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비준과 관련 “뼛속까지 친미 대통령”이라며 이 대통령을 비난하는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쓴 인천지법 최은배 판사에 대해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가 29일 책임을 묻지 않기로 결정한 가운데, 과거 노무현 정부의 대조되는 공직자 사적 발언 처벌 사례들이 속속 발견돼 흥미를 끌고 있다.
좌파진영이 사적 공간에 쓴 최 판사의 글을 보수언론과 대법원 등이 문제 삼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라는 논리로 현 정권을 독재정권으로 매도하고 있지만, 정작 과거 노무현 정부에서는 사적 공간에서 한 대통령 비하 발언 때문에 공무원이 강압적으로 옷을 벗거나 좌천됐던 사례가 여러 차례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2004년 1월 6일자 경향신문 ‘盧대통령 사생활 ‘루머’ 언급 여경 좌천 논란’ 제목의 기사에 따르면, 경찰청 특수수사과에 근무하던 모 경위가 사석에서 노 대통령 사생활에 대해 부적절한 언급을 했다는 이유로 서울시내 모 경찰서로 전보됐다.
보도에 따르면, 이 경위는 군장성의 뇌물비리를 수사하면서 예비역 소장 신모씨를 구속시키고 김동신 전 국방부장관을 불구속입건해 ‘장군 잡는 여경’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뛰어난 능력의 소유자였지만, 사석에서 재미로 언급했던 대통령 루머 발언 때문에 일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졌던 것.
당시 사석에서 했던 발언이 누군가에 의해 청와대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라갔고, 이는 경찰청의 즉각적 전보조치로 이어졌다. 당시 이 사건을 보도한 문화일보는 해당 기사에서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이 글이 올라와 있는 것을 확인한 뒤 곧바로 삭제했으며 경찰청에 ‘조용히 처리하라’고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당시 경찰청 관계자는 “아무리 사적인 자리라도 국가 공무원이 대통령의 사생활에 대해 근거없이 떠드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판단돼 감찰조사를 진행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특히 인터넷을 통해 내용이 외부에까지 공개돼 징계가 불가피했다”고 밝혔다.
사건의 주인공인 이 경위는 “시중에 떠도는 소문을 여경들이 모인 자리에서 말했을 뿐”이라며 억울해했다.
사적 술자리서 ‘노시개’ 했다고 열린우리당 안양시에 지휘자 사임 요구
또 다른 사례도 있다.
2004년 12월 19일자 한국일보 ‘술자리서 대통령 비하발언 안양시립합창단 지휘자 사임’ 보도에 따르면, 음악제 뒤풀이 술자리에서 ‘노시개’라는 구호로 건배를 제의했다는 이유로 안양시립합창단 상임지휘자가 사임한 일이 있었다. 당시 노 대통령 지지자로 보이는 네티즌은 안양시 홈페이지에 이 사실을 올리며 안양시의 사과와 지휘자 해임을 요구했고, 파문이 일자 그 지휘자는 열린우리당과 친노네티즌들의 압력에 못 이겨 결국 사표를 내고 말았다.
당시 열린우리당 경기도당은 성명까지 내고 “오씨가 스스로 물러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닌 만큼 안양시장은 오씨를 즉각 파면하라”고 촉구했다. 이에 대해 안양시민 양모(32)씨는 “지금이 유신시대도 아닌데 대통령을 비방했다는 이유로 사임해야 하는 현실이 서글프다”고 말했다.
열린우리당 홈페이지 게시판에 술김에 노 대통령 비하 내용의 글을 올렸다가 구속영장까지 신청된 경우도 있었다. 2004년 11월 16일자 세계일보 ‘“대통령 비방한 경찰관 구속까지...” 과잉처벌 논란’ 기사에 따르면 서울 영등포 경찰서 이모 경사는 당직 근무 중 술을 마신 상태에서 열린우리당 공식 홈페이지 ‘국민의 소리’ 게시판에 ‘노 정권은 하야하라. 김정일 2중대’란 제목의 글을 올려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로 구속영장이 신청됐다.
기사에 따르면 포털 사이트 야후에서 네티즌들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구속은 지나친 대응’이란 의견이 80%를 넘는 등 인터넷 여론은 싸늘했지만, 경찰의 구속영장 신청을 받은 검찰은 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이 경사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할 것이라 밝혔다.
당시 서울중앙지검 컴퓨터수사부는 “이씨의 표현이 지나치게 과격해 공직사회 기강확립 차원에서라도 구속 지휘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독립신문 노무현 저격 패러디는 수사 대상, 나경원 저격 패러디는 ‘표현의 자유’
노무현 정권은 사적 공간에서의 대통령 비하만 문제 삼은 게 아니다. 패러디 수위가 심하다며 노 대통령을 조준하는 만평을 게재한 독립신문 신혜식 대표 등 2명을 협박미수 등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당시 열린당 전병헌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아무리 표현의 자유를 인정한다 해도 이것은 그 금도를 넘어섰다”며 “이에 우리당은 현직 대통령에 대한 ‘사이버 저격 사건’에 대하여 검찰의 신속하고 엄중한 수사를 촉구한다”고 말했다. 당시에는 현재 좌파진영의 주장처럼 ‘표현의 자유’ 측면에서 논의가 개입될 여지는 전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대통령에 대한 저격 만평이 금도를 어겼다며 독립신문을 비난했던 좌파진영은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는 인터넷에 나경원 후보 저격 패러디물을 유포시키며 나 후보 비방에 열을 올리는 이중적 태도를 보인 바 있다.
이처럼 몇 가지 사례에서 보듯 과거 노무현 정부와 좌파진영은 사적 공간에서 조차 공무원의 대통령에 대한 일체의 비하 발언이나 비판을 원천봉쇄하는 모습을 보인 바 있다. 현재 최은배 판사에 대해 ‘표현의 자유’를 앞세워 옹호하는 것과는 극명히 대조를 이룬다.
폴리뷰 박한명 편집장은 이에 대해 “그와 같은 사례들은 현 정부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노무현 정부가 표현의 자유를 억압했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면서 “그리고 공무원의 대통령 비하 발언을 처벌했던 노 정권 당시 기준에 따르면 최은배 판사는 분명히 법복을 벗어야 하는 당연한 처벌감”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공직자로서의 품위보다 소영웅주의에 빠진 듯 보이는 최 판사의 언론 플레이도 보기 좋지 않지만, 과거 자신들이 지지했던 정권에서 똑같은 일을 어떻게 처리했는지는 깡그리 잊고 ‘표현의 자유’를 앞세워 현 정부만을 습관적으로 매도하는 언론의 태도도 이제 그만 버려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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