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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밥값 한사람 내기’와 부패의 사슬

부패친화적인 문화 코리안 페이 청산은 선진 사회로 가는 초석

【빅뉴스=서울】김휘영의 문화칼럼 =시중에 자주 유통되고 있는 퀴즈 하나다. 경찰, 세무공무원, 국회의원, 기자 이렇게 4 명이 한 음식점에서 식사를 했다. 그런데 나올 때 밥값은 누가 냈을까? 더치페이가 일상화된 외국인들에게는 이 문제가 왜 나왔는지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코리안 페이라는 전 세계에서 특이한 한국 문화 속에서 20 년 정도 성장해온 한국의 성인들에게는 이 질문을 던지면 일단 이 4 직업군에 얽힌 갑-을 관계, 즉 권력간의 서열을 따지느라 머리가 복잡할 것이다. 물론 이 문제에 권력 서열관계를 떠올리는 이유는 우리 한국 사회의 부패구조가 일상 생활 속에 깊게 뿌리박고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놀라지 마라. 이들 중 어느 누구도 밥값을 내지 않았다. 정답은 ‘음식점 주인’이기 때문이다. 식사나 음주 후에 한 사람이 다 계산하는 코리안 페이가 한국의 미풍양속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왜 음식점 주인이 지불해야 했는지를 한번쯤 생각하다보면 갑-을 관계 속에 상존하는 ‘괘씸죄‘의 무서움을 절감하게 될 것이다.

한국에서 특이한 죄목인 ‘괘씸죄’는 주로 다음과 같은 구조로 얽혀 있다. 당연하지 않은 불평등 구조가 어느덧 자신도 모르게 갑에 해당하는 소수 특정 계급이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되고, 그 이후 이를 지키지 않는 을(乙)이 갑(甲)인 자신에게 마땅히 해 주어야 할 일을 해주지 않았으니 ‘괘심한 놈, 감히~‘ 라는 심사가 발동하게 되는 것이다.

조건

물론 위 밥값 문제의 정답이 ‘음식점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한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그건 식당주인이 저 네 사람들 중 적어도 한 두 명이라도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acquaintances)’이어야 한다. 그들 네 사람 전부 모르는 사람들이라면 음식점 주인은 굳이 자신이 접대하려고 시도하지 않는다. 따져 보면 한국의 미풍양속이라는 코리안 페이 역시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이루어지는 문화다. 이건 사실 한국인이 공중도덕 관념이 박약하고 기부 관습이 적은 것과도 관계가 깊다. 공중도덕이나 기부 관습은 둘 다 자신이 모르는 불특정 다수를 위한 일이기 때문이다. 식당이나 공중이 사용하는 장소에서 어린 아이가 떠들 때, 누군가 아이를 나무라면 엄마 입에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우리 아이 기죽게 왜 이래?'가 심심찮게 나온다. 내 아이는 가족, 즉 '너무나 잘 알고 절친한 사이' 이기에 기꺼이 예외이자 특별한 존재가 되어야 하고, 아이의 소란으로 피해를 입는 불특정 다수는 나(엄마)랑 '잘 모르는 사이'이기 때문에 '그까이꺼'가 되고 마는 것이다. 이에 반해서 더치 페이 문화는 익히 아는 사람이든 생전 처음 만나는 사람 사이든 관계없이 동일하게 적용되는 생활양식이다. 사실 이는 인류의 이상인 박애주의와 건전한 시민 사회를 형성하는 일과도 매우 깊은 연관이 있다.

박애(博愛)와 건전한 시민사회

인류사회를 급격하게 진일보 시켰던 프랑스 혁명의 기본 정신이기도 한 '박애주의'의 뜻을 사전에서 찾으면 <인종, 나라,종교, 풍습 등의 차별을 두지 말고 온 인류는 서로 평등하게 사랑해야 한다는 주의(主義)>로 나온다. 또 시민사회(市民社會)란 용어를 사전검색하면 <자유 경제에 기초를 둔 법치(法治) 조직의 사회. 곧, 자유ㆍ평등ㆍ박애(博愛)를 도덕적 이상(理想)으로 하고 시민 혁명을 통해 이룩된 시민 계급의 사회>라고 정의되어 있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 만연한 코리안페이 문화만큼 온 인류를 차별없이 사랑하라는' 박애(博愛) 정신'이 아니라 이른바 '아는 사이'와 '모르는 사이'를 문화적으로 철저하게 구별하고 있는 생활양식도 드물다.

이렇게 문화적인 차별이 아예 생활 속에 만연한 한국 사회에 '온 인류를 폭넓게 구별없이 사랑하라'는 그야말로 박애정신이 뿌리 내리기 힘들고 이를 기반으로 해야만 가능한 건전한 시민사회가 꽃피기는 어렵다. 알고 보면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한 부산 저축은행 비리도 <광주 제일고> 동문이라는 너무나 잘 아는 집단을 중심으로 벌어진 일이었다. 익히 잘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특별하게 통용되는 코리안 페이 문화가 사실은 이 중요한 시민 정신 중의 하나인 박애주의와 전혀 다른 궤를 달리고 있는 것을 우리는 파악해낼 필요가 있다. 이는 사회 정의(正義)라는 이념에서도 전혀 바람직 하지 않다. 정의의 여신이 저울을 들고 굳이 눈을 가리고 있는 건 중요한 이유가 있다. 즉 아는 사람이나 모르는 사람이나 차별하지 못하게 하는 시스템적인 장치로 아예 '눈(eye)'을 가리고 있는 것이다.

선진국 영국의 사례- 정주영 회장이 겪은 일화

다음은 고(故) 정주영 현대 그룹 회장에 얽힌 실화다. 그 유명한 ‘지폐 속의 거북선(선박)’이 나오는 일화다. 정주영 회장이 조선소를 건설하기 위한 차관을 구하러 영국의 버클레이 은행에 갔을 때의 일이다. 상담 중 점심 시간이 되어 비서가 롬 바톰 회장과 정회장 앞으로 햄버거가 두 개 나왔다. 이때 그 비용을 각자가 지불했다고 한다. (출처: 정주영 회고록-‘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조선소 건설 차관을 위해서는 ‘선박 수주’ 실적이 있어야 한다기에 그리스 디바노스 선박회사 회장으로부터 26만 톤 급 유조선 수주계약서를 따내 이 계약서를 들고 갔을 때는 상담 후 롬 바톰 은행장과 저녁 식사를 했다. 그런데 이때 정회장이 롬 바톰 회장의 식사비까지 내려고 하니 한사코 거부해서 결국 더치페이를 할 수 밖에 없었다고 술회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좀처럼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그 당시 한국 사회는 은행에서 돈 100만 원만 빌리려 해도 커미션조의 뇌물은 물론, 밥값 술값은 기본적으로 접대해야 할 때였기에 정주영 회장이 영국에서 ‘절박한‘ 을의 입장에서 경험한 이때의 더치페이가 단순한 문화 충격 이상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한국이라면 굳이 밝힐 필요가 없었을 이 식대비 부분이 회고록에 까지 상세히 기록된 것이라 여겨진다.

이것 뿐이 아니었다. 롬 바톰 회장은 정회장이 이 일로 영국에 체류하는 동안 몰래 은행 직원을 한국에 파견해서 정주영 현대 건설회장의 그간의 행적을 면밀히 조사했다고 한다. 심지어 태국에 까지 직원을 파견해서 정주영회장이 고속도로를 건설하고 방콕의 차오프라야 강에 건설한 다리에 대한 사항까지 다 조사보고서를 갖춘 상태였다고 한다. 이런 것이 바로 선진국이다. 영국의 수퍼 갑인 은행장은 대출 신청자인 을(정주영)로부터 접대를 받으며 ‘대출금 부도‘라는 리스크를 떠안는 대신 이렇게 철저한 시스템에 기반한 ‘조사’를 택한 것이다.

부산 저축은행 비리

법과 원칙을 중시하고 신뢰도와 투명성이 높은 서구 선진국들은 왜 한결같이 더치페이 문화가 정착화된 나라들인지 이 둘의 상관관계(co-relation)를 진지하게 인식해야 한다. 법, 원칙, 신뢰도, 투명성 모두는 사실 사회적 약자들인 을(乙)이 상대적으로 소수이자 특권층인 갑(甲)에게 좀 덜 착취당하고 덜 차별받으며 살 수 있도록 하는데 결정적으로 작용하는 요소들이다.

가까운 일례로 부산 저축은행 비리사건을 예로 들어 보자. 이 사건 역시 ‘갑과 을’과의 접대 문화 속에서 거대한 부패 커넥션으로 확대 재생산된 후 결국 영업정지되었다. 우리는 이 사건의 피해자들이 누군인가를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땅을 치며 울면서 한탄하는 피해자들은 거의 대부분 시장에서 콩나물 팔아 번 돈을 이 은행에 맡긴 할머니들이다. 즉 한국 사회에서 최고의 약자들이자 그야말로 ‘을'인 것이다. 코리안 페이 문화가 익히 아는 사람들 사이에만 통용되는 문화양식임을 고려할 때, 우리 한국의 어린이들은 삶 속에서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을 철저히 다르게 대하라'는 문화양식을 어릴 적부터 교육 받으며 자라고 있는 셈이다. 사실 이게 얼마나 무섭고도 잘못된 교육인가를 제대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들이 자라서 결국은 한국 사회에서 없어져야할 비리부패 구조를 양산하고 소수의 가해자가 되고 대다수의 피해자가 된다.

우리는 왜 영국 같은 문화를 가진 사회일수록 더 안전하고 건강한 사회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한국의 코리안 페이 문화의 문제점은 이에 편승해서 부패 커넥션이 바이러스처럼 왕성하게 확대재생산해 간다는 점이다. 사실 한국 사회에서 식사비, 술값 정도를 타인이 대신 내주는 건 부패라는 인식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다. 그런데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는가? 진정한 문제는 이런 종류의 부패친화적인 문화인 코리안 페이가 한국인들을 어릴 적부터 ‘부패불감증’에 노출된 채 성장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점점 부패 덩어리가 커지면서 이런 커넥션 속에서 갑의 입장에 서게 되는 국가 공무원들에 맡겨진 중요한 책임들인 ‘감시와 감독’이라는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할 리가 없다. 당연히 공정과 형평의 이념이 한국 사회에 실현되기도 어렵다. 이런 문화 구조 속에서 성수대교가 붕괴되고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고 씨랜드 화재로 애궂은 어린애들이 타죽고 심지어 무수한 생명을 대가로 바쳐야 하는 원자력 발전소에도 단순 우발적인 사고가 아니라 토착형 비리가 발생해서 우리를 경악케 하고 있다.

아시아 국가들 중에서도 한국만 특이한 문화- 코리안 페이

일본, 중국, 대만, 홍콩, 싱가폴, 필리핀 거의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들도 더치페이가 일상화되어 있다. 극동 아시아 3국 중에서도 중국은 소위 ’AA制‘로 4 사람이 택시를 타면 철저하게 1/4 씩 계산해서 지불한다. 참고로 AA는 영어 "Acting Appointment(약속을 이행함)"의 약자이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each each(각자 각자)‘를 칭하는 말로 유명하다.

일본은 '각자 내기'를 의미하는 소위 ‘와리깡(割り勘)’ 문화로 1엔까지 철저히 나누어 내는 문화다. 설사 “오늘 맛있는 거 먹으러 내가 소개하는 곳으로 가자!”라고 먼저 권했어도 계산은 각자 내기로 한다. 심지어 한 사람이 지불을 다 하면 ‘제 돈 쓰고도 욕먹을 정도‘이니 사교활동을 위해서는 이에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고 한다. 우리 대한민국이 세계가 놀라게 한 공업화에 성공하고 첨단 기술 등으로 세계 10위권의 선진국 대열에 합류할 지점에 도달했는데도 불구하고 국가 신뢰도를 의미하는 청렴도, 투명도가 낮고 국가부패지수가 후진국 수준으로 높은 이유는 과학이나 기술 수준 때문이 아니다. 교육수준이 낮아서도 아니다. 바로 문화(文化, culture)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한국인들이 어릴 적부터 배우며 성장하는 코리안 페이는 절대적인 상관관계가 있다고 판단된다. 문화적인 사항이라 쉽게 개선되긴 어렵겠지만 한국의 오피니언 리더들이 이의 문제점을 잘 분석해 제시해 주고 우리가 살아가는 공동체가 더 건강하고 좋은 사회가 되도록 설득해 나가야 할 것이다.

글 : 김휘영 문화 평론가·행복문화발전소장
(예고 - 다음 칼럼으로 ‘왜 한국에서 코리안 페이가 사라지지 않는가’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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