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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검증] 28개 언론사 ‘美대사관 1분소등’ 오보 퍼레이드

전체기사 35건 중 25건이 기명기사...주류언론조차 팩트체크 시스템 ‘기능정지’

최순실 사태 관련 보도에서 대한민국 언론은 기초적인 사실확인 시스템마저 사실상 작동을 멈춰버린 형국이다.
 
지난 주말 28개 언론사가 35건에 달하는 수치스런 오보를 쏟아냈다. 미국 대사관이 촛불시위대가 기획한 ‘1분소등’ 행사에 동참하는 의미로 건물의 불을 껐다가 켰다는 보도들이다. 확인결과, 진실은 미 대사관 건물 창문에 행사장 스크린 불빛이 반사돼 일어난 해프닝이었다.



하루만에 진실이 밝혀졌지만 사실을 정정하고 사과한 언론사는 5일 현재까지 단 한 곳도 없다. 일부 언론은 이날 미국 대사관이 “공식입장이 없다”고 밝힌 점을 두고, 여전히 자기 유리한 대로 해석하며 ‘소등행사에 참여했는지 여부는 알수 없다’는 식 아전인수 격 기사를 쓰고 있다.
 
일부 언론은 네티즌이 올린 사진과 영상을 단 1분이라도 확인하면 훤히 알 수 있는 진실을 여전히 거부하고 있는 셈이다. 온갖 의혹 기사를 쏟아내면서 오보임이 확인돼도 사과조차 없이 또다른 의혹보도로 오보를 덮어버리는 언론의 광기를 드러낸다.
 
다른 각도 사진에서 드러난 진실...네티즌보다도 못한 언론
 
오보 퍼레이드는 익명 네티즌의 풍문에서 시작돼 네티즌의 검증으로 일단락됐다. 배경은 이렇다. 주한 미국 대사관은 서울 광화문광장 동쪽에 자리하고 있다. 지난 3일 광화문광장에서는 촛불집회가 열렸고 오후 7시경 촛불시위대 측에서 소등행사를 했다.  
  
거짓이 마치 진실처럼 행세하기 시작한 계기는 한 인터넷 게시글이었다. 페이스북 페이지 '유머저장소'에 따르면, 3일 저녁 8시23분에 디시인사이드 주식갤러리에는 ‘dd’라는 아이디의 한 네티즌이 ‘미국대사관도 함께한 촛불집회.(틀딱들 꼭 보여줬으면)’ 제하의 게시물이 올라왔다. 게시물 내용은 주한 미국 대사관까지도 소등행사에 참여했다는 것으로, 게시글은 5일 현재 조회수 1만9611건에 이를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곧이어 이 게시글의 사진을 그대로 활용한 중앙일보의 기사가 4일 새벽 3시 41분 보도됐다. 이후 ‘미 대사관도 소등했다’는 소식은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 언론을 통해 급속도로 전파됐다.




분위기는 4일 오후5시 경 SNS페이지 유머저장소가 ? 미국 대사관도 촛불시위 소등행사에 동참했다고?’라는 게시글을 올리면서부터 반전됐다. 뉴스가 오보라는 점을 증명하는 여러 각도의 사진과 동영상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게시글이었다. 광화문 앞에 설치된 스크린의 빛이 미국 대사관 창문에 반사된 것이라는 설명이다. (유머저장소 게시글 바로가기)

 

실제로 JTBC 영상을 유심히 보면, 소등 직전 스크린 불빛에 반짝일 때 미 대사관 창문에 반사된 빛도 동시에 반짝이는 점이 눈에 띈다. 같은 시각 다른 각도에서 찍은 여러장의 미 대사관 사진도 속속 공개됐다. 이를 근거로 네티즌들은 소등행사와 관계없이 미 대사관 6층 불은 항상 켜져있었고 나머지 층은 꺼져 있었다고 제보했다. 이점 역시 JTBC와는 다른 각도로 촬영한 경향신문사 영상을 통해서 확인된다. 영상에서는 카운트다운에 따라 집회 참가자들이 촛불을 소등, 주변이 캄캄한 가운데서도 미 대사관은 소등 전후 전혀 변화가 없었다. 동일하게 6층만 불을 밝히고 나머지 층은 불이 꺼져있는 채 그대로였다.




문제는 실시간 문제제기와 검증이 가능한 인터넷 공간과 달리 사실이 된 거짓을 바로잡기 어려운 뉴스의 속성이다. 실제로 최초 풍문이 올라왔던 디시인사이드 주식갤러리 게시판은 잇단 사실정정 게시물로 미 대사관 소등은 거짓이라는 사실이 지배적인 여론을 형성하는 데 성공한 모습이다. 그러나 소위 진실을 추구한다는 언론사들은 부끄러운 오보를 쏟아내고도 어느 한 곳 정정보도나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 ‘최태민=라스푸틴이라는 중앙일보의 보도가 왜곡보도로 밝혀졌음에도 대다수 사람들은 여전히 최태민=라스푸틴이라고 기억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진실을 바로잡으려는 언론의 적극적인 노력 없이는 오도된 대중들의 인식은 바뀌기 어렵다.  책임감 면에서 네티즌보다도 못한 언론이 아닐 수 없다.

 

네티즌이 직접 증명한 진실은 결국 청와대의 공식 해명으로 사실로 확인됐다. 한광옥 대통령 비서실장은 5일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기관보고에 나와, 의혹을 직접 해명했다. 그는 주한 미국 대사관이 지난주말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의 저녁 7‘1분 소등행사에 동참했다는 주장과 관련, “사실과 다르다미 대사관 측에서 공식으로 발표했다고 말했다.

 

28개 언론사가 35건 기사 쏟아내...기명기사도 25건 달해


우선, 주한 미국 대사관이 촛불 1분소등에 참여했다고 보도한 매체는 5일 오후 12시 경 네이버 뉴스검색 기준으로 28개사에 달했다. 기사는 총 35건으로, 경향신문·매일경제 각 3중앙일보·한국경제·헤럴드경제 각 2건씩 중복기사를 내보냈다.



네이버뉴스 검색 결과 가장 먼저 이 해프닝을 보도한 곳은 중앙일보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중앙일보는 4일 새벽 3시 경 대사관도 촛불 지지?‘1분 소등동참 눈길이라는 제하의 기사를 썼다. 이후 이날 낮에 집중적으로 기사가 쏟아진다. 오보는 다음날인 월요일 오전까지도 이어졌다.

 

오보는 매체의 크기와 명성과도 상관이 없었다. 주류 신문사와 통신사, 종합편성채널, 스포츠신문, 지방지, 인터넷매체가 모두 포함됐다. 조선과 중앙, 동아 등 전통과 권위를 자랑하는 정론지도 예외가 없었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가 기간통신사인 연합뉴스도 마찬가지였다. 매일경제와 한국경제 등 경제신문도 중복해서 썼다. 다만, KBS·MBC·SBS와 같은 지상파 방송사가 없었다는 점이 특기할만하다.

 

주말이라서 미 대사관에 확인이 어려운 상황임에도, 제목에서부터 단정적인 표현을 사용한 매체도 여럿이다. 진보좌파 매체인 경향신문이 ‘[232만 촛불]‘전 국민 1분 소등미 대사관도 동참이라 의미심장하게 쓴 것을 포함해, 대사관 소등촛불집회 ‘1분 퍼포먼스동참(MBN) 미국 대사관도 소등 행사 참여 눈길(YTN) 대사관도 ‘1분 소등동참(국민일보) 등 주류 언론 상당수가 단정적인 제목을 달았다. 허핑턴포스트코리아, 고발뉴스, 시선뉴스 등 인터넷매체도 역시 단정적인 표현을 썼다.

 

놀라운 사실은 기명 기사가 25건에 달했다는 점이다. 기명 기사는 기자와 언론사의 이름을 내걸고 내보내는 기사다. 일선기자의 취재윤리와 경험많은 데스크의 검증을 통과한 기사라는 의미다. 기사에 대한 책임도 기자와 사측이 공동으로 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동아일보, 연합뉴스와 같은 주류 언론의 기명 기사에서조차 오보가 났던 것이다. 주류 언론조차 최소한 최순실 사태와 관련한 뉴스에서는 사실확인시스템이 사실상 붕괴됐다고 볼 수 밖에 없다.

 

무기명 기사도 진실보도가 생명인 언론사로서 책임이 가볍지는 않다는 지적이다. 물론, 무기명 기사는 이름을 내세우지 않는만큼 기명 기사에 비해 위신은 떨어진다. 그러나 역시 언론사의 이름을 내 건 기사라는 점은 마찬가지인 만큼 진실보도공정보도라는 언론윤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은 마찬가지다.




 

인터넷 소문에 어떻게든 권위를 입히려는 언론의 행태들

 

확인되지 않은 인터넷 의혹에 어떻게든 권위를 입혀보려고 노력하는 언론사의 추악한 행태는 해당 기사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중앙일보는 대사관도 촛불 지지?‘1분 소등동참 눈길제하의 기사에서 ‘1분소등행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미국 정부의 브리핑 발언을 끌어다 썼다. 존 커비 미 국무부 대변인이 지난달 28일 정례브리핑에서 했던 발언을 거론, 미국이 촛불 시위를 지지하며 그 연장선상에서 ‘1분소등에 참여한 것이 아니냐는 강한 뉘앙스를 남긴 것이다. 중앙일보가 기사에 인용한 존 커비 대변인의 발언은 “(한국의) 정치적 시위와 관련한 보도를 봐서 내용을 알고 있고, 그것에 대해서는 집회 참가자와 한국 정부가 말하도록 두겠다국민들은 당연히 정부에 대한 그들의 우려를 나가서 말할 권리를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으로, 자체로는 원론에 불과한 내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언론들은 존 커비의 발언을 마치 최순실 사태에 관한 촛불시위를 미국이 지지한다는 의미로 해석해 보도한 바 있다.

 

매일경제의 경우에는 횃불 된 촛불 전국 230만명 참여1분소등 대사관 동참해 화제제하의 기명기사를 통해 미국 대사관과 인근 국내 정부기관을 비교해가며 국내 기관을 비난하기도 했다. 매일경제는 기사에서 이날 주최 측은 오후 7시를 기해 지난주와 마찬가지로 1분간 소등행사를 열었다. 어둠은 빛을 이기지 못한다는 뜻의 1분 소등 퍼포먼스였다. 특히 이 행사에 주한 미국 대사관도 동참한 것으로 알려져 눈길을 끌었다. 광장 바로 옆에 있는 주한미국대사관 사무실도 이 시간에 맞춰 불을 끈 것이다. 바로 옆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환하게 불을 밝힌 것과 대비됐다라고 썼다.

 

세계일보는 촛불 더 커졌지만 연행자 ‘0’외국인들도 엄지 척’’ 제하의 기사에서 구체적인 정황증거까지 덧붙여 신빙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서술했다. 세계일보는 기사에서 “5차 집회에 이어 이날 집회에서도 소등 행사가 이어졌다. 참가자들은 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의 7시간 행적을 밝히라는 국민의 요구를 담아 오후 71분간 불을 껐다. 일각에서는 광화문광장 바로 옆 주한 미국대사관이 소등 행사에 동참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오후 7시 주한 미국대사관에서도 불이 꺼졌다가 약 1분 뒤 다시 들어온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미국 대사관이 소등 행사에 맞춰 불을 껐다가 켰다는 증거로 1분을 언급한 것인다. 결과적으로, 불빛이 미 대사관 건물 창문에 반사돼 일어난 해프닝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1분 동안 소등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당연했다.

 

JTBC는 취재 기자를 직접 뉴스룸으로 데려와 앵커와 대답하는 형식으로 해당 소식을 언급했다. 뉴스보도는 집회가 매우 평화로웠으며 축제와 같았다는 현장 분위기를 강조하는 소식들로 채워졌다. 기자는 방송에서 집회 끝 무렵인 저녁 7시에는 1분 간 소등 행사도 했는데요. 세월호 7시간의 진상을 밝히자는 의미의 이 행사에는 미국 대사관도 동참해 눈길을 끌기도 했습니다라고 직접 언급했다.



페이스북을 기반으로 한 뉴스페이지 인사이트의 게시물도 거짓말 확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512시를 기준으로 미국대사관도 참여했다!!’ 게시글은 좋아요 18429, 공유 278, 댓글 94개를 기록했다. 댓글은 대통령에 대한 조롱과 비난으로 가득했다. 광화문광장의 세종대왕 동상이 닭을 움켜쥐고 당장 꺼지거라고 소리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은 추천 691개를 받아 인기댓글에 올라있다. 언론의 오보를 접하면서 사람들이 분노와 광기를 표출하는 현장이다.


시민 우모씨(59세, 성남 거주)는 최근 우리나라 언론들의 보도행태에 대해 "대통령도 잘못이 있고, 최순실도 죄를 받아야 마땅하지만, 언론이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라며 "정확한 사실도 아닌데 카더라 통신을 마구 보도하고 집회 인원을 부풀려가며 사람들이 분노하도록 부추긴다"고 비판했다. 그는 "언론이 제일 나쁘고, 야당은 마치 6.25 때 인민재판으로 사람들을 잡아 죽이던 완장찬 점령군을 꼭 닮았다"면서 "우리나라가 어떻게 되려는지 어떨 땐 눈물이 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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