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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테러 사태와 스티브 잡스, 그리고 합리적 사고

우리의 정서적 인식과 과학적으로 밝혀진 실제의 현실은 엄연히 차이가 있다


9.11 테러 사태가 일어나자 미국인들은 한동안 비행기를 타지않게 되었다고 한다. 이는 9.11 테러 사태가 미국인들에게 줬던 큰 정서적 충격이 원인으로, 실제로 9.11 테러 사태 이후 한동안 미국인들이 비행기를 통한 이동거리가 이전보다도 12~20% 정도나 감소했다고 한다.
 
당시 미국인들이 비행기 대신 주로 이용한 교통수단은 자동차였다고 한다. 과연 더 안전하게 이동하고 싶다는 미국인들의 소망은 달성되었을까?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않다.

게르트 기거렌처(Gerd Gigerenzer)라는 인지과학자는, 9.11테러 사태가 일어나기 전과 후를 비교함으로써 미국인들이 비행기를 기피하고 대신 자동차를 이동수단으로 택했기 때문에 늘어난 교통량만큼 오히려 그 기간에 추가적으로 1,595명의 사망자가 증가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Simple tools for understanding risks: from innumeracy to insight', G Gigerenzer, BMJ 2003; 327 doi: 10.1136/bmj.327.7417.741 (Published 25 September 2003))
 
일반인들의 인식과는 달리, 비행기와 비교하면 자동차는 극도로 위험한 이동수단이다. 항공 운행이 시작된 이후 미국에서 비행기 사고로 죽은 이를 모두 통털면 약 1만 3천명정도이다. 하지만, 미국에선 '해마다' 자동차 사고로 사망하는 이가 앞의 숫자보다 3배나 더 많은 4만명이나 된다. 미국의 고속도로만 하더라도 매 주마다 점보제트기의 정원(450명 가량)을 가득 채우기에 충분할 만큼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을 정도이다.
 
다시 기거렌처의 연구로 돌아가 보자. 독자들 중에 어떤 이는 9.11테러 이후 이동수단을 자동차로 바꿈으로써 증가했다는 사망자 1,595명은, 9.11 테러로 인한 총 사망자 숫자(2800~3500여명 추정)보다는 여하튼 적은 것 아니냐고 지적할는지 모른다. 하지만 사태 당시 비행기에 타고 있던 사람의 숫자는 생각보다 적다. 우리가 비교해야 하는 것은 비행기 사고로 죽은 사람 숫자와 자동차 사고로 죽은 사람 숫자다. 아래는 9.11 테러 사태와 관련한 위키백과의 내용이다.


07시 59분 92명의 승객을 태운 아메리칸 항공 소속 AA11편이 보스턴을 출발해 로스앤젤레스를 향해 날아 올랐다. 이어 08시 1분 45명을 태운 유나이티드 항공의 UA93편이 뉴저지주에서 샌프란시스코로, 08시 14분 65명을 태운 유나이티드 항공의 UA175편이 보스턴에서 로스앤젤레스로, 09시 64명을 태운 아메리칸 항공의 AA77편이 워싱턴에서 로스앤젤레스로 각각 향했다. 08시 45분 AA11편이 항로를 바꾸어 세계무역센터 북쪽 건물과 충돌한 직후인 09시 3분 UA175편이 남쪽 건물과 충돌하였다. 09시 40분 AA77편이 워싱턴의 국방부 건물과 충돌하고, 이어 약 9시 59분 경 세계무역센터 남쪽 건물이 붕괴된 뒤, 10시 3분 UA93편이 피츠버그 동남쪽에 추락하였다. 10시 30분 경 세계무역센터 북쪽 건물이 완전히 붕괴되고, 이 여파로 인해 17시 20분 47층짜리 세계무역센터 부속건물인 제 7 세계 무역 센터 빌딩이 힘없이 주저앉았다. 세계 초강대국 미국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바뀌었고, 세계 경제의 중심부이자 미국 경제의 상징인 뉴욕은 하루아침에 공포의 도가니로 변하고 말았다. 미국의 자존심이 일거에 무너진 것은 차치하고, 이 세기의 대폭발 테러로 인해 90여 개국 2,800∼3,500여 명의 무고한 사람이 생명을 잃었다. 사건이 일어나자마자 CNN 방송망을 타고 시시각각으로 사건실황이 전세계에 생중계되면서 세계 역시 경악하였다. 이 사건으로 인한 피해는 4대의 항공기에 탑승한 승객 266명 전원 사망... (9·11 테러 (위키백과))


9.11사태가 일어났을 때 4대의 비행기에서 모두 266명이 사망했다. 이 사망자 숫자는 당해에 미국에서 유일했던 비행기로 인한 사망자 숫자이다. 물론 그해에도 자동차 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항상 그래 왔듯이’ 수만 명 수준이었다. 결국, 이 수만 명에 추가로 추가로 비행기에 대한 막연한 공포로서 자동차를 더 많은 사람들이 이동수단으로 사용하면서 9.11 사태 당시 비행기 사망자의 6배의 사람이 또 추가로 사망해버린 것이다! 정말 아이러니한 일이 아닌가?



안전한 의료와 합리적 사고

이렇게 사람들이 그냥 겉보기에 위험한 것을 피하려다가 실제로는 훨씬 더 위험한 것을 선택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다. 그런 대표적인 현장이 바로 의료현장이다. 많은 사람들이 현대의학을 무시하고 감정적 호소력이 큰 대체의료를 선택함으로써, 생명을 단축시키고 있다.

작년에 스티브 잡스가 사망했다. 사실 많은 전문가들은 스티브잡스의 경우 굳이 대체의료를 찾아 헤매지 않고 수술만 잘 했다면 생명을 건질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잡스의 전기작가 월터 아이작슨은 "잡스는 수술이 아닌 대체요법에 의존함으로써 생명을 구할 가능성이 있는 췌장암 치료를 9개월간 지연시켰다"고 말했다. 그는 오는 23일 방영될 예정인 CBS의 '60분(60 Minutes)'과의 인터뷰에서 "잡스가 배에 칼을 대고 싶지 않다면서 식이요법으로 치료하려 했지만 효과가 없었고 이후 수술을 미룬 사실을 후회하는 듯 보였다"고 전했다. 이에 앞서 하버드의대의 연구원인 램지 앰리도 최근 Q&A 사이트인 '쿼라'에서 "자신의 치료법을 선택하는 것은 자유지만 그 같은 상황에서는 잡스의 대체요법 선택이 조기사망의 요인이 됐을 수도 있다고 본다"고 지적한 바 있다. 잡스는 2003년 10월 췌장암 진단을 받았으나 수술을 거부하고 대체요법 치료를 받다가 9개월 후인 2004년 7월 수술을 받았었다. 앰리 연구원은 "암 적출수술은 화학요법이나 방사선치료 등에 비해 부작용이 거의 없는데도 대체요법에 몰두하는 동안 안타깝게도 종양이 계속 자라나 간으로 전이된 것"이라고 설명했다.('잡스가 선택한 암 치료법…대체의학 싸고 논쟁 가열', LA 중앙일보, 이원영 기자, 10.21.2011)


췌장암이 수술을 받더라도 5년 생존율이 5~10% 정도일 정도로 난치병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스티브잡스가 앓고 있었던 췌장암은 신경내분비종이었기 때문에 예후가 상당히 좋은 것으로 알려져있다.


흔히 췌장암(췌장 선장)이 분비관에 발생하여, 치명적인 예후를 가져오는 것과 다르게 이 신경내분비종은 천천히 자라는 경향이 있고, 몸의 다른 부위에 그렇게 빠르게 전이되는 것은 아니다. 즉 수술이 효과적이며, 이러한 환자의 5년 생존률은 87%에 달한다.('Did Alternative Medicine Extend or Abbreviate Steve Jobs's Life?', Scientific American, Jessica Wapner, October 27, 2011)


엄청난 부자였던 스티브 잡스가 제대로 된 의학적 조언을 받지 못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의사들의 과학적 판단, 확률적 판단을 믿지 않았았고, 차가운 느낌이 드는 현대의학보다는 대체의료쪽을 선택함으로써 자신의 생명을 단축시키고 만 것이다.

스티브 잡스처럼 확률적으로 더 안전한 정통의료를 무시하고 대체의료를 선택했다가 비극을 맞이한 유명인사들은 생각보다 많다. ‘빠삐용’으로 유명한 배우 스티브 맥퀸도 레트릴 요법 대체의료에 의존하다가, 또 중국의 국민여배우였던 천샤오쉬도 한의약 대체의료에 의존하다가 모두 치명적인 결과를 얻고 말았다. ( ☞ [중국리포트]중의학 존폐논쟁 ‘재발’ )

우리가 막연하게 감정, 편견으로 선택하는 일들이 때때로 어마어마한 생명에 대한 위협으로서 다가오기도 한다. 이런 일들을 예방하려면, 역시 확률과 통계에 대한 개념을 익히고 매사 머리를 비우지 않고 과학적으로 사고하는 방법을 익히든지, 이보다 쉽게는 적어도 믿을만한 과학 전문가의 얘기는 함부로 무시하지 않는 태도를 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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