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조대현 사장이 취임한 뒤 내뱉은 일성은 “공영방송의 역할을 제대로 보여주겠다”는 것이었다. KBS의 가장 절박한 문제인 수신료 인상도 조 사장은 KBS의 공영방송으로서 위상을 회복한 뒤의 일이라며 단단한 각오를 보여줬다. 그렇다면 조 사장이 취임한 2014년 7월 28일 이후 KBS는 과연 공영방송답게 탈바꿈 했나. 국가기관방송답게 다수의 국민을 대변하는 모습을 보여줬나. 그리고 KBS의 언론인들은 그에 걸맞는 도덕성과 품격을 보여줬나. 유감스럽게도 “그렇다”고 대답할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조 사장은 KBS 수장으로서 해야 할 당연한 책무를 저버린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후유증이 꽤나 컸던 문창극 전 국무총리 후보자의 교회 강연을 특정세력 입맛에 맞게 외눈박이 시각으로 왜곡 보도한 이들에 대한 징계를 하지 않았다. 조 사장은 길환영 사장 해임 과정에서 김시곤 전 보도국장의 발언을 왜곡해 악의적으로 사태를 키운 자들이 누군지도 밝히지 않았다. 그리고 최근 수습기자의 과거 신상을 털어 외부로 정보를 유출시킨 불법행위를 한 직원들이 누군지도 제대로 규명하고 있지 않다.
무너진 기강, 게이트키핑이 사라진 공영방송 KBS의 암담한 현실
다큐멘터리 ‘광복 70주년 특집 뿌리 깊은 미래 1편 - 생의 자화상’ 방송이 보여준 천박하고 편협한 역사관은 우리 역사에 대한 깊고 넓은 통찰력을 보여줘야 할 공영방송 KBS의 시사프로그램으로서 매우 부족한 것이었다. “전쟁 직후 한국군 작전권을 미군에게 넘긴 것에 대한 왜곡 비난, 흥남철수 때 미군에 의한 원폭 투하 소문이 대량 월남을 재촉했다는 거짓 선동을 포함해 반미, 반제, 반대한민국이란 코드가 방송 60분 내내 켜켜이 들어있었다. 지난 대선 때 등장했던 동영상 ‘백년전쟁’의 세련된 버전에 불과한 불량 프로그램” 이라는 조우석 문화평론가의 지적 그대로였다. 방송이 나간 후 비판 여론이 무섭게 일자 조 사장이 취한 것이라곤 4부작으로 기획된 프로그램을 2회만 내보낸 채 슬그머니 종영하는 방법이었다. KBS공영노조의 지적처럼 광복 7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의미가 깊은 프로그램인데도 게이트키핑도 제대로 되지 않은 채 전파를 탔다가 난리가 났고, 그 난리를 수습하는 과정도 정직하지 못했다. 도대체 수장이 있는 집단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습인지 어처구니가 없다.
조대현 사장이 취임 때 약속을 한 ‘공영방송의 역할과 신뢰 회복’은 아직까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잘못된 보도를 바로잡고 게이트키핑을 제대로 하는 것을 보도간섭이라고 주장하는 기자와 PD들의 요구대로 그들의 ‘보도 자율성’만 보호되고 있을 뿐이다. KBS언론노조를 비롯해 일부 직원들에게 조 사장은 이해심 많은 괜찮은 선배이자 ‘터치하지 않는’ 훌륭한 사장님일지 모르지만 많은 국민 눈에는 KBS 사장답지 않게 온갖 문제에 손을 놓고 수수방관하며 직무유기하는 무능한 사장에 불과하다. 오죽 답답하면 KBS 이인호 이사장까지 나서서 프로그램에 대한 시중 여론의 반응을 전달했겠나. 그 지적은 이 이사장이 아니라 조 사장이 했어야 했다. 일베 논란을 부른 수습기자 사태를 보면 조 사장은 소수파인 보수의 목소리 뿐 아니라 최대 조합원수를 가진 1노조의 목소리조차 제대로 듣지 않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김시곤 사태나 수습기자 논란이나 그 과정의 불법행위를 조사해 밝혀달라는 직원들의 합당한 요구까지 들은 척 만척 하는 걸 보면 귀 기울이는 대상이 KBS기자협회나 언론노조가 유일한 것이 아닌지 편협성도 미심쩍다. 만일 목소리 큰 쪽의 얘기만 듣는 것이라면 더 위험하다.
수습기자 사건 제대로 규명하고 처벌해 KBS 기강 세워야
모두가 알다시피 조대현 사장의 임기는 오는 11월까지다. 길환영 전 사장의 잔여 임기인 약 9개월 정도의 시간 밖에 남지 않았다. 먼저 9월에는 이사진이 바뀐다. 조 사장이 이 시간 안에 뭔가 커다란 공적을 남기기는 힘들다. 그게 쉬운 일이라면 역대 사장이 이미 다 했을 것이다. 조 사장은 취임할 때 KBS 직원들과 국민 앞에서 본인 입으로 한 약속만 충실히 지키면 된다. 지금부터라도 공영방송의 역할을 제대로 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된다. KBS 내부의 무너진 기강해이를 바로잡고 사라진 게이트키핑을 살려 일부 세력의 눈치 보기에 급급한 허약한 기회주의 사장이라는 오해를 불식시키길 바란다. KBS 내부 정치에나 빠삭하고 권력 잡기에 혈안이 된 권력형 기자들에게 좋은 선배로 남을 게 아니라 호통을 칠 수 있는 원칙 있는 리더십을 보여주는 사장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KBS에 의미 있는 족적을 남길 수 있다. 필자는 그 첫 출발로 신입기자 이지메 사건 수습을 꼽는다. 신입기자가 공영방송 기자로서 인성이란 자질이 부족해 보이는 건 동의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온갖 사회적 문제를 일으킨 보도와 프로그램으로 사회적 해악을 끼친 다른 기자들보다 현격히 떨어진다고 할 순 없다.
원칙에 따라 채용된 기자를 과거 익명의 바다에서 자유롭게 내뱉은 거친 말들을 이유로 여론재판해 기어코 무리에서 내보내 낭떠러지에 세우고야 말겠다는 집단에 굴복한다면 조 사장은 공영방송 수장으로서 자격이 없다. 자기들 입맛에 맞는 공영방송인의 자격 운운하며 한 사람을 집단적으로 조리돌림하고 왕따를 시키는 잘못된 행태를 바로잡지 못하는 이가 어떻게 그런 사회적 악행을 고발해야 할 공영방송 사장으로서 자격을 갖췄다고 할 수 있나. 조대현 사장은 ‘일베기자’ 논란을 의도적으로 만들어 확산시키고 마녀사냥을 한 당사자들을 반드시 찾아내 법대로 처벌해야 한다. 안타깝지만 조 사장이 입사해 승승장구해오는 동안 KBS의 위상은 거꾸로 갈수록 추락해왔다. 세력 간의 기득권 다툼, 정치권력에 줄 댄 공공연한 정치행위, 그 틈에서 살아남기 위한 ‘처세술’만 발달한 구성원들로 가득한 KBS가 공영방송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 거라고 누구도 믿지 않는다. 뭐든 기본이 바로 서야 발전할 수 있다. 조 사장은 KBS가 공영방송다운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기본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
박한명 폴리뷰 편집국장, 미디어워치 온라인편집장 hanmyoung@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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