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없이는 한국의 해운업계가 방향타를 놓쳐버릴지도 모른다.”
24일 타계한 현영원 회장은 지난 50년간 한국을 해운 선진국으로 끌어올리는 데 견인차 역할을 한 해운업계의 거목이자 산 증인이다.
현영원 회장은 1927년 광주 농공은행과 조선생명을 설립한 호남 최대 갑부 현기봉 선생의 장손자이자 호남은행(조흥은행의 전신)을 창립한 현준호 선생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한국전쟁 당시 현준호 선생이 타계한 뒤 장남인 현영원 회장은 광주서중(광주일고 전신)과 서울대 영문과를 졸업한 후 1950년 한국은행에 입사해 5년간 도쿄지점 외국부에 근무했다.
현영원 회장은 이후 장인이 된 김용주 전방그룹 회장의 권유에 따라 1956년부터 신한제
분과 근해상선의 전무로 자리를 옮겨 해운인의 길을 걷게 됐다.
그는 1960년부터 1964년까지 대한제철의 사장을 역임한 뒤 1964년 신한해운을 창업해 독
자적으로 해운업체를 경영하게 됐다.
현영원 회장은 신한해운은 1984년 해운산업합리화 조치에 따라 현대상선에 합병될 때까지
해몽호, 해금호, 해정호, 해수호 등 7척의 선박과 203명의 임직원을 보유한 중견 해운업체
로 키웠다.
현영원 회장이 나중에 사돈이 된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960년의 일로 당시 자금사정이 어렵던 현대건설에 역시 막 창업해 거래선이 없던 대한제철이 철근을 독점 공급하기 시작하면서다.
두 사람은 10살 이상의 나이 차이가 났지만 이런 인연으로 서로 가깝게 지내게 되었으며 현대의 울산 조선소가 홍콩 선주로부터 선박을 수주받을 수 있도록 현영원 회장이 도와주는 등 교분을 쌓은 것이 계기가 돼 고 정몽헌 회장과 현정은 회장의 혼사로까지 이어졌다.
이후 정 명예회장이 아세아상선을 설립할 때 현영원 회장이 창립 발기인의 한 사람으로 참여했으며 1984년 해운합리화 조치로 신한해운이 현대상선에 합병될 때 현 회장은 직접 현대상선 경영에 참여, 대표이사 회장으로 활동했다.
해운 실무에 해박했던 현 회장은 1995년까지 회장직에 있으면서 오너 경영자인 당시 정몽헌 사장을 잘 이끌어 현대상선을 세계적인 해운업체로 성장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1996년 현대그룹의 경영이 정몽구 회장-정몽헌 부회장 체제로 전환되면서 창업 1세대 경영인들이 대거 경영일선에서 퇴진할 때 현영원 회장도 현대상선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현영원 회장은 상임고문을 맡아 전문 해운인으로서의 능력을 사장하지 않았으며 고 정 몽헌 정몽헌 회장이 그룹회장으로 승진하고 대북사업에 전념할 때 조언자 역할을 했다.
현영원 회장은 현정은 회장이 현대그룹 회장에 취임한 뒤 일선에서 완전히 물러 났으며 본인 소유의 현대상선 지분을 재단법인 영문에 넘기면서 경영권 승계작업도 마무리지었다.
현영원 회장은 해운회사를 경영하면서 해운업계 발전을 위한 대외 활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신한해운을 경영하던 1970년부터 한국선주협회 부회장을 맡아 1992년까지 22년간 재임했다.
2000년 2월에는 조수호(趙秀鎬) 한국선주협회 회장이 임기를 1년 남겨두고 사임함에 따라 선주협회 회장에 선임돼 2003년까지 재임하면서 국내 해운산업 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밖에 현영원 회장은 해운업의 국제분쟁 해결사로 통하면서 약 30년간 국제상사중재원으로 일했다. 영국 P&I(선주상호보험)클럽 이사, 선박검사기관인 미국 선급협회(ABS) 한국위원회 위원장, 해운국인 파나마 공화국 명예 총영사 등을 역임하며 국제 해운분야에 큰 족적을 남겼다.
강기택기자 acek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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