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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학자 |
(울산=연합뉴스) 이상현 기자 = 울산시 남구 무거동 울산대학교 본관에서 열린 '일본학계의 역사유물 날조 사건' 주제 강연에서 일본 역사학자인 오쿠노 마사오씨가 "한국 위안부는 일본 군부가 강제동원한 잘못된 역사"라고 밝히고 있다.leeyoo@yna.co.kr/2007-04-10 13:07:08/ |
오쿠노 마사오 전 교수 '독도는 한국 영토' 울산대 특강
(울산=연합뉴스) 김용래 기자 = "고고학은 역사의 진실을 밝히는 학문입니다. 학자적 양심에 따라 글을 쓰다 보니 때로는 협박도 받고 인터넷 홈페이지가 컴퓨터 바이러스에 오염되는 수난을 겪기도 했죠."
10일 오전 울산대학교 본관 강당에서는 일본의 저명한 고고학자 오쿠노 마사오(76.奧野正男) 전 미야자키(宮崎)공립대 교수가 일본의 대표적인 역사 사기극 '후지무라 신이치(藤村新一)' 사건을 파헤치며 겪은 애로사항을 한국의 대학생들에게 담담히 토로했다.
이번 강연회는 지난 2005년 울산대에서 1년간 초빙교수로 일본사와 일본민속을 강의한 오쿠노 교수가 최근 자신의 장서 5천500여권을 울산대에 기증함에 따라 이뤄진 자리로, 오쿠노 교수는 일본 고고학계의 역사 날조 사건에 대해 200여명의 울산대 학생들에게 강연했다.
그는 '후지무라 신이치 사건'의 전모를 다룬 저서 '더럽혀진 신들의 손'으로 제58회 마이니치(每日) 출판문화상을 수상했으며, 정부의 책임을 묻기 위해 '구석기 날조사건의 진상규명과 행정소송을 지원하는 시민과 연구자의 모임'을 조직, 정부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해 외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오쿠노 교수가 말하는 '역사 날조' 사건이란 1981년부터 2000년까지 20여년에 걸쳐 구석기 시대의 유물이 날조돼 일본의 학계와 교육계가 이에 놀아난 사기극을 의미한다.
후지무라 신이치라는 일본의 아마추어 고고학자가 1981년 미야기(宮城)현 자자라기(座散亂木) 유적에서 당시로서는 최고(最古)인 4만여년 전의 석기를 발굴하고 이후에도 그가 발굴하는 곳에서 항상 구석기 유물이 출토돼 '신의 손'으로 불린 일이 있었다.
그가 발굴한 유적들로 인해 일본의 인류역사는 7만~5만년 전에서 약 70만년 전까지로 거슬러 올라갔다.
일본 고고학계는 후지무라의 발굴을 "고고학사상 획기적인 위대한 성과"로 치켜세우며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전국 순회전시까지 벌였다. 또 역사의 사실인 것처럼 그것을 교과서에도 실었다.
그러나 2000년 10월 그가 구석기 유적지에 석기를 파묻는 모습이 마이니치신문의 카메라 기자에 의해 촬영되면서 유적 날조 의혹이 제기된 이후 후지무라가 관여한 홋카이도(北海道)에서 간토(關東)지방에 이르는 160여곳의 구석기 유적들이 모두 거짓으로 판명됐다.
오쿠노 교수는 "날조된 유물로 일본 최고의 명문대 교수들이 논문을 발표하고 이를 근거로 일본의 역사 교과서가 새로 서술됐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며 "그동안 왜곡된 역사를 가르쳐 왔는데 이에 대해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았다"며 일본의 학계와 무책임한 정부 관계자들을 성토했다.
이어 그는 "일본 저변에 자리한 천황제 이데올로기는 진실을 밝혀야 하는 일본 고고학계의 적"이라면서 이러한 역사날조에 '천황제'라는 배경이 자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오쿠노 교수는 또 구석기 유물 날조사건에 가담한 전 문화청 관리 오카무라 미치오(岡村道熊)가 고구려 벽화 기법이 전래된 나라(奈良)현의 다카마스총고분(高松塚古墳)을 관리하는 나라문화재연구소 조사부 책임자로 최근 임명된 사실을 들어 "일본 고고학계에 대단히 우려할 만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한편 '친한파' 고고학자로 알려진 그는 "일본 정부가 교과서에서 군 위안부의 강제동원 사실을 생략하고 독도의 영유권 주장을 노골화 하는데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독도는 엄연한 한국영토이며 군 위안부도 일본정부에 의해 강제 동원됐다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yongl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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