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관 감독 신작 컬렉션

  • 등록 2006.12.27 11:2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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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김종관 감독

저번 글에서, 김종관 감독의 신작이 하나의 섹션으로 묶여 이번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상영됐다는 이야기를 했다. 파격적인 프로그램이었다는 말과, 이런 파격적인 프로그램이 있을 수 있었던 건 김종관 감독의 영화가 좋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꾸준히 독립/단편영화 작업을 하는 행위 자체가 큰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라는 말도 했다. 독립영화를 지속적으로 작업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김종관 감독은 여러 인터뷰에서 ‘다른 감독이 단편작업을 꾸준히 못하는 어려움을 이해한다’는 말을 털어놓았다. 독립영화 감독이 단편을 구상하고, 찍고, 상영하기까지에는 수많은 어려움이 있다. 개중에는 감독의 창작욕을 결국 무너뜨리고 마는 큰 벽도 존재한다. (이건 독립영화 감독 뿐 아니라 상업영화 감독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이번 김종관 감독 신작 섹션이 한국 영화계가 단편/독립영화를 포용하는 범위를 넓히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번 섹션에서 선보인 영화는 [누구나 외로운 계절], [모놀로그 #1], [드라이버], [침묵의 대화], [엄마 찾아 삼만리] 이렇게 다섯 편이다. 이 중 이미 극장에서 개봉한 옴니버스 영화 [눈부신 하루]에 포함된 [엄마 찾아 삼만리]를 제외한 네 편의 영화를 소개하려 한다.


[누구나 외로운 계절]

*사진설명 :ⓒ누구나 외로운 계절

[누구나 외로운 계절]은 한 컷으로 이루어진, 3분 40초라는 짧은 시간의 간단한 영화이다. 사건도 간단하다, 담배를 뻑뻑 피우는 여자가 있고 순진한 안경을 쓰고 순진한 표정을 한 남자가 있다.

 

둘은 마냥 지루하고 외롭다. 하지만 여자에게 남자가 키스를 하는 돌발 상황이 발생하면서 외로움도 지루함도 순식간에 날아가 버린다. 이야기에서 풍기는 분위기답게 영화는 경쾌하며 유머가 넘친다.

 

나는 음악의 사용이 흥미로웠다. 기존 김종관 감독 영화는 음악이 영화를 (영화의 감정을) 뒷받침하는 요소로 사용됐는데, 이 영화의 음악은 영화의 성격을 결정했다. 옛날영화를 연상시키는 ‘쿵짝 쿵짝’ 음악이 시작하면서 영화가 시작되면 역시 옛날 영화를 연상하게 하는 세로 자막이 등장하면서 유쾌한 영화가 이어진다.

 

이런 미장센을 모아서 되짚어 보면 이 영화는 한 컷으로 형식이 제한된 영화가 줄 수 있는 경쾌함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영화다. 음악과 자막의 사용 뿐 아니라 모노톤의 화면, 제한된 공간과 인물, 인물들의 프레임 밖과 안으로의 유머러스한 움직임, 단순한 줌의 사용 등이 이런 선택에 따라 결정됐다.

 

김종관 감독의 영화는 상당히 영화적인 선택으로 만들어지는 영화다. [누구나 외로운 계절]에서는 그 특징이 재치 있는 방식으로 드러난다.


[모놀로그 #1]

*사진설명 :ⓒ모놀로그 #1

김종관 감독이 ‘모놀로그 연작’이라고 이름붙인 시리즈의 첫 영화다. 김종관 감독은 [커피와 담배]를 보고 연작 단편 영화를 구상하게 됐다고 한다. 인물의 독백을 (혹은 사람이 아닌 외계인이나 사물의 독백을) 여러 개의 단편으로 만든 다음 장편 영화로 묶어 상영하는 것이 목표이며 [모놀로그 #1]은 그 시작이다.

 

시큰둥한 표정의 여자가 바다를 바라보며 투덜댄다. 여자는 바다를 보러왔지만 기분은 나아지지 않고 춥고 외롭기만 하다. 나레이션으로 이어지던 여인의 속마음은, 그녀에게 수작을 거는 남자에게 향하는 거친 한마디인 ‘어디서 개수작이야’에서만 입 밖으로 나오는 대사로 등장한다. 여인은 잠시 후 주저앉아 울기 시작한다.

 

짧은 이야기지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여자가 작업 거는 남자를 무시하는 부분, 자신의 인생을 영화에 비유하며 짜증내는 부분, 그리고 왜 그녀가 바다로 오게 됐는가는 사연을 말하며 울음을 터트리는 부분 이렇게 셋이다.

 

셋 다 김종관 감독의 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이야기다. 첫 이야기처럼 두 인물을 긴장감 넘치는 상황으로 던져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 두 번째 이야기에 나오는 ‘내 인생이 영화라면 이 부분은 건너뛰어도 되겠구나’ 라는 대사처럼 건너뛰기 쉬운 일상적인 순간에 집중해 천천히 감정을 끌어올리는 것, 그리고 바다를 앞에 두고 주저앉아 울음을 터트리는 상황처럼 앞에서 쌓은 감정을 바탕으로 클라이막스를 만들어 관객을 흔드는 것 등이 그렇다. 별다른 치장 없이 단지 하나, 혹은 두 명의 인물이 만드는 갈등과 내면의 감정을 천천히 끌어올려 영화를 확장하는 김종관 감독의 매력적인 장점이 압축된 영화라고 생각한다. 내가 사소한 요소를 가지고 너무 넘겨짚은 걸까?

 

어쨌든 [모놀로그 #1]이 매력적인 영화인 건 사실이다. 여자의 표정은 변화 없이 굳어있고, 그녀를 둘러싼 바다 풍경도 아름답지만 동시에 황폐하다. 김종관 영화에서 듣기 힘든 격한 욕설 섞인 시니컬한 대사가 여인의 굳은 표정과 겨울바다의 차가운 풍경에 더해져 만들어진 독특한 서정성은 여인이 울음을 터트리는 순간 막막한 슬픔으로 다가온다.

 

여자 역의 정보훈씨의 연기가 돋보이는 영화다. 정보훈씨는 [인간적으로 정이 안가는 인간]등의 영화로 독립영화에서 친숙한 배우다. 같이 [인간적으로 정이 안가는 인간]에 출연했던 양익준씨도 작업남 역할로 잠깐 등장하는데, 연결해서 생각해보면 재미있다.


[드라이버]

*사진설명 :ⓒ드라이버

단 다섯 컷만으로 이뤄진 짧으면서도 격렬한 영화다. 명암 차이가 심한 흑백 화면과 끊임없이 흔들리는 핸드헬드와 불길한 음악이 관객을 불안하게 한다. 쓰레기통에서 음식을 주워 먹던 노숙자가 드라이버를 발견한다. 드라이버를 들고 허공을 찌르며 욕지거리를 내뱉던 남자는 지나가던 여인에게 달려든다.

 

다음 씬에서 남자는 공원에서 다른 남자들에게 두들겨 맞는데, 이들이 떠나가자 남자는 지나가던 여자에게 다시 달려든다. 영화는 폭력이 순환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드라이버도, 그리고 드라이버를 주운 노숙자나 지나가던 여자도 모두 폭력과는 아무 상관없던 존재이지만 이들이 폭력의 순환에 갇히는 순간 가해자와 피해자와 폭력의 도구로만 남는다.

 

 나는 비슷한 소재를 다룬 정지우 감독의 [사로]도 생각했다. 김종관 감독의 영화에 사랑 이야기만 있는 건 아니다. 폭력과 죄와 유년 시절의 어두운 기억도 있다([엄마 찾아 삼만리]가 특히 그렇다). 물론 그 소재를 격렬한 표현으로 끄집어 낸 건 그의 영화에서 보기 드문 일이고, 그런 의미에서 [드라이버]는 예외적인 장점을 보여주는 새로움이 있다.

 

[드라이버]는 영화는 다섯 컷이라는 제약 안에서 표현한 영화지만 제약이 제한으로 느껴지지 않을 만큼 자유롭게 이야기를 뻗어나갔다. [누구나 외로운 계절]이나 [모놀로그#1]도 각각의 설정을 제한으로 느낄 수 없을 만큼 자유롭다. 제한된 설정을 풍부한 상상력을 통해 영화적 장치로 뒤집는 김종관 감독의 능력을 볼 수 있다. 독립영화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배우인 양익준씨의 새로운 연기도 놀랍다. 많은 사람이 드라이버를 이번 신작 섹션에서 가장 좋았던 영화로 꼽았다.


[침묵의 대화]

*사진설명 :ⓒ침묵의 대화

하지만 나는 [침묵의 대화]가 더 마음에 든다. 눈먼 남자와 귀가 들리지 않는 여자가 있다. 두 사람은 눈앞의 경치와 경치가 들려주는 소리를 서로의 손바닥에 써가며 설명한다.

 

두 사람은 빛을 보지 못하거나 소리를 듣지 못하지만 각기 다른 방식으로 빛을 짐작하고 소리를 짐작한다. 두 사람의 의사가 소통하는 순간 아름다운 경치는 두 사람의 감각에, 그리고 관객의 눈앞에 다가온다.

 

보고 듣는다는 평범한 일상이 차단됐다가 다시 주어지자 ‘아름다운 경치를 보는 것’ 자체가 경이로움을 지닌 이야기로 전환되는 것에서 나는 큰 감동을 느꼈다. [침묵의 대화]에는 영화를 본다는 경이감이 있다.

 

영화는 빛과 소리로 이뤄져 있고 영화가 담는 아름다운 경치 역시 빛과 소리로 이뤄져있다. [침묵의 대화]는 빛과 소리를 알 수 없는 두 인물을 통해서 차례대로 두 요소를 차단했다가 다시 던져서 관객의 감정을 환기시켜 영화가 지닌 근원적인 아름다움에 접근하는 것이다.

 

영화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는데, 의사소통이 쉽지 않을 것 같은 두 사람의 감정이 소통하고 서로를 사랑으로 감싸 안는 이야기를 더 이어간다. 서로를 잘 모를 것 같은 연인이 이해심으로 벽을 넘어서 사랑을 이루는 과정과, 영화를 보고 듣는다는 경이감이 맞물리면서 여주인공의 화사한 미소로 마무리 된다.

 

사람과 사람이, 그리고 영화와 관객이 의사소통한 끝에 ‘영화’의 근원에 다가가는 순간은 감동적이다. [침묵의 대화]는 낙천적인 영화다. 서로를 적극적으로 이해하려하는 두 남녀가 사랑을 확인하는 아름다운 과정을 묘사한 바탕에는 사랑의 기쁨을 표현하고 싶어 하는 낙천적인 목적이 있다.

 

영화가 주는 가장 근원적인 감동을 관객에게 넌지시 보여주고 싶어 하는 영화의 의도에도 감독이 관객과 즐겁게 관계 맺고 싶어 하는 태도가 숨어 있다. 김종관 감독의 영화가 주인공의 환한 미소로 마무리 된 적 있었던가? [침묵의 대화]에서 처음이었다면 영화가 나에게 유난히 감동적으로 다가온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침묵의 대화]는 2006년 서울독립영화제에서 가장 마음에 든 영화 중 한편이었다.

김종관 감독은 ‘돈만 있으면 한달에 단편 하나씩 만들 수 있을 텐데’라고 아쉬워한다. 조영각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은 김종관 감독을 가리켜 ‘내가 보기에 그는 항상 영화만 생각하고 사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어느 감독이 그렇지 않겠는가 만은, 반대로 모든 감독이 그렇기 때문에 그걸 실천해내는 김종관 감독의 작업이 가치 있는 것이다. 김종관 감독은 이번 섹션을 통해 공개한 신작 네 편과, 얼마 전 제 3회 다도리타 영화제에서 공개한 [길 잃은 시간]까지 포함해 올해에만 총 다섯 편의 신작을 발표했다. 그리고 여전히 바쁘게 움직이는 중이다. 모놀로그 연작도 10편으로 만들어 장편으로 묶을 생각이고, 단 일주일이라도 좋으니 극장에서 상영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번에 발표한 단편들도 가능하면 DVD로 내고 싶다고 하며, 상업 장편 영화 또한 천천히 준비 중이라고 한다. 나는 그가 어느 인터뷰에서 ‘영화 만들 때 말고 놀 때는 뭐하고 노느냐’는 질문에 ‘술 먹거나 자요’라는 대답을 한 걸 목격한 적 있다. 술 먹고 자는 시간 빼고 늘 영화 생각만 하고 사는 김종관 감독이 새롭게 만들 영화들을 나는 뜨거운 관심으로 기다리고 있다.


제목 : 누구나 외로운 계절 A Lonely Season
감독 : 김종관
출연 : 정보훈, 정대훈
정보 : 2006 / fiction / dv / color / 3분 40초

제목 : 드라이버 Screwdriver
감독 : 김종관
출연 : 양익준
정보 : 2006 / fiction / dv / color / 11분 10초

제목 : 모놀로그#1 Monologe#1
감독 : 김종관
출연 : 정보훈, 양익준
정보 : 2006 / fiction / dv / color / 10분 4초

제목 : 침묵의 대화 Dialogue of Silence
감독 : 김종관
출연 : 권종관, 권다현
정보 : 2006 / fiction / dv / color / 11분

 

 

김이환_영화칼럼니스트

 

 

출처:네오이마주 http://www.neoimages.co.kr

 


김이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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