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이승호기자]이준용 대림산업그룹 회장의 애칭이 하나 더 늘었다. '선비형 CEO' '학자풍CEO'로 불려온 이 회장은 최근 '비상계단 CEO'로 불리고 있다.
지난 5일 우연히 이 회장을 마주쳤다. 장소는 대림산업 CEO 전용 엘리베이터가 아닌 비상계단. 점심시간이라 수많은 임직원들이 계단을 오르내리는 시간에 이준용 회장도 그곳에 있었던 것.
수행 비서를 동행하지 않고 혼자 계단을 내려가는 이 회장의 모습. 대림산업 임직원들은 그의 행동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경직된 90도 인사가 아니라 가벼운 목례로 인사를 대신한 것.
이 회장이 엘리베이터가 아닌 비상계단을 자주 이용하는 것은 그의 집무실이 4층에 있기 때문이다. 다른 대기업 총수의 집무실이 건물 가장 높은 층에 위치한 것과 다른 풍경이다.
통상 대기업 최고경영자(CEO)의 집무실은 건물의 가장 높은 층이거나 바로 그 다음 층이다. 전문경영인이라면 몰라도 그룹 오너의 경우는 99.99%가 이에 해당한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집무실은 한남동 승지원이다. 그러나 이 회장이 극히 이례적으로 서울 태평로 본사를 찾을 경우 그의 집무실은 가장 높은 층인 28층이다.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도 지난해 12월 신축된 신관 21층으로 집무실을 옮겼다. 역시 본사내 가장 높은 층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구본무 LG그룹 회장 역시 본사 34층과 30층에 집무실을 마련하고 모든 계열사를 진두지휘하고 있다.
중견그룹 총수들도 상황은 마찬가지. 최근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에서 사퇴하며 주목 받고 있는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 역시 35층 건물의 34층에서 일하고 있다. 충무로 옛 자보빌딩에서 강남 사옥으로 이전하며 집무실을 최상층으로 옮긴 것.
대기업 총수들이 건물내 가장 높은 곳을 선호하는 이유는 보안과 편안함 때문인 듯하다. 높은 층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외부에서 쉽게 접근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사내 임직원들의 출입이 많지 않아 업무 효율을 극대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고층 건물의 경우 시야가 확 트여 일상생활에서 오는 심신의 피곤을 야외 풍경 등으로 잠시나마 달랠 수도 있다.
이준용 회장의 집무실이 4층에 위치한 것과 관련, 일각에선 비상시 빨리 대피할 수 있어서 그런 것 아니냐고 농담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임직원을 생각하는 이 회장의 깊은 배려가 묻어 있는듯하다. 건물 가장 높은 곳에서 임직원 위에 군림하지 않고 그들과 함께 호흡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또한 결제를 위해 수시로 자신의 집무실을 오고가는 담당자의 자투리 시간도 아끼겠다는 세심한 배려도 돋보인다.
이준용 회장은 경기고, 서울대 상대를 졸업한 뒤 미국 덴버대에서 통계학을 전공했으며, 한때 영남대와 숭실대 등에서 잠시 강의를 하는 등 학자풍 CEO다.
그는 66년 부친이 설립한 대림산업에 입사한 이후 국내 아파트 공사와 관공서 건물, 평화의 댐공사 등 굵직한 일감을 따내면서 회사의 성장을 주도했다. 그러나 사업 다각화 등으로 몸집을 불린 다른 경쟁사와 달리 '건설업' 한 우물만 고집해 왔다.
겉에서 보기에는 상당히 보수적인 느낌도 든다. 그러나 정통 건설 기업에서 벗어나지 않고 조용하게 기업을 일궈 온 것이 이준용 회장의 경영철학이자 대림산업의 고유문화다. 집무실 4층과 계단 문화가 이를 방증하고 있다.
이승호기자 simonlee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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