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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 역사교사로서 바라본 5.18 역사왜곡 처벌법

역사적 사건에 대한 토론의 자유를 제거하려는 입법 시도는 역사학의 존재를 부정...역풍 맞을 것

몇 주 전 광주시민단체협의회에서 역사왜곡 금지법을 발의한 한 국회의원에 대한 비판 성명을 읽은 적이 있었다. 많은 우파 지식인들이 그 법안에 대한 비판을 하던 와중이었기에 기이하게 여겨 자세히 읽어 보게 되었다. 핵심은5.18에 대한 역사왜곡을 처벌하는 내용을 담아 이미 추진 중인 그 단체의 계획(5.18 특별법 개정)과 노력에, 새 법안(역사왜곡 금지법) 상정이 방해가 될 수 있음을 경고하는 것이 요지였다.  

통일된 역사해석을 법률로 규정하려는 시도들

그런데 그것이 5.18 특별법 개정이든, 역사왜곡 금지법 제정이든 무엇으로 불리든지 간에 특정 ‘역사적 사건’에 정치적 의미의 제한적 틀을 설정함으로써, 그 정치적 의미에 대해 다양하게 토론을 할 수 있는 자유를 법률로서 제거하려는 이러한 시도가 과연 정당화될 수 있을까? 뭐 지금 당장이야 국회 의석수로 그러한 시도를 성공시킬 수 있을지 몰라도, 역사학의 존재 자체를 부정해버릴 수 있는 그러한 시도는 언젠가는 역풍을 맞이하게 되리라 본다. 

특히 예전 국정 교과서 도입을 그렇게도 비판하던 역사교사들이 이 문제에 대해 이상하리만치 조용한 것도 나로선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 내가 볼 땐 정치인들이 그리고 판사들이 역사를 해석할 수 있는 틀을 그런 식으로 일방적으로 규정해버리면 역사학자들은 직업을 바꾸어야 할 지 모른다. 자신들 직업의 진정한 의미(역사적 사건에 대한 새로운 의미의 발굴과 토론)를 더 이상 찾을 수 없어지기 때문이다. 




문제의 본질은 민주주의 개념에 대한 오해

하지만, 더 깊이 이러한 최근 흐름의 본질을 짚어보자면, 그 깊숙이 내제되어 있는 정치철학적, 역사학적 문제를 마주하게 된다. 그 핵심은 한국인들이 갖고 있는, 민주주의라는 개념의 오해일 것이다. 한국에서 민주주의(民主主義)라는 개념의 신성성은 1980년대 이래 정치, 사회 및 경제의 전 부문에 걸쳐 모든 대의와 명분을 장악해 왔다. 특정 정치 세력에게 ‘반민주세력’이라는 낙인이 붙여지는 경우도 비일비재했고, 근래에는 ‘극우세력’ 혹은 ‘친일 반민족세력’이라는 낙인이 이에 더해지는 경우도 흔해졌다.

그런데 민주주의가 한국 현대사의 지배적인 가치로 정립되는 데 가장 상징적인 사건은 1980년의 광주 5.18 사건일 것이다. 그간의 정치적 협상 및 타결의 결과, 그리고 이전 군사정부에 비판적이었던 다수 학자들의 학문적 지원 속에, 5.18은 한국의 ‘민주주의’를 발전시킨 민주화운동이라는 타이틀을 사회적으로 공인 받아왔다. 

그런데 민주주의의 본질은 사실상 선거와 (대의제 민주주의의 경우) 정당이라는 외형을 내려놓고 볼 때 결국 넓은 의미의 다수결(majority rule)이다. 모든 민(民)이 주인이므로 현실의 의사 결정은 그 주인들 중 다수의 의사에 의할 수밖에 없다. 가령 선거는 결국 어느 정당이 그 사회 구성원 다수의 지지를 받는지를 확인하는 절차이며, 이를 통해 만들어지는 법 역시 그 사회 구성원 다수의 이해관계와 근접하게 만들어지게 된다. 헌법적 가치를 언급하며 기본적 인권과 표현의 자유 등의 가치를 민주주의의 요소로 거론하는 학자들도 있지만, 이는 절차적 원칙인 민주주의의 본질이라기 보다 자유주의 철학(사상)의 본질이다. 이를 혼동해선 안된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결합

19세기에 서양에선 고전 자유주의(classical liberalism)가 변화를 겪으면서 민주주의와 결합하게 되는데, 20세기 냉전체제 하에서 호시절을 누리던 자유진영 사회의 좌파 지식인들은 자유주의 철학에서 자신들이 명분 삼기에 좋은 요소들(경제적 자유는 빼버리고 정치적 자유주의 요소들)을 주로 집어 넣어 민주주의의 개념을 발전시켰다. 자연과학과 달리 개념 자체가 시대에 따라 계속 변용되어온 사회과학 용어 중 대표적인 예가 바로 ‘민주주의’인 것이다. 자유진영에서 이렇듯 ‘자의적으로’ 민주주의 개념을 발전시켜 왔으니, 공산진영 국가들 역시 20세기 내내 자신들이 민주주의 정치를 하고 있음을 웅변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절대 다수 구성원인 노동자와 농민 계급이 자본가를 몰아내는 데 지지해서 세운 정권이니 그 정권이 독재정권처럼 보이지만 본질은 민주주의 (다수가 동의)이기도 했다. 

더 나아가 이러한 본질을 감안할 때 민주주의는 (보다 다수인 편이 자신들의 힘을 행사하는) 집단주의 전략이 지배하는 인간 정치 행위의 속성에 기반한다. 침팬지 무리에서도, 덩치 크고 주먹 세다고 무리를 장악하는 알파 메일(alpha male)이 되지는 못한다. 이른바 ‘자기편 만들기 전략’에 뛰어난 침팬지가 무리를 장악하게 된다. 인간 사회 역시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고 보호해 나가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은 동지를 가능한 한 많이 끌어 모으는 집단주의 전략이다. 흔히 대중은 민주정치와 반대되는 개념으로서 (민중을 억압하는) 독재정치를 떠올리지만 이는 매우 피상적이고 단순한 인식일 뿐 역사의 어느 독재자도 힘으로 민중을 억압하는데 주력했던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은 정교한 (혹은 투박한) 선동과 세뇌 기제를 통해 민중이 자발적으로 자신들을 따르도록 만드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순수한 형태의 민주주의(democracy) 자체는 선동가(demagogue)들이 뛰어 노는 정쟁(political dispute)이라는 놀이터에서 어디까지나 싸움을 중재하기 위한 절차적 원칙일 뿐이다. 이러한 집단주의적 인간 정치 행위의 본질로서 민주주의의 치명적 문제점은, 정치적 목표를 공유하는 동지들로 이루어진 집단 내에선 상호 부조의 룰이 기능할 지 모르나, 사회 전체적으로 볼 때 집단 간의 갈등 해결이 힘의 법칙에 근거하여 (쌍방이 아닌) 일방에게 유리하게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권력이 더 강한 집단이 룰을 결정하게 되며 (입법권을 행사하게 되며), 권력이 약한 집단은 자신들에게 불리한 룰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와 비교할 때, 경제적 시장의 메커니즘은 사는 측과 파는 측이 계약을 체결함에 있어 서로 상대편의 복지를 고려하고 효용(utility)을 주고받는 윈윈을 추구한다. 반면 정치가 작동하는 방식은 돈과 같은 가치의 교환 척도가 없으므로 힘이 강한 측이 룰을 정하게 된다. 칸트 (Immanuel Kant)도 언급했듯 제 아무리 아름답고 정의로운 미사여구로 포장해 보았자 돈보다 더 신뢰될 수 있는 (정치적) 권위 따위는 없다. 사실상 정치는 경제보다 더 집단주의적이고 더 이기적이며 더 폭력적인 영역이다.  

근대 ‘자유’민주주의(liberal democracy) 체제가 이렇게 집단주의적 다수결이라는 원시적 민주주의(인민 민주주의 혹은 민중 민주주의)의 본질에서 더 나아가 발전을 이루어낸 부분은, 자기편 만들기 전략이 횡행하는 진흙탕 싸움인 인간 집단 간의 정쟁을 의회라는 형식과 틀을 통해 피 흘리지 않고 다투도록, 그리고 계속되는 선거를 통해 승자와 패자가 그 결과에 승복하고 책임을 지도록 한 것이었다. 정치 영역의 집단주의적 원리인 민주주의가 경제 영역에서 시장의 원리인 자유주의와 결합한 것이며, 이로써 정치 ‘투쟁’이 정치 ‘경쟁’으로 변환된 것이다. 집단주의적 동물인 인간은 이 ‘자유’민주주의를 구현하기 위한 정치시장과 책임정치라는 새로운 개념을 받아들이는 데에 수백 년이 걸렸다. 

과연 5.18은 자유민주주의를 발전시켰는가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보면, 5.18 사건은 그 이전의 신군부 정권에 의해 계획된 (투박하고 건조한) 폭력적 정치행위에 대응해 비슷하게 폭력적인 수단으로 (하지만 열정적인 명분으로 포장된)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이루고자 한, 확대된 규모의 정쟁이 그 본질이었다. 분명 그 당시에는 후자를 지지한 정치 세력만큼이나 전자를 지지한 정치세력도 상당 수 존재했다. 전자를 지지한 대중을 반공 교육에 세뇌된 무지한 국민으로 보는 것은 독선적인 역사적 시각이다. 그 당시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할 수만 있다면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집단이 상대편을 무참하게 박살내고 정권을 장악하길 소망한다. 이것이 소위 진영 논리의 본질이며, 한국의 현대 정치사가 이러한 진영 논리에서 자유로웠던 적은 없었다. 

계엄령 해체와 야당 정치인 석방이라는 자유주의적 구호를 외쳤다고 해서 다수가 군집하여 돌을 던지며 힘을 과시하며 저항했던 행동 자체가 자유민주주의의 구현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제한된 공간 안에서의 물리력 동원을 통한 기존 정치권력의 타도를 기도했던 5.18은 집단주의적 다수결의 정치 원리, 즉 원시적 민주주의의 본질은 구현했을 지는 모르지만 선거와 의회라는 틀을 통한 자유주의적 정치’경쟁’의 철학을 지향한 사건은 아니었다. 실제로 5.18당시 다수가 연호했던 정치인의 정치경제적 철학이 이전 정권의 그것과 비교했을 때 시장경제 원칙이나 자유주의적 경제 원리를 더 중시여긴 것도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박현채 교수의 민족경제론과 같은 공동체적, 이상주의적 경제 철학을 그 핵심으로 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 누구도 현대사의 비극적인 사건을 조롱하거나 음해할 권리는 없다. 하지만, 한국의 자유민주주의가 5.18항쟁을 통해 발전했다고 보는 한국 사회 주류의 생각에, 내 양심과 지성에 근거하여 온전히 동의하기 힘들다. 내 시각으로는, 근대 이래 자유민주주의의 발전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원리(경쟁과 선택)가 정치 논리(다수의 힘)를 압도할 정도로 성숙하였는가에 절대적으로 좌우될 뿐이다. 즉 진정한 현대적 의미의 자유민주주의의 성숙은 그 사회가 작은 정부를 지향하며 사회 구성원 ‘개인’들의 자유를 더 많이 확보하는 방향으로 갈 때만이 가능해진다고 믿는다. 어쩌면 자유민주주의는 5.18처럼 하자 말자의 문제가 아니라,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일 것이다.









배민 숭의여고 역사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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