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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 ‘빨갱이’만 외쳐선 자유민주주의를 지킬 수 없다

한국사교과서 좌편향, 과격한 ‘국정화’나 ‘반공’ 방식으론 해결 못해…’좌파 역사관’과 경쟁해 이기겠다는 전략적 마인드 갖춰야

어제 국회 의원회관에 열린 ‘2020 역사교과서 이대로 가르칠 것인가?’라는 토론회에 다녀왔다. 국사교과서연구소와 자유한국당 교육위원회가 주최한 토론회였다. 이날 첫 번째 발제자는 전 원광대 역사교수 이주천, 두 번째 발제자는 자유민주연구원의 양일국, 세 번째 발제자는 국사교과서 연구소장 김병헌이었고, 토론은 명지대 교수 강규형이 맡았다. 이 중 이날 토론회의 가장 핵심적인 발제역을 맡아 열성적으로 토론에 임했던 이주천의 내용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가 성토하다시피 쏟아낸 많은 지적과 주장들은 나로 하여금 지금의 한국사교과서 문제에 대해 다시금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민중민주주의와 민족사관에 입각한 한국사교과서

이주천은 검정을 통과한 대부분의 역사교과서가 객관성을 상실했다고 주장하였다. 당대사 내용을 필요 이상으로 많이 담고 있으며, 현 정권에 대한 미화가 심하다는 것인데, 이는 정확한 시각으로 보인다. 가령 그가 지적한 ‘세계가 인정한 한국의 촛불 혁명’이라는 교과서 표현은 내가 보기에도 교과서라기보다 정당 광고 문구에 들어가기 더 적합한 표현이라 여겨진다. 이렇게 역사에 대한 강한 주관적인 평가가 배어 있는 표현들만 봐도, 검정을 통과했다고 하는 문제 교과서들의 질적 수준을 가늠하게 해준다고 생각된다.

이주천이 이날 지적한 내용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중학교 교과서 한국 현대사 부분 앞장 연표에 대한민국 대통령 중 김대중부터 이름이 등장하고 이전의 대통령들은 빠져 있다는 점이었다. 이 점은 그가 주장하듯, 민중을 역사의 원동력으로 평가하는 민중민주주의와 민족사관에 입각하여 ‘87년 체제’ 이후 만을 대한민국사의 정통으로 보는 시각이 반영된 것이다. 

나는 이러한 특징이 현행, 그리고 올해 채택될 한국사교과서 모두에 관통하는 본질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즉, 근현대사에 대한 한국사 교육의 접근 방식이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과 같은 인문학적 내러티브에 억지로 구겨 넣어진 상태로 학생들에게 사회적 시각(social view)의 정형화를 강요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학생들을 독립적인 인격을 가진 개인으로서 성장시키기 위한 교육이 아니라, 집단 투쟁의 재원으로 양성시키는 교육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른바 사회주의적 갈등론에 바탕을 둔 사상교육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산업화 있어 민주화 가능했다’ 주장은 피해야…자유가 더욱 중요

하지만, 이주천이 말한 ‘부모가 없는데 자식이 있을 수 없듯 산업화가 없었다면 민주화도 이루어질 수 없었다’는 주장은 조심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가장 큰 이유는 민주화 (democratisation)자체가 자유민주주의가 아닌 이상은 한 사회의 선진성과는 아무 연관도 없기 때문이다. 애당초 한 사회의 경제적 수준은 그 사회의 (민주주의가 아닌) 자유주의의 수준과 밀접히 연관된다. 

유럽 등의 서구권이 오늘날 잘 살고 있는 듯 보이는 것은 민주주의를 해서가 아니라 ‘민주주의에도 불구하고’ 시민 사회에 내재화된 자유주의라는 확고한 사회적 자산이 있어 숱한 시행착오를 그나마 극복한 덕분이다. 좌파학자들은 독점 자본가들의 무역 갈등과 시장 경쟁이 20세기 세계대전을 초래한 본질적 원인이라고 주장하지만, 애당초 국민 총동원 체제로 펼쳐졌던 세계 대전은 선거권 확대와 같은 민주주의 확산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실제로 영국사의 경우를 보면, 영국이 유럽의 다른 나라들 보다 먼저 산업혁명이 일어나게 된 이유를 현행 세계사 교과서들은 풍부한 석탄 매장이나 정치적 안정 등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는 정치가 경제 보다 선행, 혹은 우위에 있는 것으로 보는 듯한 해석이다. 그보다는, 영국은 조지안 시대(Georgian Era, 1714-1837) 이래로 작은 정부의 원칙이 잘 지켜져 온 결과 (영국은 프랑스 등의 유럽 대륙국가들과 달리 유난히 정부의 역할이 작은 나라였다) 무역과 시장의 자유도가 다른 어느 나라보다 발달했다는 점에서 영국 산업혁명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 시장의 역사가 오래된 영국, 일본과 같은 나라에서 각각 서양, 동양의 자유주의의 흐름이 선도 되어 온 세계사 역시 이와 무관치 않다. 

‘빨갱이’만 외쳐선 자유민주주의를 지킬 수 없다

그보다 이주천의 견해에 개인주의자로서 내가 선뜻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은, ‘자유민주주의는 반공노선으로만 지켜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소위 ‘빨갱이’라는 표현을 불필요하게 자주 쓰는 우파 지식인들을 볼 때 느끼는 나의 불편함 역시 이와 맞닿아 있기도 하다. 자유민주주의는 반공노선 보다는 개인주의와 자유주의의 증진을 통해 더 잘 지켜질 수 있다고 나는 주장하고 싶다. 물론 한국 현대사에서 이승만, 박정희 시대에 반공의 의미는 결코 지금의 시각으로 판단되어 져서는 안되며 그 의미를 과소평가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20세기 초반 이래로 사회주의적 시각은 이미 세계적인 차원에서 학문과 언론 등에 깊숙이 영향을 미쳐왔다. 물론 유럽에서도 (아이러니 하게 학계와 언론계의 친사회주의적인 좌파 성향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사회주의자임을 떳떳하게 밝히는 것이 쉽지는 않다. 영국과 미국은 더더욱 그런 편이어서 제리미 코빈과 버니 샌더스가 결코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한) 인기는 몰 수 있었을 지 언정 이들을 내세운 선거나 경선의 결과는 패배였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이들의 패배는 결코 영국과 미국이 반공 정신이 강해서라기 보다는 개인의 자유에 대한 권리가 성문헌법과 불문헌법 상 워낙 확고하게 신념화 되어 있기 때문이다. 

내 재산이 먹고 살 수준이 되도록, 내 신체가 건강하고 편안해지도록, 국가가 나서야 한다는 (당연히 그 대가로 나는 내 재산과 신체에 대한 국가의 간섭을 허용하게 됨에도 불구하고) 생각이 영미권보다 한층 강한 한국사회에는 얼마든지 코빈이나 샌더스 같은 정치인들의 선동이 먹힌다. 실제로 소위 촛불 혁명이라고 말하는 광장 중우정치의 본질은 한국사회의 집단주의다. 달리 말하면 독립된 개인의 존재가 부족했던 것이다. 19세기 후반 이래로 내셔널리즘(Nationalism)이라는 거대 광풍이 강타했던 독일과 일본에서 결국 1920년대 말 경제공황 후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이는 독일인이나 일본인의 민족성이 배려가 없고 공격적이어서가 아닌, 상황과 조건이 하나의 사회 집단을 어떤 식으로 작동시키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역사학의 역할은 선악재판이 아닌, 인간에 대한 통찰을 주는 것

역사학의 역할은 누가 선하고 누가 악한지를 재판하는 역할이 아니다. 모순되고 나약한 인간이 자유롭고도 사이 좋게 행복을 추구해 나가기 위한 길을 모색하는 데 있어서 경제학과 사회학, 정치학, 법학, 과학, 의학 등 여타 학문적 접근에서 직접 구할 수 없는 통찰을 얻는데 역사학적 접근이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학생 개인에게 역사 교과서가 갖는 의미이자 역할도 본질적으로는 인간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있다.  

예전에 어느 역사 교사가 이영훈 등의 대안교과서에 대해 얘기하면서, ‘집필진에 역사학 전공자도 안 들어 간 책이 무슨 역사책이냐’고 말하던 기억이 난다. 21세기에도 아직 그렇게 사마천이나 투키디데스와 같은 관념으로 역사학을 이해하는 역사 교사가 존재하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길게 보고 갈 수밖에 없는 실정인 것이다. 한국사교과서 문제 역시도 ‘반공’과 ‘국정화’ 등의 방향 보다는 교과서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좌파 역사관과 경쟁해 나가기 위한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마인드가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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