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동방예의지국이라는 것도 옛말이다. 사회 곳곳에 노인혐오가 팽배해 있는 까닭이다. 이를 부채질하는 것이 진보좌파진영이다. 열린우리당 시절 쏟아져 나왔던 노인 비하 발언을 떠올려 보라. 여기에는 세대 간의 헤게모니를 둘러싼 대립이 숨어 있다. 진보진영의 주축을 이루는 386세대가 이 나라의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기억을 간직한 세대가 사라져 줘야 한다. 산업화의 신화를 보존하고 있는 노인들이 386의 역사관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진보진영이 노인들에 대해 덧씌운 혐의가 있다. 젊은 세대가 겪는 현재의 경제적 고통을 모두 그들 탓으로 돌리는 것이다. 이들 주장에 따르면 한국 노인들은 온통 부자들뿐이다. 그들이 부동산을 장악하고, 연금을 펑펑 타 먹는 탓에 젊은 세대가 빈곤해 진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런 얘기는 다 맞는 것도 아니고 다 틀린 것도 아니다. 한국사회의 급속한 산업화로 인해 곳곳에서 불균형이 발견되는 것은 맞다. 그 가운데서도 대기업 집단과 부동산 재벌들은 젊은 세대가 결코 따라갈 수 없는 격차를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세대 간의 헤게모니 게임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자산시장과 노동시장을 구분해서 봐야한다. 자산시장은 소위 ‘마태효과’가 발생하는 곳이기 때문에 소수의 사람들이 다수의 파이를 점하게 된다. 자산시장을 노인들이 장악한 것은 맞지만 그들은 비율상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노동시장의 경우는 다르다. 노동시장은 그 특성상 세대 다수에게 혜택이 돌아간다. 이런 시각으로 접근하게 되면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복 받은 세대는 노동시장을 장악한 386세대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젊은이라고 하는 것은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존재다. 지금 20대들은 취업이 안 되는 현실을 두고 스스로를 저주받은 세대라고 하는데 이건 역사적 진실에서 어긋난다. 대한민국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곧장 취직하던 것은 특정시기에나 가능했던 일이다. 1960년대 중반 이 나라의 젊은이들은 취업할 곳이 없어 독일에 광부와 간호사로 노동력을 팔러갔다. 그 시대 젊은이들이 현재보다 더 심한 취업난에 시달렸다는 증거다. 4.19라는 청년혁명이 미완으로 끝난 데다 실업난이 크게 작용했다. 1960년 당시 실업률은 34%에 달했다.
지금의 20~30대 젊은이들은 한국현대사에 대한 무지 때문에 386세대의 추종집단으로 전락했다. 대한민국이 현재와 같은 공업국가로서의 틀이 형성된 것은 197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다. 박정희 정권의 중화학공업정책의 결과다. 그 시기에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천지개벽을 했다. 수 천 년 동안 땅 파먹고 살던 농경민족이 기름밥 먹는 국가로 급격하게 변신했다. 이 과정에서 공업시스템에 쉽게 적응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가운데 큰 격차가 발생했다. 이것은 개인뿐만이 아니다. 지역차별을 논할 때도 공업시스템에 쉽게 적응한 지역과 소외된 지역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렇다면 세대 간의 유불리를 따질 때도 바로 그런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한국 노동시장의 세대유입을 살펴보려면 현재 대한민국을 먹여 살리는 회사들이 언제 설립되었는지를 보면 된다. 현대자동차가 1967년, 포항제철이 1968년, 삼성전자가 1969년, 현대중공업은 1972년에야 설립되었다. 그러나 제대로 된 회사로 정착한 것은 197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였다. 그 예로 포항제철이 처음으로 쇳물을 쏟아내기 시작한 것이 1973년이었고, 현대자동차가 포니를 시판한 것은 1976년의 일이었다. 그렇다면 중화학공업정책의 수혜자집단이 어느 세대였는지는 명확하다. 1970년대 중반부터 1997년 외환위기가 오기 전까지 약 20년 동안 사회에 진출한 세대, 즉 베이비붐 세대에서부터 386세대까지다. 지금 젊은이들이 당연한 통과의례라고 여기는 ‘졸업 후 취직’ 패턴은 그 세대에서나 가능했던 일이다.
노조의 사유화 현상
선진국에서 노인들이 연금을 펑펑 타 쓰면서 미래세대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것을 ‘유산효과’라고 한다. 지난 2008년 미국금융위기 당시 미국 자동차회사들은 은퇴한 직원들의 연금 때문에 빚더미에 앉아 있었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산업화의 역사가 다르기 때문에 유산효과 역시 다르게 나타난다. 한국은 은퇴한 직원들 때문이 아니라 현재의 간부급들이 유산효과의 주범이다. 이것이 모든 것을 노인들 탓으로 돌릴 수 없는 이유다.
비공식적인 자료에 의하면 대표적 기업의 노조구성원 가운데 약 절반 정도가 386세대로 나타난다. 이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으로 보인다. 우선은 최다고용이 실시된 것이 1980년대 중반 3저 호황시기부터 외환위기 이전까지 10여 년간 이었다는 점이다. 이 시기 사회에 진출한 것이 386세대였다. 또 하나는 외환위기 당시 베이비붐 세대가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었다는 점이다. 386세대는 그때 급여 대비 한창 효율이 오르던 시절이어서 구조조정을 피해갈 수 있었다. 이들은 수적으로만 많을 뿐 아니라 현재 엄청난 고임금을 받는 계층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노동임금이 가파르게 상승한 시기는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부터다. 그들은 손쉽게 취업했을 뿐 아니라 처음부터 높은 노동보상을 받은 유일한 세대다.
문제는 이들이 미래세대 노동자들의 시장진입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다. 386운동권 집단이 이념을 사유화한다는 지적은 많다. 그런데 이는 노조의 사유화라는 또 다른 결과를 낳았다. 현재의 대기업들이 몇몇 가문의 것이 아니듯이 대기업의 노조가 특정 세대만의 전유물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대한민국 노조는 이미 386세대의 수중에 완벽히 떨어졌다. 이 세대에서 소위 강남좌파가 집중적으로 출현한 것도 철밥통을 꿰찬 세대기 때문이다. 특히 현대자동차 노조가 ‘장기근속자 자녀 우선 채용’을 기어이 관철시킨 것을 고려해 보자. 이제는 현재의 귀족노동자가 미래세대의 노동자를 착취하는 세상이 되었다. 이런 현실에서 젊은이들은 여전히 노인들 탓만 하고 있을 것인가?
박정희의 경제발전 공을 인정하지 않기 위해 진보진영에서 만들어 낸 논리가 있다. 그 시대 경제발전은 박정희라는 지도자 덕이 아니라 국민들 모두가 피땀 흘려 노력한 결과라는 것이다. 일견 일리 있는 얘기다. 그렇다면 한국 경제발전의 최고 공로자들은 두 말할 필요 없이 지금의 노인들이다. 그러나 현재 노인들의 자살률이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는 것은 그들이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386세대가 정말 양심 있는 집단이라면 부모세대에게 고마워 할 줄도 알고, 자신들 때문에 취업에 제한을 받는 후배들에게 미안해 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입만 떼면 노인들 폄훼에 젊은 놈 때리기가 난무한다. 그도 부족해서 수 십 년 전 학생운동 이력은 끝도 없이 팔아먹는다. 도대체 언제까지 울궈 먹고, 얼마나 더 챙겨먹어야 직성이 풀릴까? 흔히 386정치인들에 대해서 ‘싸가지 없다’는 평판이 있는데 이것은 이 세대 전체를 아우르는 ‘세대정체성’이다.
이런 배은망덕한 집단은 한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서구의 68혁명 세대, 일본의 단카이 세대 역시도 경제부흥의 과실은 과실대로, 혁명의 전리품은 전리품대로 다 챙긴 세대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겪고 있는 젊은 세대의 취업난은 사실 저 가증스런 세대가 뒤에 오는 세대에게 떠넘긴 유산효과 때문이다. 이런 현상을 보노라면 세상은 정말로 공평하지 않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다.
이제 젊은이들은 386세대에 대한 불인정투쟁에 나서야 한다. 저들이 만들어놓은 혁명의 신화를 극복하고 자신들의 역사관을 정립해야 한다. 386의 역사관을 계승하는 한 20~30대는 그들의 노예이자, B급 노동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과잉평가 된 투쟁의 역사를 제자리로 돌려놓고, 그들을 또 다른 착취자로 역사에 기록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젊은이들이 할 수 있는 저항의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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