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왕조 청백리의 대명사로 알려진 세종 때의 영의정 황희(黃喜)가 소문 만큼 깨끗한 인물은 아니었다는 반론이 최근에 잇따른다.
그 사실성 여부는 차치하고, 그가 난봉꾼 아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음은 분명한
듯하다.
인조반정 때 무고로 참형된 유몽인(柳夢寅. 1559-1623)이 남긴 필기(筆記)소설 '
어우야담'(於于野譚)에는 그의 아들 황수신(黃守身)에 얽힌 일화가 다음과 같은 골
자로 소개된다.
수신은 기생에게 빠져 헤어나지 못했다. 이에 아버지 황희가 극약처방을 내린다.
하루는 아들이 밖에 나갔다가 귀가하자 황희는 문을 열고 나와 관복을 입은 채 아들
을 맞이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내가 너를 아들로 대접했는데 네가 듣지 않으니 나
는 손님을 맞는 예로써 너를 접대한다."
이후 이야기 전개는 뻔하다. 아들이 개과천선했다는 내용이 이어진다.
그런 수신이 어느 날 곤드레만드레 술에 취해 종을 데리고 말에 탄 채 귀가하다
가 깨어나 보니 절교한 기생의 집이다. 버릇처럼 그를 태운 말이 기생집으로 인도한
것이다.
이 사태에 수신이 어떻게 대처했을 지는 김유신과 천관녀(天官女)라는 기생의
애절한 사랑을 아는 독자들이면 누구나 짐작 가능하다. '어우야담'은 수신이 말을
칼로 베어 죽였다고 한다.
경상도 경산(京山. 성주)의 승려 이하(李賀)는 삼각산(북한산) 승가사에서 만난
노승에게서 각종 도술을 배웠다. 이런 도술에는 자신이 죽을 시점을 정확히 내다보
는 선견지명도 포함됐다.
그런 이하가 한여름 어느 날 홍주(洪州) 목사와 술을 마시다가 "제 명(命)이 오
늘로 다하게 집에서 죽게 해 주십시오"라면서 돌아가고자 했다. 하지만 한사코 말리
는 통에 자리를 뜰 수 없던 이하는 소주를 대여섯 그릇이나 거푸 마시더니 그 자리
서 불을 토하고 죽었다고 '어유야담'은 말한다.
이런 일이 사실이라면 이하가 마신 술은 아마도 한식산(寒食散)이었을 것이다.
각종 광물로 제조한 독극물 일종인데 위진남북조시대 신선술에 심취한 사람들은 이
런 방식으로 죽곤 했다. 이하는 자신이 죽을 날을 미리 알았다기보다 예언한 날에
맞추어 자살을 감행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어우야담'은 인물 일화와 그들의 사건담, 귀신과 신선담, 시화(시에 얽
힌 일화), 나아가 고증과 잡록류 기록들을 집대성해 놓았다. 이런 잡록을 중국에서
는 흔히 '필기'(筆記)라 하는데, 위진남북조시대의 괴력난신(怪力亂神) 이야기 모음
집인 지괴(志怪)소설의 전통을 이었다고 간주된다.
한국문학에서 '삼국유사'가 지괴를 대표한다면, '어우야담'은 필기의 대표주자
라 할 만하다.
이런 중요성 때문에 '어유야담'은 역주가 두어 종 이미 나와 있다.
하지만 신익철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가 이형대 고려대 교수, 조융희 한국학중
앙연구원 교수, 노영미 서울여대 강사와 함께 공동작업한 결과물인 '어유야담'(돌베
개)은 다른 무엇보다 30여 종에 달하는 필사본들을 철저히 원문 교감했다는 점이 최
대 강점으로 꼽힌다.
현재 시중에 가장 널리 통용되는 '어유야담'은 유몽인 후손인 유제한 씨가 1964
년 전남 고흥 만종재(萬宗齋)라는 곳에 세전(世傳)되던 필사본을 저본으로 삼아 간
행한 판본이다. 그러나 '어우야담'은 유몽인이 역적으로 몰려 죽는 바람에 생전에
인쇄되지 못하고 필사본으로만 전해내려온 까닭에 정본이 없는 실정이다.
이에 신 교수팀은 만선재본을 중심으로 여러 판본을 비교하면서 그 상이점을 일
일이 찾아내 원문교감을 했으며, 만선재본에 누락된 39가지 이야기를 새로 추가했다.
이를 신 교수팀은 원문편과 번역편 두 가지로 정리했다. 원문ㆍ번역 한 질 6만원.
(서울=연합뉴스)
http://blog.yonhapnews.co.kr/ts1406
taeshi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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