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타임지 11월 표지 모델로 필리핀의 복서 파퀴아오가 등장했다. 세계적인 시사 주간지 타임지의 표지에 권투선수가 등장하는 것 자체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1930년대 미국의 황금시대 당시 KO열풍을 일으켰던 잭 뎀프시와 헤비급 25차 방어에 성공한 조 루이스, 그리고 무하마드 알리와 마이크 타이슨 등만이 타임지 표지모델로 선정되었을 뿐이다. 타 스포츠 종목으로 확대해도,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 골프 황제 타이거우즈, 베이징올림픽 수영 8관왕인 마이클 펠프스 수준이 되어야 타임지 표지 모델의 영광을 누릴 수 있다. 파퀴아오의 세계적인 인지도가 어느 정도인지는 타임지 표지 모델이 입증해준 셈이다.
파퀴아오는 1978년생으로 빵가게를 하는 아버지 밑에서 상대적으로 부유하게 자랐다. 주로 빈곤을 탈출하기 위해 복싱을 시작하는 여타의 필리핀 복서들과는 다른 환경이었다. 1995년 주니어플라이급(48KG)이라는 최경량급에서부터 시작하여 99년 한체급 위인 플라이큽의 챔피언 태국의 사사굴을 KO로 이기며 첫 세계타이틀을 획득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파퀴아오는 세계적으로 실력을 인정받는 경량급의 우수한 필리핀 복서였을 뿐이다. 그러나 파퀴아오는 놀랍게도 1999년 WBC 수퍼밴텀급 챔피언에 올랐고, 2005년에는 WBC 수퍼페더급 챔피언으로 3체급을 석권하더니, 2008년 6월 WBC 라이트급 타이틀전에서 데이비드 디아즈를 꺾으며 아시안 복서로서는 최초로 4체급을 석권한 대 선수의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4체급 석권의 경우 슈가레이 레너드와 토마스 헌즈가 일찌감치 달성한 기록이고, 최근에는 미국의 복싱 영웅 오스카 델라 호야가 6체급마저 석권하여 큰 이슈가 되지는 않았다. 파퀴아오를 세계적인 복서로 만들어준 경기는 바로 오스카 델라 호야와의 웰터급 경기였다.
미국과 영국의 권투 영웅, 차례로 꺾으며, 아시아팬들 하나로 모아
이 경기는 기획단계부터 큰 논란이 되었다. 오스카델라호야는 라이트급부터 시작하여 당시 미들급에서 활동하던 키 180센티미터의 중량급 복서였던 반면, 파퀴아오는 주니어 플라이급에서부터 활동한 키 168센티의 경량급 복서였기 때문이다. 주로 오스카델라호야에 대한 비난 여론 속에 치러진 이 시합에서 파퀴아오는 호야를 8회 TKO로 제압하면서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경기 결과보다도 경기 내용이 더 충격적이었다. 세계 웰터급 사상 가장 빠르다는 호야는 8회까지 파퀴아오에 단 하나의 펀치도 적중시키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얻어맞았다. 또한 체격 차이에도 불구하고 파퀴아오는 오히려 펀치력에서마저 압도하며 호야는 시종일관 도망다닐 수밖에 없었다.
호야와의 경기를 승리로 이끈 뒤 파퀴아오는 복싱계의 VIP로 등장한다. 그래서 성사된 매치가 영국의 복싱 영웅 리키해튼과의 주니어웰터급 타이틀 매치였다. 리키 해튼은 영국 특유의 힘의 복싱을 구사하며 힘과 맷집에서는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복서였다. 또한 영국인이라는 프리미엄 덕에 1억불 이상의 흥행카드가 가능한 스타였다. 파퀴아오는 이러한 리키 해튼마저 2회에 펀치 한방으로 실신 KO시켰다. 경기장을 찾은 영국의 마니아팬들도 같이 실신해버렸다.
파퀴아오는 이렇게 5체급을 석권하면서 미국의 또 다른 복싱영웅 플로이드 메이웨더와 쌍벽을 이루는 수준에 올라섰다. 그러나 리키 해튼을 KO시켰어도 과연 경량급의 파퀴아오가 웰터급에서 통할 수 있을지는 늘 의문부호가 따라다녔다. 호야와 해튼 모두 은퇴를 앞둔 전성기가 지난 시절에 파퀴아오와 경기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파퀴아오 측이 성사시킨 시합이 11월 14일 라스베가스에서 벌어진 WBA 웰터급 챔피언인 푸에르토리코의 미구엘 토코와의 일전이었다. 미구엘 코토는 파퀴아오보다도 더 젊은 복서였다. 그 역시 2체급 석권에 성공했고, KO율이 80%가 넘는 강타자로서, 잽주다와 모슬리 등 초 일류급 선수들을 제압한 톱스타였다. 이 경기에서만큼은 전문가들은 파퀴아오보다는 코토에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있었다. 파퀴아오가 아무리 힘과 맷집이 뛰어나다 해도, 그는 경량급 선수이고, 코토는 웰터급 내에서도 가장 강한 펀치를 자랑하는 선수였기 때문이다. 서로 링 중앙에서 펀치를 교환하다가는 결국 파퀴아오가 힘에서 밀릴 것이라는 예상이었다. 미국의 전설적인 복서 슈가레이 레너드도 바로 이렇게 예상하였다. 물론 현재로서 파퀴아오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인 메이웨더 만큼은 “코토가 파퀴아오와 맞상대하다가는 초반 KO패를 당할 것”이라 다른 예측을 하기도 했다.
경기는 메이웨더의 예상대로 미구엘 코토가 5회까지 파퀴아오와 난타전을 벌이다 두 번의 다운을 뺏긴 뒤부터, 경기 내내 도망, 결국 12회에 심판이 경기를 중단시키며 파퀴아오의 TKO승으로 끝났다. 이 경기는 복싱 역사적으로 매우 중대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파퀴아오는 필리핀의 국회의원이 아닌 대통령감
주니어플라이급이라는 초경량급 복서가 정통 웰터급의 강타자와 맞서 KO 이긴다는 것은 이론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해보이는 일이었다. 세계 복싱 사상 단 하나의 사례도 없다. 5체급 석권을 한 헌즈의 경우 웰터급에서 라이트헤비급까지, 6체급을 석권한 호야의 경우도 라이트급에서 미글급까지였다. 즉 이들은 애초에 중량급에서 중량급으로의 이동이었고, 이들의 키 역시 모두 180센티를 넘는 장신들이었다. 파퀴아오는 초경량급으로 중량급으로 올라왔음은 물론, 신장 역시 경량급치고도 그리 크다 말할 수 없는 단신이기 때문이다. 파퀴아오가 중간에 체급을 뛰어넘었기 때문에 6체급이지, 모든 체급을 섭렵했다면 벌써 10체급 챔피언인 상황이다. 이것은 만화 속에서 가능한 일이다.
파퀴아오의 시합이 벌어지는 날에는 전 필리핀이 숨을 멎고 그의 경기를 지켜본다. 최근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새롭게 경제 도약을 준비하고 있는 필리핀 국민들에게 파퀴아오가 지니는 영향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일찌감치 파퀴아오의 일대기를 소재로 한 영화가 개봉되었고, 파퀴아오의 시합장에는 필리핀 최고 가수들이 번갈아가며 필리핀 국가를 부른다. 한국에 거주하는 필리핀 노동자들의 경우만 하더라도 파퀴아오의 경기가 있는 날에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열광적으로 응원한다. 이런 분위기 탓에 파퀴아오는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는데 낙선했다. 당시 필리핀 언론들은 “파퀴아오는 국회의원감이 아니라 대통령감”이라는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을 정도이다.
더구나 파퀴아오는 이미 필리핀의 영웅을 넘어서서 전 아시아를 하나로 묶어내고 있다. 특히 한국과 일본의 젊은 복싱팬들은 파퀴아오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모든 복싱사이트를 섭렵하며 응원에 나선다. 한국과 일본의 복싱팬들이 주로 쓰는 문장은 “아시아의 힘을 보여주자”이다. 파퀴아오가 아시아의 복싱팬들을 하나로 묶어 미국시장을 휩쓸자, 미국에서도 팬층이 두터워지고 있다.
이번 파퀴아오의 시합을 보러 경기장을 직접 찾은 미국의 유명인사들은, 농구스타 매직존슨, 영화배우 마크윌버그, NFL의 브랜든 제이콥스, 영화배우 미키루크, 상속녀 패리스힐튼, 메이저리스 스타 데릭 지터 등등이다. 물론 필리핀에서는 부통령부터 장관들까지 총출동했다.
한국에서의 파퀴아오 열풍, 젊은 세대의 열린 민족주의 의식 입증
전 세계적인 파퀴아오 열풍은 한국의 청년층의 정치 사회의식에도 중대한 의미를 보여준다. 한국의 신좌파 지식인들이 기회만 있으면 애국적 광기라면서 민족주의와 애국심을 부정하는데 전력투구하고 있다. 국내 젊은 복싱팬들의 파퀴아오 신드롬은 바로 이런 낡은 신좌파주의를 실천적으로 깨뜨리고 있다. 실력이 있으면 우리와 다른 민족인 필리핀 복서도 밤을 새면서 응원하는 열린 민족주의적 태도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더 큰 시장으로 나아갈 비전을 꿈꾼다.
또한 그 동안 정치사회적으로 홀대받은 동남아시아에 대한 관점도 최소한 복싱팬들 내에서는 바뀌고 있다. 한국과 미국의 복싱팬들이라면 그 누구도 필리핀을 후진국이라 보지 않는다. 정치경제적으로 후진국일 수 있지만, 파퀴아오 같은 신의 경지에 이른 복서를 배출한 필리핀이라면 그 잠재력과 저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경제 개발 시대의 박정희 대통령은 김기수라는 한국 첫 세계챔피언을 배출하기 위해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메이저리거인 박찬호와 추신수의 활약으로 클리블랜드와 필라델피아에서 태극기를 들고 응원하는 미국인들을 쉽게 볼 수 있듯이, 스포츠스타의 국제적 영향력이라는 것인 경제적 가치로만 평가하기 어렵다. 파퀴아오 신드롬은 필리핀은 물론 아시아와 한국에 측정할 수 없는 긍정적 효과를 미치고 있는 것이다. / 변희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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