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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두기 : 이 글은 <충북의사회지>에도 편집되었습니다. 그간 한국 사회에서는 거의 소개되었던 적이 없었던 과학중심의학(Science-Based Medicine)의 새로운 개념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꼭 한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의사이자 과학중심의학연구원 학술특보, 사이언티픽크리틱스( http://www.scientificcritics.com ) 편집위원인 김현우님이 수고해주셨습니다.



지난 11월 30일 대전시 유성구 한 한의원에서 원장과 탕제사 등 4명이 자체 개발 중이던 한약을 먹고 마비와 구토 등의 증상을 일으켜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받는 웃지 못 할 사고가 발생했다. 그로부터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은 대선 직후인 12월 20일 대한한의사협회가 한의학을 국가 신성장동력으로 육성해달라고 박근혜 당선인에게 요청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건강보험에서 소외받고, 정책과 규제에 묶여 국민들이 우수한 한의약 진료를 받지 못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주먹구구식으로 사용되다가 결국 처방한 한의사마저 병원에 실려 가게 만드는 한의약이 국가 신성장동력이 될 가능성이 있을지, 애초에 불가능한 일에 혈세를 쏟아 붓는 일이 될지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 외국에서는 기껏해야 치료의 보조 수단 정도에 불과할 정도로 효과가 미미한 한방치료에 건강보험지출을 늘려야 할지, 반대로 효과가 증명되지 않은 치료에 대한 건강보험 지출을 줄여 그 비용을 국민 건강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돌려야 할지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미국에서 대체의학에 대한 비판적 과학계몽활동을 하시는 선생님이 작년에 한국에 일로 오신 적이 있다. 그 선생님은 미국에서는 침술 (acupuncture)과 카이로프랙틱 (chiropractic), 그리고 자연요법 (naturopath)과 같은 대체의학 때문에 문제가 많다는 말씀과 함께, 관련하여 비판적 과학계몽활동을 펼치고 있는 이유를 잘 설명해주셨다. 필자 역시 답례 비슷하게 선생님의 활동과 비슷한 성격을 갖는 한국의 의료일원화 문제에 대해 설명을 해드렸다. 우리나라에서는 의료 시스템이 의학과 한의학으로 나뉘지만 중국을 제외하면 정통의학이 아닌 것이 의학에 동등한 대접을 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말과 함께. 하지만, 미국인인 선생님께 한의학이라는 대체의학 역시 하나의 제도의학으로서 군림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설명하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선생님께선 어떤 치료법이 효과적이라면 그게 무엇이라도 당연히 제도권에 또 현대의학에 편입되어야하는 것 아니냐면서, 한국에서 왜 애초 현대의학과 대체의학 (한의학)이 양쪽으로 나누어 진료를 보는 제도가 정착되었는지부터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는 말씀을 하셨다. 한국에서 한의학의 위상이란 ‘대체의학 (alternative medicine)’이 아니라 마치 ‘의학을 대신하는 것 (alternative to medicine)’처럼 보인다는 말씀까지 하셨다. 의학을 대신하는 의학? 그것은 형용모순이 아닌가.

사실 현대의학 (conventional medicine)과 전통의학 (traditional medicine), 양자를 동등하게 보고 있는 의료이원화 내지는 의료일원화라는 개념은 어디까지나 한국에만 있는 개념이다. 중국을 제외한 외국 어디를 나가 보더라도 기존의 전통의학류 대체의학이 제도권에 들어와서 현대의학과 동등한 위상을 확보하고 있는 나라가 없다. 외국에서의 대체의학은, 그 정식명칭부터가 ‘보완대체요법 (complementary and alternative medicine, CAM)’인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정통 현대의학 치료법에서 다소 미진한 것을 챙겨주는 형태로서 환자에게 제공된다는 개념이 강하다. 그나마도 과학적 검증을 통해 나날이 그 위상이 쪼그라들고 있는 형편이고 말이다. 그래서 외국인에게 우리 한국에서는 심각한 질병이라 여겨지는 뇌졸중의 경우에도 일부 환자는 병원 응급실을 먼저 찾지 않고 대체의학 치료를 제공하는 한의원에 가는 이유를 설명하기란 어려운 일을 넘어서 참으로 창피한 일이다.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씀 중에서 깊이 인상이 남는 것이 있다. 그것은 “대체의학이라든지 보완의학이라든지 하는 개념은 사실 없으며, 의학은 오로지 효과가 있는 의학과 그렇지 않은 의학만이 있을 뿐이다”는 것이다. 내겐 선생님의 이 말씀이 한국의 의료일원화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암시해주는 것처럼 여겨졌다. 그렇다. 현대의학과 한의학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애매한 통합만을 얘기해온 기존의 의료일원화 개념은 어쩌면 혹시 우리 보건의료서비스 공급자 중심의 사고가 아니었을까. 사실은 과학적 검증을 거친, 오직 효과 있는 의학만을 환자에게 제공한다는 원칙과 개념이야말로 이제 우리가 확고히 정립해야할 환자중심의 진정한 의료일원화가 아닐까.

사실, 의과학자들은 앞선 여러 연구들을 바탕으로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이 틀렸다고 볼 만한 정황이 없는지 엄격하게 의심하고 난 뒤에야 실험에 들어간다. 반면 한의학에서의 연구는 그저 오랫동안 이 땅에서 전해져 내려왔다는 단 하나의 해괴한 근거만으로도 될법하지도 않은 가설을 테스트해라고 막대한 연구비가 지원된다. 심지어 임상이 연구보다 먼저다. 음양오행이 어쩌고 하는 이제는 설 자리를 잃은 이론에서 출발한 가설만으로 만들어진 치료법을 환자에게 사용한다. 효과와 부작용을 테스트하는 작업은 그 뒤에서야 따라오는 비상식적인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의협이 불만을 갖는 정책, 규제, 건강보험이야말로 한의학계에 지나치게 관대하게 적용되고 있던 것은 아닐까. 단지 일원화를 위한 의료일원화가 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무엇을 의료일원화를 위한 진정한 환자중심의학의 모델로 삼아야할까. 사실 현대의학이건 대체의학이건 한의학이건, 또는 그 어떤 배경에 서있는 치료법이건 간에 나름 공명정대하게 검증을 할 수 있다고 평가받는 연구방법론이 이미 존재한다. 바로 근거중심의학(evidence-based medicine)이 그것이다. 근거중심의학은 현존하는 최고의 근거를 가지고 환자를 진료할 때 사용한다는 개념으로, 지금까지 나온 논문을 모아서 연구 결과를 살펴보는 ‘체계적 문헌고찰 (systematic review)’과 ‘메타분석 (meta-analysis)’과 같은 연구방법론을 무기로 각 치료법의 질에 대하여 평가를 내리고 있다. 그렇다면 이 근거중심의학은 과연 현대의학과 한의학의 올바른 의료일원화를 위한 완벽한 검증의 도구가 될 수 있을까. 불행히도 그렇지는 않다. 왜냐하면 근거중심의학의 개념은 아직 불완전한데다가, 안 그래도 연구의 질적 수준이 떨어지는 한의학, 대체의학의 치료법에다 줘서는 안 되는 높은 가산점을 사전에 주고서 관련 연구를 시작하게 하는 맹점이 있기 때문이다.

통상의 대체의학에 대한 근거중심의학적 검증은 시작부터 일단 특정한 치료법이 효과가 있다고 가정을 한다. 연구의 질이 높지 않은 임상시험을 하다보면 으레 실험에 동반되는 여러 연구편향(bias)의 결과인 노이즈가 섞여 나오기 마련이고 그런 차원에서 실제 효과 없는 치료법이 효과가 있다는 결가가 도출되는 경우가 많다. 더구나 출판편향(publication bias) 때문에 효과가 없다는 논문은 출판되지 않고 약간의 효과 또는 위약(placebo) 수준의 효과를 보고하는 논문들은 계속 출판이 된다. 수년이 지나서 체계적 문헌고찰로서 관련 논문들을 모아보면, 물론 상당수의 논문들이 연구의 질이 너무 떨어지기 때문에 고려대상에서 탈락되긴 하지만, 여하튼 소수의 긍정적인 결과를 보고하는 논문들은 남게 된다. 결국 이런 방식으로서 사실상 자기 분야의 치료법들은 모조리 다 효과적이라는 결론을 도출시켜버리는 것이 바로 한의학을 포함한 대체의학계의 연구실태일진대, 이런 사실상의 환자를 기만하는 행위를 뒷받침하는 잘못된 근거중심의학의 개념으로서 추진되는 의료일원화가 과연 올바른 의료일원화랄 수 있을 것인가.

대안은 무엇인가. 바로 과학중심의학 (science-based medicine)의 개념을 도입하는 것이다. 국제 의학계, 과학계에서 근래 새로이 떠오르고 있는 이 과학중심의학이라는 개념은, 저 근거중심의학의 개념 위에 바로 ‘과학적 개연성’을 덧붙인 개념이다. 사실 근거중심의학에서는 그간 음양오행이라든지 기나 경혈, 경락과 같은, 기존의 잘 확립된 기초과학적 지식 (물리학, 화학, 생물학)과는 완전히 배치되고 충돌하는 개념을 전제하더라도 연구자체의 결과만 좋으면 타당한 치료법으로서 인정해주었다. 하지만 과학중심의학은 그렇지 않다. 과학중심의학은 치료법을 연구한 결과가 아무리 타당하게 나왔다고 하더라도, 연구의 전제에 기초과학적 지식들과 연결지점이 없으면 단호하게 해당 연구 결과가 위양성(false positive)일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경계한다. 이는 비단 현대의학처럼 보이는 치료법들 검증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현대의학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과학적 개연성’이 있느냐 없냐가 과학중심의학이 근거중심의학의 잣대에 추가로 제시하는 잣대인 것이다.

이러한 과학중심의학의 개념, 즉 보완된 근거중심의학의 개념으로서 우리의 의료일원화를 추진하게 된다면 관련하여 불필요한 논쟁은 앞으로 더 이상 할 필요가 없게 된다. 현대의학에 기반을 둔 치료법이건 한의학에 기반을 둔 치료법이건, 단지 과학중심의학의 눈으로 평가를 내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것이 효과가 월등히 있어서 고려해볼 수 있는 치료법인 경우, 기존의 제도권 의학에 편입시켜 새로운 치료법으로 삼으면 된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 당연히 제도권 의학에서 퇴출시켜야할 것이고 말이다. 과학중심(science-based)이야말로 진정한 환자중심(patient-based)인 것이다.

예의 선생님을 배웅하는 자리에서 필자는 국제 의학계에서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저 과학중심의학의 개념을 한국의 많은 의사가 인지를 하고, 또 실제로 치료법을 검증하는데도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말씀드렸다. 아무리 의사가 열심히 환자를 치료한다고 해도 과학중심의학적 근거가 없는 치료로 해를 입는 환자가 한 명이라도 있으면, 그것은 단 한명이라도 너무 많다(one too many)고 생각하는 것이 과학인으로서의 의사의 자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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