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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과 심상정, 통진당 합류 위해 노무현과 동지들 배신

총선 승리만을 위한 야합한 통진당의 분열은 당연


통합진보당의 유시민, 심상정 공동대표가 선거부정 사태를 처리하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절박한 상황의 친노종북 언론은 물론 일부 보수언론조차 이들을 응원했을 정도이다. 그러나 같은 좌파진영에서 그 누구보다도 경기동부 등 당권파들의 행태를 잘 알았을 이들이, 통합진보당에 참여하는 과정은 결코 아름답지 않았다. 당원의 뜻을 버리는 야합, 전당대회 불복, 대통령에 대한 배신 등 온갖 정치정략을 구사하며, 결국 통합진보당이라는 태어나지 말았어야할 정당에 합류했던 것이다.

이미 2008년 총선을 앞두고 일심회 징계안이 거부되자 탈당 및 진보신당 창당을 감행한 심상정의 통합진보당 합류는 상식적인 차원에서는 불가능했다. 당시 분당의 사유로 이들이 주장했던 것이 이른바 민노파들의 종북성향과 당내 패권주의였다. 이는 전혀 개선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심상정이 서서히 과거의 민노파들 및 유시민 세력과 합당을 시도한 시점은 2010년 경기도지사 선거부터였다. 당시 유시민은 참여당, 심상정은 진보신당으로 각각 선거에 출마한 상황이었다.

당시 한나라당 김문수 후보와 박빙의 접전을 펼치던 유시민은 심상정 후보를 향해 사퇴해줄 것을 공개적으로 요청했다. 이에 진보신당 지지자들은 발끈했다. 유시민은 벌씨 세 번째 진보계 후보의 표를 구걸했기 때문이다.

유시민, 경기도지사 선거 위해 세 번째로 좌파정당에 표 구걸

첫 번째는 2002년 대선 하루 전날 정몽준-노무현 연대가 깨지면, 유시민을 비롯한 친노세력들이 민주노동당 표심에 호소했던 건이다. 선거 바로 전날 밤, 급작스러운 정몽준 지지철회에 놀란 노무현지지자들은 갑작스레 민주노동당 지지자들에게 대대적인 읍소작전을 개시하였다. 문성근, 명계남, 조기숙은 아예 툭 까놓고 이번 한번만 민주노동당 지지자들이 노무현을 지지해 주기를 눈물로 호소하였고, 아예 유시민은 권영길지지표의 절반은 노무현으로 정리될 것이라며 은유적 선동을 시도하였다. 그런데 막상 노무현이 당선되고 유시민은 '민주노동당의 표가 그리 영향력이 없었다'고 발뺌했다.

권영길 의원은 훗날 목표했던 100만표 달성에 실패한 이유를 유시민의 선동으로 꼽았다. 권영길 의원은 “민주노동당을 찍어도 한나라당 집권 저지하는데 아무런 문제없다는 점을 설득하기 위해 당원들이 피눈물을 흘렸다”고 고백했다.

2004년 총선에서도 선거를 3일 앞두고 유시민은 "득표력이 매우 높은 극소수의 후보를 제외하면 지역구에서 민주노동당 후보가 얻는 표는 모두 죽은 표가 된다"며 한나라당 부활을 저지하기 위한 현실적인 투표를 제안했다.

민주노동당 김종철 대변인은 “자기 내용을 주장하기 보다는 다른 세력을 죽여 반사이익을 보려는 열린우리당의 정치 행태는 기존부패세력인 과거 정권과 다른 게 없다”고 반발했다. 진중권도 민노당 지지 사이트 인 ‘진보누리’에 올린 글을 통해 “총선을 맞아 사표 심리를 부추겨 앵벌이나 하는 게 바로 열린우리당의 꼬라지”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유시민은 “선거 때 다른 당으로 가는 표를 우리 쪽으로 불러 모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모든 정당에 허용된 당연한 권리”라고 물러서지 않았다.

2002년 대선과 2004년 총선 때의 유시민은 좌파 정당 측에 읍소하지 않았다. 당당히 자신이 가져올 표를 가져왔다는 자세를 보였고, 선거 뒤에는 고맙다는 말 대신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며 상대를 조롱했다.

이런 유시민의 과거 경력 탓에 진보신당 지지자들은 심상정의 사퇴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모든 당의 선거운동을 책임지는 좌파정당의 특성 상 후보 개인으로 함부로 당의 결정없이 사퇴할 수도 없다. 그러나 놀랍게도 심상정은 "이명박 정부가 감히 역사의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고 저지르고 있는 이 큰 죄악들에 의해 우리국민들이 흘릴 눈물이 너무 크고 안타깝다"며 자신의 경기도지사 후보 사퇴를 통해 유시민 후보가 이명박 정권 심판 과제를 이루어 주길 바란다“ 전격 사퇴를 선언했다.

심상정, 유시민 지지 후 사퇴 기자회견 위해 진보신당 당원들 따돌려

심상정 후보가 국회에서 유시민 후보 지지를 밝히는 기자회견을 할 당시, 20여명의 진보신당 당원들이 이를 막아섰다. 이에 심상정 후보는 기자회견을 취소하며 언론사에 보도자료를 돌린 뒤, 당원들이 빠져나가자 재차 국회에 진입하여 기습적인 기자회견을 강행했다.

진보신당의 한 당원은 게시판에 “이미 자신의 사퇴의사가 언론에 공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기자회견을 자청한 이유는 단 하나, 자신의 새로운 정치적 기반이 될 유시민 지지자 부류에게 자신의 진정성을 보여주기 위한 눈물 쇼를 연출하기 위한 것이다“라며 심후보를 비판했다. 결국 심상정 후보는 선거 이후 당원들의 손에 의해 징계위에 회부되기도 했다.

심상정의 사퇴는 일회성이 아니었다. 이미 경기도지사 선거를 치르며 유시민과 심상정은 민노파와의 재결합을 통한 신당창당 구상에 교감을 나누고 있다. 선거기간 동안 심상정과 만난 소설가 송경아는 “어차피 진보신당은 과도기적인 정당이었다. 선거 후 진보진영 재편이 필요하고, 그것은 민주노동당-진보신당이 축이 되고 국민참여당의 일부까지 포괄하는 범위가 될 것이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그뒤 심상정은 물론, 노회찬, 조승수까지 민노파와의 재결합을 추진했다. 그러나 진보신당의 당원과 대의원들에 의해 통합안은 전당대회에서 불결되었다. 그러자 심상정 등은 당의 결정에 불복하고 ‘통합연대’를 구성 불과 2천여명의 당원들과 함께 통합진보당에 합류한다. 진보신당의 진성당원 수가 1만여명을 넘는 것으로 볼 때 미미한 숫자였다.

유시민의 경우는 더 어렵게 통합진보당에 합류했다. 심상정의 양보에도 불구하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낙선한 유시민은 2010년 4.27 재보선에서조차 김해 선거에서 이봉수 후보를 내세워 패배, 야권에서 미운오리새끼로 몰렸다. 이에 정치인생을 걸고 내세운 카드가 이정희와의 결합.

이정희와 손잡은 유시민, 한미FTA와 제주해군기지 등 노무현 정책 사과

당시 민노당 주류세력이었던 이정희와 경기동부연합은 기관지나 다름없는 민중의소리 이정무 편집장이 기획하여 ‘미래의 진보’라는 이정희와 유시민의 대담집을 출판했다. 이 대담집에서 유시민은 “마지막 대담을 마친 후 든 느낌은 이랬다. 나는 불온한데 그는 선량하다. 그는 일관되게 모범적이지만 나는 가끔씩 일탈을 저지른다. 그가 많이 사랑받는 것과 달리 나는 곳곳에서 미움 받는다. 그에게서는 이성(理性)의 향기가, 내게서는 야성(野性)의 열기가 풍긴다. 그는 진보를 말했고 나는 자유를 말했다”는 카피를 남겼다.

이정희 대표 역시 “유 대표는 자주 유쾌하지만, 종종 눈매가 몹시 날카로워진다”며 “재벌대기업의 횡포에 못 참아할 때, 위선의 논리를 가차 없이 동강낼 때, 나를 앞에 놓고도 그러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그 눈매는 매우 놀라운 힘으로 ‘같은 편’의 마음을 끌어당긴다”며 “나도 날카로워질 때가 있다. 평소 무척 부드러우나, 이거 뭐야, 하고 한 번 끓어오르면 사정 없이 밀어붙인다. 그런 모습을 보신 분은, 두 사람이 비슷하다고 여길 수 있겠다”고 상호 예찬했다.

노회찬과 조승수, 선정적 표현으로 유시민과 이정희 커플 맹비난

그러나 이러한 유시민과 이정희의 결합에 대해 오히려 심상정의 진보신당 측이 끝까지 제동을 걸고 나왔다. 당시 조승수 진보신당 대표는 “부부(민노당과 진보신당)가 재결합하려는 데 유랑극단 3류 가수(유 대표)가 추파를 던져 불편하다"며 3류 찌라시 수준의 표현으로 유시민 대표와 이정희 대표를 비판했다. 노회찬 진보신당 당시 고문은 “결혼 날까지 잡아놓고 바람을 피우느냐”고 비판하기도 했다. 노무현 정권을 신자유주의 노선으로 규정하는 진보신당 당원들의 반 유시민 정서를 고려한 것이었다. 이 때문에 유시민은 노무현 정권 당시의 한미FTA 체결과 제주해군기지 건설 등에 대해 수차례 사과해야 했다.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 노무현 대통령을 배신한 셈이다.

이렇게 유시민과 심상정의 통합진보당 합류 과정을 보면, 애초에 통합진보당은 대의명분과 국익을 위해 창당된 정당이라기 보다는 오직 총선과 대선 승리만을 위해 각 계파 간의 야합으로 기획된 정당임을 알 수 있다. 유시민은 이 당에 합류하기 위해 노무현 대통령을 심상정은 진보신당 당원들을 각각 배신했다. 이러한 정당 내에서 사고가 터지지 않았다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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