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6년 8월 사실상 은퇴를 선언해 더이상의 작품을 기대할 수 없었던 김기덕 감독이 2007년 4월 못다한 고백을 담은 신작 <숨>으로 관객에게 다시 돌아왔다. <숨>은 죽음을 앞두고도 오히려 허락된 삶의 짧은 시간마저 거부하려는 사형수와 남편의 외도로 행복을 잃어버린 여자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와 비슷하게 지난 해 가을, 죽고만 싶었던 사형수와 한 여자가 서로를 만나 처음으로 살아있는 순간을 행복해했던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하며 많은 각광을 받았다. 그들의 사랑 이상으로 관객의 마음을 흔들어줄 장첸, 지아 그리고 하정우의 사랑과 증오, 더 나아가 삶과 죽음을 따스하게 아우르는 이야기 <숨>이 2007년 봄, 관객들 앞에 찾아온다.
세상의 벼랑에서 마침내 웃음을 되찾은 두 남녀의 이야기
죽음은 이들을 살게한 세상의 선물이었다.
죽음을 선고 받은 사형수 장진(장첸)이 남은 시간 하고 싶은 일이라면 그저 빨리 죽고만 싶은 것뿐이다. 살려고 발버둥치지도, 자신의 처지를 탓하며 울부짖지도 않으며 그저 남은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남은 숨을 하루 빨리 끊어버리기 위해 노력하는 것만이 그가 유일하게 하고픈 일이었다. 부족한 것 없이 좋은 집에서 조각가의 인생을 살던 여자 연(지아)은 남편의 차에서 다른 여자의 머리핀을 찾게 되면서 웃음도 눈물도 잃게 된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속 세 번이나 자살을 시도한 문유정(이나영)과 사형수 정윤수(강동원)가 매일 꿈꾸었던 것이 죽음에서 사랑과 삶으로 바뀌었던 것처럼, 숨을 잇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던 장진과 연은 알 수 없는 이끌림으로 서로의 숨을 이어주는 존재가 된다.
남은 시간 동안 사형수에게 허락된 세상은 창백한 벽으로 둘러싸인 교도소가 전부다. 그곳에는 사계절도, 바다나 산도, 사람들로 북적대는 거리도 없다. 한없이 매서운 겨울, 닫힌 곳에서 닫힌 마음을 열기 위해 연과 유정은 자신의 일상을 사진으로 찍어 장진과 윤수에게 선물한다. 연은 면회실 벽을 온통 사계절로 장식하며 장진에게 세상의 시간을 선물하고 유정은 바다로, 거리로 뛰어나가 사진에 세상의 풍경을 담아 선물한다. 사진을 벽에 붙여놓고 눈길을 떼지 못하는 장진과 윤수는 지금까지 겪어본 어떤 세상보다도 아름다운 사진 속 세상을 보며 처음으로 행복을 깨닫는다.
온전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어 죽기 전 하고 싶은 말을 모두 할 수 있었던 윤수와 달리 장진은 목소리를 잃어 아무 말도 전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장진의 눈빛에는 입에서 나오는 말보다 더 깊은 진심이 담겨 있다. 사형수가 되기까지의 사연을 나열하며 윤수에게 연민의 정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하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과는 달리 <숨>에서는 장진이 어떻게 사형수가 되었는지 알려주려 하지 않는다. 결국 영화의 끝에서 그가 사형수가 된 사연은 밝혀지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죽음과 같은 고통은 절절한 눈빛 외에 어떠한 단서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진의 아픔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고 함께 가슴 아파할 수 있는 이유는 관객과 마주하는 장진의 눈빛으로, 그리고 장진과 연이 주고받는 숨결로 그 모든 사연이 전달되기 때문이다. 좀더 대중적이고 일반적인 감수성으로 접근했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과 김기덕다운 화법으로 하지만 이제는 화해의 손길을 내밀며 다가온 <숨>은 이렇듯 만나고 교차하며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관객을 기다리기보다 먼저 관객에게 다가가고자 한걸음 움직인 김기덕 감독의 신작 <숨>. 허락된 숨마저 막아내고 싶은 남자와 막혀오는 숨을 내쉬고 싶은 여자의 애절한 숨결이 전해지는 영화 <숨>은 4월19일, 드디어 관객과의 호흡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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