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원(元)대부터 티베트 영유권 주장>

연합뉴스 master@yonhapnews.co.kr 2008.03.16 15:15:00

청조 때 실제 편입..19세기 영국 개입으로 국제화



(선양=연합뉴스) 조계창 특파원 = 중국이 티베트 지역을 강제로 자국의 영토로 편입한 시점은 청나라 때인 1720년이었지만 이미 원(元)대로부터 자국의 영토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중국과 티베트의 본격적 교류역사는 당나라 이전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티베트인들은 인도에서 발원한 불교사상을 독특한 티베트불교로 발전시켰고 '티베트가 세계의 중심'이라는 철학을 갖고 있었다. 이런 자부심을 바탕으로 탄생한 국가가 바로 토번(吐蕃)제국이었다.

특히 토번 왕조의 숭쳰감포는 7세기 초 티베트 고원을 평정, 통일국가를 세우고 당나라와 대등한 지위에서 접촉을 갖기 시작했다. 토번제국 붕괴 이후 일부 티베트 세력은 송(宋)나라와 조공책봉관계를 맺기도 했다.

원(元)대에 이르러 중국과 티베트는 독특한 관계를 맺게 된다.

티베트불교의 싸카파 종파가 원나라를 세운 몽골의 도움을 받아 정교합일 정권을 수립했던 것이다.

당시 칭기즈칸의 손자 고댄과 티베트의 고위승려 사카파디따 사이에서는 티베트가 원나라 황실에 대한 종교적, 정신적 지지를 제공하고 대신 원나라는 티베트에 군사적, 물질적 원조를 제공하는 '최왼' 관계가 수립됐다.

중국은 이를 근거로 티베트가 원나라 때 이미 자국 영토의 일부였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티베트는 5대 달라이 라마 정권 시절 1643년 티베트 전역을 통일한 서몽골 세력으로부터 통치권을 넘겨 받아 또 한번 통일국가를 가질 수 있었다.

5대 달라이 라마는 1653년 청나라를 방문해 황제를 만났다. 청조는 정치적 고려에 따라 달라이 라마를 우대하기는 했지만 몽골 세력 축출을 명분으로 1720년 티베트 전역을 장악했다.

이를 기점으로 청조는 막대한 영토를 거느린 제국으로서 위상을 확립했고, 이후 중국에게 티베트는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영토라는 인식이 자리잡게 된다.

하지만 1840년 영국과 아편전쟁 이후 청조가 쇠락의 길을 걷고 제국주의 열강의 아시아 침략이 본격화하면서 티베트문제는 국제적 성격을 띠게 된다.

인도를 식민지로 만든 영국은 아프가니스탄을 완충지대로 삼아 러시아의 남하를 막고, 티베트를 중국의 위협으로부터 인도를 지키는 완충지로 설정한다는 전략을 구사했기 때문이다.

영국은 티베트와 국경분쟁을 일으켜 두 차례 전쟁을 치르면서 1904년 8월에는 라싸까지 진입했고, 영국의 이런 행보를 중국은 티베트를 독립시켜 자국에서 떼어내려는 의도로 받아들였다.

1913년 10월 북인도의 삼라에서 열린 중-영-티베트 3자 회의에서 중국과 티베트가 독립을 놓고 충돌하자 영국은 '삼라조약'으로 불리는 11조의 조정안을 제시했다.

조정안은 티베트를 내장(內藏)과 외장(外藏)으로 분리하고, 외장에 대한 티베트의 자치를 인정하며, 중국 정부는 외장에 군대와 관리를 파견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지만 중국은 인정하지 않았다.

당시 영국은 중국을 배제한 가운데 티베트 대표에게 인도와 티베트 국경을 획정한 맥마흔선에 대한 서명을 받았다. 이는 향후 중국과 인도 사이에서 빚어진 국경분쟁의 불씨를 남겼다.

청조가 망한 뒤에도 국민당 정부는 세 차례나 티베트와 무력 충돌을 빚기도 했다. 또 티베트는 제2차대전과 국공내전으로 중국이 혼란한 틈을 타 1941년부터 1950년 1월까지 국제무대를 상대로 외교활동을 벌여 독립국가로 인정받으려는 행보를 재촉했다.

이런 티베트의 움직임은 결국 1950년 10월 중국인민해방군의 공격을 야기했다. 티베트는 막대한 인명피해만을 남긴 채 1951년 5월 중국과 총 17조로 된 '티베트의 평화적인 해방방법에 관한 협의'를 체결했다.

하지만 티베트를 중국의 한 지방으로 인정한 협의에 티베트인들은 강력히 반발했고, 저우언라이(周恩來)가 달라이 라마를 두 차례 만나 반발을 무마해보려고 했지만 1959년 라싸에서 일어난 대대적인 민중봉기를 막을 수는 없었다.

봉기는 중국 인민해방군에 의해 강제 진압됐고, 이후 티베트는 칭하이(靑海) 등 일부 성으로 쪼개져 편입되고 나머지 지역에 시짱(西藏)자치구가 세워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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