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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적폐청산의 민낯, 그리고 허 행정관

“시민단체와의 협력 및 지원요청은 어느 정권에나 있었던 일 ... 진정성은 누구도 증명할 수 없으며, 특정 세력의 소유물일 수도 없어”

요즘 정치권에서 프레임 ·전쟁이 한창이다. ‘적폐청산이냐, 아니면 정치보복이냐’가 화두(話頭)다.

프레임의 사전적 의미는 나무 또는 금속으로 된 액자(틀)다. 학술적, 정치적 의미로 확장하면 ‘어떤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마치 액자를 씌우듯 특정 부분만 부각시키는 행위’를 일컫는다. 다분히 편향성과 의도성을 내포하고 있는 말이다.

프레임은 대중의 직관을 건드려 인식을 고착화시키는 방법론이기 때문에 ‘옳고 그름’을 기반으로 하지 않는다. 누가 주도권을 잡느냐에 따라 참이 거짓이 될 수도, 그 반대의 경우도 일어날 수 있다. 정치권이 사활을 걸 수밖에 없는 이유다. 

언론은 ‘전쟁’이란 수식(修飾)을 붙였지만 적절해 보이지는 않는다. 대등한 입장에서 치르는 선거, 또는 특정 이슈를 놓고 맞붙는 싸움이면 모르되 시퍼렇게 살아있는 권력(勸力)이 개입하면 전혀 얘기가 달라진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일 “적폐청산은 권력기관과 경제, 사회 등 전 분야에 걸쳐 누적되어온 관행을 혁신해 나라다운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사정(司正)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지만 사정의 칼날이 뿜어내는 한기(寒氣)가 가득하다. 역설적이다. 

이번 프레임 전쟁의 경우 의제 설정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모든 정책에는 공과(功過)가 있게 마련인데, 타깃처럼 과실만 문제 삼으면 관련자들은 ‘지뢰밭’을 걸을 수밖에 없다. 정부와 여당이 적폐청산 대상으로 거론하고 있는 4대강, 자원외교, 방산비리 등이 대표적이다.

유형(有形)의 정책만이 아니다. 정부와 여당은 국정농단, 헌법질서 문란, 총체적 국가시스템 붕괴라는 무형(無形)의 통치행위까지 거론하고 있다. ‘빠져나갈 수 없는 그물’을 연상케 한다. 이 때문일까. 정부와 여당은 적폐청산이란 창(槍)을 마구 휘두르고 있는 반면 우파 야당은 정치보복 반대라는 빈약한 방패에 의존하고 있는 양상이다.

사안의 본질이 중요하지만 어쨌든 국가정보원과 군(軍)의 불법 선거개입, 문화예술인 탄압, 방송장악, 관변단체 자금지원은 폐단이다. 하지만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에서는 전혀 없었던 일일까. 적폐(積弊)라는 것은 누적돼서 쌓여온 것인데, 우파 정부에 한해서만 조사한다는 것 자체가 편향성과 의도성을 의심케 한다. 

이 때문에 문 대통령의 언급도 액면 그대로 들리지 않는다. 적폐청산이라는 용어에는 좌파진영이 자주 동원하는 ‘착한 OOO’ 시리즈의 그림자가 엿보인다. 사정을 앞세운 착한 적폐청산은 ‘둥근 사각형’처럼 형용모순이다. 나라다운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 역시 좌(左), 우(右) 모두에게서 공감을 얻을 수 없는 편향적 상(像)이 어른거린다. 

전경련 자금으로 시민단체를 친정부 시위에 동원했다는 화이트리스트 의혹과 관련해 허현준 전 청와대 국민소통비서관실 행정관이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시민단체와의 협력 및 지원요청은 어느 정권에나 있었던 일이다. 

허 행정관은 “시민단체에 정부 정책의 취지를 설명하고 협조를 요청한 것이지 데모를 지시한 것은 없다”고 밝혔다. “공직자로서 맡은 임무를 정정당당하게 (수행)했기 때문에 단 하나의 부끄러움도 없다”는 말도 한다. 물론 부정부패와는 한참 거리가 멀다. 

이 때문에 허 행정관은 “시민단체와의 협력 및 지원요청을 적폐청산이니 국정농단이니 하는 식으로 몰고 가는 것은 정치보복 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고 항변한지도 모른다.

허 행정관은 올바른 국가관 확립,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한 긍정적 인식의 확대, 통일기반 조성 및 북한인권 활동 증진을 위해 전경련에 시민단체를 지원하도록 요청했다고 누차에 걸쳐 밝혀왔다. 이는 이념을 달리하는 세력에게 정치적, 정책적 비판을 받을 수는 있지만 범죄행위는 아니다. 

정부와 여당은 적폐청산의 ‘진정성’을 어필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실제 정부와 여당은 “적폐청산을 통해 국정수행의 정치적 동력을 유지하고 이를 토대로 내년 지방선거 승리를 견인하기 위해 무리한 과거사 들추기를 하고 있다”는 야당의 주장에 정치적 비약이라고 일갈한다. 

하지만 학습효과가 장애물이다. 좌파진영은 그동안 좌파정부의 명백한 잘못임에도 책임을 논하면 “우리는 진정성이 있다”는 말로 비껴왔다. 진정성은 누구도 증명할 수 없으며, 특정 세력의 소유물일 수도 없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주장의 허구적 논리 역시 겉모양은 진정성이다. 적폐청산의 진정성을 주장하고 싶으면 허 행정관의 진정성도 인정해야 한다. 

허 행정관은 소관업무 수행을 위한 ‘행정행위’를 한 것으로 형사상 처벌대상이 될 수는 없다는 목소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정부와 여당이 사정의 칼날을 앞세워 형사처벌을 밀어 붙인다면 적폐청산의 ‘민낯’은 바로 내로남불 식(式)의 정치보복이라는 비판을 자초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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