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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자생물학 Essay] 16. 공유의식과 자리이타(自利利他)

개인주의는 국가, 사회, 가족을 파괴하고, 인간성을 말살하는 결과를 초래

[편집자주] 미디어워치는 입자생물학자이자 생명과학 철학서 ‘라이프사이언스’(해조음 출판사)의 저자인 이돈화 씨(블로그주소 http://blog.naver.com/gi1982)의 생명과학 철학 에세이들을 특별 연재합니다.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인간의 감각과 의식체계는 눈에 의하여 색을 감각하는 시각작용, 귀에 의하여 소리를 감각하는 청각작용, 코에 의하여 냄새를 감각하는 후각작용, 혀에 의하여 맛을 감각하는 미각작용, 몸에 의하여 접촉을 감각하는 촉각작용과, 감각한 것을 감수(感受)하여 감지(感知)하고 인지(認知)하고 인식(認識)하는 의식(意識, consciousness)과, 의식적으로 수용한 것을 분별하는 잠재된 자아의식(自我意識, self-awareness)과, 자아의식을 조절하는 무의식(無意識, unconscious)의 순으로 진행되며, 이러한 의식체계의 모든 복합적 과정은 신체의 감각기관과 감각을 화학적 신호로 변환하여 뇌의 감각수용체(感覺受用體, sensation receptor)에 전달하는 신호전달체계(信號傳達體系, signal transduction)의 물질적 작용을 동시에 수반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얻어지는 물질적, 의식적 상호작용의 복합적인 결과는 무의식에 저장하고, 물질적 작용의 이화학적 결과물은 염색체의 DNA에 저장하는 것으로 추정되며, 개인이 갖는 상호작용의 특성은 개성(個性, personality)과 다형성(多形性, polymorphism)으로 나타나고, 이러한 개성과 다형성의 표현은 일정한 특징적인 pattern을 이루며 각자의 성격(性格, personality)을 형성한다.

이렇게 형성된 개성과 다형성에 의하여 각자의 개념과 관념을 키워 나아가고, 자아를 형성하며, 자아의 분별능인 자가의식(自家意識, self-awareness)에 의하여 사고(思考, thinking)하고, 사유(思惟, conceptual mind)하여 사상(思想, thought)과 철학(哲學, philosophy)을 생산하면서 감정적 특성과 생명의 특성을 나타내기도 하고, 종집단(種集團, species population)의 공통된 공유의식(共有意識, sharing conscious)에 의하여 도덕적 관념(道德的 觀念, conscience)과 집단사회(集團社會, community)의 질서를 유지하는 규범(規範, standard)을 만들어 내기도 하며, 또한 인간사회의 공동체의식(共同體意識, community spirit)과 관념적 개념에 따라서 국가적 이념(理念, ideology)과 사회적 통념(通念, common notion), 개인적 신념(信念, belief)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국가적 이념과 사회적 통념, 그리고 개인의 신념이 생명의 존엄성과 평등성을 바탕으로 하는 보편적인 정서와 가치관 위에서 성립하지 않는다면, 국가적 이념이 시대의 변천에 따라 변하는 사회적 통념에 배치(背馳)되고, 개인의 신념적 노선과 상당부분 양립할 수 없도록 배치될 때, 국가의 존망과 사회의 질서와 개인의 안위(安危)가 위태로워진다.

집단사회의 보편적 정서와 모든 생명체들의 상리공생(相利共生, mutualism)의 바탕이 되는 이타적(利他的, altruistic) 가치관을 떠난 자리적(自利的, selfish)인 개인주의는 국가의 존망을 위태롭게 하고, 사회의 질서를 파괴하며, 가족사회를 붕괴시키고, 궁극에는 인간성을 말살하여, 자신의 인간적인 정체성마저 상실하게 하는 참혹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그러므로 가정과 사회, 국가의 구성원들의 생각과 추구하는 바에 공통분모가 크면 클수록, 그 집단은 안정되고 화합하여 결속력이 공고해질 것이며, 그 추구하는 바의 공통분모가 크고 이타적일 때는 그 집단은 더욱더 정의(註)로운 집단이 될 것이다.

(註: 정의는 바르고 의로움이다. 바르고 의로움은 드러냄도 아니요, 내세움도 아니요, 드러냄 없이 진실하게 당당하고, 내세움 없이 당당하게 겸양謙讓함이다. 진실함은 순수하고 참되어 거짓 없음이며, 겸양은 의義 아닌 것을 마주하여 비켜서고 물러서는 것도 아니요, 마주하여 부딪혀 다투고 시비하는 것도 아니요, 당당히 마주하여 손잡아 이끌어 화합함이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은 가정과 사회와 국가의 어느 집단에도 공익적인 화합의 공통분모는 찾아볼 수가 없고, 탐(貪)・진(瞋)・치(痴)의 공통분모만이 남아 오로지 자기주장, 자기욕심만 내세우기 때문에, 가정은 파괴되고, 정의로운 사회의 통념은 사라져 혼란하고, 국가는 정체성마저 상실한 채, 내뱉는 말마다 기어교설(欺語狡舌)이 난무하고, 악구망언(惡口妄言)이 횡횡하니, 감언이설(甘言利說)과 양구독설(兩口毒舌)은 제 세상을 만난 듯, 언도설로(言道說路)는 말 그대로 중구난방(衆口難防)이고, 일마다 참상(慘狀)이라 목불인견(目不忍見)이니, 세상은 바야흐로 아비규환(阿鼻叫喚)이다.

언론이 본분을 다하여 이끌면 대중은 지혜로우나, 언론이 경박해지면 대중은 천박해진다. 언론이 진중하고 엄정하여 무지몽매(無知蒙昧)한 투설격론(鬪說激論)에 사표(師表)가 될 때는, 대중은 의지할 바를 얻어 지혜롭고 슬기로워 세상은 덕을 잃지 않으나, 지금은 대중을 계몽(啓蒙)하고 세상의 정의에 대하여 바른 척도를 제시해야 할 언론이 본분을 잊고, 오히려 주장하는 바를 내세워 대중을 선동하고 경박스러우니 언로(言路)는 길을 잃고, 대중은 정의와 자존을 잃어 비루하고 천박해져, 험구(險口)를 놀려 세상을 어지럽히고 여러 사람에게 상처주는 것을 자유분방(自由奔放)으로 여기고, 제 주장 앞세우고 탐욕에 눈이 멀어 가질수록 부족하여 가진 자가 더 배고파하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

오늘의 모습을 보면 어제 일을 알 수 있고, 오늘 하는 일을 보면 자연히 내일의 모습을 알 수가 있다 하니, 이 시대에 몸담은 오늘의 삶이 미안하고 훗날이 근심되어, 다만 미안하고 부끄러울 뿐이다.


※ 본 칼럼은 입자생물학자인 필자(이돈화)의 拙著 ‘라이프사이언스’(해조음 출판사) p.130-132의 내용을 수정ㆍ보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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