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둥성 무염원은 신라 무염대사와 무관"

연합뉴스 master@yonhapnews.co.kr 2008.01.15 07:36:00

박현규 교수 "재당 신라인 시주에는 참여"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중국 산둥반도 동쪽 끝 곤유산 남쪽 기슭에 자리잡은 무염원(無染院)이란 사찰은 당나라 말기에 중건될 때 재당 신라인이 시주자 중 한 명으로 참여한데다, 마침 그 이름이 신라말을 대표하는 저명한 승려 무염선사(無染禪師)와 같아 모종의 관계가 있다는 추정이 있어왔으나 이는 잘못된 것이라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한중문화교류사 전공인 순천향대 중문과 박현규(50) 교수는 최근 발간된 신라사학회 기관지 '신라사학보' 11집에 기고한 '산둥 무염원과 신라자료 검토'라는 논문에서 무염원의 창건시기와 사찰 명칭의 유래, 그리고 당나라 말기인 광화(光化) 4년(901) 이곳을 중건할 때 그 기념으로 세운 무염원비 기록 등 세 가지를 고찰한 결과 이런 사실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우선 무염원이 창건된 시기로 문헌기록의 신빙성이 떨어지기는 하나, 후한시대가 거론된 점으로 볼 때 신라말에 활약한 무염선사, 곧 낭혜화상(朗慧和尙.812-888)과 연결짓기는 매우 곤란하며, 사찰 명칭 유래도 무염선사와 연결할 수 있는 고리가 없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무염원이 중창된 시기가 신라에서 태어나 당나라에 유학한 무염선사가 신라로 도로 귀국한 지 무려 50년 뒤라는 점에서도 무염원과 무염선사의 연결 고리가 성립되는 데 커다란 장애가 된다고 덧붙였다.

또 박 교수는 901년 무염원을 중건하면서 그 기념으로 세운 무염원비(無染院碑)라는 금석문 분석을 통해 기존 한국학계에 알려져 있듯이 김청(金淸)이란 재당 신라인이 막대한 시주를 했지만, 중건을 추진한 각계 각층의 인물 50여명 중 한 명에 지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무염원이 김청이란 한 사람의 주도로 중건된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박 교수는 김청이란 인물은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문에 의하면 김청은 계림(鷄林.신라) 출신으로 고향을 떠나 청사(靑社.산둥반도)로 와서 지금의 저장성(浙江省) 일대를 오가는 해상무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무염원비의 시주자 명단 제일 첫머리에는 당말 혼란기에 중국 남쪽에서 오월국(吳越國)을 세우는 전류(錢류<謬에서 言 대신 金>)라는 사람이 올라있다.

박 교수는 "비단 전류뿐 아니라 비문 시주자 명단에는 당시 오월 지역을 통치하던 관원들이 대거 올라 있는 점으로 보아 재당 신라인 김청이 이들과 함께 오늘날 산둥반도에다가 사찰을 세웠을 것"이라면서 "훗날 오월국은 고려국과도 긴밀한 교류를 하는데, 김청으로 대표되는 재당 신라인과의 인연이 바탕이 된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볼 문제"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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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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