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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콘텐츠는 '과학중심의학연구원(http://www.i-sbm.org)'이 제공하는 공익콘텐츠입니다. 이번 글은 로버트 토드 캐롤(Robert Todd Carrol) 박사의 ‘회의주의자 사전(skeptic's dictionary)’에서 'Science-Based Medicine' 항목을 번역한 것입니다. 과학중심의학연구원 김현우 학술특보와 과학중심의학연구원 황의원 원장이 같이 번역했으며,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의역을 다소 취했습니다. (2010년 12월판 기준 번역)


“...넌센스 따위를 연구하는 일이 ‘정치적으로 올바른 척하는 일(politically correct)’이 이 되고 있다.”
-- 바커 바우셀 (R. Barker Bausell)



과학중심의학(Science-Based Medicine, SBM)은 보건과학에서의 이론, 치료법, 의약품들을 최고의 ‘과학적 근거(scientific evidence)‘로서 평가한다는 개념이다.

과학중심의학에 대해서 설명하려면 먼저 근거중심의학(Evidence-Based Medicine, EBM)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근거중심의학은 1990년대부터 국제의학계에서 널리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임상의학의 새로운 방법론이다.

근거중심의학은 근거로서의 가치가 크지 않은 비체계적, 단편적 경험에 근거한 임상적 판단에 대한 반성적 태도를 강조한다. 그러면서 믿을만한 연구결과를 얻기위한 의학연구의 과학적 방법론으로서 특히 ‘무작위배정 임상시험(randomized controlled trial, RCT)‘과 ‘메타 분석(meta-analysis)’을 내세우고 있다.

근거중심의학의 핵심정의는 “현재 존재하는 최고의 근거를 양심적이고, 명백하며, 분별있게 이용하여 개별 환자의 치료를 결정”한다는 것인데, 얼핏 들었을때는 이 근거중심의학의 개념이야말로 분명 의학이 갖춰야할 지고의 과학적 가치가 담겨져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근거중심의학(EBM)과 크게 구별되는 과학중심의학(SBM)의 핵심 개념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과학(science)’에 있어선 지금껏 인류가 발견해낸 믿을만한 이론들과 지식들, 그리고 법칙들이 상호연계성(interdependent network)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과학중심의학과 대별되는, 근거중심의학의 문제점은 애초 치료법이 '과학적 개연성(scientific plausibility)'이 있는지 없는지 여부는 제대로 판단도 하지 않고 좌우간 임상시험만 거친다면, 특히 ‘메타 분석(meta-analysis)’이나 ‘체계적 문헌고찰(systematic review)’과 같은 고급 연구과정을 거친다면, 결과의 질을 떠나 그 연구를 다른 믿을만한 과학적 연구들과 다 동급으로 여겨지게 할 수 있는 것이다.
 



과학중심의학의 전진기지로 손꼽히고 있는 ‘사이언스베이스드메디슨 블로그( http://www.sciencebasedmedicine.org )’의 소개글은 이 문제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근거중심의학(EBM)은 의학에 있어서 정말 중요하고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켰음에도, 한계가 있다. 우리 블로그의 맥락에서 얘기해본다면, 근거중심의학의 문제는 임상시험에 너무 주안점을 둔 나머지 ‘과학적 개연성(scientific plausibility)‘을 무시한다는 것이다. ’임상시험의 결과’(근거중심의학의 정의에 따르면 순수한 "근거(evidence)")에 주안점을 둔다는 것은 물론 중요한 일이지만, 근거중심의학의 개념하에서는 잘 정립된 자연과학적 체계의 바깥에 있는 치료법, 또는 ’과학적 개연성‘이 매우 적게 존재하거나 아예 없는 치료법에 대해선 제대로 대처를 하지 못한다는 맹점이 있다.”


개연성이 없는 가설들, 가령 ‘물이 기억력을 가질 수 있다는 가설’(동종요법)이라든지 또는 ‘막혀있는 기(氣)를 뚫는 것으로 건강해질 수 있다는 가설‘(침술)과 같은 것들은 인체에 대한, 지금껏 잘 정립되어온 과학적 지식의 총체를 기반으로해서 아주 가혹하게 평가해줘야할 것이다. 저런 가설들은 과학적 개연성이 없으며, 이 과학적 개연성 문제는 특히 상식에서 많이 벗어난 의학적 가설같은 것을 검증하는 임상시험을 평가할 때는 반드시 고려되어야 한다.


이와는 약간 다른 측면의 이야기를 해보자. 근거중심의학(EBM)을 깍아내리려는 일부 인사들은 현대의 의사들이 행하고 있는 의학적 처치들이 모두 철저한 임상시험을 거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지적하곤 한다. 현대의학 진영에서는 이런 깍아내리기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반박을 하고 있다. 어떤 의학적 처치가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 확증하기 위해 무조건 ‘무작위배정 임상시험(randomized controlled experiment, RCT)’을 할 필요는 없다고 말이다.

아닌게 아니라 이 세상에는 굳이 실험의 필요가 없이 단지 ‘과학적 개연성’만으로 미리 자명하게 그 결과를 판단할 수 있는 문제도 많이 있다. 이를테면, 비행기에서 낙하산을 매고 뛰어내리는 것이 안전하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하여, 대조군을 만든답시고 몇몇 사람들을 비행기에서 낙하산 없이 뛰어내리게 할 필요가 있을까. 이런 자명한 문제로 굳이 실험까지 해서 확고한(!) 답을 얻는 것이 과학적으로 윤리적으로 정당한가.

이와 마찬가지로, 어떤 의학적 처치는 지금껏 잘 정립된 과학적인 지식과 과학적인 개연성에 비추어 봤을 때 굳이 임상시험을 거치지 않고서도 충분히 정당화할 수 있다. 가령, 지금 출혈 상태의 동맥 근처를 의사가 압박대로 묶으려고 하는 상황에서, 그런 처치가 과연 얼마나 강력한 근거중심의학적 배경이 있는 것인지 굳이 따져물을 필요가 뭐가 있겠는가?
 



과학중심의학의 지지자들도 물론 실험군과 대조군을 두는 ‘무작위배정 임상시험(randomized controlled trial, RCT)’이 실험에서 으레 발생할 수밖에 없는 편향(bias)을 최소화하기 위한 가장 좋은 연구기법이라고 보지만, 그렇다고해서 그것이 현대의학에 있어서 유일한 기준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사이언스베이스드메디슨 블로그‘의 킴볼 앳우드(Kimball Atwood)는 블로그를 통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곳에 계신 분들 모두는 대규모 ‘무작위배정 임상시험’ 기법이야말로,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예측되는 모든 치료법 연구에 있어서 편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가장 좋은 연구기법이라고 생각해왔을 것입니다. 또한 반복적인 ‘무작위배정 임상시험’이야말로 생리학, 동물연구, 또 적은 숫자의 임상 연구, 임상적 판단 그리고 다른 모든 것에 기반을 둔 치료법을 검증하는데 큰 쓸모가 있다고 보았을 것입니다.”


과학중심의학의 개념이 요구하는 것은, 어떤 의학적 처치에 관한 임상시험을 하고자 한다면 그 이전에 해당 처치가 먼저 ‘믿을만한 높은 수준의 사전개연성(reasonably high prior probability)’부터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의학 연구를 위해서, 예를 든다면, “꿀벌 화분 (bee pollen)이 암을 치료할 수 있다”는 가설이나 “상어 연골이 관절염을 치료할 수 있다”고 하는 가설같은 것들을 검증한답시고 분별없이 임상시험을 시행하는 것은 비논리적이며 비윤리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왜 그런가? 그것은 해당 처치가 환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믿을만한 ‘과학적 근거(scientific evidence)’가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키우는 애완견의 암이 꿀벌 화분을 통해 치유되었다”고 주장(또는 생각)하는 몇몇 미국 상원의원의 괴벽 때문에 그런 가설을 검증하기 위한 임상시험을 실시하는 것은 정말 비논리적인 일이다. 또 과학적 개연성 측면에서 뒷받침될 수 있는 근거가 없는 물질을 임상시험을 사유로 사람이나 동물에게 마구 노출시키는 것은 비윤리적인 일이다(옮긴이주 : 근거중심의학에서 얘기하는 ‘근거(evidence)’와 과학중심의학에서 얘기하는 ‘근거(evidence)’의 개념에는 차이가 있다. 전자는 임상시험을 통해서 도출한 근거만을 사실상의 근거로 취급하고 있지만, 후자는 임상시험을 통한 근거뿐만이 아니라 ‘과학적 개연성’까지 근거의 개념으로 포함시키고 있다). 추가적으로, 킴볼 앳우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의학 관련 몇몇 가설들이 개연성 측면에서부터 말이 되지않음에도 일단 임상시험부터 시행하고 보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더 꼬이게 만들 수 있다.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는 정말 복잡하고 지저분하다.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를 통제가 쉬운 실험실에서 실시하는 다른 연구처럼 엄밀하게 수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실험실 연구와 비교하면, 인구집단을 대상으로하는 임상시험은 많은 난관을 돌파해야 하는데, 이에는 연구자가 인지를 하거나 하지 못하거나와 상관없이 서로 비교가 불가능한 실험군과 대조군 때문에 생기는 편향, 또 연구자가 무의식적으로 실험군에게 신호를 보내는 것, 연구 결과가 나온 후 결과에 가설을 끼워맞추는 것, 그리고 실험에서 생길 수 있는 서로 다른 인위적인 결과, 또한 연구자의 개인 동기로 인하여 생긴 알아채지 못하는 혼돈요인, 나쁜 실험결과는 공개하지 않는 출판편향, 제대로 되지 않은 통계 분석, 실험 결과와 상관없는 논문의 결론, 또 의미없는 작은 실험들을 여러 개 모아서 통계적으로 상관이 있는 것처럼 보이게하는 체계적 문헌고찰, 사기행위, 그리고 다른 여러가지가 있다. ...”


“‘사전개연성’이 매우 낮은 치료법을 검증하기 위해 ‘무작위배정 임상시험’을 시행하게 되면, 아쉽게도 대부분의 연구자들과 의사들은 근거중심의학이 반드시 판정해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효과 없음'이라는 명백한 결론은 얻지 못한다. 오히려 나중에 그러한 연구결과들을 모아서 메타 분석을 하게 되었을때 결론은 더 애매모호해질 수 있다. 이런 경우, 해당 치료법을 옹호하는 이들은 ”그 치료법도 좌우간 임상적 근거가 있는 것이다“라는 식으로 이야기하거나, “어떤 결론을 내리기 위해서는 여전히 추가적인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는 식의 생뚱맞은 결론을 내리게 된다. 결국, 사실상 수학적 수준의 근거가 아니면 확증을 못하는 이른바 ‘회의적 근거중심의학자’들로서는 이상한 치료법에 대해서도 후속 연구를 끝간데없이 계속해서 지지하게 되는 것이다..”

설계수준이 떨어지는 의심스러운 임상시험을 통해 도출된, 약간의 효과를 지지해주는 근거에 대단한 비중을 두는 것은 정말 터무니 없는 일이다. 이같은 경우엔 잘 정립된 과학적인 지식에 기반한 개연성 측면에서 그런 이상한 치료법엔 효과가 전혀 없을 것이라 단정해버리는 추론에 올바른 근거로서 더 비중을 둘 필요가 있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근거중심의학에서는 치료법의 근거 평가에 있어서 ‘과학적 개연성’을 과학중심의학만큼 의미있게 다루고 있지 못하다. 과학중심의학의 지지자들은 임상시험을 실시하고 적용해볼 치료법을 결정하는데 있어 ‘과학적 개연성’이라는 개념이 반드시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실제 현장에서는 그렇지 못함을 계속 비판해오고 있다.

마지막으로, 과학중심의학의 지지자들은 임상시험의 결과를 평가하는 도구로서, 유의확률(p-value)로 대표되는 “빈도 통계학(frequentist statistics)“보다는, (사전확률(prior probability)로 대표되는) ”베이지언 통계학(Bayesian probability)“이 더 우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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