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싸잇=백소영 기자 ㅣ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북한을 ‘조선’으로 호칭하는 문제를 제기한 뒤 관련 논의가 정부 후원 학술회의로 이어졌다. 학계와 법조계에서는 ‘조선’ 호칭이 평화공존과 신뢰 구축의 언어가 될 수 있다는 의견이 제시됐지만, 정부는 헌법 질서와 국민적 공감대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정동영發 ‘조선’ 호칭 논쟁… 통일부 후원 학술회의서 공론화
29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는 한국정치학회가 주최하고 통일부가 후원한 ‘평화공존을 위한 이름 부르기: 북한인가 조선인가’를 주제로 한 특별학술회의가 열렸다.
이번 학술회의는 북한을 기존처럼 ‘북한’으로 부를 것인지, 북한의 공식 국호 약칭인 ‘조선’으로 부를 수 있는지를 놓고 학계와 정부 관계자들이 의견을 제시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앞서 정 장관은 지난달 통일부·통일연구원 공동주최 학술회의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한국·조선 관계’ ‘한조관계’ 등의 표현을 사용했다.
이후 부처 내부 행사와 언론간담회 등에서도 북한이 남측을 ‘한국’ 또는 ‘대한민국’으로 부르는 상황을 언급하며, 우리도 북한 호칭 문제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이어왔다.
학계 “상호존중의 언어”… 법조계 “국호 사용이 곧 국가 승인 아냐”
학술회의에서는 ‘조선’ 호칭을 평화공존을 위한 언어 전환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과, 북한의 공식 국호 사용이 곧바로 국가 승인이나 외교관계 수립을 뜻하지는 않는다는 법적 견해가 함께 제시됐다.
김성경 서강대 교수는 “남한사회에서 북한을 지칭하는 방식은 ‘북한’이라는 비공식적, 약칭적 호명으로 고정돼 있으며, 이는 중립적 지시어가 아니라 남북 분단 80여 년간 누적된 정치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조선’으로의 호명을 상대방에 대한 존중에 기반한 평화공존의 실천이자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 사회에 깊게 자리한 ‘분단 심상’의 균열을 내기 위한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남북이 각자의 독립적인 국민국가 정체성을 구축한 현 시점이 오히려 호명의 전환을 논의할 수 있는 가장 적기일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김 교수는 “북한을 ‘조선’이라 부르는 것은 북한의 국가성을 인정하는 것이므로 헌법 정신에 위배되는 것이라는 주장도 있고, 분단을 공고히 할 것이란 우려도 있는 것을 안다”면서도 “북한이라는 호칭 유지가 통일을 앞당기거나, 분단을 덜 고착시킨 증거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오히려 불필요한 대결을 강화하고 분단체제를 재생산하는 데 기여해 온 경향이 강하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북한을 ‘조선’으로 부를 경우 “우리는 당신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는 상호 존중의 메시지를 줄 수 있고, “우리는 현실에 기반한 새로운 관계의 틀을 모색하고자 한다”는 관계 재설정의 의지도 보낼 수 있다고 봤다.
법적 쟁점을 두고는 북한의 공식 국호 사용이 국가 승인으로 직결되지는 않는다는 견해도 나왔다.
권은민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정부가 북한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고 표기한다고 해서 북한을 국가로 승인하거나 외교관계 수립이 자동으로 구성되지 않는다”며 “국호 사용은 표기·식별·문서 기술의 문제”라고 설명했다.
권 변호사는 헌법 제4조의 평화통일 조항이 규정하는 긴장 완화와 신뢰 구축 차원에서 북한 국호 표기가 하나의 방법으로 검토될 수 있다고 봤다.
특히 이동기 강원대 교수는 “1960년대 당시 서독이 상당 기간 지속할 분단 ‘적대’의 극복과 화해협력 맥락에서 서독 중심의 동독 호칭을 포기했다”며 “상호 간 적대성 독소 제거를 위한 이름짓기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이 교수는 분단 상황에서 상대를 어떻게 부를 것인지는 단순한 명칭 문제가 아니라 적대성을 낮추는 정치적 언어의 문제라는 취지로 설명했다.
통일부 “방향 정한 것 아냐”… 헌법·국민 공감대 종합 고려
정부는 당장 호칭 변경 방향을 정해놓은 것은 아니라며 신중론을 유지했다.
김남중 통일부 차관은 이날 축사에서 정부가 북한의 공식 국호 표기 및 호명 문제를 서두르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헌법적 질서·남북관계의 특수성·국내 법제·국제 관행·국민적 공감대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김 차관은 “상대의 실체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제도와 언어가 뒷받침될 때 대결의 악순환을 끊어내고 평화적 공존의 공간을 넓혀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전날 통일부 관계자는 ‘조선’ 국호 사용 쪽으로 이미 방향을 정한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당국자는 “신중히 판단할 것이며 다양한 채널을 통해 공론화를 거쳐 정해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북한 호칭 문제는 향후 헌법상 북한의 지위·남북관계의 특수성·국민적 공감대 형성 여부와 함께 논의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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