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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 학도지원병, 기억과 망각의 정치사

학도지원병 출신자들이야말로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반일종족주의라는 참담한 정신문화와 반일강박관념의 정신세계를 가공해 낸 장본인들

[정안기 · 전 고려대학교 연구교수(경제학 박사)]

지난 2018년 1월 23일 행정안전부는 ‘일제의 조선인 학도지원병 제도 및 동원부대 실태 조사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고려대학교 한국사연구소가 행정안정부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 연구용역을 받아 수행한 것이다. 보고서는 태평양전쟁기 조선인 학도 4,385명이 일본군에 입대한 것을 두고 ‘지원을 가장한 강제동원’으로 간주하는 한편, 일본군을 탈영해서 독립군에 투신했던 학도지원병을 독립유공자로 인정해서 서훈/헌창할 것을 주장한다.




이 보고서가 더욱 당혹스럽고 불편하게 하는 것은 학도지원을 대한민국 독립운동으로까지 격상시켜야 한다는 역사정책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과연 학도지원은 일제의 기만에 의한 강제동원이었고, 민족의식으로 충만한 독립운동이었는가.

보고서는 학도지원 적격자 6,203명 가운데 4,385명이 일본군에 입대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보고서는 학도지원병의 지원과 선발의 실상을 총체적으로 누락하면서 지원자를 곧바로 입대자로 간주하는 등 황당한 내용으로 가득하다. 구체적인 사실관계는 차치하더라도 보고서의 주장과 같이 4,385명의 입대자를 제외한 1,818명의 지원 기피자 혹은 거부자의 존재는 무얼 의미하는가. 
  
또 다른 자료에 따르면, 학병지원은 접수 기한을 넘긴 비공식 열성 지원자와 함께 징병검사 기피자 그리고 지원 부적격자도 부지기수였다. 당시 경성제대 출신으로 지원을 거부하고 스스로 학도징용을 자원했던 서명원에 따르면, “1차 신체검사를 한 뒤 2차에 빠졌기 때문에 마감일을 넘길 수 있었다. 마감일을 넘기고 징용을 가면 그만이었다”고 거리낌없이 증언하고 있다. 

학도지원병은 입영과 함께 3개월의 초병교육을 마치고 간부후보생을 지원해서 일본군 장교로 변신할 수 있었다. 일본군 장교가 된다는 것은 당시 조선인 청년들의 비원이자 선망의 대상이었고, 경제적 안정과 함께 사회적 지위를 보장하는 입신출세의 지름길이었다. 그래서 당시에는 학도지원은 ‘천재일우의 기회’로도 회자되었다.

간부후보생 합격자는 후보생 집체교육과 예비사관학교 그리고 견습사관을 거쳐 일본군 초급장교로 임관하였다. 간부후보생 합격자는 높은 전사율을 기록했던 남방전선 파병도 유예되었다. 
  
그래서 간부후보생 선발 전형은 61.3퍼센트에 달하는 치열한 경쟁율을 기록했고, 한여름 무더위의 집체교육에서 방독 마스크를 착용한 10키로미터 완전군장 구보를 완주하는 초인적인 정신력을 발휘하였다.

보고서에서 독립투사로까지 둔갑하는 탈영자는 병영생활의 부적응과 간부후보생의 탈락 비관 그리고 남방전선 파병에 따른 죽음의 공포 때문이었다. 어려서부터 손에 물한방울 제대로 묻히지 않고  금지옥엽으로 성장한 이들에게 일본군 생활은 고역 그 자체였다.  
 
1920년을 전후해서 출생한 학도지원병 출신자들은 당시 2,400만 조선인 가운데 당대 최고의 출세지향주의 고등교육을 받은 소수의 행운아들이자, 수혜자들이었다. 이들은 1950~80년대 한국사회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각계각층에서 유력자층을 형성하였다. 

대표적인 인물은 언론인 장준하를 시작으로 고려대 총장 김준엽, 야당 정치인 이철승, 한국인 최초의 추기경 김수환, 육군참모총장 장도영, 박정희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실장 김계원, 방송작가 한운사 등등이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사회적 지위와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당대의 시대정신을 규정하였다. 



이들은 충량한 황국신민의 기억과 입신출세의 출세욕, 보다 평안한 군대생활, 목숨부지의 적나라한 욕망을 망각하였다. 대신에 일본을 ‘공공의 적’으로 삼아 ‘민족의 십자가를 걸머진 젊은 지식인’ 혹은 ‘조국의 광복을 앞당기기 위하여 영특하게 헌신한 민족의 투사’ 라는 터무니없는 기억만을 재생산하고 사회화시켰다.

‘지원의 자발성’이라는 학도지원의 수치심이 이들 스스로의 심성을 왜곡시키고 의식·무의식 세계마저 구속하고 말았다. 이들의 기억과 망각의 정치성은 20세기 후반 민족주의 역사학과 야합하면서 ‘반일민족주의 역사관’의 형성과 확산에 결정적으로 기여하였다.  
  
이들 학도지원병 출신자들은 일제의 기만과 선동에 넘어가는 바보/천치도 아니었지만, 강제동원의 피해자/독립투사도 더욱 아니었다. 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일본 국민이었고, 유년기 이래 철저한 황민화 교육을 받으며 성장한 전무후무한 세대였다.

이들은 적나라한 욕망을 천황에 대한 충성심과 애국심으로 곱게 포장할 줄도 알았지만, 국가 명령에 대한 복종, 충성, 희생의 고귀함도 일찍부터 체득했던 ‘충량한 황국신민’ 혹은 ‘국가주의 정신세계’로 얼룩진 친일 세대였다. 

이들은 조선인 최고의 유력자와 자산가층의 아들로 태어나서 유년기부터 유복한 생활과 자유분방한 학창생활을 보낸 자유로운 영혼의 대명사였고, 친일 엘리트를 대표하는 ‘제국의 협력자’들이었다. 이들의 존재야말로 20세기 제국주의 식민지 어디에서도 실시된 적이 없던 1944년 징병제가 식민지 조선에서 실시될 수 있었던 사회적 조건이었다. 

지난 행정안전부 보고서는 정부가 나서서 학도지원병의 역사를 왜곡하고 이들의 터무니없는 기억과 신화를 역사화하는데 앞장설 것을 촉구하였다. 친일 엘리트를 대표하는 이들 학도지원병을 독립유공자로까지 헌창하라니 참으로 황당하고 당혹스러운 주문이 아닐 수 없다. 

역사는 결코 돌이킬 수 없는 당대인들의 가열한 선택이다. 이 점을 고려하면, 정부가 특정의 이념과 잣대로 시대와 역사를 재단할 수 있다는 오만과 편견을 버려야 한다. 역사는 역사가들의 전문 영역이며, 결코 정부가 나설 일이 아니다.

이는 이 정부가 그렇게도 적폐로 몰아서 단죄하고자 하는 지난 정부의 전철을 밟는 일이다. 또 다른 거악과 적폐를 쌓는 일이다. 작금의 대한민국은 자국사를 날조/왜곡해서 후세들의 영혼을 훔치는 그런 터무니없는 일에 국력과 시간을 낭비할만한 그런 한가한 21세기를 살고 있지 않다.

단언컨대, 이들 학도지원병 출신자들은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반일종족주의라는 참담한 정신문화와 반일강박관념의 정신세계를 가공해 낸 장본인들이라는 분명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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