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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망스런 <건축학개론> 한국 감성 영화의 반성을 촉구한다!

기대에 비해 실망을 안겨 준 영화, 내실에 더 충실해야


【서울=빅뉴스】 김휘영의 문화평론= 한국 영화를 평할 때마다 느끼는 딜레마가 있다. 냉정한 눈으로 영화를 평해 주어야 하는 게 비평가의 임무인데 임무에 충실하려니 필자의 평론이 흥행에 지장을 줄까 걱정이 앞서는 것이다. 가독율을 위해 한시라도 빨리 발표해야 하는 데, 필자의 욕심을 앞세우려니 영화를 출품하려고 감독과 수많은 스탭들, 그리고 배우 등이 얼마나 많은 피땀을 흘렸을 지 눈에 선하게 들어 찬다. 이런 경우 필자는 상영이 끝나는 시점에서『한국 영화 옥의 티』라는 형식을 빌어 평을 발표하곤 했다.

마치 소개팅을 하듯,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개봉 첫날 <건축학개론, 이용주 감독, 2012. 3월>을 만났을 때는 특히 그랬다. 이 영화에 대한 평(評)을 개봉 첫 날 보자 마자 단숨에 작성해 놓고서도 상영이 끝날 즈음까지 발표하지 못한 이유다. 이 영화는 정말 오랜만에 스크린으로 만났던 한국산 감성 로맨스물이었고 필자로서는 한 명이라도 더 보았으면 좋겠다고 판단한 영화이기에 더욱 그랬다. 하지만 막상 평론을 하는 순간부터 독자들에게 필자의 느낌을 거짓으로 표현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상영의 끝물 시기엔 아무리 혹독한 비판이라도 오히려 흥행에 도움이 되는 걸 잘 알기에 용기를 내어 이 평론을 올린다. 제발 필자에게 이런 딜레마를 느끼지 않게 할 한국 영화가 많이 출품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멋진 설정

영화제작의 단초로 작용하는 아이디어와 설정이 참 좋았다. 돌아온 싱글인 여주인공이 첫사랑의 대상을 찾아가서 그 시절에 자신에게 약속했던 집을 지어 달라는 구성, 참으로 감탄할 만하지 않은가! OECD 가맹국 중 이혼률이 1위라는 한국 사회의 속 사정을 굳이 감안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한번 쯤은 첫사랑의 열병을 앓았던 시절이 있을 것이기에 흥행에도 참 유리한 착상이었고 또 이를 풀어내는 설정도 나무랄 곳이 없었다. 이는 시나리오 작가의 뛰어난 착상과 구성력에 힘입었다고 할 수 있다. 과거와 현재가 오버랩되는 구성을 매개로 하는 자연스러운 세대별 캐스팅도 참 무난했고 그만큼 흥행이 더 보장되는 구조다. 승민(엄태웅 분)을 앞에 두고 사랑의 감정을 확인받고 싶어 하는 서연(한가인 분)의 심정을 ‘매운탕’에 빗대어 묘사한 부분 같은 자잘한 대목도 참 흡족했다. 문제는 영화 전반에 걸쳐 드러난 연출력의 미비였다. 이 영화는 로맨틱 코메디도 아니기에 특별한 해프닝이 적다. 말 그대로 예술성을 충분히 살려 더 없이 섬세하게 그려냈어야 할 영화였는데 전혀 그러하지 못했다. 예술가가 빗어 낸 도자기를 볼 기대를 품고 갤러리에 왔다가 미완성의 질그릇이나 옹기를 보고 나서는 기분이었다면 이해가 될까? 도공(陶工)이 납기일에 떠밀린 공산품을 찍어내듯, 그것도 유약조차 바르지 않은 초벌구이 상태의 도자기를 전시회에 내 놓았다는 느낌에 보는 내내 기분이 씁쓸했다. 이 좋은 아이디어가 헐리웃에 팔려가 다시 태어난다면 어떤 모습일까 상상해 본다. 제발 이런 기회가 와서 안일함에 빠져 있는 한국 영화계에 경종을 울려 주었으면 한다.

밋밋함

<건축학개론>을 감상한 느낌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밋밋함’이다. ‘찡‘하게 울려오는 파장이 너무나 희미하고 미약했다. 첫사랑의 시작에 관한 경이적 모멘트도 너무 평범하고 작았다. 덧붙이자면 이런 감성 멜로물에는 노골적인 코믹 요소는 등장시키지 않는 게 오히려 좋다. 물론 잔잔한 깨알 같은 미소를 머금게 하는 설정은 권장할 만하다. 하지만 흥행을 위해서 재수생 납뜩이의 연기 대목처럼 노골적이고 어울리지도 않는 코믹요소를 가미하는 일은 이제 한국 영화계의 타성이 된 듯하다. 예술적이어야 하는 영화는 ’충분히 예술적이어야' 흥행에도 유리함을 알 필요가 있다. 이런 식의 잡탕 방식은 작품성의 손실은 물론이고 흥행에도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한다. 물론 승민이 오해를 하게 되는 복선이 되고 납뜩이(조정훈 분)의 연기도 충분히 빼어났지만 굳이 이런 코믹한 방식으로 처리해야 했는가는 여전히 의문이다.

열정적이지 못한 밋밋한 사랑이라고 해서 영상까지 밋밋해서는 안된다. 관객들이 극장과 갤러리를 찾는 건 예술작품을 관람하기 위함이지 일상을 보고자 함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이런 수준이라면 심리학 개론서나 개인 일기장에나 언급되면 될 일이지 굳이 이를 비싼 제작비를 들여 영상화할 이유가 없다. 아마추어 정신은 감독의 마음 속에 숨쉬고 있어야 하지만, 대중 앞에 선보이는 영상콘텐츠 자체엔 치밀한 기획과 세련된 연출이라는 작가 정신의 정수가 발휘되어야만 한다. 예술은 불륜마저도 아름답게 묘사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지는 데 하물며 이렇게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주제로 하는 영화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배경

로맨스물에서 아름다운 배경의 중요성은 누구나 알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 전반에 걸쳐 펼쳐지는 주위 배경은 수려함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다. 남녀 주인공의 미묘한 감정이 싹트고 그 감정이 무르익어가는 부분의 배경 선정도 너무 안일하고 무책임했다. 이건 일상을 그대로 드러내겠다는 리얼리즘에 대한 지나친 강박이 아니라면 감독의 예술적 감각의 미흡이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 <건축학개론>은 덩그러니 건물은 지어 놓았는데 이의 품격을 올려주고 분위기를 좌우할 멋진 인테리어와 아름다운 정원이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예를 들어 미학적인 측면에서도 굳이 냉장고 안의 지저분한 장면을 두 세 번이나 보여주지 않아도 영화의 전개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 남학생의 집안이 가난한 것과 지저분한 모습은 전혀 별개의 문제이고, 가난은 다른 방식으로도 얼마든지 드러낼 수 있겠기에 하는 말이다.

리얼리즘을 높이기 위해서라면 차라리 <건축학개론>이란 제목에 걸맞게 강의 시간을 자연스럽게 활용하는 게 좋았다. 가령 피카소와 미켈란젤로에도 견주는 스페인의 천재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Antoni Gaudi)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카사 바르토’, ‘카사 밀라’, ‘구엘 공원’ 등 세계의 유명 건축물이자 예술작품들을 슬라이드로 선보여 관객의 눈을 즐겁게 해 주면서 건축에 대한 예술적 관념을 고취시키거나 흥행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지적 욕구도 충족시킬 수 있다. 만일 한국의 전통 건축물을 부각시키고 싶다면 경복궁의 경회루나 근정전의 단층 등을 설명하는 강의를 삽입하는 것도 좋았다. 실제로 한국의 아름다운 건축물을 답사한 후, 그 후기를 레포트로 제출케 하는 설정을 하고, 이 과제를 수행하는 중에 사랑이 영글어 가게 하는 복합구성이 훨씬 좋았다. 이런 전문성이 가미된 리얼리티는 작품의 퀄리티와 관객의 몰입도를 높여 주는 역할로 제격인데 별로 활용하지 못했다. 일례로 중국의 장이모우 감독을 세계적 거장(巨匠)의 반열에 오르게 한 영화가 <붉은 수수밭>인데, 이를 위시한 그의 초창기 작품들은 무척 예술성이 높다. 이 시기의 영화에서 예를 들면, 감독은 염색 과정을 세세히 카메라에 담음으로서 리얼리티를 한층 높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건축학개론>에서는 음대생인 서연(배수지 분)도 말로만 음대생이고 연주하는 모습이나 심지어 으례 팔장에 끼고 다닐 법한 악보집이 나오는 장면조차 선보이지 않는다. 강의하는 교수님의 칠판에는 글씨를 이미지 파일로 뽑아 압정으로 고정해 놓은 듯, 교수가 직접 쓰는 글자는 단 한자도 없다. 섬세한 감독이라면 상상도 못할 이런 장면들이 도처에 나온다. 이 영화의 시나리오가 나온 지 10년이 다 되었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총체적 부실이다. 그 세월이면 시나리오를 수 십 번은 더 개선할 수 있었기에 이건 재능보다 정성과 노력의 부족이라 할 수 있다.

첫사랑은 미완성이라서 아름답다고 했든가? 첫사랑은 미완성일 수 있어도 첫사랑을 다룬 영화는 상당한 완결미를 갖추어야 하지 않을까? 아마도 미완성 수준에 머문 작품을 감상한 일에 대한 보상적 차원이었으리라! 그나마 기억의 습작 등 015B, 전람회의 음악이 좋아서 마지막 엔딩 크레딧이 완전히 끝날 때 까지 관객이 다 쏠려 나간 객석을 지켰다. 혼자 나오면서 기분은 좀 쓸쓸했다. 한국의 감성물 영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자본의 논리에 함몰되어 외형만 확장시키느라 정작 중요한 걸 놓치고 있는 건 아닌가?

멜로 감성물과 연출

<디워>나 <7광구>처럼 한국 영화사에 새로운 장을 열어 제치며 CG나 3D의 구현을 최초로 선보임으로써 한국 영화의 기술적 진보와 그 저변을 확장시키는 영화라면 제작비의 부족이라든지 연출의 부족 등은 그나마 감안해서 평해줄 만하다. 하지만 2012년 봄에 개봉된 <건축학개론>이나 <화차>는 그야말로 이런 점에서 에누리 없이 냉정한 평가를 받아야 할 영화에 속한다. 미스테리 범죄 스릴러인 <화차>는 치밀한 기획적 연출이 있어야 하고, 첫사랑의 추억을 주제로 하는 <건축학개론>은 고도의 섬세한 감성적 변주가 시연되어야 하는 건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첫 눈

상당히 굵은 눈발이 날리는 씬도 주변의 풍경이 전혀 나오지 않아서 오로지 '빈집'이라는 공간 즉 세트 안에서만 내리게 한 설정이었음을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었다. 이 영화는 영상 기술적 측면이 주안점이 아니라 인간 고유의 보편적 정서를 묘사해야 할 영화이기에 굳이 개봉시기에 촉급할 이유가 없었다. 1년 더 늦게 개봉되어도 흥행에 큰 지장이 없다. ‘오겡끼 데스까?’ 선풍을 일으킨 일본 감성영화 <러브레터>처럼 온 천지에 하얗게 눈이 온 장면을 제대로 살릴 수 있는 장인정신이 필요했다. <러브레터> 또한 수채화같이 연한 사랑에 대한 추억을 주제로 했지만 영상미는 <건축학개론>과 천양지차를 보일 정도로 세련된 영화였다. 서울에 눈이 자주 안온다면 강원도 정도만 가도 충분히 눈을 담을 수 있다. 공간이 어색해진다면 컴퓨터 그래픽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충분히 보완할 수 있는 시대다. 이를 제외하고도 전체적으로 ‘너무 성급하게 개봉된 영화’라는 인상은 군데군데 ‘옥에 티’처럼 도드라졌다.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처럼 장면 장면마다 숨쉬는 배경의 아름다움을 위한 수고와 배려를 해 주었다면, 관객들은 그에 상당하는 호응과 보상을 충분히 해 주었을 터이다. 아무래도 발렌타인 데이와 화이트 데이를 필두로 연인들의 문화적 수요가 최정점에 달하는 시기를 겨냥하여 성급하게 찍어낸 티가 너무 역력했다.

감성

영화<건축학개론>이 카카오 톡 채팅이나 광장에서 100원짜리 동전을 떨구어 즉석에서 파트너를 구하는 식의 신세대의 취향과 동떨어지기에 흥행에 불리할까? 그런 판단은 우리 인간의 본성을 너무 피상적으로 파악한 데에서 나온 단견이다. 인간이란 고도의 첨단기기가 등장하고 일상이 간편화될수록 섬세한 감정적 터치에 대한 갈망이 더 고조되는 존재다. 미래 정보사회의 도래를 예언했던 존 나이스비츠가 말한 하이테크-하이터치(High Tech-High Touch) 사회가 바로 이것이다. 이런 시대일수록 오히려 <건축학개론>과 같은 종류의 감성물에 더 기꺼이 반응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의미다. 결국 그 감성을 얼마나 제대로 살려내느냐가 관건인데, '고도의 세밀한 연출'만 따라 준다면 오히려 대박흥행이 될 영화가 바로 이런 종류의 영화임을 영화인들은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이는 컴퓨터 그래픽이라는 최첨단 기술이 한군데도 사용되지 않은 <써니>의 대박흥행에서도 증명되었다. 필자는 <써니> 같이 젊은 시절의 추억을 담아 낸「앨범영화」이기에 적절한 예술성만 담보된다면 능히 900만 정도의 흥행도 가능했었다고 평한 바 있다. 섹시한 노출, 화려한 율동, 즉흥적인 후크 송을 위주로 하는 걸그룹들의 범람 속에서도 아이유의 <너랑나>같은 순수하고 클래식한 감성을 노래한 곡이 가히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며 대중에게 어필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문제는 댄스걸그룹들의 노래보다 <너랑나> 같은 노래의 작곡이 훨씬 어렵다는 데 있을 뿐이다.

예상대로 <건축학개론>은 장기 흥행에 성공하고 누적관객수 390만을 가뿐히 넘어서고 있고(5월 8일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389만4909명) 400만은 무난하게 돌파할 것 같다. 물론 이 영화가 상영될 때 <존 카터> 등의 헐리우드산 경쟁작들이 볼품이 없었던 것도 한 몫 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솔직히 운이 참 좋았다. 다만 <건축학개론>이 장기 흥행에 성공한 점은 이 영화의 아이템 설정 자체가 좋았음에서 오는 것이지 결코 영화의 완성도가 높아서 그런 것이 아님은 제작자나 투자자 측에서는 새겨 둘 필요가 있다. 15년 간격에 대한 세대를 아우를 수 있어 대박흥행에 유리한 『앨범영화』의 속성도 있는 작품이기에 여기에 예술성만 담보되었다면 750~800만 명 정도의 흥행도 충분히 가능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순수 로맨스물에도 더 많은 관심과 투자도 함께 이루어져야 하겠기에 하는 말이다. 물론 연출자의 셈세한 예술 감각과 그야말로 예술품을 만들어 내겠다는 장인정신은 기본적으로 전제되어 있어야 한다.

공간

이 영화에 등장하는 중요한 공간은 세 곳이다. 사랑의 첫 시작이 되는 강의실, 사랑이 무르익어가는 빈집, 그리고 오랜 세월에 걸친 사랑이 맺을 애틋한 열매이자 이 모든 것의 완결판이랄 수 있는 서연의 제주도 집이다. 건축학 개론이 제대로 된 작품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먼저 강의실에서 싹텄으되, 남녀 주인공의 주된 활동 공간은 이 폐쇄된 공간을 벗어나 푸른 잔디밭과 온갖 꽃들이 속삭이는 캠퍼스가 되어야만 했다. 아롱아롱 나비의 너울거림과 지저귀는 새소리를 함께 담을 수 있었다면 더 좋았다. 조금만 발품을 팔면 연세대 캠퍼스 뒷 공간 총장 사택으로 가는 길에 있는 너무나도 유명한 핑크빛 벚꽃로가 있고, 하늘로 보면 눈이 어찔어찔할 정도의 노오란 은행나무가 늘어선 서울대 후문에서 낙성대로 이르는 길도 있다. 무엇보다 대학 캠퍼스의 봄 축제 풍경이라도 좀 그려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대학 축제를 담기 위한 엑스트라들의 동원으로 제작비가 걱정된다면 축제 중에 으례 등장하는 시골 장터 모습이라도 그려 내면 효과 만점이었다. 축제라는 공간은 이런 첫사랑 영화에 잘 어울리는 에피소드를 그려내기에도 안성맞춤이다.

첫눈의 약속

첫사랑에 빠진 연인들에게 첫눈이라는 단어만큼 가슴이 두근거리게 하는 말이 있을까? 눈이 많지도 적지도 않은 한국에서는 첫눈하면 약속이란 단어가 먼저 떠오를 정도다. 이걸 영화의 구성에 담아 낸 점은 높게 평가할 만하다. 첫눈의 약속이 나오는 대목에서 가장 뛰어났던 점은 서연(배수지 분)의 볼에 가미된 화장이다. 첫사랑의 소중한 감정을 가진 여인의 마음과 기대감처럼 풋풋한 심정을 잘 터치해 낸 분장이었다.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역시 연출력이 미흡했고 이 대목에선 구성에서도 그리 큰 점수를 얻기 힘들다. 서연이 약속 장소인 빈집을 혼자 찾아 온 이 중요한 씬을 연출가는 너무나 밋밋하게 처리했다. 이 대목이 극 중 두 남녀 주인공 뿐 아니라 관객에게도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지 연출가가 정녕 몰랐단 말인가? 무엇보다 첫사랑의 상대를 기다리는 여인의 기다림에 대한 애틋함과 절망감을 제대로 표현해 내지 못해 너무 안타까웠다. 오지 않는 연인에 대한 애틋한 감정은 기다린 시간의 정도에 따라 점점 절실하게 표현되는 법이다. 적어도 두 사람이 처음 이 빈집에 들어와서 발견했던 바로 그 커다란 벽시계를 서연이 다시 대면하고 거기에 앉은 자욱한 먼지를 닦아 낸 후, 삐삐의 시간에 맞춰 그때처럼 태엽을 다시 돌렸어야 했다. 이 방식으로 관객들에게 자연스럽게 시각을 알게 하고, 승민(이제훈 분)을 기다리는 마지막 즈음에 쾌종 소리와 함께 그 벽시계를 클로즈업해야 했음은 물론이다. 그래서 ‘시간의 경과’를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알게 하여 그녀가 마음 속 연인을 얼마나 애절하게 기다렸는지를, 또 하염없이 내리는 눈 속으로 사라지는 뒷 모습을 제대로 보여 주었어야 했다. 하다 못해 장독에 쌓인 눈의 뚜께만 줌-인(Zoom-in)하는 센스만 발휘하더라도 기다린 시간의 경과를 충분히 관객에게 표현할 수 있었는데 전혀 그러하지 못했다. 이 방법을 활용했다면 세트 속에서만 인공적으로 내리게 한 눈이라는 약점도 상당부분 커버할 수 있었는데 참 아쉽다.

지구상의 단 두 사람인 남녀 주인공에게 남다른 의미를 지녔을 이 빈 집에 함박눈이 쌓여 갈 때, 길 잃은 털복숭이 강아지 한 마리를 등장시켰으면 어땠을까? 그래서 펄펄 눈이 쏟아지는 공간에서 여주인공이 오지 않는 상대를 외로이 기다릴 때, 그 강아지가 나타나 흠뻑 맞은 눈을 온 몸을 비틀며 털어 내는 모습을 영상에 담았다면 좋았겠다. 이 방식이면 함박눈이 온 현실감을 충분히 살리고 주인 잃은 그 강아지와 오지 않는 마음 속 연인을 기다리는 여주인공의 심정을 감정이입시키는 섬세함을 잘 그려낼 수 있었을 것 같다. <건축학개론>에 나온 첫눈의 장면은 서연이 이 빈집에 혼자 들렀다 갔다는 사실을 관객에게 전달하는 무덤덤한 통지서만 발송했을 뿐, 첫사랑의 상대가 오지 않음에 대한 여인의 애절하고 쓸쓸한 심정은 전혀 표현하지 못했다. 감성 영화라면 풍부한 감성이 제대로 묘사되어야지 관객들에게 사실을 알려주는 다큐멘터리 형식처럼 무미건조해서는 정말 곤란하다. 이런 식이면 배우들의 연기가 돋보일 수 있는 장면조차 없어진다. '찡'하게 가슴을 진동시키는 장면이 없으니 배우들의 연기가 그만큼 평가절하될 수 밖에 없다. 물론 관객이 받을 감동도 적다. 너무나 뛰어난 설정에 캐스팅까지 무난하게 해 놓았음에도 단지 연출력의 부재로 이런 안타까운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새 집

영화의 최종 결과물이 될 것이며, 첫사랑의 추억을 가슴에 품고 살아온 여인에게 심리적 보상으로 투영될 제주도의 새 집을, 첫사랑이 영글어 가던 그 시절 서연이 종이에 그렸던 모습 그대로 재현하려 한 건 참 좋은 설정이다. 이건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상당 부분 그 상실감을 치유해 줄 수 있을 만큼 뛰어난 구성이다. 단 전제 조건이 있다. 애초 서연이 그림을 그리며 첫사랑의 연인에게 집을 주문할 때, 관객들도 비교 체험하기 쉽게 '둥글고 빨간 지붕'이라든지 외관상 조금 특이하고 쉽게 식별이 되는 특징을 가진 집으로 설정하는 게 좋았다. 이때는 내부 설계도 나름 중요하겠지만, 무엇보다 외관을 뚜렷하게 특징짓는 건축 형태여야 하는 것은 필수다. 일상과 예술의 차이는 바로 이런 점을 제대로 살려내는 데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서 왕자가 묘사한 <<창 턱에서는 제라늄 화분이 있고 지붕에는 비둘기가 있는 분홍빛의 벽돌집>> 같이 감성이 풍부하게 담길 수 있는 집이라면 더욱 좋다.

시네마 컨설팅

이 영화의 모티브가 되는 그 약속 부분을 이렇게 좀 더 아름답고 섬세하게 구성했으면 어떨까?

# 서연 : (그림을 다 그린 후)벽돌은 분홍색이 좋겠고요.
연초록색 둥근 지붕에는 하얀 비둘기들이 살아갈 집을 마련할 거예요.
그리고... 으음....
승민 : (서연을 쳐다본다) .......??
서연 : 이 집이 완성되면 넓은 창문 밖의 턱에는 빨간 제라늄 화분을 줄지어 놓을 거예요.
승민 : 혹시........, 어린,,,
서연 : (빙긋이 미소를 지으며) 그래요, 어릴 적에 아빠가 선물해 주신 동화책, <어린 왕자>를 읽고 이런 집에서 살아 봤으면 하는 생각을 해 봤어요. 승민씨가 제게 꼭 이런 집을 만들어 제 소원을 풀어 주셔야 해요.
승민 : .....
서연 :(손가락을 걸며) 자~ 약속 했어요!


서연의 주문에 맞게 집을 만드는 과정에서 잊고 살았던 서연의 감정을 알아채게 된 승민(엄태웅 분) 이를 구체적으로 완성시켜 주는 형태라면 더 좋다. 승민이 서연에게 받은 집 건축에 대한 주문은 서연과의 약속이지만 관객과의 약속이기도 하다. 적어도 관객들과 어떤 비밀스런 코드로 공유될 정도로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설정되었어야 했다. 아쉽게도 이 영화는 특징이 쉽게 드러나는 외부 윤곽이나 색상보다는 내부 설계에 더 중점을 두었기에 관중과의 약속을 맺는 일에는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영화의 말미에 이에 상응하는 독특한 형태의 집이 완성되는 건 이혼하여 홀로 된 서연이 그동안 소중하게 품어 온 첫사랑의 상실감에 대한 소중한 보상(報償)이자 치유(治癒)로 작용해서 영화 속 여주인공은 물론 이 영화를 찾은 관객들에게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충족감을 안겨 주었을 것이다. 이는 아름다운 뒷 얘기를 낳아 입소문 광고효과로 흥행에도 결정적으로 기여했을 것이다. 장인정신이라 하여 <아바타>의 거장 제임스 카메룬 처럼 타이타닉 호를 실제 세트로 만드는 식의 엄청난 예산을 들이라는 게 아니다. <어린 왕자가 말한 집>정도를 완성하는 데는 많아도 1억 남짓 예산이면 충분하고 이로 인해 영화의 예술적 완성도가 훨씬 높아짐으로서 적어도 70억~80억 이상의 초과수입을 더 보장받았을 것이다. 대박흥행에 성공한 후 관광명소가 되는 후광효과까지 얻을 게 확실하니 이보다 좋은 설정이 있을까? 이렇게 좀 더 큰 시각으로 접근했어야 했는데 이 또한 엄밀한 의미로는 전문가 또는 장인정신에 충실할 때 나올 수 있는 발상이다.

소품

감독은 영화에 등장하는 배경, 음악, 의상, 소품 등이 모두 말을 하고 숨을 쉬게 해야 한다. <건축학 개론>에서 그 시절의 추억을 위해 필수적으로 나와야 하는 소품, 즉 아이폰 대신 삐삐, MP3 대신 CD플레이어, 디카 대신 필름 카메라 등은 누구나 필수적으로 준비했을 소품이겠지만 잘 동원했다고 할 수 있다. 일본 멜러물 <러브 레터>에서도 책 대여목록지마다 적혀 있었던 남자 주인공의 이름은 우리들로 하여금 잔잔한 미소가 절로 우러나게 했다. 하정우 주연의 영화 <국가대표>에서 그를 버린 어머니로부터의 모정(母情)이 담긴 ‘설탕을 듬뿍 뿌린 감자‘에서 느꼈던 찡한 감정을 기억한다. 시청각에 호소하는 영상콘텐츠에서 이렇게 잘 기획된 소품의 효과는 시간과 공간의 벽을 허물고 등장인물 사이에 단절되었던 감정의 물꼬를 터게 한다. 이는 겨우내 얼어 붙었던 얼음을 봄눈처럼 녹여 그동안 멈춰 있던 시냇물이 흐르게 하고, 연출자와 이를 보는 관객간의 소통을 폭포수처럼 원활하게 만드는 중요한 매개체가 된다. 더구나 감독의 의도를 가장 집약적으로 반영시키는 핵심적인 소품의 경우는 그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소품들은 그 역할을 충분히 살려 내는 데 실패하고 있다. 그 소품들에 담긴 경이적 모멘트가 너무 희미하게 처리되었기 때문이다. 작가주의라면 한국 최고라는 이창동 감독의 <밀양>을 비평하면서도 이(李)감독이 진정한 작가주의 감독이 되기 위해서는 소품활용에 대한 제대로 된 시각을 갖추어야 함을 주문한 바 있다. 소설과 영화의 차이가 소품만큼 극명하게 드러나는 분야도 없을 거로 본다.

더구나 이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서연의 사랑고백 모티브와도 같은 '집을 주문한 그림'이 어찌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라는 책에서 나오도록 설정했는지 진정 어이가 없었다. 이런 식으로 영화를 찍는다면 2시간이 아니라 20 시간 짜리로 찍어도 작품성을 담보하기 힘들다. 이 대목을 찍을 때 감독은 이 영화에 집중하지 않고 아마도 차기작을 구상하느라 딴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게 틀림없다. <건축학개론>에서 '건축학개론'은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에 등장하는 그 '박하사탕'보다 훨씬 큰 의미를 지닌다. 서연이 승민에게 그려 주었던 그 그림은 당연히 ‘건축학 개론’ 이라는 책의 갈피에서 나왔어야 했다. 그래야만 제목과도 의미와도 잘 호응되고 관객에게도 두 주인공의 지난 시절을 회상시키는 강한 모티브로 작용해서 그만큼 영화의 완성도도 높아졌을 것이다. 그런 제목의 책이 없다면 만들어서라도 등장시켜야 했다. 90년대의 베스트셀러였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로 시대상을 반영하고자 했다면 ‘건축학 개론’ 책 옆에 잘 보이도록 배치해 놓고 카메라에 담았다면 충분했다,

소품의 위력을 체험하려면 블록버스터 상업 영화의 메카로 알려진 헐리웃에서 나온 감성 로맨스물 ‘러브 어페어(1994)’를 감상할 필요가 있다. 이 영화는 잘 활용된 소품 한 점이 영화의 완결성을 얼마나 높여 주는지 가르쳐 준다. 소품의 활용에 관해서라면 이 영화를 필자는 최고로 꼽는다. <러브 어페어>의 말미에 오랫동안 벽에 걸어 두었던 그림을 여 주인공(아네트 베닝 분)이 떼어 내는 대목이 나온다. 이 장면을 보던 필자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실로 오랫동안 주체할 수 없었던 것 같다. 그 장면 하나로 위렌 비티는 너무나 깊은 감정을 표현해 내는 데 성공했다. 고만고만한 배우로만 알았던 위렌 비티에게 그런 천재성이 숨어 있었음을 확인한 순간이기도 했다. 사랑을 확인한 연인과의 약속 장소를 바로 눈 앞에 두고 교통 사고로 여주인공은 그 중요한 약속장소로 가지 못한다. 당연히 오해를 낳고 이 사랑은 거기서 멈춘다. 그 사랑을 가슴에 담고 오랜 세월 후에 그때의 연인(위렌 비티 분)을 운명적으로 만나게 되지만 그녀는 그에게 다가가지 못한다. 그때의 사고로 양 다리를 잃고 불구가 된 상태인 것이다. 유치원 선생으로 살아가는 그녀는 휠체어를 탄 채 늘 담요로 하체를 가리고 다녔고 그를 다시 만났을 때는 책상을 앞세우고 앉아 그녀가 휠체어를 타고 있음도 그는 모르게 한다. 필자는 그녀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남았다. 그가 "그때 왜 약속 장소에 오지 않았소?"고 원망스럽게 물었을 때, 그녀는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한다. 이유를 설명하려니 하체가 없는 불구인 처지를 밝혀 사랑하는 이의 가슴에 상처입힐까 차마 말을 못하는 것이다. 그가 사라진 후, 허허로운 모습으로 '그가 사랑의 징표로 그려준 그 그림'을 벽에서 떼어 낼 때, 오랫동안 그녀의 가슴 속에 품고 있었을 회한이 겨울바다의 파도처럼 내 가슴 속으로 밀려왔다. 이 비평을 쓰며 그 장면을 떠올리는 지금도 서늘한 여운이 일렁인다. 감독 위렌 비티는 관객에게 그 장면을 ‘보게(see)’ 한 게 아니라 모든 감각을 총동원하여 ‘느끼게(feel)’ 한 것이다.

마지막 최고의 소품이 제라늄 꽃씨였다면

필자가 예를 든 어린왕자가 묘사한 집을 주문하는 구성을 한 후, 영화의 맨 마지막에 택배로 온 소품으로 CD플레이어 이외에도 몇 봉지의 꽃씨를 함께 보내왔더라면 어떨까? 물론 다음과 같은 간략한 메시지와 함께 .

“이 꽃씨들은 한국에서는 구하기 힘들다는 oo제라늄 씨앗이야, 너한테 꼭
필요할 것 같아서.... 참 힘들게 구한 거야, 너의 마음처럼 예쁜 빛깔의
꽃들이 피어날 거야....., 멀리 있어도 난 네가 늘 행복하길 바래! - 승민”


이렇게 되었다면 위에 필자가 예로 든 털복숭이 강아지에 대한 기삿거리와 더불어 <어린왕자>에 대한 열풍이나 재조명, 그리고 제라늄 꽃에 대한 뒷 얘기도 무성했을 것이고 이는 좋은 광고효과까지 얻어 흥행에도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 틀림없다. 두 남녀 주인공의 첫사랑이 맺어지진 못했지만, 대신 완성된 집의 지붕에 살아가는 햐얀 비둘기들과 창가에서 늘 서연을 지켜주고 있을 아름다운 제라늄 꽃들은 이들의 순수한 감정을 영원히 간직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물론 이 아름다운 장면을 보고 극장을 나서는 모든 관객에게도.

필자의 대학 시절과 플라토닉 러브

필자는 <건축학개론>을 보면서 숫기 없는 대학생 승민(이승제 분)에 깊이 감정이입되는 체험을 했다. 대학 4학년 시절 관악사(서울대학교 기숙사)에 파트너를 데려오는 오픈하우스 겸 3일 간의 축제를 주관하며 그 준비에 여념이 없을 때, 정작 축제 파트너가 없었던 필자에게 후배가 급하게 소개해 준 여학생이 있었다. 룸메이트이자 인문대 1학년 후배의 여자 친구의 언니로 연세대 의생활학과에 다녔고 주위에서 모델같다고 할 정도로 참으로 예쁘고 착한 분이었다고 기억한다. 필자는 영화 속 승민이가 경험한 입술 접촉은 커녕, 손목 한번 잡아 보지 못했다. 기숙사 사생대표로서 축제 준비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기도 했지만 학내는 연일 데모로 난리였던 시기의 졸업반이라 미래가 너무 불투명했고 무엇보다 군입대라는 거대한 철벽이 있었기에 그녀의 미래에 관해서 전혀 책임질 수 없었던 상황이었기도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건축학개론>의 대학 신입생이었던 승민보다 4학년 졸업반이었던 필자가 훨씬 숫기가 없었다고 생각한다. 한동안 가슴앓이를 하다가 그녀가 제주도 졸업여행을 갔다 돌아오는 날 밤, 그녀의 집 앞에서 오랫동안 기다리다 내 마음을 표현한 글을 담은 노트를 전해 주면서 작별을 고했던 기억이 있다. 이 통보는 치기였을까 자존심에서 나왔을까, 또 그걸 받은 그녀는 얼마나 황당했을까?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야말로 티하나 없이 순수한 감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추억이 있기에 이 영화에 대한 필자의 기대가 더 컸는지도 모른다. 열정적인 파토스적 사랑도 뜨거운 에로스적 사랑도 그 기반에 서로에 대한 깊은 정서적 유대가 공유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살아 오면서 필자는 절실히 체험했다.

높은 기대감에 비해서 적잖은 실망감을 함께 느끼게 했던 영화 <건축학개론>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가 이성이나 논리가 아니라 ‘따뜻한 감성’이라는 걸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하는 힘이 있음은 확실하다. 그 힘이 이 영화가 장기흥행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지만 이를 좀 더 충실하게 살려내지 못한 연출의 한계만큼 아쉬움도 함께 체험해야 했던 참으로 복잡미묘한 영화였다. 점점 감성이 메말라 가는 시대에 이런 귀한 기회를 마련해 준 제작진에게 개인적으로 감사드린다. 하지만 평론가의 입장에서는 무엇보다 한국 영화의 앞날에 대한 걱정에 마음이 참 무거웠음은 사실이다(평점 5.5점/10점) / 김휘영 대중문화평론가 wepa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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