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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무장공비 청와대 습격 사건' 우리는 잊지 않겠다"

활빈단 등 애국단체 故 최규식 경무관 추모 호국안보의식 고취


시민단체 활빈단(대표 홍정식)ㆍ범민족통일국민화합총연합회(총재 류일신)ㆍ대한민국희망포럼(대표 이우재)이 21일 오후 1968년 1월 21일 청와대를 습격한 북한 무장공비들과 싸우다 산화한 최규식 종로경찰서장의 동상 앞에서 북한의 무력 도발행위를 강력 규탄 했다.

이들은 1.21 사태 46주년을 맞은 이날 성명서를 통해 북한정권 각성을 촉구하며 ▲김신조 청와대 습격사건 ▲천안함 사건 ▲연평도 포격도발 사건 ▲개성공단철수 사건 ▲핵개발행위 등 5대 사건에 대해 북측의 즉각적인 사과와 도발중지를 요구했다.

또 북한 김정은에 대해 ▲모든 도발행위 중단▲ 대한민국이 제안하는 협상테이블에 겸허히 수용할 것▲북한정권은 일방통행 하지말고 쌍방합의에 나설 것▲우리는 한민족의 한 핏줄의 자손이다. 진정한 통일로 가는 길에 동참할 것을 촉구했다.

앞서 청와대 경비단과 종로경찰서장 등 경찰청 고위간부들, 유가족도 최규식 경무관 동상을 참배하고 고인의 뜻을 기렸다.



1.21 사건은 1968년 1월 21일 북한이 특수부대 124군부대 소속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침투한 사건이다.

당시 게릴라 공비 31명은 그 해 1월 13일 북한군 정찰국장 김정태(金正泰)에게 청와대 습격에 관한 구체적인 작전 지시를 받고 18일 자정을 기해 휴전선 군사분계선을 돌파했다.

서부 전선의 연천 지역을 뚫고 하룻밤을 숙영(宿營), 19일 밤 8시 30분경 임진강의 얼음판을 횡단, 당시 경기도 고양군 법원리의 삼봉산(三峰山)에서 2일째 숙영을 한 다음, 20일 앵무봉을 통과하여 비봉·승가사(僧伽寺)로 이어지는 산악길을 타고 이날 밤 10시 서울시내 세검동 파출소 관할 자하문 초소에 이르렀다.

자하문 초소에서 경찰관의 첫 검문을 받게 되자, 일당은 “방첩대원들이다.”, “신분증은 볼 필요가 없다.”, “우리 부대로 가자.” 등의 위협적인 언사를 서슴지 않으며 계속 행진하다, 약 400여m를 더 행진했을 무렵 연락을 받고 출동한 경찰 병력과 첫 접전이 벌어졌다.



여기서부터 게릴라들은 자동소총을 쏘며 수류탄을 투척해, 현장을 지휘하던 종로경찰서장 최규식(崔圭植) 총경이 총탄에 맞아 전사하고, 경찰관 2명이 중상을 입었다.

또, 게릴라들은 현장을 지나가는 버스 안에 수류탄 1발을 투척, 승객에게 부상을 입히는가 하면 자동소총에 실탄과 수류탄을 몸에 지니고 뿔뿔이 흩어져 온갖 만행을 저질렀다. 서대문구 홍제동 민가에서는 한 시민이 게릴라와 격투를 벌이다가 총격으로 사망하는 등 이날 밤 민간인 5명이 살해되었다.

군경합동수색진은 일당 가운데 김신조(金新朝)를 발견, 생포하는 한편, 이들에 대한 소탕전에서 그날 밤 게릴라 5명을 사살한 데 이어, 경기도 일원에 걸쳐 군경합동수색전을 전개, 31일까지 28명을 사살하였다. 나머지 2명은 도주한 것으로 간주되어 작전은 종료되었다.

1.21사태를 계기로 우리나라에서는 4월 1일 향토예비군을 창설하여 대공방위태세를 더욱 공고히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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