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적 기술혁신과 산.학.연 협력에 정부 적극 지원
(부다페스트=연합뉴스) 권혁창 특파원 = '요람에서 무덤까지' '사회복지의 천국' '북유럽의 리더'.
스웨덴에 붙은 길고 화려한 찬사 뒤에 끝없는 기술 혁신과 산학 협력을 위한 정부와 기업, 대학들의 끈질긴 노력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스웨덴인들이 누리고 있는 최고의 복지와 윤택함, 평화로움은 결코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 3만6천900달러, 유럽 최고의 복지 시스템을 뒷받침해온 스웨덴의 '국부(國富)'는 한 국가의 모든 연구개발 자원을 한 곳에 집적한 시스타 사이언스 시티와 같은 IT(정보기술) 클러스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시스타 사이언스 시티는 미국 실리콘밸리에 이은 세계 2위의 IT 단지로 무선통신기술의 메카라고도 불린다.
실리콘밸리가 컴퓨터 관련 산업 중심이라면 이곳은 이동통신 분야에서는 세계 최고의 집적 도시로 평가된다. 일명 '모바일 밸리', 와이어리스 밸리'라는 별칭도 그래서 붙었다.
수도 스톡홀름에서 북서쪽으로 20㎞ 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 시스타는 단지 내 기업-대학 간 긴밀한 산학협동으로 블루투스 등 숱한 차세대 IT 기술을 개발해왔고 무선통신기술에 관한 한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고수준이다.
그렇다면 시스타는 어떤 과정을 통해 이런 명성을 얻을 수 있었을까.
60만평 면적의 이 곳은 1970년대 초만 해도 군사훈련장이었다. 지방 정부가 스톡홀름 재개발 정책의 일환으로 시스타를 산업단지로 개발한 뒤 1976년 스웨덴의 IT 기업인 에릭슨이 처음으로 무선통신 사업본부와 연구소를 이곳에 설립한 것이 시초가 됐다.
곧바로 시스타의 전략적 가능성을 높게 본 미국의 IBM이 들어왔고, 마이크로소프트, HP,애플, 노키아, 오라클 등 글로벌 기업들이 속속 입주하기 시작했다.
유명 기업들이 진출하자 대학과 연구소도 자연스럽게 터를 잡았다. 스톡홀름 대학과 스웨덴왕립공대가 1988년부터 전자공학, 정보공학, 통신시스템 등 일부 IT 관련 학과를 시스타로 옮겨 운영했다.
1990년대에는 스웨덴의 컴퓨터 사이언스 연구소(SICS)와 정보기술연구소(SITIAB)와 같은 국책 및 민간연구소들이 잇따라 문을 열었다.
특히 스웨덴왕립공대와 스톡홀름대학은 1990년대 말 IT대학을 공동 설립, 산학 협력에 속도를 더했다. 시스타 지역 내 기업들과 스웨덴왕립공대는 '일렉트룸'(협력지원센터)을 설립, 산학연 협력 네트워크의 중심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이 결과 시스타에는 현재 기업 및 연구소 750여개가 입주해 있다. 이들이 창출한 고용인력이 3만명에 달하고 이중 3분의 2는 IT 관련 기업 종사자다.
또 전체 거주민이 12만명으로 늘어난 가운데 이 작은 도시에 창출된 전체 일자리는 6만5천개에 이른다.
대부분의 산업 클러스터가 그렇듯이 시스타의 가장 큰 성공 비결은 기업과 대학의 상호 연계와 이를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다. '토종 기업'인 에릭슨이 뛰어난 기술력과 수요로 협력업체들을 시스타로 끌어들였고, 이것이 다른 중소기업과 벤처들로 확산됐다.
대학 쪽에서는 스웨덴왕립공대와 스톡홀름대학이 민간 기업에서 필요한 연구인력과 벤처기업인을 배출하는 산파 역할을 했다. 현재 시스타에서 공부하는 대학생은 4천명에 달한다.
여기에 산학 협동의 매개역할을 하는 일렉트룸 재단은 2개의 자회사를 통해 시스타 내부의 네트워크를 발전시키는 동시에 벤처기업의 창업 촉진을 위해 인큐베이터, 비즈니스센터, 벤처자금 제공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에릭슨의 부회장이자 일렉트룸 재단 회장을 지낸 얀 우덴펠드트는 "일렉트룸 재단과 두 개의 자회사는 기업과 대학, 시 정부 간 협력에서 허브 역할을 한다"고 평가했다.
시스타는 사실상 민간 기업이 주도한 클러스터지만, 현재의 초일류 기술 집적 도시가 되기까지는 스웨덴 중앙 및 지방 정부의 지원도 간과할 수 없다.
1970년대부터 통신산업을 국가 전략산업으로 육성하기 시작한 스웨덴 정부는 1993년 통신 사업의 독점체제를 철폐하고 자유경쟁체제를 도입, 글로벌 기업들의 진출에 초석을 놓았다.
정부는 GDP의 3.7%를 연구개발(R&D) 분야에 투자했고, 이중 3분의 2 가량을 휴대전화 기술 개발에 쏟아부었으며, 에릭슨이 개발한 스웨덴의 통신기술이 유럽과 세계의 표준이 되도록 국제표준화에 전력을 기울였다.
시스타 도시개발 과정에서도 정부는 기업가적 마인드를 발휘해 스톡홀름 국제공항과의 인접성과 녹지공간 확보, 쾌적한 주거 및 연구 환경 조성을 통해 세계 최고의 기업 입지 조건을 창출했다.
스톡홀름시는 또 국제 IT 관련회의를 적극 유치하고 각종 국제회의에서 시스타 지역 홍보에 열을 올렸으며, IT 관련 프로젝트에서 노벨상을 지향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참여를 유도하기도 했다.
시스타시는 2003년 이 클러스터의 이름을 '시스타 사이언스 파크'에서 '시스타 사이언스 시티'로 바꿨다. '시티'는 '파크' 처럼 잠시 머물다 가는 곳이 아니라 24시간 생활 터전을 제공하는 장소를 의미한다는 뜻에서다.
시의 랜드마크인 34층 짜리 시스타 사이언스 타워는 160여개의 상점과 식당, 11개의 스크린이 있는 최신극장이 자리잡은 쇼핑의 천국이다. 2003년에는 이 곳의 편의공간을 이용한 고객수가 102만명에 달했다고 한다.
시스타의 한 관계자는 "시스타 사이언스 시티가 미국 실리콘밸리와 비교해도 경쟁력이 앞선다고 자신하는 부분은 자족도시화 기능을 갖춘 것"이라고 말했다.
시 정부는 이 곳을 2010년까지 클러스터 수준을 넘어서 차세대 성장의 발판이 되는 과학도시로 탈바꿈하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기업과 대학, 연구소는 물론이거니와 주거환경, 문화시설, 쇼핑센터 등을 완벽하게 갖춘 첨단 도시로 만들겠다는 것.
시스타 일렉트룸 재단의 자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막달레나 보손은 인구 900만명의 작은 나라 스웨덴이 세계 최고의 정보통신 강국으로 성장하는데 시스타가 결정적 구실을 했다고 말했다.
산업연구원 홍진기 연구위원은 "시스타의 성공 요인은 획기적인 인력 운용시스템과 연구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이라며 "초기 단계에 있는 우리 산업단지의 혁신클러스터화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산학연 네트워킹이 강화돼야 하며 클러스터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인력육성에도 관심을 쏟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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