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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콘텐츠는 '과학중심의학연구원(http://www.i-sbm.org)'이 제공하는 공익콘텐츠입니다. 이 글은 '과학중심의학(Science-Based Medicine)'의 주창자이자 미국의 대표적인 의학 비평가 중 한 사람인 예일대학교 임상교수(신경정신과) 스티븐 노벨라(Steven Novella)의 침술 비판 글 'Why I am skeptical of acupuncture'를 번역한 글입니다. 황의원 과학중심의학연구원 원장이 번역했습니다.



침술은 질환의 치료 또는 완화를 목적으로 하여 신체 특정 지점들의 피부에 매우 가느다란 바늘을 꽃는 기법이다. 이것은 한의학 치료법 중 하나이며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오늘날 침술은 다른 치료법들과 함께 병용되곤 하는데, 여기엔 침을 통해 저압의 전기를 흘려보내는 ‘전기침술’과 이른바 ‘경혈’이라는 불리는 곳에 불타는 약초를 올려놓는 ‘뜸술’이 있다.

침술은 최근 서양에도 널리 퍼졌다. 이른바 “대체 및 보완의학”이라는 이름으로 홍보되고 있는, 일련의 비과학적 치료법들에 대한 관용의 바람에 편승한 것이다. 한의사를 비롯한 침술의 지지자들은 이 치료법을 대중문화의 한 부분으로 인정받게 하는데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우리 과학적 의학 공동체(scientific medical community)는 여전히 침술을 정당한 과학적 치료로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나는 침술에 대해서 스스로를 매우 극단적인 회의주의자로 분류하고 있다. 침술에 대한 나의 지속되는 회의론에 대한 이유를 바로 여기에 정리한다.

1) 침술은 근대과학 이전의 미신이다 Acupuncture is a pre-scientific superstition

침술 지지자들은 고대 유산으로서의 침술을 미덕(virtue)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나는 그것을 악덕(vice)이라고 본다. 침술은 근대과학이 형성되기 이전의 문화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근대 이전에는. 오늘날 잘 확립된 생물학적 지식이나 신체의 통상적인 기능들에 대한 지식, 그리고 병리학적 지식과 관련해 제대로 알려지고 이해된 것이 거의 없었다.

사실 근대 이전의 의학이란, 현대의 '과학중심의학(Science-Based Medicine)'과 비교하자면 이른바 ‘인문중심의학(Philosophy-Based Medicine)'의 일부분이었다. 그러한 인문중심(philosophy-based) 시스템은 건강과 질병에 대한 관념들의 집합에서 시작됐고, 치료행위도 바로 그런 관념들에 기반을 뒀다. 그러한 관념들의 기저에 깔린 추론들과 이로부터 비롯된 치료법들은, 잘 통제된 상황에서의 관찰 또는 과학적 방법론이라고 타당하게 불릴만한 그 무엇으로부터도 전혀 검증받은 바가 없다.

서양에서의 ‘인문중심의학'의 사례를 꼽아본다면 체액설(humoral theory)이 있다 - 이는 신체가 4가지 체액들의 균형에 의해 건강이 유지되며, 한 종류 또는 그 이상의 종류의 체액의 양이 균형을 잃었을 때 질병이 생긴다는 이론이었다. 따라서 관계된 치료법은 피를 뽑아내는 사혈(blood-letting) 등을 통해 한 종류 또는 그 이상의 종류의 체액의 양을 증가시키거나 감소시켜서 균형을 회복시키는 것이었다. 이러한 체액설과 그에 기반한 치료법은 서양 사회에서 수천년간 유지됐으며, 단순 ‘일화적 증거(anecdotal evidence)’에 내재된 기만적 힘과 문화에 의해 영속되었다.

침술은 ‘기(氣, qi)’와 관련된 동양철학에 기반한다. ‘기’는 살아있는 것들을 움직이는 생명력(life force), 또는 생명에너지(vital energy)를 지칭하는 이름이다. 한의학 이론에 따르면 ‘기’라는 것은 신체에 ‘경락(經絡, meridian)’이라고 불리는 통로를 따라 흐른다. 또 한의학 이론에서는 이 ‘경락’을 통해 흐르는 ‘기’의 흐름이 막히거나, 또는 ‘기’의 두가지 종류인 ‘음(陰, yin)’과 ‘양(陽, yang)’이 균형을 잃을 때 질병이 생긴다고 한다. 침술은 ‘경혈(經穴, acupuncture point)’에 가느다란 바늘들을 꽃아서 ‘기’의 흐름을 개선시키고 균형을 회복하는 기법이며, 이 ‘경혈’은 바로 ‘경락’이 교차하는 지점이라고 한다.

체액설과 마찬가지로, ‘기’의 존재를 믿을 더 이상의 이유는 없다. 그리고 사혈 치료법의 효과를 믿을 이유가 없듯이 침술 치료법의 효과를 믿을 이유도 없다.

2) 침술에는 뒷받침될 수 있는 개연성있는 메커니즘이 부족하다 Acupuncture lacks a plausible mechanism

지난 수백년간 생명과학에 대한 우리의 연구를 발전시켜온 결과, 이른바 생명에너지(life energy)의 개념은 불필요해졌다. 더 나아가서, 그 누구도 생명에너지를 발견하지 못했으며 생명에너지가 도대체 무엇인지, 또 그것이 어디에서 오는지, 그리고 그것이 다른 일반적 형태의 에너지 및 물질들과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는지에 대한 어떤 논리정연한 과학적 이론이 만들어졌던 적도 없다. 과학계에서는 생명에너지론을 지지해온 생기론자(vitalist, 옮긴이주 : 생기론자는 생명현상은 물질과 무관한 생명력이나 생명에너지의 원리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는 이론을 신봉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생기론은 아리스토텔레스 시대부터 유래했으며 20세기초까지도 베르그송같은 형이상학적 인문학자들에 의해 계속 주장되어 왔다.)들은 이미 100여년 이전에 관련 논쟁에서 완전히 패배해버렸다. ‘기’의 존재를 설명하지 못한다면 침술을 의학적 치료법으로 받아들일만한 이론적 기반 자체가 없어진다.

최근 침술이 호사가들의 관심을 끌자 그 주장되어온 효과들에 대해 (기존의 관념론적 메커니즘이 아닌) 생물리적 메커니즘의 가설을 기반으로 하여 침술을 과학의 영역으로 끌어오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예를 들자면, 일부 침술 지지자들은 침이 통증을 없애는 어떤 자연분비물질을 분비시키거나, 또는 경직된 근육을 풀어주고 ‘반대자극(counter-irritation)’에 의해 통증의 전달을 억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허나 침술에 대한 이런 생물리적 메커니즘에 기반한 주장들은, 비록 아무 실체도 없는 ‘기’에 기반한 관념론적 메커니즘보다는 그럴듯하게 들리긴 하지만, 여전히 추측에만 근거하고 있다. 더구나, 이 메커니즘에 기반한 침술의 효과라는 것은 단지 침술만의 고유한 효과라고 볼 수도 없다(실수로 팔꿈치를 단단한 곳에 부딪친 뒤에 아픈 부위를 손으로 문지르는 행위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단지 통증이 일시적으로 소폭 완화되는 것일 수도 있다. 침술에 대한 생물리적 메커니즘 가설은 지금껏 침술의 효과라고 주장되어온 것들을 설명할 수도 없고 또 경혈의 존재 유무와 관련해서도 역시 아무런 설명을 할 수 없는 순전한 자가당착이 될 수 있다.

더 나아가서, 이러한 메커니즘이 “침술”의 효과에 대해 설명해준다는 언급은 잘못된 것이다. 침술 지지자들에 의하면, 침술이란 ‘기’의 흐름과 균형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침을 ‘경혈’에 찌르는 기법으로 정의되어 있다. 허나, (생물리적 메커니즘에 기반하여) 일시적인 ‘반대자극’을 위해 침술을 사용하는 것을 두고서 그와 똑같은 침술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 설사 침술로 인해 어떤 ‘반대자극’ 효과가 우연히 발생하고, 또 그게 우리가 인식한 어떤 효과의 원인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3) 침술의 효능에 대한 주장은 종종 유인 상술에 근거하고 있다 Claims for efficacy are often based upon a bait-and-switch deception

침술 관련 “유인 상술(bait-and-switch)"의 가장 일반적인 사례는, 침을 통한 전기자극이 통증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들과 관련된 것이다. 허나 이 연구들은 사실 '경피전기자극(Transcutaneous Electrical Stimulation: TENS)‘에 대한 것이며, ’경피전기자극‘은 만성통증에 대해서 이미 그 효과를 인정받은 치료법이다. 그럼에도 한의사와 같은 침술 지지자들은 이것을 침술이라고 호도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지금 사소한 문제를 가지고 시비를 걸려는게 아니다. 과학에서 필수적인 것은 각 용어들과 개념들을 모호하지 않게 ‘정의(definition)’하는 것이다. 만약 침술이 과학이라면 그것은 특수하고 고유한 성격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의학에서는 이것을 ‘특수작용기구화(specific mechanism of action)’라고 말한다 - 어디까지나 특수화되고 고유화된 어떤 한정된 개념을 우리는 침술이라고 지칭할 수 있는 것이다. 가령, 가느다란 바늘(즉, 주사기)을 통해 모르핀을 투여하고 그로 인해 통증이 완화됐다고 해서, 이런 것까지 몽땅 다 침술이라고 부를 수가 있겠는가? 전기자극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덧붙여서, 통상적인 침술 치료 도중에는 다른 우발적 효과(incidental effect)들도 많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예컨대, 침술 치료는 환자에게 있어 심적으로 편안한 환경에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또 시술자들은 침을 꽃기 전부터 이른바 “경혈”이라 불리는 곳을 눌러보면서 환자에게 친절한 관심을 보인다. 이는 긍정적인 심리치료 효과를 줄 수 있다. 관련하여 고객들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여러 효과들이 생길 수 있으며, 사실 이것들은 침술만의 고유한 효과도 아니다. 결국 애초에 침을 놓는 절차는 불필요해 질 수도 있다.

‘침술마취(acupuncture anaesthesia)’를 보고한 일련의 문헌들 역시 오해의 소지가 있다(이 문헌들은 서양에서 급상승한 침술의 인기에서 비롯된, 그야말로 드라마틱한 문헌들이다). 관련 독립적인 조사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소위 ‘침술마취’ 상태에서 수술을 받은 환자들이 사실은 IV fluid를 통해 모르핀을 투여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다른 보고서에서는 ‘침술마취’ 시술을 받은 환자가 엄청난 통증을 느꼈음에도 수술하는 사람으로부터 조용히 있으라는 지시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동양문화의 산물이다). 수술 중에 ‘침술마취’같은게 효과가 있었다고 확실하게 믿을만한 문헌이나 연구는 여전히 없다.

4) 일련의 임상시험들은 침술이 효과가 없음을 보여준다 Clinical trials show that acupuncture does not work

지금까지 언급한 근거로서, 나는 침술에 대해 아주 큰 회의적 입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내가 이런 입장을 갖게 된 더 결정적인 고려사항이 있다. 그것은 바로 직접적인 과학적 근거다.

침술의 임상적 효과와 관련하여 (전문 의학 학술지에) 정말 놀라울 정도로 크게 실린 논문들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논문들이 침술의 임상적 효과에 대해 본질적으로 부정적인 결론을 내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는 크게 놀란다 - 아마도 이는 언론이 주로 침술 효과와 관련하여 긍정적인 논문들만 선별해 소개하고, 또 한의사를 포함한 침술 지지자들의 보도자료를 별다른 검증없이 그냥 보도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침술의 임상적 효과에 대한 논문들을 전체적으로 평가해보았을때 과연 어떤 패턴이 나왔는가를 한번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드러나는 패턴은 대부분 일관된 ‘무위결과(null effect)’다 - 즉, 침술은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실제 침술에 대한 비교통제가 이뤄진 임상시험(비교통제가 있지 않은 실험들은 일단 논외로 해야 한다)에서는 전형적인 세가지 군(group)이 있다:

▷ 아무 치료를 받지 않거나 표준 치료를 받는 대조군

▷ 플라시보 침(가짜 침)을 맞은 대조군(침을 놓기는 하지만 경혈이 아닌 곳들에 침을 놓거나, 실제 침술처럼 깊이 찌르지 않음)

▷ 진짜 침을 맞은 실험군

통증, 구역질, 중독 및 기타 증상에 대해 이런 방식으로 실험을 해보면 ‘플라시보 침 군(가짜 침 군)’과 ‘진짜 침 군’ 사이에는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온다. 아무 치료도 받지 않은 군과 비교해서는 ‘플라시보 침 군’과 ‘진짜 침 군’이 더 나은 치료효과를 보인다. 이는 침술의 효과가 명백히 플라시보(placebo, 가짜 약) 요인 때문이라는 것을 시사한다. 이때 환자들이 진짜 침을 맞는지 플라시보 침을 맞는지 확인할 수 있어서는 안된다. (옮긴이주 : 이중맹검실험(Double Blind Test)의 당연한 절차이다.)

이렇게 진짜 침과 플라시보 침 사이에 효과에서 차이가 없다는 사실이 보여주는 것은 바로 침은 어디에 놓든 결과가 똑같다는 것이다. 이는 “침술로 인해 발생한 효과는 침술만의 고유한 것이 아니며, 그 효과는 한의학 진영에서 주장하는 이른바 한의학적 원리상의 효과도 전혀 아니다”는 우리의 가설과도 일맥상통한다. 즉, 침술이 ‘기’ 또는 다른 뭔가를 조절한다는 근거가 없다는 얘기다. 또한 이는 ‘경락’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근거가 없다는 얘기이기도 하며, 침술의 특별한 치료과정이 (다른 현대의학적 치료과정과 비교해) 어떤 차이점도 만들지 못한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가장 최근에 실시된 임상시험들에서는 불투명한 커버로 바늘을 가려서 실험의 맹검화(blinded control) 수준를 개선시켰다. 침술사는 플런저(plunger)를 눌러서 침을 놓으며, 침술사도, 환자도 실제로 침이 꽃히고 있는지를 모른다. 바늘에 둘러싸인 커버 자체로부터의 압력으로 인해 실제 바늘로 인한 느낌이 감춰질 수 있으니 ‘이중맹검실험(double blind test)’으로서는 적격인 셈이다. 현재까지 이런 연구들에서는 실제로 침을 맞은 환자들과 그렇지 않은 환자들 간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는 침술이 우리가 감지할 수 있는 특별한 의학적 효과가 없다는 결론에 더욱 힘을 실어준다.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침술 관련 논문들의 패턴은 우리 과학자들로서는 매우 익숙한 한가지 사실을 나타낸다: 잘 통제된 연구일수록 침술의 효과는 미미하게 나오며, 가장 잘 통제된 실험에서는 침술의 효과가 부정적이다. 이 패턴은 무위결과(null effect)를 의미하며, 이는 침술의 실제 효과는 없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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