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근
2013. 06. 08.
오늘 미국 오바마와 중국 시진핑이 남부 캘리포니아의 한 휴양호텔에서 회담을 하였다. 그 회담장소로부터 약 10리 떨어진 곳에서 20대 남성백인이 최소 6명을 총으로 쏘아 죽이고 자신도 경찰에게 사살되었다. 그 범인은 한 주택에 불을 지르고 2명을 사살한 후 거리로 나와 한 여성에게서 차량을 빼앗은 후 이동하면서 2명을 더 사살하고 대학교정에 진입하여 2명을 더 사살하고, 도서관으로 숨어들어가 총을 쏘다가 경찰에게 사살되었다고 한다. 그는 전투복에 탄창을 두르고 드르륵-하면 10명 이상 죽일 수 있는 따발총으로 무장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그게 미국이다. 내 딴에는 국방과 안보를 위하여 열심히 일하였던 미국의 한 불행한 측면이다.
미국은 위대한 자유민주주의 국가이다. 인류역사 상 미국처럼 공정하고 공평하고 이성적인 제국이 존재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상술한 바와 같은 ‘시민 학살형태의 범행’은 주기적으로 일어난다. 미국에서는 매년 수만 명이 그런 식으로 총에 맞아 죽는다.
총기도 권총은 인기가 없다. 나도 미국에서는 권총을 소지하고 있었지만, 진짜로 인기 있는 것은 드르륵-하면 10명, 30명 사살할 수 있는 따발총이다. 왜 시민들이 그러한 드르륵- 따발총이 필요한가? 필요 없다. 그러면 왜 시민들에게 따발총 파는 것을 금하지 않는가? 대답은 간단하다. 매년 3조원 규모의 총기시장을 보호하기 위하여 총기 생산자들이 정치인들에게 정치자금을 왕창 대면서 목을 조르고 있기 때문이다. 돈 없이도 정치할 수 있게 만들면 되지 않는가? 유태인을 비롯하여 돈 많은 사람들은 그러한 변화를 금한다. 시회를 자들 마음대로 주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상은 많은 면에서 공평하다는 것이다. 그 위대한 미국이 그러한 정치적 사정에 의하여 매년 수만 명이 총에 맞아 죽는 것을 감수하고 있다.
그리고, 더 있다. 민주주의는 근본적으로 우중정치의 면모가 있다. 유권자들은 나라 망하는 것조차 무시하고 마구잡이로 내건 공약들에 따라 표를 주기도 한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정치들은 빚을 마구잡이로 끌어다 쓴다. 표는 당장 필요하고 빚은 나중에 걱정하여도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은 정부가 진 빚이 1조원 곱하기 1만5천이 넘으며, 매일 2조원 정도 더 빚을 진다. 매일 정부 빚이 2조원 늘어나? 그런 나라도 있어? 미국이다.
매일 2조원 정도를 꾸지 못하면 한 두 달 내에 미국은 망한다. 공무원들 군인들 봉급, 연금 등 모두 중지된다. 그러므로 돈을 꿔주는 자는 미국에게 은인이다. 그 은인들 중 가장 큰 은인이 중국이다.
그러므로, 오바마와 시진핑이 마주 않을 때, 관계가 묘하다. 힘과 영향력과 경제규모는 미국이 더 크지만, 중국이 돈 꿔주기를 멈추면 미국은 극도로 다급해진다.
총에 매년 수만 명 맞아 죽고, 중국에게 쪽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수준으로 돈을 꾸어다가 유권자들에게 약속한 나라 망할 공약들을 실행하는 것이 미국이다. 미국을 칭찬하라면 나는 침을 튀기며 수천 자 수만 자를 쓸 수 있다. 미국은 위대한 국가이다. 그러나 미국은 동시에 상술한 바와 같은 한심한 면들도 있는 나라이다.
내가 30여 년간 살았던 미국, 나에게 상당히 대접을 잘 해준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 미국에 대하여 한심한 면을 구태여 내가 장황히 늘어놓은 이유는 간단하다. 한국의 한심한 면을 이야기하기 위하여 미리 약으로 뿌려놓는 것이다.
27년 간 살다가 미국에 가서 35년이 넘게 살다가 돌아온 대한민국에서 내가 가장 행복할 때는 전철을 기다릴 때이다. 반짝반짝 빛나는 전철역의 승강구에서 전철을 기다리면 한국이 천지개벽하였다는 것이 실감이 난다. 1962년 청량리 종점에서 태릉 밖 공릉에 있는 서울공대로 가는 버스는 만원이 되어야 떠났다. 한번 세어보니 172명을 태웠다. 그러므로, 버스가 떠나도 문을 못 닫는다. 여차장들은 목숨을 건 서커스를 했다. “오라이!”하고는 차벽을 탕탕 두드리고는 닫히지 않은 문에 매달린다. 그러면 운전기사는 곡예운전을 하여 승객들, 즉 우리 학생들을 차문 반대 편으로 왕창 쏠리게 한다. 그 틈에 그 여차장들은 문을 겨우 닫는다. 그리고는 비포장 도로를 타달거리며 달렸다. 박통이 이를 갈며 한강을 건널 만 했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거의 개돼지처럼 살았고, 시골에 가면 춘궁기에 실제로 굶어 죽고 허기져 병들어 죽은 사람들이 있었다.
53년이 지난 후, 나는 전철을 기다리고 있으면 엄청 행복하다. 탕탕- 차벽을 두드리며 “오라이!”하던, 그 생명을 걸고 일하던 불쌍한 여차장들은 더 이상 없다. 한국은 천국 같다.
그러나 나를 슬프게 만드는 광경도 있다. 저녁이 되어도 집에 못 가고 헤매는 어린 학생들을 보면 한국은 지옥 같다. 그 가난한 시절에는 애들은 저녁이면 함께 집에서 어머니와 함께 저녁을 먹었다.
당시에도 물론 아버지들은 저녁식사 자리에 없었다. 아버지들은 생활전선에서 돌아올 수가 없었다. 술을 마시는 것도 일의 연장이었다. 모든 중요한 일들은 사바사바로 술자리에서 결정되므로 아버지들에게는 진짜로 중요한 일이었다. 낮에는 비실비실 졸던 아버지들도 밤이면 활기를 띄우고 술집으로, 기생집으로 몰려가 경기조작, 승부조작에 열중하였다.
그러나, 그 가난한 옛날에는, 그 아버지들을 제외하고는 식구들은 모두 저녁밥을 같이 먹었다. 그러나 경제수준이 눈이 튀어나오게 향상한 지금, 애들은 저녁이 되어도 집에 오지 못한다. 아버지들이 저녁식사에 참여 못한지는 너무 오래되어 언급조차 필요하지 않는 사안이지만, 이제는 애들조차 거리로 거산을 하고 다니는 모습은 한국을 지옥으로 보이게 만든다.
나를 슬프게 만드는 다른 광경은 그 숱하게 많은 러브모텔들이다. 미국에는 그런 시간제 모텔은 한 개도 없다. 있어도 망한다. 사랑 안 하면 이혼하는 것이 정석이고 정상이다. 사랑을 가지고 그렇게 대량 사기를 치지는 않는다. 한국에서는 부부 사이에서 상호 대량사기를 친다. 경제수준이 엄청 높아지면서 부부 사이의 사랑은 더욱 황량해졌고 부부 간 서로 속이는 사기가 극성을 부린다.
남한산성 계곡의 산행 길 옆에는 수많은 돌들을 차곡차곡 쌓은 돌탑들이 있다. 사랑은 돌탑이다. 수십 년 동안, 백 년 동안, 한 개씩 한 개씩 남녀가 쌓아 올리는 탑이다.
한민족은 그러한 탑을 쌓은 적이 없었다. 500년이 넘도록 그런 적이 없었다. 남녀는 부모들이 맺어준 채로 살았다. 혼인식 중에서야 처음 상면을 하였다. 그리고 시집이라는 직장의 사장, 부사장 자격으로, 직장 동료처럼 살았다. 사랑은 전혀 관계가 없었다.
그러한 전통은 지금도 여전하다. 연애로써 결혼을 했다 하여도, 사랑을 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들은 수천 만 인구 중 그리 많지 않다. 사랑을 유지한다는 것은 실제로 엄청 힘들다. 노력도 필요하고 인내도 필요하고 노하우도 많이 필요하고 문화와 전통도 받쳐주어야 한다. 한국의 경우, 그러한 조건들은 갖추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부부 간의 사랑을 유지하는 대신, 러브모텔을 찾는다. 서너 달 간통을 하며 즐기다가 싫으면 상대를 바꾼다. 노력도 정성도 문화전통도 필요 없다. 경제수준이 엄청 놓아졌으므로 필요한 경비는 문제도 되지 않는다.
오늘 오바마와 시진핑이 회담을 한 미국의 좋은 면과 지옥적인 면을 나는 이 글 첫머리에 기술하였다. 한국의 좋은 면과 지옥적인 면을 그 다음에 기술하였다. 나는 70의 나이에, 미국정부에서 매달 보내주는 돈으로 한국에서 살고 있다. 65세가 넘었으므로 2중국적이 허용된다. 미국에서 매달 보내주는 돈을 포기하기 싫어서 미국국적도 아직 가지고 있다.
제 나라가 좋은 것은, ‘주인’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백인들이 주인이다. 나는 미국 Marquis 인명사전에도 오르는 수준으로 대접을 받았지만, 그리고 상당한 평가와 칭송을 받기도 했지만, 주인자격을 갖지는 못하였다. 인종구분은 본능적인 것이다. 이는 영원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전에 이야기한 적이 있었지만, 10여 년 전에 박근혜 의원 측으로부터 ‘박정희 대통령님을 위한 대변인(주필)’ 직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았을 때, 나는 어차피 한국인이라는 점을 자각하였다. 미국에서는 아무리 나를 알아주어도 그런 역할은 제안 받지 못한다. 당시 나는 그 제안을 사양하였다. 나는 성깔 때문에 그런 자리는 받지 못한다. 다만, 언젠가 대통령이 되시기를 바란다고 이야기하였다.
그러나, 21개월 전 안철수가 등장할 때, 나는 그 제안을 뒤늦게 수용하였다. 나는 안철수를 나라에 해로운 존재라고 여겼고. 지금도 나의 이 의견은 변함이 없다.
그리고, 나이 70을 바라보니 죽기 전에 박정희 대통령의 역사적 위치를 정립하는데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충성을 받을 자격이 있다.
언젠가 이전 글에서 한 번 이야기한 바와 같이, 고로 나는 박근혜 대통령보다 항렬이 높다. 아버지의 대변인이기 때문에 한 세대 위의 사람이다. 나의 글은 고로 한 세대 이전의 시각에서 조명하는 것이 된다.
그런 시각에서, 상술한 바와 같이, 나는 전철역에서는 행복하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중동으로 베트남으로 다니며 피땀을 흘리면 돈을 벌어들이고, 많은 사람들이 기술을 발전시켜 이 전철노선을 가설하고 전철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 긴 세월 동안 미국에서 활동하던 내 자신이 빚을 진 것 같고 미안한 마음이다.
그러나 상술한 바와 같이 해가 져도 길을 헤매는 어린 학생들과 우후죽순 늘어선 러브모텔들은 나를 슬프게 만든다. 경제부흥의 명암이다.
21개월 간 박정희 대통령님 대변인 입장에서 칼럼을 써오면서 나는 대한민국을 풀타임으로 관찰하였다. 내가 느낀 결론을 동봉한 그림으로 나타내었다.
나는 미국에서 활동하는 동안 1980년 대부터 한국정부와 대기업에서 거의 매년 초청을 받았다. 기술세미나도 열고 국책 프로젝트 심사도 하였다. 내가 관찰한 바로는, 삼성전자 정도 대기업 사람들은 미국 및 유럽 어느 선진국 사람들에 뒤지지 않는다. 사고방식과 매너 등에서 일류에 속한다. 이는 그들이 국제적 경쟁을 하여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서구인들은 상당히 효율적이다. 그 효율성은 각 개인의 자질에서 나온다. 각자 홀로 설 수 있고 성숙된 사고와 행동을 하도록 요구된다. 그리고 상호 항상 국제무대에서 경쟁자들과 조우한다. 그 결과, 유독 한국 대기업은 한국문화에서 일탈된 선진적 모습을 보여준다.
그 나머지의 한국의 모습은 근본적으로 조선왕조의 사색당파적 모습에 넥타이만 걸친 것이다.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진실이다. 나는 인기 끌려고 글 쓰는 사람이 전혀 아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경제적으로 살려놓은 한국을 더욱 발전시켜 선진국으로 만들기 위한 방안을 연구하기 위하여 글을 쓴다. 그 것이 유일한 목적이다.
노상 이야기하지만, 나는 한국 영화와 드라마를 거의 안 본다. 너무 슬프고 가슴 아프기 때문이다. 그 후진성에 퍼져 앉아 울고 싶다.
이는, 나의 추정으로는, 각자 오후 6시면 집에 가서 가족과 밥 먹고 쉬면서 생각도 하고, 주말에도 한가로이 가족들과 쉬면서 자기만의 시간을 갖고, 그러지 못하는 때문으로 여겨진다. 그대신, 저녁과 주말이면 몰려다니며 술 마시고, 술 마시면서 친해진 순서대로 자리를 차지하고 시나리오도 사주고 배역도 나누어 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은 술 마시며 경기조작, 승부조작 하는 나라이다.
다만 수출을 해서 먹고 사는 재벌기업들의 경우에만 이러한 원시적 행태를 벗어나있다.
한국의 영화와 드라마들도 국내시장이 전혀 없이 미국과 유럽 선진국 상대로 돈을 벌어야 한다면 삼성전자처럼 현대적이 될 것이다.
정치는 그 중 최악이다. 정치는 100% 내수시장에 의존한다. 수출이라는 것이 없다. 고로 정말로 비참할 수준으로 후진적이다. 나의 칼럼을 늘 읽는 독자 분들은 나의 이러한 주장에 익숙하실 것이고 그에 관련된 많은 이야기들을 이미 읽으셨을 것이므로 구태여 다시 장황한 이야기들을 사례로서 늘어놓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다만, 박정희 대통령님의 딸에 관련된 사례들은 짚고 넘어갈 것이다. 그 원시인 남자정치인들로 인하여 엄청 애를 먹고 있으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원시인들을 고찰하면 선진국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 보일 수도 있다.
우선 그 유명한 윤창중이 있다. Google에 ‘성추행’ 이미지를 찾아보면 윤창중 사진이 있다. 정말 출세했다. 그리고, alas! 박근혜 대통령 사진도 떠있다. 방미 중 윤창중이 사고치는 통에 그렇게 된 모양이다.
그런데 진실은 더욱 참담하다. 이번 방미의 케이스는 실제로 건실한 편이었다고 한다. 한국정치인들이 미국을 방문하는 경우 일반적으로 술판은 더욱 질펀했고, 말썽도 더 많았다고 한다. 다만, 한국계가 한국정치인을 고발한 것은 처음이고 그래서 들어난 것뿐이라고 한다. 이전에 누가 고발을 했었다면, 그래서 경종이 울렸다면, 윤창중은 미리 조심하고 그래서 정치적으로 사망하지 않았을 것이다. 윤창중은, 한국 식 표현으로, 재수가 없었던 경우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종북에 의한 함정 내지 음모 이야기까지 등장한 것이다. 그러나 그 사실여부에 관련 없이, 한국정치인들은 원래가 원시인들인 것이 사실이다.
윤창중 사건이 더욱 참담하게 부각된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이남기가 대통령 몰래 당사자를 도망시킨 때문에 엄청 후진적이고 파괴적으로 부각되었다. 둘째 이유는 대통령이 여성, 그 것도 독신 여성이기 때문이었다. 여성 대통령의 대변인이 성추행을 해?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은 원래 조명을 많이 받는 처지이다. ‘한강의 기적’이라는 인류역사 상 가장 성공적인 경제부흥으로 유명한 소위 ‘독재자 박정희’의 딸이다. 그래서 타임지 표지에도 올랐었다. 그리고 세간 표현으로 예쁘고 똑똑하다. 유창한 영어로 연설을 했다. 미국이 온통 사랑에 빠졌다. 그런데 꽝! 그러한 스타 급 여성대통령의 남성대변인이 호텔 바에서 젊은 인턴 성추행하고 도망 가? 증말로… 원시인 본색이 들어난 순간이었다.
사례로서 하나 더 있다.
[동아일보 0605]
한편 이(정현) 수석은 정무수석에서 홍보수석으로 자리를 옮긴 첫날인 4일 "하루에 두 세 번은 춘추관에 들러 국민이 궁금해하는 것이 뭔지 들으려고 한다"고 밝혔다. 이날 새벽 방문은 전날 약속을 지킨 것이다.
애초 이 수석은 일과시간엔 각종 회의와 일정 수행 등으로 기자들과 통화가 어려우니 새벽에 춘추관 지하 목욕탕에서 같이 씻으며 각종 현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자며 이른바 '목욕탕 토크'를 제안했으나 여성 기자들이 함께 할 수 없다는 지적에 '새벽 토크'로 바꿨다.
중앙일보
[허진 기자: ... 어제는 청와대 기자실을 찾아 우리 목욕하며 회동하자고 제안했었어요. 그런데 몇 분 만에 철회했습니다. 여기자들의 항의했어요. 나는 어떡하느냐. 일본도 아니고 혼탕도 아니고.]
[임소라 기자 : 아니 근데 왜 남자들은 목욕탕가야 소통되냐]
[허진 기자 : 모든 것을 보여주니까요.]
[김필규 기자 : 그리고 너와 내가 서로 비무장 상태다.]
[허진 기자 : 너와 나의 실체(?)도 알 수 있고.]
[임소라 기자 : 너무 후진적이에요.]
다행히 여기자들의 반대로 성사가 안 되었지만, 만약 정말로 이정현 홍보수석이 원하는 대로 남자기자들과라도 목욕탕에서 새벽마다 발가벗고 만났었다면, 윤창중 사건은 저리 가라는 해외토픽이 되었을 것이다. 여성 대통령의 홍보수석이 출입기자들과 매일 새벽 발가벗은 채로 만난다? 현기증 나는 이야기이다. 수석회의에서 이야기를 좀 해봐?
오는 가을에 영국 여왕의 국빈으로 갔을 때 이 사안이 다른 사안들을 매몰시킬 것이다: “홍보수석이 매일 발가벗고 기자들을 만나는 장면 사진이라도 있느냐? 일백만 달러에 사겠다!” 대한민국 여성 대통령 방문 중, 영국 여왕 자신 신문을 펼치건 텔레비전을 틀건 이 뉴스가 압도적일 것이다.
나의 ‘박정희 대통령님 대변인 사이트’ pgh.kr에 게재된 나의 촌평을 인용하자면:
촌평 (인용): 대한민국을 문화 미개국으로 만드는 짓. 중세기 토인 나라도 아니고... 지나침은 모자람만도 못한 것. 자기존재감 극대화를 위한 이기적 행보이며, 대통령께 누가 되는 짓. 현 정부와 청와대가 가장 필요한 것은 군자의 도. 윤창중 사안부터 거의 모든 문제들은 군자의 도의 결핍 문제. 한국 정치판은 너무 상스러움. 내가 지난 20개월 간 칼럼 등을 통하여 역설한 것이 군자의 도! 이를 어기는 짓은 모두 국가에 해로움.
현 정부의 가장 중요한 역사적 임무는 군자의 도를 확립하는 것. 아니면 잘살수록 사회는 더욱 상스러워지고 더욱 지옥 같아질 것임. 가정이건 나라건, 상스러운 경우, 잘살수록 더욱 지옥 같아짐. 그 경우 결국 못살게 되고 망할 것임. 윤창중 사안, 육사 성추행 사건 등 일련의 사건들은 실제로 경종이며, 이를 약으로 삼아, 국가적으로 총력을 다 하여 군자스러움을 확립해야 할 것. 이는 박정희 대통령님/육영수 여사의 딸이 아니면 그 누구도 하지 못할 것이며 고로 박근혜 대통령께 지워진 역사적 사명임. 자신은 군자이시면서 타인들에게는 군자답지 않음을 용인하는 면이 있으시며, 대통령께서는 이 점에서 확실히 개선이 있어야 할 것임. 윤창중 기용부터 이남기의 '25시간 멋대로 하기'까지 모두 박근혜 대통령님 자신에게 일정부분 책임이 있음. '부처님 눈'에서 오는 '천성적 관용 성향'을 스스로 제어하셔야 함 (죄송!)
토픽을 바꾸자면, 칼럼에서 누차 강조하였지만, 직장이 가정의 행복, 부부 간의 사랑, 개인의 삶의 질을 파괴하는 짓은 불가! 저녁에 직장 부하들 회동하여 술 마시러 다니는 일, 저녁까지 일 시키는 직장과 상관들, 아침 이른 시간에 모이도록 하는 일, 모두 국가에 해롭고 비애국적인 행위임. 가정의 행복과 부부 간의 사랑이 온전할 수 있지 않으면 그 나라는 미개국이며 결국 망할 것임. 청와대는 고하를 막론하고 오전 9시-오후6시 근무를 준수할 것을 나는 누차 주장해 왔으며 이는 필히 실시되어야 함. 청와대가 모범을 안 보이고 나라를 바로 잡을 수 없음. 행복을 가정과 부부 간의 사랑 외에서 찾으려는 것은 국가와 사회의 근간을 붕괴시키는 일. 수백 년 그래서 한민족은 지옥과 같이 살았고, 러브모텔이 성업 중임. 기자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새벽에 브리핑 들으러 나와야 하나? 그 기자의 배우자가 행복할까? 독신이라도 이는 심각한 프라이버시와 개인적 행복의 침범임. 새벽에 이야기 들으러 나오지 않으면 축에서 빠지게 되고 그러므로 싫어도 나와야 하고... 친하고 안 친한 것 중심으로 돌아가고... 목욕탕에서 등 잘 밀어주는 순으로? 그런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은 100% 권력의 횡포임. 어이가 없음. (영국 국빈 방문 때 영국 기자들에게 새벽 브리핑, 목욕탕 토크 제안, 이런 이야기 해주면 특종기사로 영국 신문 도배할 것임: "한국은 중세기 토인 나라!!!"). 조선왕조 5백년 사색당파가 가정을 파괴하고 사랑을 실종시킨 비참하고 슬픈 문화임. 앞으로 4년여 간 글쟁이로서 나의 가장 큰 태스크는, 가정과 부부 간의 사랑의 복원, 그리고 개인적 삶의 질을 높이는 것임. 줄기차게 이 논조를 펴 갈 것임. 이 것이 없이는 한국은 결코 선진국이 될 수 없음. 한국 정도로 잘사는 사회에서, 경제적으로 더 잘살면 국민들이 더 행복해질 것이라는 것은 완전 허구임. 잘사는 것은 중요하지만 현재 문화로서는 말짱 헛짓임. 아래 관련 칼럼 참조.
관련 칼럼 가기:
박근혜 정부는 ‘아버지 과외’ 근절시켜야
해가 지면 아버지와 자녀가 집에 갈 수 있어야 선진국 된다!
http://www.breaknews.com/sub_read.html?uid=269168§ion=sc11§ion2=
심상근 박사 정치진단
아담 이브와 박근혜-박정희 정치 이야기
원시의 건강함과 건전함을 잃은 한국 문화와 정치 이야기
http://www.breaknews.com/sub_read.html?uid=268335§ion=sc11§ion2=심상근 박사 정치진단
박정희-박근혜와 정치벤처의 역사적 대결
한민족 폐습인 정치벤처 대 창조경제를 위한 기술벤처의 대결 이야기
http://www.mediawatch.kr/news/article.html?no=240690
심상근 박사 정치진단
(인용 끝)
그 놈의 청와대 홍보비서실은 굿이라도 하던지 해야 할 듯하다. 윤창중 해직시키고 이남기 사임하고 그 다음 들어선 홍보수석이 뭐라?
부언하자면, 원래 나는 이정현에게 장관직을 주는 것이 최상이라는 의견이었다. 일부 친박들의 특징은, 과대한 충성과 그에 대한 과도한 기대감이다. 여성 대통령과 각별한 사이라는 것을 만방에 과시하고 그에 응당한 대우대접을 기대 내지 요구한다. 후레자식이라는 말과 유사하게 후레정치인들이 된 것이다. 그러한 기대감을 충족시키어주어 나라가 평안 하려면, 장관이 될 자질이 있건 없건, 장관직을 주는 것이 최상의 방도였다.
그런데 무슨 연유인지 정무수석이 되었다. 나의 의견으로는 적재적소가 아니었다. 그에 관련된 칼럼도 쓴 적이 있다. 이에 관련이 있는지 아니면 공개적으로 알려진 대로 홍보수석 감을 못 찾아서인지, 그는 수평이동, 실제로는 그 직책의 무게로 보자면 강등 이동되어 홍보수석이 되었다.
그러나 상술한 바와 같이, 그에게는 장관 직이 더욱 적합하다. 예전으로 이야기하자면 장관은 대신이고 수석은 환관이다. 대신 이상으로 설치고 싶은 사람이 환관이 되면 ‘환관의 난’이 일어난다. 세상을 뒤엎으려고 든다.
홍보수석은 대통령이 이미 공개적으로 천명한 발언과 공개한 제반 정책들을 국민들에게 널리 알리는 직책이다. 그런데, 장관을 해도 성에 안 찰 인사가 그런 자리에 앉으면 그러한 수동적 임무에 스스로 국한하지 않는다. 하루에 두세 번 기자들을 만난다고 하였는데, 전시도 아니고, 하루에 두세 번 늘어놓을 이야기가 어디에 있는가? 있는 이야기 없는 이야기 모두 지어내고 둘러대고, 대통령이 할 이야기 미리 마음대로 지어서 이야기하고, 장관들이 결정할 일 미리 추측하여 마구 떠들어대고, 그렇지 않으면 하루에 두세 번 늘어놓을 이야기가 없다. 장관을 시켜야 그나마 좀 조용했을 것이다. 잘못된 인선이다.
윤창중-이정현 소동으로 인하여 나는 비관적이 된 면이 있다. 절망적인 생각이 자꾸 든다. 대한민국은 이대로 망해버리는 것인가?
상기 인용을 일부 다시 인용하는 것으로 이 글을 맺는다:
“한국 정도로 잘사는 사회에서, 경제적으로 더 잘살면 국민들이 더 행복해질 것이라는 것은 완전 허구임. 잘사는 것은 중요하지만 현재 문화로서는 말짱 헛짓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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