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한 법무부장관은 2008. 8. 13.(수) 15:00 법무부 대회의실에서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독립유공자 후손 22명에게 특별귀화증서를 수여함
김경한 장관은 축사를 통해 “그간 외국인 신분으로 불편하게 생활해 온 점을 위로함과 아울러 독립유공자 후손으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국민이 된 것을 축하한다”고 하면서, “앞으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권리를 누림과 동시에 그에 따른 의무와 책임을 성실히 이행해 줄 것과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각자 종사하는 분야에서 국가발전에 이바지해 줄 것”을 당부하였음
이번에 특별귀화증서를 수여받는 독립유공자 후손은 다음과 같음
○ 양기탁 선생의 후손 1명
- 양기탁 선생(1871.4.2.~1938.4.20)은 독립협회 및 만민공동회의 간부로 활동을 하고, 1904년 7월에는 영국인 베델(Bethell)과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하는 한편 장지연이 『황성신문』에 쓴 논설 「시일야 방성대곡」을 게재하기도 하였음
- 1907. 4월에는 안창호 등과 함께 신민회를 창립하였고, 1933. 10월에는 임시정부의 국무령(국무위원)에 취임하여 1935. 10월까지 2년간 임시정부의 대표를 역임하기도 하였음
- 1962년에 건국훈장 대통령장에 추서됨
○ 권상익 선생의 후손 2명
- 권상익 선생(1900.11.14.~1943.5.5)은 1913. 10월 대종교에 입교하여 독립운동을 지원하였고, 1942. 11월 체포되어 이듬해인 5. 5. 목단강시 적십자 병원에서 순국함
- 199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됨
○ 강기운 선생의 후손 2명
- 강기운 선생(1897.4.24.~1944.9.5)은 1920. 7월 밀정 이덕선을 처단하고, 동년 7월말 무렵에는 군자금 220원을 모금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다 일경에 피체되어 1922. 4월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름
- 1993년 건국훈장 독립장에 추서됨
ㅇ 김종경 선생 후손 6명
- 김종경 선생(1904.9.18.~1965.10.17)은 1931. 3월경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다가 일경에 의해 피체되어 이듬해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름
- 1996년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됨
ㅇ 최관 선생 후손 1명
- 최관 선생(1900.~1980.5.10)은 서일(북로군정서 총재이자 대종교 지도자)의 사위로서 대종교에 입교하여 항일운동을 하던 중 1942년 대종교 지도자들이 검거될 당시 같이 체포되어 징역 8년의 옥고를 치름
- 1996년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됨
ㅇ 김진성 선생 후손 1명
- 김진성 선생(1914.4.16~1961.7.31)은 1934. 음력 7월에 일본 밀정인 김용환을 처단하다 피체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경성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광복으로 출옥하였음
-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에 추서됨
ㅇ 김영철 선생 후손 1명
- 김영철 선생(1912.12.26.~1983.2.11)은 1931. 9.월경 만주에서 조선혁명군에 가담하여 통신연락의 임무를 맡고 활동하다가 이듬해 일제에 의하여 피체되어 6개월간 옥고를 치름
- 1999년에 건국포장에 추서됨
ㅇ 김지섭 선생 후손 1명
- 김지섭 선생(1893.8.1.~1965.9.28)은 1922년 통의부의 재무부원 및 참의부 재무부 비서를 비롯, 1926년 봄에는 참의부의 훈련장 겸 제4중대장에 임명되어 항일투쟁을 계속함
- 1993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됨
ㅇ 이정 선생 후손 7명
- 이정 선생(미상~1942)은 1919. 8월 북로군정서에 가담하고, 이듬해 10월에는 청산리 독립전쟁에 참가하여 일본군을 격퇴하였음. 그 후 1923년 군사연합회의 준비회에 가담하여 항일투쟁을 계속함
-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에 추서됨
□ 참고사항
독립유공자 후손들에 대한 특별귀화증서 수여식은 2006년 이래 통산 세 번째로 거행되는 것으로 이번 특별귀화자들의 이전 국적은 전부 중국임
법무부는 2008. 8. 27.(수) 각 지방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대한민국 국민과 혼인하여 국적을 취득한 결혼이민자에 대해서도 귀화증서 수여식을 개최할 예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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