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경주박물관(관장 이영훈)은 신라 초기의 대표적인 유적인 '구정동고분’의 보고서를 발간하였다. 이번 보고서에는 신라의 철기 제작기술의 진수를 보여주는 갑옷을 비롯하여 의기화(儀器化)된 철창 등 4세기대 신라 최고 지배자의 무장(武將)적인 성격을 보여주는 출토품을 모두 담았다.
구정동유적은 일제강점기인 1936년 동해남부선 철로공사 도중에 한국식동검과 동과 등의 청동유물이 발견되어 처음 그 존재가 알려졌다. 그러나 이후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1982년에 이르러 국립경주박물관에서 파괴된 고분에 대한 수습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이 발굴조사를 통해 신라고고학 연구에서 고대국가의 형성문제와 연결된 ‘고총(高塚)의 등장’을 밝힐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찾을 수 있었다. 무덤 내부에서도 주목되는 유물이 출토되었다. 4세기대의 갑옷 두 벌과 의기화된 철모의 다량 부장은 이전에 알려진 ‘황금의 나라 신라’와는 다른 면모를 보여 주었다.
구정동고분 출토 갑옷은 발굴될 당시부터 4세기대의 갑옷으로 주목받았으나, 전시 등으로 인해 자세한 관찰이 쉽지 않았다. 보고서 작성을 위한 정밀조사 결과, 기존에 알려진 갑옷의 몸통과 경갑(頸甲 ; 목을 보호하는 갑옷) 이외에 새로이 어깨를 보호하는 견갑(肩甲)이 확인되었다. 이 견갑은 좁고 긴 모양으로 멜빵 기능을 겸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단순 멜빵이 아니라 방어성능을 높이기 위해 철로 만든 점에서 시원적인 견갑으로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대표적인 견갑은 고령 지산동 고분 출토품이 있으며, 어깨 전체를 덮는 5~6세기 견갑은 주로 일본열도에서 집중 제작되었기에 그 원류를 두고 그간 논쟁이 있어왔다. 이번에 구정동고분의 갑옷에서 견갑이 확인되었기에, 앞으로 원류와 시기적인 변화 양상을 다시금 살펴볼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또한 두 벌 가운데 하나에는 후동장식판(견갑골 주변을 보호하는 부분)이 있는 것이 확인되어 원형을 복원할 수 있었다.
이러한 종장판갑옷(세로로 기다란 철판을 연결해서 만든 갑옷)은 한반도 남부, 특히 신라와 가야에서 주로 확인되는 갑옷으로 4세기대 주변지역을 통합해 가던 신라 지배자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또한 이 갑옷이 출토된 무덤에서는 길이 50cm가 넘는 대형의 철창이 무더기로 출토되었다.
이번 보고서는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4세기대 신라의 양상과 황남대총과 같은 초대형 고분을 만들기 이전의 신라 지배자들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를 집적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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