에 걸려 끝내 환자가 사망하는 사례가 발생하였다고 보도한 바 있다. 18세기의 유럽에서는 동종요법을 이미 “isopathy(同源疗法)”이라고 제창하였다. 그것은 촌충을 먹게 하여 촌충병(绦虫病, tapeworm disease)을 치료해내고, 임질의 고름(淋脓)을 먹게 하여 임질(淋病)을 치료하였다. 이는 확실히 위험한 방법이다. 동종요법이 많은 해(危害)를 감추고 있기 때문에, 19세기에 이르러서는 유럽 의학계에 의해 엄격하게 사용 금지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과 유사한 치료법이 오늘날까지 중국에서는 “중국문화의 특색을 갖춘” 의학 지보(至寶)로 여전히 받들어지고 있다.

과학의학

과학의학은 차츰차츰 형성되어지며 완만하게 진보하고 있다. 그래서 과학의학의 기점을 확정짓기 무척 어렵다. 어떤 사람은 과학의학이 전반적으로 인체 구조를 인식하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여기며, 베살리우스(Andreas Vesalius)[2]가 발표한 ‘인체구조론(人体構造论)’을 그 지표로 삼는다. 어떤 이는 화학을 의학에 끌어들여 지표로 삼아 과학의학을 이해하였다. 이것에 의하자면, 첫 번째 화학약품의 출현은 과학의학에서 발단(开端)되었다. 이는, 스위스 의사 파라켈수스(Paracelsus)가 1529년 증류(蒸馏)와 결정(結晶)이라는 방법을 통해 구아야콜(guaiacol)을 얻어낸 것을 과학의학의 발단 지표(开端标志)로 삼았다. 또 어떤 이는, 과학의학은 당연히 진단의 과학화에서 계획되어야 한다고 여기며, 프랑스 의사 라에네크(Rene Laennec)가 청진기를 발명한 것을 지표로 삼는다.

과학의학의 기원에 대한 현대적 견해는, 의학을 놓고서 과학의학이 되는지의 여부를 보는 것으로, 이러한 의학은 충분한 사실적 근거를 갖춘 원인관계(因果關係)와 원리관계(原理關係)를 세울 수 있는가 없는가에 의거해야 한다. 이러한 관점을 견지하는 사람은, 증거를 기초로 한 ‘근거중심의학(循证医学, Evidence-Based Medicine)’이 과학의학을 흥기시킬 수 있는 지표라고 여긴다. 바로 이 근거중심의학이, 과학(科學)과 공정(工程) 및 통계방법을 종합적으로 활용하여 의학을 평가하는 도구가 되어, 의학이 엄격한 원인관계와 원리관계의 기초를 갖추도록 한다. 그러나 현재 근거중심의학을 연구 토론하는 중국학자들은 기술측면의 서술에만 지나치게 주의를 기울였을 뿐, 근거중심의학의 사상적 기원(起源)은 경시하고 있다. 실제적으로, 근거중심의학은 스코틀랜드(Scotland)의 의학자 아치 코크란(Archie Cochrane)이 1972년에 발표한 저서인 ‘유효함과 유효성: 보건 서비스에 있어서의 확률론적 영향(Effectiveness and Efficiency: Random Reflections on Health Services)’을 그 사상적 출발로 삼았다.
 



한의학(中醫)

한의학의 내용은 매우 복잡하고 무질서한데다가 혼란스럽기까지 하며, 그 속에는 무수한 본능의학(本能醫學)의 성분[3]과 주술의학(巫醫) 요소[4]를 내포하고 있다. 이 외에 한의학은 또한 극히 믿을 수 없는 경험요소(經驗成分)를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경험의학의 요소는 일부 서방의 18세기 동종요법(homeopathy, 顺势疗法)과 비슷하다.

한의학의 이론 형태는 어떤 의미에 있어서 철학이 아닌 세속적 신비주의에 속한다. 즉, 일종의 비종교(非宗敎)적이자 비신화(非神話)적이며, 비이성(非理性)적이자 졸렬하고 속된 습성으로 가득 찬 신비주의이다. 만일 이러한 “신비주의”를 영문으로 번역하여 전달하고자 한다면, 나는 이를 ‘mysticism of philistinism’, 즉 페니키아인(Phoenician)의 습성으로 가득 찬 신비주의로 번역하길 건의한다.

한의학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과학적인 특징도 갖추지 않고 있다. 그러나 중국에서의 한의학은 오히려 끊임없이 과학으로 표방되어져 왔다. 어떠한 주의나 주장도 내세우지 않은 고대 한의학은 저속한 신비주의 습성으로 가득 뒤섞인 잡탕(大杂烩)이다. 중국 정부에 의해 치켜세워지고 보호되어진 한의학은 바로 전형적인 허위의학(僞醫學, pseudo-medicine)이다.

이 허위의학에는 세 가지 주요한 특징이 있는데 첫째, 어떠한 과학적 실험을 진행한 바 없이, 생명의 안전을 멸시하고서 몇몇 신비주의 문구를 가지고 말장난을 하며, 질병에 대한 치료 방안을 경솔하게 결정짓는다. 둘째, 의학과학이라면 반드시 따라야하는 원인관계와 원리관계의 원칙을 완전히 무시하고서, 아무런 상관없는 질병, 예컨대 마른버짐(乾癬)이나 두드러기(蕁痲疹), 요추간반돌출(腰椎間盤突出)[5]이나 관절염과 같은 질병을 동일한 방법으로 치료한다. 셋째, 치료 결과에 대해 과학적인 통계 및 과학적 평가 진행을 거절한다.


Ⅱ. 중국에 있어서 한의학의 현(現) 상황

한의학에 대한 근대 서양 의학의 도전(挑戰)

1569년, 근대 서양의학은 마카오(Macao)에서 중국으로 전해 들어왔다. 서양 근대 의학과 견주어(較量) 중국 백성들은 처음으로, 자신의 단점을 안정되게 감추어 온 한의학의 고유한 특성(本性)을 보게 되었다. 또한 이제껏 한의사들을 무척이나 상냥하고 성실하게 보아 왔는데, 실상 그 저면(底面)에는 이러한 의사들이 의술에 있어 서툴다거나 기만적인 행위를 일삼아 왔다는 사실이 깔려 있음을 알게 되었다.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20세기의 중국 사상가인 노신(魯迅, 루쉰) 선생은 한의학을 하는 한의사를 두고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인 사기꾼(有意或無意的骗子)”이라고 하였으며, 나 자신도 노신 선생의 이 견해에 전적으로 찬성한다.
 



한의학의 무능(無能)은 과거에도 무척이나 많이 드러나 있었다. 1693년, 청(淸) 왕조 강희(康熙) 황제가 말라리아(瘧疾)에 걸렸다. 비록 한의사들이 말라리아에 관한 “민간요법(偏方)”, “비방(秘方)”, “특효 처방(神效方)”과 같은 많은 방법을 갖고 있다고 하지만, 황공해 몸 둘 바 없어하며 겸손한 태도를 보이는, 모든 중국 궁정 어의와 민간 명의(名医)들조차 황제의 말라리아에 대해 어떠한 효과적인 치료도 해내지 못하였다. 그런데 중국에 와서 일하는 한 포르투갈 의사(scientific Christian)인 클라우데 데 비스델로(Claudus De Visdelou)가 그들 국가에서 일찍이 늘 사용해 온 키니네(quinine)를 가지고서 이틀 만에 강희 황제의 건강을 회복시켰다.

이처럼 한의학이 이제껏 안정되게 감추고 있던 본성을 드러내면서, 결국 한의학은 권세를 지닌 중국인들에게 경시를 받게 되었다. 사실 17세기 말부터 20세기의 40년대에 이르기까지, “한의사”가 아닌 “서양의사”를 찾아가 진찰받고 “한약”이 아닌 “양약(洋藥)”을 먹는다는 것이, 줄곧 중국 국민의 높은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는 상징이었다. 현재 중국에서, 한의학을 보호하는데 있어 전력을 다하고 있는 관료 정치인마저도 사실, 여전히 갖은 애를 피워가며 “서양의사”를 찾아 진찰받고 가장 좋다는 “양약”을 먹는다. 심지어는 한의약 대학의 교장, 당위원 서기(党书记) 및 교수들마저도 병에 걸리면 우선적으로 “양의사(洋醫生)”들에게 진찰받는다. 현재, 한의약 대학이 본교 교직원들을 위해 갖춰놓은 병원 역시 대부분 서양의사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한의사들은 거의 없다.

‘중국청년보(中國靑年報)’는 일찍이 2006년에 한 차례 설문조사를 한 바 있으며, 이를 토대로 한의사들에 대한 중국인의 태도를 측정해보고자 하였다. 그 결과, 비록 한의학을 지지하는 중국인이 87%에 달할지라도 그 중 겨우 15% 사람들만이 병이 나면 우선적으로 한의사들에게 진찰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2007년 3월 18일에 개최한 1차 한의학 고위층 토론회(一次中医高层论坛会议)에서 나는 이 설문조사 결과를, “확실히 보살이 아무 소용없는 미신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미신인 보살을 때려 부셔버리는 것에는 두려움이 인다(明知菩萨不灵, 又生怕把萨菩薩给砸了)”라는 일종의 민족심리현상으로 해석한다. 실제로 중국 국민들(의 반응)은 현재, 그저 모종의 “민족주의”에서 나온 수요(需要)일 뿐, 현실적인 고려에서 비롯된 게 아닌, 한의학에 대한 지지만을 보였을 뿐이다.

서양의학을 배우고 한의학을 비판하다

16세기에 포르투갈 의사가 마카오에서 병원을 개원한 이래, 적잖은 서양 의사들이 잇따라 중국에 병원과 진료소를 열었다. 19세기 말에 이르러, 중국에는 이미 362곳의 서양 병원과 244곳의 서양 진료소가 존재하였다. 근대(近代)에 서양 의학이 점차 중국인에게 인정을 받는 동시에, 중국의 상류사회와 지식인들 또한 한의학에 대한 비판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비판 중에 가장 대표적인 사건은 바로 1879년 유월(兪越) 선생이 ‘한의학 폐지론(廢醫論)’을 발표한 일이다. 유월 선생의 이 글은 한의학의 기본 사상, 진단방법, 약 사용과 한의사의 치료 효과에 대한 평가 등의 (여러) 방면에 걸쳐, 한의학에 대한 체계적인 비판을 진행하였을 뿐 아니라, 한의학을 폐지할 것을 명확하게 주장하였다.

1905년, 중국은 정식으로 서원(書院) 교육을 폐지하고서 학교(學校) 교육을 창설하였다. 1912년, 중국 정부는 고등 교육 내용을 확정지을 때, 서양 과학을 위주로 하는 것을 명확히 하였으며, 특히 한의한약을 삭제하였다. 이러한 행동은 1913년 한의학계에서 시작된 “한의학 구망(救亡) 운동”(편집자주 : 한의학 구하기 운동)을 야기하였다. 그러나 이 운동은 중국 정부로부터 냉정하게 거부당하였다. 1914년, 중국의 첫 번째 과학 집단(組織)인 “중국과학사(中國科學社)”는 바로 미국에서 성립되었다. 이로써 과학은 점차적으로 중국 이데올로기의 주류를 이루었다. 당시, 이 조직에는 이미 서양 의사가 32명이나 소속되어 있었다.
 



1917년, 일찍이 일본에서 유학한 의학자(醫學家) 여운수(余云岫) 선생은 ‘’영소(靈素)‘ 상태(商兌)’를 발표하여, 한의학의 경전인 ‘황제내경(皇帝內經)’을 체계적으로 비판하였다. 이후, 몇몇 각성한 중국 지식인들이 잇따라 한의학을 토벌(討伐)하였는데, 그 중에는 정치가인 손중산(孫中山, 쑨원)과 왕대섭(汪大燮), 학자인 엄복(嚴復), 양계초(梁啓超), 진독수(陳獨秀), 호적(胡適), 양수명(梁漱溟)이 있었으며, 문학가로는 노신(魯迅), 파금(巴金)이 있었고 과학자로는 정문강(丁文江), 임홍전(任鴻隽), 양전(楊銓)이 있었으며, 교육가로는 장몽린(蔣夢麟), 부사년(傅斯年)이 있었다.

이렇듯 19세기의 70년대부터 20세기 초 30년대까지, 한의사들은 줄곧 중국 백성들의 사면초가(四面楚歌)의 토벌 소리 한 가운데 처(處)해 있었다.

한의학의 자구(自救) 운동

한의학을 토벌(討伐)하자는 중국 내 여론에 대응하기 위해, 한의학계는 19세기말부터 한 차례 “자구운동(自救運動)”을 전개하였다. 이 자구 운동은 두 가지 방면으로 나누어 진행되었다.

하나는 중국인이 서양을 적대시하는 민족 심리를 이용하여, “서양문화 침략을 반대하는” 기치를 내세우고 개인적인 사심을 감춘 “민족”, “애국” 정서를 선동함으로써 중국 대중들의 한의학에 대한 동정과 지지를 얻어냈다.

또 다른 하나는 한의학 스스로의 개선 실행이다. 한의학을 개선해 가는 과정에서, 중국에서는 20세기 초에 한의학이 과학화될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대(大) 토론이 발발하였다. 그 중 정복보(丁福保), 육팽년(陸彭年), 육연뢰(陸淵雷), 담차중(譚次仲)을 대표로 하는 일파(一派)는 한의학을 철저히 개선하여 한의학을 과학화의 길로 나아가도록 해야한다고 주장하였다.

한의학의 과학화(中醫科學化)로써의 첫 번째 성취는, 한약재인 마황(ephedra)에서 천식(喘息)을 치료할 수 있는 에페드린(ephedrine)을 추출해낸 것이다. 허나, 이 한의학의 과학화 작업(工作)은 명백하게 서양의학 범주에 속한다. 실제로 이 에페드린을 추출해내는 최초의 작업 역시, 일본인 의사(西藥醫生) 나가이 나가요시(長井長義)에 의해 1887년에 완성되었다. 1923년, 일찍이 미국에서 유학한 중국인 의사(西藥醫生) 진극회(陳克恢)가 과학의학의 요구에 따라 에페드린의 약리(藥理) 작용을 명확하게 밝혀냈다. 이후, 중국 의사들이 사용하는 에페드린은 대체적으로 수입에 의존하였다. 1945년에 이르러서야, 일찍이 일본에서 유학한 바 있는 조율황(趙燏黃) 선생은 혼자서, 에페드린을 추출하는 새로운 기술을 발명하였는데, 이는 그야말로 에페드린을 생산할 수 없다는 중국인의 미개척 분야를 개척한 것이었다. 그러나 달도 차면 기울 듯이, 에페드린이 한창 세계로 뻗어나갈 때, 이 에페드린의 흥분작용(stimulant)과 발열작용(thermogenic)이 임상(臨床)에서 나타났다. 이는 α수체(受體) 혹은 β수체(受體) 흥분제로, 대뇌(大腦)를 자극하여 심장 박동수를 증가시키고 혈관을 압축하며 기관지를 확장할 수 있다. 1988년, 에페드린은 처음으로 올림픽 대회에서 사용 금지되었으며, 2003년 12월 30일에 미국의 식품의약품안전처(FDA)는 에페드린을 식품 첨가제 목록에서 제외시켰다.

에페드린(ephedrine)에 버금가는 또 다른 한의학의 과학화 성취는, 개사철쭉(Sweet Wormwood Herb)에서 알테미시닌(Artemisinin)을 추출해내 말라리아(瘧疾)를 치료한 것이다. 그러나 이 약은 시장에 출시된 지 오래지 않아, 말라리아 원충(原蟲)에 내성이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이 발견되었으며, 이로 인해 세계 보건 기구(WHO)의 규제를 받았다.
 




에페드린과 알테미시닌 이 두 가지는 현재까지 한의학의 과학화에 있어 유일무이한 성과(成就)로, 이 두 업적이 보여준 결과는 바로 한의학의 과학화(中醫科學化)의 길이 어렵다는 것이다. 중국이 개혁개방(改革開放) 정책을 실시한 이후, 중국정부는 줄곧 한의학의 과학화 사업을 지지하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지불해 왔지만, 소위 한의학의 과학화라고 불리어지는 이러한 사업은 오히려 오늘날 그저 과학이라는 그럴 듯한 이름만 지니고 있을 뿐, 과학적인 실속(實)이 전무(全無)하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럴 듯하게 꾸며진 대부분의 중국 의학계 사건들은 모두 이 “한의학의 과학화” 사업과 관련되어있다.

실제로, 일찍이 정복보(丁福保)와 육팽년(陸彭年)과 같은 이들이 한의학의 과학화 구상을 제기했던 초기에, 휘철초(煇铁樵)를 중심으로 한 중간파(中間派)들은 과학화의 유형(模式)에 맞춰 한의학을 개조하는 것에 반대 입장을 표명(表明)하였으며, 고유한 사상 틀에서 한의학을 보완할 것을 주장하였다.

상술한 두 가지 주장 이외에, 20세기 초 중국에는 여전히 한의학 보수파에 속하는 이들이 존재하고 있었으며, 이들은 채소향(蔡小香)을 대표로 예전의 방식이나 형식 그대로 한의학을 계속적으로 지켜나가길 주장하였다.

한의학의 자구(自救) 운동에 있어, 한의학에 대한 가장 효율적인 보존 조치(保守措施)는 한의사들이 중국 민중에 대해 민족 정감을 부추기는 데에서 비롯되었다. 그들은 성공적으로 중국민중의 낮은 과학적 자질과 외세에 대한 맹목적 배척 심리를 이용하여, “민족”, “애국(愛國)” 혹은 “중화문화를 한층 더 발양하자(弘揚中華文化)”라는 명목으로, 적잖은 중국민중의 한의학에 대한 공감과 지지를 얻어냈다.

“세 번째 노선(道路)”: 중국과 서양(中西)의 조화(correspondence) (협진)

1560년대를 시작으로, 서양 의학과 관련한 과학생식 예컨대, 해부학(解剖學)·생리학(生理學)·병리학(病理學)·약리학(藥物學)·진단학(診斷學)이 잇따라 중국에 유입되었다. 이러한 지식을 경험한 몇몇 사람들은, 서양인들이 말한 의학과 생리학의 이치(道理)가 고대중국인이 음양오행(陰陽五行)을 이용해 말한 도리보다 더 명확하고 더욱 믿을만할 것이라고 여겼다. 그리하여 일부 한의사들은 자신들의 의학 저서에 “폭 넓게 서양학문을 받아들이는(博采西學)”가 하면, 심지어는 서양에서 이미 획득한 의학과 생리학 결과를 활용하여 한의학 속의 잘못을 규정해내자고 주장하기까지 하였다. 이로써 중국에는 한의학을 배우면서 서양의학을 배우는 의사들이 나타났다. 이것이 곧 소위 말하는 “중국과 서양의 회통(中西匯通)”[6]이다. 대표 인물로는 명(明)나라 왕앙(汪昻), 청(淸)나라의 왕청임(王淸任), 20세기 초의 주패문(朱沛文)과 당종해(唐宗海)가 있다.

1950년대 이후, “중국과 서양의 회통(中西匯通)”에서 “한의학과 서양의학의 결합(中西醫結合)”(협진)이라는 개념이 파생되었다. 그러나 기실, “한의학과 서양의학 결합”(협진)은 “중국과 서양의 회통(匯通)”과는 다르다. 중국과 서양이 조화를 이루는 과정에서, 한의학과 서양의학은 구별되었지, “결합(結合)”된 게 아니다. 그러나 “한의학과 서양의학 결합”(협진)은 오히려 많은 황당한 방법(做法)을 파생시켰다. 한의사가 양약(西藥)을 쓰고 서양의사가 한약(中藥)을 쓰며, 한약과 양약을 섞는가 하면, 환자의 생명 안전(生命安全)을 고려하지 않고 한약(中藥)을 주사제(注射劑)로 만들어 인체에 주입하기까지 한다. 이는 모두 “한의학과 서양의학의 결합”(협진)이라는 개념에서 파생된 것이다.

지금까지 중국의 홍콩(香港), 마카오(澳門) 및 대만(臺灣)에는 “한의학과 서양의학을 결합”(협진)한 의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실제적으로 “한의학과 서양의학의 결합”은 근 50년 동안 중국 대륙의 특수한 정치적 환경 속에서 자생(滋生)한 의학 기형아(醫學畸兒)로, 이는 순수한 한의학처럼 철두철미한 거짓 의학이다.

1929년의 “한의학 폐지안(廢止中醫案)”

20세기 전반의 20년 동안, 중국에서의 한의학 문제에 관한 논쟁은 아직까지 순수한 학술적 문제로, 심각한 정치적 투쟁을 일으키지 않았다. 1929년, 중화민국정부는 제1차 중앙위생위원회(中央衛生委員會) 회의를 개최하였다. 줄곧 한의학에 대해 비판적 태도를 견지한 여운수(余云岫) 선생은 이 회의에서 “한의학 폐지안(廢止中醫案)”을 제기하고, 정부에 1929년까지 만 20세인 한의사에게만 의료행위 자격을 허가하고, 이후 더 이상 한의사의 등록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을 건의하였다.[7]
 



의사인 여운수는 이러한 방법을 통해, 40여년이라는 시간을 보내면서 중국에서 의학혁명(醫學革命)을 실현코자 하였으며, 중국의 의학이 세계 과학의학(科學醫學)의 조류 속에 융합되게 하고자 하였다. 이 안건은 만장일치를 얻어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이 안건은 한의학계로부터 강한 불만을 불러 일으켰다. 연이어 중국에서는 비교적 대규모의 한의사 집단이 북경으로 와 청원을 하는 사건(請願事件)이 발발하였다. 이는, 1913년 한의사 집단의 청원에 잇따른 두 번째 청원이다. 한의사들의 청원으로 인해, 이미 통과된 “한의학 폐지안”이 방치되어 실질적으로 실행이 되지 않았다.

한의학이 신단(神壇)으로 향해 나아가다

비록 1929년 “한의학 폐지안(廢止中醫案)”이 실행되지 않았지만, 한의학에 대한 중국 지식인들의 비판은 여전히 계속되어지고 있다. 그들 중, 비판의 글을 가장 많이 발표한 사람으로는, 여운수(余云岫) 이외에 또 일찍이 북경 대학의 교장을 역임한 바 있는 부사년(傅斯年)이 있다.

1949년 10월, 중화인민공화국 정부가 성립하였다. 1950년 8월, 중국 정부는 제1회 전국 위생회의(全國衛生會議)를 개최하였다. 회의에서 여덟 명의 의사들이, “구(舊) 의학을 개혁하라(改造舊醫)”라는 안건을 연합하여 제기하였으며, 이 안건 역시 통과되었다. 그런 후에 중화인민공화국 위생부(衛生部)를 주관으로 하여, 3년에 달하는 구(舊) 의학 상황 조사 작업이 진행되었다. 조사 결과, 90%의 한의사들이 일반 의사의 의료 행위 요구에 맞지 않고, 80%의 한의학 기계가 기본적인 의료 조건에 못 미치며, 심지어 극단적으로 말해 비위생적이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이 비위생적이다라는 표현은 바로 한의사들이, 끊임없이 고대에서 전해져 내려온 오물이나 독물을 약에 넣는 것 외에, 이미 곰팡이 끼고 부패하였으며 벌레 먹은 몇몇 한의약(中草藥)[8], 심지어 약 궤짝(药柜) 속의 먼지, 쇠똥구리, 죽은 벌레, 벌레 알까지 모두 한의사는 환자에게 제공하여 복용케 하는 것을 가리킨다.

중국 정부 위생부는 국민들의 생명 안전을 위협하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숙정(整頓)할 계획이었다. 이는 국민들의 생명 안전에 대해 책임 있는 행동이었지만 오히려 모택동(毛澤東)으로부터 호된 비판을 받았다. 1953년, 모택동은 이로 인해 왕빈(王斌)과 하성(賀誠) 두 위생부(衛生部) 부부장(副部長)의 직무를 해임하였으며, 중국 국민들로 하여금 그들을 비판토록 하였다. 1954년, 모택동은 “서양의학이 한의학을 배우다(西醫學習中醫)”라는 구호(號召)를 발표하였다. 모택동의 추진 하에, 중국은 뒤이어 대규모로 한의한약(中醫中藥)을 대규모로 조직하는 고조(高潮)가 물결쳤다. 그래서 한의한약은, 극도로 비위생적인 악습을 수반한 채, 신단(神壇)에 올려졌다. 그 이후 50여년의 시간 동안, 한의학에 대해 “아니다(不)”라는 일언반구(一言半句)의 말조차 꺼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2006년 4월에 이르러, 나는 ‘의학과 철학(醫學與哲學)’이라는 학술지에 ‘한의한약에 작별을 고하다(告別中醫中藥)’를 공개적으로 발표하였다. 이는 마치 평지의 봄 우레 소리(平地一声春雷)마냥 52년간의 적막(沉寂)을 깨뜨렸으며, 한의한약의 문제는 새로이 중국 인민의 앞에 놓이게 되었다.

한의학의 쇠퇴(衰落)

서양의학이 중국에 들어온 이후, 한의학은 끊임없이 쇠퇴의 길로 향하였다. 비록 모택동이 공개적으로 한의학을 지지한다고 표명하고 한의학에 반대하는 모든 이들을 단속하였지만, 이는 한의학으로 하여금 그저 절대적인 정치적 지위를 갖도록 하였을 뿐, 한의학의 무능을 감추지 못했으며 또한 한의학을 쇠퇴의 길에서 구해내지도 못하였다.
 



한의학의 끝없는 쇠퇴는, 한의학 개업의사들의 계속되는 감소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1949년, 중국에는 36.6만명의 의사들이 있었으며, 그 중 한의사들은 27만 명이었다. 모택동의 극좌적인 한의학 정책 지도 하에, 중국의 서양의사들은 전대미문의 타격을 받았다. 이와 동시에, 한의학 또한 더욱 빠르게 쇠퇴해갔다.

표면적으로 중국은 적잖은 한의약(中醫藥) 대학을 설립했지만, 이러한 대학에서 강의 하는 교수들의 절대 다수가 사실은 한의사라는 배경을 제대로 가지고 있지 않다. 한의약 대학을 졸업한 한의사들은 중국에서 흔히 “대학파 한의사(學院派中醫生)”라고 불리는데, 그들은 과학의학에 있어 체계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을 뿐 아니라, “조상 대대로 이어온 한의사(祖传中醫)”라든가 “한의사는 나이가 지긋해야 한다(郎中要老)”라는 심리적 우월감도 지니고 있지 않았다. 이러한 이유로, 중국의 국민들은 줄곧 이러한 한의약 대학에서 임명한 졸업생을 믿지 않았다.

1976년 9월 9일, 모택동이 서거하고 등소평(鄧小平)이 복귀하였다. 중국은 혼란을 수습하고 바로잡아가면서, 일찍이 모택동 시대에 비판 받았던 “처방권(處方權)”(편집자주 : 의료인이 환자와 접하고 의료행위를 하는데 있어서의 면허 및 자격 문제) 문제를 새로이 제기하였다. 1979년, 중국정부는 심각한 타격을 받은 “처방권” 제도를 회복하였다. 그러나 모택동 좌경 한의학 정책의 망령이 떠나지 않고 남아 있어, 중국 정부는 80년대까지도 여전히 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의 잔류로 남아 있는 사유관성(思惟慣性)에 따라 정책을 제정하였는데, 이는 오늘날까지 계속적으로 한의학과 서양의학을 “차별 없이 대하며(一视同仁)”, “다 같이 중요시한다(中西醫幷重)”라는 현상을 야기하였다.

이 한의학과 서양의학을 “차별 없이 대하자”라는 잘못된 정책은, 처방권 심의(审定) 방면에 있어 황당하게 드러난다. 그것은 온전하게 “대학파 한의학” 모델에 의거하여 한의사의 의료행위 자격을 심의·심사한다. 비록 한의사 자격시험이 아무런 과학적 내용 없이 출제된다고 할지라도, 시험방법은 오히려 서양의학 시험 못지않게 엄격하다. 상황이 이러하다보니, 가업을 이어 온 노(老) 한의사들 모두가 처방권(處方權) 자격시험을 치르기는 무척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또 한의학 처방권(中醫處方權)을 시험 본 “대학파 한의사”들 역시 일반적으로 민중들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었다.

물론 중국 정부에 의해 세워진 한의약 고등 교육(高等敎育, 대학 이상) 학교는 이미 50곳, 중등 전문 분야(中等專科)의 한의약 학교는 61곳에 달하고, 2004년까지 대학 이상 한의학 고등 교육의 신입생 모집 인원이 95,945 명으로 증가되었으며, 중등 전문학교(中專)[9] 기관의 신입생 모집 인원도 35,279 명으로 확대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한의약의 개원의들의 수는 오히려 나날이 줄어들고 있다. 현재 중국의 의사 수(數)는 이미 410만명으로 증가하였는데, 그 중 한의학 개원의(開院醫)의 수를 보자면, 1949년의 27만명에서 2006년 19.5만명으로 오히려 줄어들었다(표 1 참고). 1954년, 중국에는 단지 4곳의 한의학 병원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모택동(毛澤東)이 대대적인 한의학 운영정책을 내놓은 후, 한의학 병원은 계속적으로 늘어나, 현재 중국은 한의학 의료 기구 3,792곳을 보유하고 있다(2005년 통계). 그러나 이러한 한의학 의료 기구 중, 개원한 한의사 수는 더욱 더 줄어들고 있는데,(표 2 참고) 이를 통해, 중국의 한의학 병원이 이미 유명무실해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의약의 약 자원(藥源)이 고갈될 위기에 처하다

중국은 1950년대 한의학 대학과 한의약 공장을 설립한 이후, 한의한약은 점차 중국의 한 산업으로 발전하였다. 이 산업은 줄곧 중국의 생물자원을 심각하게 낭비하고 있다. 한의약 공장은 이윤을 내기 위해, 부득불 한의약의 약 자원(藥源)을 수탈적으로 채굴해내고 있다.

현재, 중국은 국내 모든 식물 약 자원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또한 국제 식물 약 자원 시장의 80%를 점유하고 있다. 1995년부터 2005년까지, 중국 식물 약 자원의 연간 소비량은 3배로 증가하고 있는데, 이는 중국 식물 약 자원의 보유량이 매년 30% 속도로 감소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 중 동북(東北) “명산지의 약재(道地藥材, 야생의 희귀한 약재)의 약 자원은, 20세기 말을 기초로 21세기에 접어든 후에도 계속적으로 매장량의 80%가 줄어들어갔다. 부분적으로는 95%나 감소하였다.

감초(甘草)는 근계(根系)가 발달하고 가뭄에 대한 저항 능력이 강하여, 본디 바람을 막아내며 모래를 견고하게 하는데 뛰어난 식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한의학이, 감초는 “여러 약 속에서 조화(調和衆藥)”를 이루는 약용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맹신함으로 인해, “대대로 전해오는 약(國老藥)”이라는 위치를 차지하였으며, 감초의 소모량은 계속적으로 높은 곳에만 머무를 수 없는 결과를 가져왔다. 지금, 중국 매년 감초 소모량은 대략 4만톤에 이르지만, 중국의 감초 총 매장량은 이미 35만톤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 식물의 급락(锐减)은 중국 서북(西北)의 급격한 사막화가 중요한 요인이다.

이 외, 중국에서 오미자(北五味子, 조선 오미자)의 야생 저장량은 50년대에는 100만톤이었지만, 현재의 매장량은 1만톤에도 못 미친다. 지금 오미자는 그저 국내 시장의 20%만 겨우 만족시킬 뿐이다. 중국에서 멸종 위기에 처해 있는 야생식물자원으로는 또한, 야생산삼(野山參)·자오가(刺五加)·시호(柴胡)·방풍나물(防风)·황백(黄柏)·끼절가리(升麻)·영신초(远志)·용담(龙胆)·삽주(苍术)·남방고본(藁本)·영지(灵芝)·석골풀(石斛)·동충하초(冬蟲夏草)·강활(羌活)·칠협일지화(七叶一枝花)·말조개나비(木蝴蝶)·두충(杜仲)·후박(厚朴)·각시서덜취(雪莲)·만형(蔓荆)·육종용(肉苁蓉)·반하(半夏)·새박뿌리(何首烏)·자초(紫草)·팔각련(八角莲)이 있다. 약 공급이 부족함에 따라, 한의약의 품질 보증 문제는 갈수록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한의한약을 폐지하라는 외침이 나날이 높아가다

세계의 수많은 민족은 일찍이 자기 민족 특유의 의술(醫術)을 간직하고 있다. 많은 민족 전통 의술 가운데, 한의한약이 특히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이와 동시에, 한의한약이 국제사회에서 드러난 안전성 문제 역시 더욱 두드러졌다. 그 중, 이미 세계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으로는 벨기에(Belgium)에서 발생한 “한약 신장병(中草藥腎病, Chinese herb nephropathy, CHN)[10] 사건이 있다.
 



1993년, 벨기에 브뤼셀 자유 대학(布鲁塞尔自由大学) 의과대학 신장학과 교수인 쟝 루이 판헤어베겜(J. L. Vanherweghem)이 최초로, 한의약 성분인 광방기(廣防己)를 함유한 다이어트약을 복용함으로 인해, 본디 병이 없는, 다이어트를 시도한 사람들이 만성콩팥 간질 섬유화(弥漫性肾间质纤维化), 저분자 단백뇨(低分子蛋白尿), 심각한 빈혈(严重贫血)에 걸려, 일이년 안에 신장병말기로 발전하는 병 사례를 보고하였다.

광방기는 쥐방울 식물(马兜铃植物)에 속하며, 쥐방울(马兜铃) 산(酸)을 풍부하게 함유하고 있다. 이로 인해, 이 신장병은 서양에서 아리스토로크산 신장병(马兜铃酸腎病, Aristolochic acid nephropathy)이라고 불려진다. 이 “재조병(再造病)”[11]이 한약과 관련 있기 때문에, 국제 의학계는 이를 “한약 신장병”이라고 이름 지었다. 처음 이 병의 사례를 보도했을 때부터 1998년에 이르기까지, 또한 벨기에(Belgium)에서는 이 병으로 인한 100건의 사망 사례를 누차 보도하였다.

이 외, 중국 대륙과 대만한의학연구원의 연구와 임상실험(臨床觀察)을 통해, 대략 123여종의 한약을 단독으로 사용할 경우 독이 발생하며, 140개의 제조약을 임상 실험한 결과 심각한 독(毒)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이를 귀납해 보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결론을 얻을 수 있다.

- 디기탈리스(digitalis)의 말린 잎과 같은 강심배당체(cardiac glycoside) 식물 독소. 이 독소(毒素)를 갖고 있는 식물로는, 디기탈리스(毛地黄)·둥글레(玉竹)·노란 협죽도(黄花夹竹桃, Yellow Oleander)·은방울꽃(铃兰)·마리근(马利筋)·만년청(万年青)·바다 망고 열매(海檬果, Odollam erberus-tree)·복수초(側金盞花, Adonis amurensis Regel et Radde)가 있다.

- 시안화물(氰化物, cyanide) 선구물(前驅物)을 함유한 식물(cyangenic plants) 독소. 이러한 독소는 조건이 갖춰진 상황이라면 체내(體內)에서 자동적으로 합쳐져 시안화물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독소를 갖고 있는 식물로는, 살구씨(杏仁)·아마(亚麻)·소철(苏铁)·복숭아씨의 알맹이(桃仁)·앵두 씨(樱桃核)·李仁(李仁)·비파나무 속살(枇杷仁)·은행(白果, 銀杏)이 있다.

- 심각하게 신장을 손상시키는 식물. 주로 아리스토로크산(马兜铃酸, Aristolochic acid)으로 나타난다. 그 원흉(罪魁祸首, 장본인)은 바로 아리스토로크(Aristolochic)에 속하는 식물이다. 이것에 속하는 식물로는, 청목향(青木香, Radix aristolochiae)·천선등(天仙藤, Dutchmanspipe Vine)·아리스토로크(马兜铃)·광방기(廣防己,Radix Aristolochiae Fangchi)·관목통(关木通, Caulis Aristolochiae Manshuriensis) 등 34종(种)이 있다. 현재, 그것들이 만성콩팥 간질 섬유화(慢性肾间质纤维化) 병리 변화(病变)와 염색체 핵산 건결물(染色体核酸键结物) 변성을 야기할 수 있다고 보도되고 있다.

- 간(肝) 괴사(坏死)를 일으킬 수 있는 식물: 삼칠초(金不换, 三七草).

- 피부염(皮膚炎)을 발생시킬 수 있는 식물. 이미 발견된 것으로는, 측백나무(侧栢)·용설란(龙舌兰)·경마(琼麻)·옻나무(漆树)·은행열매(银杏果)·황금갈(黄金葛)·복록동(福禄桐)·작은 잎 좀회양목(小叶黄杨, Buxus sincia Rehd)·금로화(金露花, Duranta repens Linn)·방란(蚌兰)·자금목(紫锦木, Setcreasea purpurea B.K.Boom )·자금초(紫锦草, Euphorbia cotinifolia)·분꽃(紫茉莉) 등이 있다.

- 타닌(鞣質類, Tannins): 오배자(五倍子)·석류껍질(石榴皮)·가리륵 열매(訶子)

- 많은 종류의 독성을 갖고 있는 식물약: 뇌공등(雷公藤, 미역줄나무 일종)

- 간 중독 성향을 지닌(아직 실증을 필요로 한) 식물: 뽕나무 겨우살이(桑寄生)·산귀래의 뿌리(土茯笭)·쇠고비(貫衆)·반하(半夏)·부들의 꽃가루(蒲黃)·택사(澤瀉)

- 그 외, 또 해롭다고 알려져 있는 중금속류의 광물이 약으로 쓰이는 경우로는, 주사(朱砂)·진사(辰砂)·석웅황(雄黃,As2O3)·염기성 탄산연(鉛粉)·일산화연(密陀僧)·우여량(禹余粮)·납 함유(含鉛) 혹은 비소 함유(含砷)가 있다.

2006년 11월, 산동(山東) 한의약 대학의 하려영(夏麗英) 교수는 ‘한의약 독성 총람(中藥毒性手冊)’을 편집 출판하였다. 이 저서에 수록된 모든 563종(種)의 한의약은, 단독 즉 한 가지 성분만으로 약에 사용되었을 때, 비교적 뚜렷한 독 부작용을 나타냈다. 애석하게도, 현재 중국 의학계는 이러한 중독 반응을 일으키는 독의 원리(毒理)에 대해 여전히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심지어 중독 반응을 유발시키는 기본 독소(毒素)가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하고 있다. 제기할만한 것으로는, 중국정부는 오늘날까지 여전히 독성분을 지닌 한약(中草藥)을 약에 넣는 것을 규제할 법률적 근거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로써 환자들이 만일 한약 독(毒)의 해로움을 겪게 된다면, 일반적으로 사고를 친 사람에게 법률적 소(訴)를 제기할 방법이 없다.
 



한의한약의 안전성 문제가 확증을 얻을 방법이 없다는 것 이외에, 한의한약의 유효성(有效性) 또한 오늘날까지 과학적 방법론으로써 제대로 증명된 것이 없다. 더욱이 중국의 한의학계는 과학적인 방법의 사용인, “쌍맹대비실험(雙盲對比實驗)(double blind test, 이중맹검실험)[12]과 한의한약의 치료결과를 평가해내는 것을 거절하고 있다.

한의한약의 계속적인 동식물 약 자원의 남용(濫用)으로 인해, 많은 동식물 자원이 고갈상태에 놓여 있으며, 한의한약의 품질 확증문제 역시 갈수록 더 두드러지고 있다. 실제로, 우리들은 꿀로 만든 한의약 환약(藥丸)에 도대체 어떤 성분이 포함되었는지 알긴 어렵다.

일찍이 명(明)나라 이시진(李時珍)이 ‘본초강목(本草鋼目)’을 쓰기 전, 어떤 이가 오랜 가죽, 낡은 유피, 해저 너덜너덜한 장화로써 아교(阿膠)를 만들어 내어 월경을 고르게 하고자 하는 부인들에게 식용토록 제공하였다. 6세기 양(梁)나라의 도홍경(陶弘景)은 일찍이 ‘명의별록(名醫別錄)’을 편찬한 바 있다. 그 글에서는 특히, 독자들에게 아교(阿膠)가 “혼탁하고 검은 것이라서 약으로 사용하지 않는다(浊而黑者不入藥)”라고 경고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중국 한의약 시장에서 공급하는 아교는 대부분 “혼탁하고 검은 것(浊而黑者)”에 속한다. 이러한 아교가 도대체 어떤 성분으로 만들어졌는지, 일반 소비자들은 근본적으로 감별(鑑別)할 방법이 없다.

한의한약의 ‘임상의료로서의 능력’(服務) 저하를 감안하여 볼 때, 한의한약의 안전성을 보장할 수 없으며, 유효성 또한 과학적 방법의 평가를 얻어 낼 수 없다. 이러한 한약 품질에서 드러난 문제와 중국 동식물 자원에 대한 한의한약의 심각한 낭비 문제에도 불구하고, 설상가상으로 중국 정부는 아직도 한의한약을 관리하는 엄격한 과학적 기준과 법률적 근거가 부족한 상태이다. 이는 한의한약 치료를 받는 환자들의 기본 권리가 늘 침해당하는 결과를 낳았으며, 이미 더욱더 많은 중국인들이 “의학폐지파(廢醫派)”의 행렬에 참여하여, 되도록 빨리 한의한약을 폐지하기를 강력히 요구하도록 만들고 있다.


Ⅲ. 한의학이 중국의 미래를 향해 나아가다

중국 정부의 ‘한의약(中醫藥)의 새로운 발전 계획 요강(2006-2020년)’

한의한약의 쇠퇴에 직면하여, 중국 정부는 “한의한약을 강력히 지지한다(大力扶持中医中药)”라는 정책적 자리 매김을 선택하였다. 2007년 3월 21일, 오의복(吳儀福) 총리의 추진 하에, 중국의 16개 정부 부서는 ‘한의약의 새로운 발전 계획 요강(中醫藥創新發展規劃鋼要)(2006-2020년)’을 공동으로 발행하였다.

이 ‘요강(鋼要)’을 근거로, 중국정부는 “계승(繼承)·창조성(創新)·현대화(現代化)·국제화(國際化)”라는 요구에 따라 한의한약을 발전시켜나갈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요강’은 몇몇 진실하지 않은 전제를 담고 있다. 예를 들자면, 이 ‘요강’에서는 “인류 질병의 대체적인 표준의 변화와 노령화 사회의 도래는, 현존하는 질병 예방치료 유형과 수단이 이미 날로 증가하는 사회적 요구에 호응할 수 없다는 결과를 낳았으며, 동서의학(東西方醫學)에서는, 우월성(優勢)에 대한 상호보완과 상호융합의 추세가 이미 나타났다”고 말하고 있다. 허나 실제적으로, 과학의학(醫學科學)이 이제껏 한의학의 우월한 영향으로 변경된 어떠한 흔적도 나타낸 적이 없다. 이로써, 소위 “동서의약의 우월성에 대한 상호보완과 상호 융합의 추세가 이미 나타났다(東西方醫藥優勢互補, 相互融合的趨勢已經出現)”라는 말은 실제로 그 뜻이 과장되었으며, 허위적인 전제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주의할만한 것으로는, 바로 중국 정부가 이 ‘요강’을 공포할 때, 앞서 한의한약의 3대 결점(三大缺點)을 공개적으로 승인하였다는 점이다.

(1) 한의학 의료 보건 서비스 능력 낙후
(2) 한의약 현대 산업 기초 취약(不强)
(3) 한의약 현대과학 기초 미약(薄弱)

이 세 가지 결점은 한의한약에 있어 치명적이다. 의학의 생명력은 그것의 ‘임상의료로서의 능력(服務能力)’에 달려 있다. ‘임상의료로서의 능력’이 없는 의학은 분명 도태될 것이다. 오늘날까지, 한의학은 어떠한 믿을만한 진단 방법이 없고, 표준에 맞는 질병 명칭 하나 없으며, 심지어 의술 방면에 있어 경미한 질환조차 제대로 치료하지 못한다.
 



이 외에, 한의한약은 실제적으로 어떠한 “현대 산업 기초 취약(現代産業基礎不强)”의 문제가 아닌, 현대산업 건설을 이루기 위한 기초를 완전하게 갖추지 않았다는 게 문제이다. ‘요강’의 “한의약 현대과학 기초 미약(中醫藥現代科學基礎薄弱)”에 관한 서술(描述)을 놓고 말하자면, 현실상황을 애써 희미하게 하고자 하는 함의(蕴意)를 뚜렷하게 지니고 있는데, 실제로 어떠한 사람도 한의한약을 위해 현대과학적 기초는 세울 수 없을 것이다.

이것으로써, ‘요강’은 이러한 의학을 “계승(繼承)”한 채, 이 의학에 관해서 “창조성(創新)”을 행하거나 혹은, 이러한 의학으로 “현대화(現代化)”와 “국제화(國際化)”를 주장하였는데, 이는 그저 일방적인 바람(情愿)일 뿐, 어떠한 적극적인 결과도 낳을 수 없다.

한의한약이 일으킬 수 있는 변화

중국 내(內), 반(反) 한의학 인사들의 호소(呼吁)로 인해, 중국 정부는 한약(中草藥)의 사용 안전성과 품질 감독 부분에 일부 추가 규정을 만들어냈다. 한의약의 품질 보증 부분에서, 중국 정부는 이미 한약 한약(中草藥飮片, 중국 전통방법에 따라 가공한 한의약의 최종 생산물)[13] 생산의 GMP 기준을 공표(公布)하였다.

한의약의 사용 안전성 부분에 있어, 중국 정부는 일찍이 “주사제 생산량을 향상시키고 약의 안전 기준을 지키라(提高注射劑生産質量和用藥安全標準)”고 강조하였는데, 이러한 점은 “중서의학 결합(中西醫結合)”(협진)에 있어 일부 제한적인 효과(作用)를 가져올 것이다. 이 외에, 중국 정부는 이미 2006년 11월부터 중국 내 식물 약 자원 조사를 실시하였다. 만일 중국 정부가 식물 약 자원의 현실 위기와 한약 남용으로 인한 심각한 생태의 나중 결과를 인식했다면, 중국 정부는 아마 어느 정도 자각하고서 한의한약 정책을 적절하게 조정할 것이다.

이 외에, 중국 정부의 현재 한의학 정책은 “창조성(創新)”과 “현대화(現代化)”를 강조하는 방향이다. 현대화의 핵심은 과학화(科學化)이다. 과학화가 존재하지 않으면, 어떠한 현대화도 존재할 수 없다. 비록 한의약의 “창조성”과 “현대화”를 추진하는 이 정책 발전 방향이, 일부 한의학 인사(人士)들의 반대와 반(反) 한의학 인사들의 반대에 부딪쳤다고 할지라도, 중국 정부는 이 정책을 견지해 나갈 것이다.

국제 한의약 시장을 개척하다

중국 내에서 한의한약은 이미 그 형세를 뒤바뀔 수 없는 쇠퇴의 지경에까지 다다랐다. 이러한 쇠퇴에 처하게 된 한의한약은 스스로의 발전 방향을 국제 시장으로 돌렸다. 그러나 “한의학의 국제화(中醫國際化)”는 매우 제한적일 뿐 아니라, 심지어는 불가능하기까지 했다. 비록 한의학이 중국 내에서는 서양의학과 동일하게 국가적인 승인(認同)을 받고 있다고 하지만, 국외에서는 보통 이와 유사한 승인을 얻어낼 수 없다. 이로 인해, 한의약의 국제화(中醫藥國際化) 방향은 아마 “한의약의 국제화(中藥國際化)”에 그 초점(focus)을 맞출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중국에는 이미 1,100여 곳의 한의한약(中藥飮片) 관련 기업이 등록되어 있다. 그 중 200여 곳의 기업이 중국 정부가 발급한 GMP 인증증서를 획득하였다. 2007년, 중국의 한의한약(中藥飮片) 생산 기업은 총 218억위안(인민폐)의 판매를 이루었다. 그 중, 수출은 약 1/8을 차지한다. 중국의 한의한약(中藥飮片) 수출 국가는 대개 한국과 일본으로, 그 시장 점유율은 수출 시장의 약 95%를 차지한다. 이 외에도 유럽 연맹(欧盟)과 미국이 있는데, 이 두 곳은 도합 약 1.73% 정도이다.

한의한약(中藥飮片)은 한의사들에 있어서 최종 생산물이자, 의약공업에 있어서는 의약(醫藥) 원(原) 재료(材料)이기도 한다. 그러기에, 중국의 한의한약(中藥飮片) 수출은 상당 부분에 있어 국외 의약 기업에 원(原) 재료를 제공하고 있다. 이로써, 한의한약(中藥飮片) 수출량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중국 동식물 약 자원의 고갈 속도 또한 빨라질 것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유감스럽게도, 중국 정부는 “한의학을 수호(捍卫中医)”하는 인사(人士)들의 사상적 포위망에 에워싸여, 오늘날까지 이러한 점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한의한약이 기대할 수 있는 결과

중국정부는 여전히 과학적인 태도로써 한의한약의 문제를 마주 대할 용기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한의학을 반대하는 중국 사회의 대열은 나날이 확대되어 가고 있으며, 그들의 한의한약에 대한 비판 역시, 갈수록 더 철저해지고 있다.

나의 이러한 착상(設想)에 따라, 한의한약은 되도록 빨리 국가의료시스템에서 물러나야 하며, 국가는 “관찰자(觀察者)”나 “감독(監督者)”의 위치에 있도록 해야지, 현재와 같이 한의학 문제와 관련하여 이렇게 “당사자(當事人)”의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해두고자 한다.

현재, 나의 이러한 구상(設想)이 획득한 사회적 공감(同情)과 이해(理解)는 점차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내 판단에 의하자면, 중국 정부는 금후 짧은 시일 내, 또 납세자들의 돈을 가지고서 일시적으로나마 한의한약을 계속 배양해내겠지만, 한의한약의 쇠퇴와 최종적인 소멸은 끝내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한의한약이 국가 의료 체계에서 퇴출하여 민간으로 되돌아가길 온전하게 기대할 것이며, 이에 대해 나는 확신한다.


장궁야오 교수 관련 기사 :

허위의학으로서의 한의학(中醫)

대한민국 한의학 폐지론

중국인 의사가 한의대생에게 보내는 편지



한의학의 과학적 검증 관련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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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연하려고 침을 맞겠다고?

‘이침’이 금연에 효과적이라고? 허튼 주장일 뿐!



각주 :

[1] : 동종요법(同種療法)이란, 인체에 질병 증상과 비슷한 증상을 유발시켜 치료하는 방법으로, 1790년대에 독일인 의사 사무엘 하네만에 의해 발전하고 개발되었다. 이는, 히포크라테스가 건강한 사람도 질병과 유사한 증상을 일으킬 수 있으며, 질병 원인과 같은 물질을 소량 사용하면 그 증상을 낫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발견한데서 시작되었다 -옮긴이.

[2] : 베살리우스(1514-1564)는 브르쉘 출신의 근대 해부학의 창시자로, 1537년 이탈리아 파도바대학에서 의사자격을 얻고, 동대학에서 해부학과 외과학 교수를 지냈다. 대표작으로는 ‘인체구조론(De humani corporis fabrica libri septem)’(1543)이라는 7권의 방대한 저서가 있다. 이 저서에서는 갈레누스(갈렌)의 인체해부에 관한 학설의 오류를 지적하고 있다 -옮긴이.

[3] : 예를 들자면, 침구(鍼灸)·괄사(刮痧)·부항붙이기(拔火罐)·쑥뜸(艾灸)이 있다. 괄사(刮痧)는 급성 위장염 따위에 쓰이는 민간 요법으로, 동전에 물 또는 기름을 묻혀 환자의 가슴이나 등 따위를 긁어서 국부의 피부를 충혈시켜 위장의 염증을 경감시킨다. -옮긴이

[4] : 예컨대, 주약(主藥)에 배합하여 효과를 더욱 크게 하는 보조약을 사용하거나, 진찰을 할 때 남자는 왼쪽에 여자는 오른쪽으로 나눈다거나, 처방을 정하는데 있어(立方) 몇몇 정해진 운명에 따른다. 또한, 약초를 채집하는데 있어 동남서북으로 구분짓고, 약을 제조하는데 있어서는 꺼려 회피하는 규정을 지키는 등등을 말한다.

[5] : 좌골(坐骨) 신경(神經)을 압박하는 증상 -옮긴이

[6] : 회통(匯通)은, 한데 모아(종합하여) 서로 통하다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7] : 여운수의 '한의학 폐지안(廢止案)' ① 舊醫의 등록을 시행하여 면허증을 부여하고 영업을 허가하도록 하여 점차 현존 舊醫를 정리한다. 그 등록기한은 民國 19년(1930)까지로 정한다. ② 당국은 의사위생훈련처를 설치하고, 모든 등록을 마친 舊醫는 반드시 훈련처에서 보수교육을 받아야 하며, 수료증을 발급하고 영업허가를 인정한다. 보수교육 수료증은 1933년까지 우효하며, 증서를 소지하지 아니한 경우 영업을 정지한다. ③ 1929년까지 舊醫에 종사하는 자가 만 50세 이상, 국내영업 20년 이상이 된 경우는 보수교육을 면할 수 있으며, 특별 영업 면허증을 발급하되, 법정전염병의 치료와 사망진단서 등의 발급은 허락하지 않는다. 특별 영업 면허증의 유효기간은 15년이며, 만기 후 자동 폐지된다. ④ 舊醫에 대한 신문 등 언론매체를 통한 홍보를 금한다. ⑤ 舊醫와 관련된 연구회는 단순 학술연구의 성격이므로 그 회원은 의료 영업을 할 수 없다. ⑥ 舊醫에 관한 학교의 설립을 금지한다 ; 김기욱 외 著, 『강좌 중국의학사』, 대성의학사, 2006, pp.377~378, 참고. -옮긴이

[8] : 한약은, 한의약(中藥)과 민간약(草藥)을 통틀어 말한다 -옮긴이

[9] : ‘中等专科学校’(중등 전문학교)의 준말. 중등 전문학교로서 중졸 혹은 고졸 학력을 지닌 사람을 대상으로 2년간의 실무 교육을 행함. -옮긴이

[10] : 중국 한방약과 민간약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흔히 한약을 '한방약초' 혹은 '한약재'라고 번역하지만, 한국에서 쓰이는 '한방(韓方)'이라는 단어와 구별하기 위해 독음 그대로 번역함을 밝힌다. -옮긴이

[11] : 재조병(再造病)란, 원래 병이 없는 사람이 잘못된 약 복용으로 인해 병을 얻는다는 의미에서 再造라는 말을 사용한 듯 하다. 再造에는 '병을 일으킨 원인(致病原因)'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만일 이를 번역을 한다면, '다시 만들어지다(再造)'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데, 우리는 흔히 이때의 '다시'라는 단어에서 '반복'이나 '재생'적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렇게 해석할 경우 원문에서 말하고자 하는 의미와 달리 해석될 위험이 발생할 수 있기에, 이를 막는 차원에서, 독음 그대로 표기한다. -옮긴이

[12] : 쌍맹(雙盲)실험이란, 실험대상인 환자와 실험자(혹은 관찰자)인 의료인 모두, 어느 환자에게 신약(新藥)이 주입되었는지 알지 못한 채 이루어지는 이중맹검실험을 가리키는 말이다. -옮긴이

[13] : 中草藥飮片에서 '飮片'은 주로 달인 한약을 뜻한다. -옮긴이
 
 


장궁야오(张功耀) 교수 프로필

중국 중남대학교 과학기술 연구소 교수

1956년 11월10일, 중국 호남성 침주시에 태어남

1981년, 중국 호남대학에서 철학과 졸업. (전공은 과학기술 철학임)

1983년, '기하학과 공간개념 간의 변증발전'을 발표.
'자연신식'이라는 잡지 출판사에서 편집부 주임.

1988년, 중국 절강대학에서 석사 학위 취득 (전공은 과학 사상사임)

전에 한의사로 활동한 적 있음.

현 재 중국 중남대학교 과학기술과 사회 발전 연구소 소장 및 교수
중국 호남성과학기술철학 및 과학사 연구 책임자

주요 저작:
'상대론혁명'(1999년), '과학기술 철학교정'(2001년), '문예부흥시기의 과학혁명'(2004년), '과학철학과 과학사 논문집' (2007년).

주요 철학 논문:
'현상부터 지식 객체까지', '진리관에 대해 연구에서 남기는 문제', '어법에 관한 철학사고'

주요 과학 논문:
'π의 역사', '찰스 다윈의 진화론 혁명의 의의', '‘의심하는 화학가’ 뭘 의심하는가?', '송대 과학기술 개요', '고별중의중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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