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사] ‘위안부와 전쟁터의 성性’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한국의 30년 지적 혼란상 백서 남겨야 … 그 과정서 가장 먼저 검토되어야 할 책이 하타 이쿠히코 교수의 ‘위안부와 전쟁터의 性’

미디어워치 편집부 mediasilkhj@gmail.com 2022.11.06 15:01:20

[이영훈 · 이승만학당 교장]

하타 이쿠히코 교수는 일본 현대사, 특히 아시아‧태평양전쟁기의 군사사(軍事史)에 훌륭한 연구 업적을 가진 역사학자이다. 이번에 이우연 박사에 의해 한국어로 번역된 이 책은 그의 대표작 중의 하나이다. 1991년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발생한 이래 그것만큼 한국인의 역사 인식에, 나아가 일본과의 관계에 큰 영향을 미친 다른 무엇은 없을 것이다. 아시아‧태평양전쟁기에 총독부 관헌이나 일본군이 수십만 명의 한국 소녀를 중국과 동남아의 전장으로 강제연행하여 위안소에 가두고 성노예로 학대했다는 것이 위안부 문제에 관한 한국인의 일반적 이해이다. 그런데 일본인의 위안부 인식은 그렇게 일률적이지 않다. 위와 같이 생각하는 일본인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일본인도 있으며, 그편이 오히려 다수인 듯이 보인다. 그들은 일본군 위안소를 당시에 합법적으로 영위된 공창제가 전장으로 옮겨진 것으로 간주한다. 이러한 이해를 대표하는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이 책은 1999년에 출간되었다. 지난 23년간 한국의 위안부 운동가와 연구자는 이 책을 알지 못하거나 의도적으로 무시하였다. 보다 솔직히 말하면 일본의 우익 세력을 대표한다는 라벨을 붙이고 불온시해 왔다. 하타 교수에 대한 이 같은 평가는 터무니가 없다. 어느 잡지사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이 추구하는 역사가의 바람직한 상을 미야다이쿠(宮大工)에 비유한 적이 있다. 미야다이쿠란 국보급의 전통 목조건물을 수리하는 일본 최고 숙련의 목수를 말한다. 그는 예술적으로 세계 최고의 건축물이라도 창틀에서 빗물이 세면 최고라고 평가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일본류의 장인 정신의 소유자이다. 실증에는 빈틈이 없어야 함이 그의 지론이다. 

일본은 왜 전망이 없는 미국과의 전쟁에 돌입하였는가. 관련하여 그는 자위대 간부 출신의 어느 역사가가 퍼트린 음모사관(陰謀史觀)을, 다시 말해 미국이 일본의 공격을 유인하였다든가 소련의 공작에 현혹되었다든가 따위 주장의 논리적 모순을 지적하거나 관련 사료를 세밀히 검토함으로써 여지없이 격파하였다. 이 같은 그의 연구 이력은 그가 우익에 속해 있지 않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좌와 우의 중간에 서 있으며 그러기 위해선 정치와 일정한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국가 간의 역사 분쟁에서도 마찬가지이다. 1937년 일본군이 중국 난징을 점령했을 때 얼마나 많은 포로와 시민을 학살했는가는 주지하듯이 큰 논쟁거리이다. 그의 또 하나의 대표작 ‘난징사건’은 그의 표현에 의하면 일본과 중국의 중간 지점에서 사건을 냉정히 고찰한 작품이다. 그는 이 책의 집필을 위해 약 800여 종의 관련 저작이나 문헌을 검토했는데, 이는 지금까지 나온 동 사건에 관한 책 중에서 최다일 것이라고 그는 자부하고 있다. 그는 수십만이 학살되었다는 중국 측의 주장을 거부하지만, 학살이 없었다는 일본 측의 주장도 기각한다. 그는 대략 4〜5만 명의 학살은 있었다고 보고 있다.

‘위안부와 전쟁터의 성性’도 마찬가지 입장에 서 있다. 하타는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한국과 일본 간의 큰 인식 차이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되고자 관련 자료를 망라하여 일종의 백과사전으로 편찬한 것이 이 책이라고 해설하고 있다. 그가 수집하고 정리한 자료는 그 범위가 일본군 위안부가 된 일본과 한국의 여인만이 아니라 동남아 각국의 여인에까지, 나아가 제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전쟁 등의 전장에서 다양하게 관찰되는 성의 강탈과 매매에까지 넓게 펼쳐져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그는 일본군 위안부를 공창제의 전장판(戰場版)으로 규정하고 있다. 민간의 공창제가 경찰의 감독하에 있었다면, 전장의 위안소는 부대장의 통제하에 있었다. 양자 간의 본질적 차이는 없었다. 한국에서나 일본에서나 위안부로 나간 여인은 대부분 빈천 가정의 출신으로서 친권자에 의해 업자에게 넘겨진 존재이다. 노예계약은 아니었다. 여인들은 업주가 친권자에 지불한 전차금을 상환하거나 계약 기간이 만료되면 업소를 나올 권리를 보유하였다.

필경 한국의 독자들은 이 책을 읽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불편을 느낄 것이다. 책이 전달하는 풍부하고 다양한 정보가 위안부를 강제연행된 성노예로 간주해 온 저간의 통념과 도대체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물 샐 틈 없는 창틀을 짜듯이 완벽한 실증을 추구한다는 저자의 자세에 나는 공감한다. 나는 나의 연구가 세론의 지탄 대상이 되는 경험을 여러 차례 했지만, 그 같은 자세로 버텨 왔다. 그럼에도 이 책은 때때로 나를 불편하게 했는데, 그것은 자료의 선별이나 해석에 어떤 위화감을 느껴서라기보다는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 느끼는 일종의 자괴감과 같은 것이었다.

하타는 1991년 위안부 문제가 폭발한 이래 한편의 광시곡(狂詩曲)과 같은 소란이 펼쳐진 데에는 몇 사람의 작화사(作話師)가 큰 역할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있지도 않은 일을 그럴듯하게 꾸며 퍼뜨리는 자가 작화사이다. 제주도에 가서 200여 명의 여인을 납치했다고 참회한 어떤 일본인이 작화사의 선구라면, 위안부 출신이라며 커밍아웃한 몇 사람의 여인도 작화사였다. 그런데 하타는 한국의 연구자들은 그들의 주장을 검증하지 않았으며 검증할 의사도 갖지 않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바로 이 점이 나를 아프게 했다. 모든 증언은 철저한 검증의 대상이다. 기억 그 자체는 고의든 아니든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법정의 증언에는 책임이 뒤따르며, 역사의 법정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 왜 우리 한국인은 그들의 증언을 검증하려 들지 않았을까. 

돌이켜 보면 지난 30년간 위안부 문제에 관한 한 우리의 정부는 정부가 아니었다. 정부는 외국 정부와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팽개치는 일을 반복하였다. 우리의 대학은 대학이 아니었다. 진지하게 그 역사적 배경과 전개 과정을 학술적으로 추구하지 않았다. 우리의 언론은 언론이 아니었다. 그에 관한 언론의 무책임한 오보는 그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이다. 그 결과 이전 30년간 일본과 구축해 온 우호·협력 관계가 완전히 허물어지고 말았다. 일본 측의 책임도 적지 않다. 강제연행설과 성노예설은 애당초 일본인에 의해 제기되었다. 일본 정부의 자세는 안이하였다. 하타는 그에 대한 지적도 놓치지 않고 있다. 

위안부 문제에 관한 사전류와 같은 책이 이제야 번역과 출간을 보게 됨은 너무나 늦은 일이라 장탄식을 금할 수 없지만 그래도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나는 위안부 문제로 미궁에 빠진 한국의 대일본 외교가 찾을 탈출구는 스스로 청산하고 해방되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정부는 서둘러 지난 30년간 이 문제를 둘러싸고 정부와 민간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소상히 밝히고 후세에 전하는 백서를 출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작업에 있어서 하타 교수의 이 책은 우선적으로 검토되어야 할 중요 저작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영훈
이승만학당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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