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용욱 칼럼] 사장도 총장도, 그리고 회장도 아닌, 김인규 기자를 떠나보내며

  • 등록 2026.02.06 10:4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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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싸잇=유용욱 주필 | KBS 공채 1기 출신인 김인규 전 KBS 사장의 갑작스러운 별세 소식은 한 언론인의 죽음을 넘어, 대한민국 공영방송의 한 시대가 저물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처럼 다가온다.

 

 

정치부 기자로 출발한 그는 워싱턴·뉴욕 특파원, 정치부장, 보도국장 등 KBS 내 주요 보직을 두루 거치며 KBS 보도의 중심에서 활동했다.

 

특히 ‘현장’을 중시하는 취재 태도와 남다른 판단력은 동료와 후배들 사이에서 오래도록 회자되고 있다. 보도국장으로 일하던 시절, KBS 뉴스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시스템 정비와 조직 안정에 각별한 노력을 기울임으로써 이후 활짝 열어젖힌 KBS 뉴스의 전성기를 맞이할 수 있는 마중물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필자(筆者)가 김인규 KBS 사장의 부고(訃告)를 접하고 이런 졸고(拙稿)까지 끄적이게 된 계기는 지난 2001년 KBS 경영협회 편집국장으로 일할 때 당시 신설된 뉴미디어본부장이던 김인규 선배와의 잊지 못할 첫 만남 때문이다.
1990년대 말 온 나라를 뒤덮었던 벤처 열풍이 폭주 기관차처럼 끝을 향해 달려가던 바로 그 무렵, KBS는 사내외 여러 반대 의견에도 불구하고 뉴미디어본부를 신설해 기어이 이미 시장은 끝물인데 마지막 설거지용 열차를 뒤늦게 함께 타고 막 달리기를 시작하려던 무렵이었다.

 

당시 주식시장, 특히 코스닥 시장에서는 ‘골드뱅크’라는 종목이 16일 연속 상한가를 기록하고 ‘다이얼패드’라는 신박한 기술을 선보인 ‘새롬기술’이라는 종목은 6개월 만에 약 150배 이상 상승하기도 하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 필자의 문제의식은 단 하나였다. 온 세상이 황금만능에 물신(物神)이 지배하는 사회로 변해간다 하더라도 공영방송 KBS는 함께 뛰어들어 오로지 수익을 추구하는 자세보다는 한 발짝 떨어져 냉정한 시선으로 공정한 심판을 보는 태도가 더욱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걸로 기억한다. 당시 제38호 경영협회보 시론(時論) 제목이다. 「뉴미디어의 빛과 그림자」

 

얼핏 제목은 균형을 갖춘 듯 보이지만, 사실은 비판과 비난 일색인 칼럼이었다.

 

당시 저장해둔 한글 파일 ‘문서정보’를 확인해보니 ‘2001년 2월 8일 목요일, 18시 21분’이다. 하지만 내가 당시 김인규 본부장께 불려간 시점은 분명 오전 막 출근한 이후였으니 아마 초고(草稿)를 완성한 다음 날이었던 거 같다.

 

이 초고가 김인규 본부장 책상 위에 올라가게 된 과정은 지금도 의문이다. 아무튼 뉴미디어본부장 직속이던 뉴미디어센터장이 전화를 걸어와, 지금 급히 김인규 본부장 방으로 함께 오라고 하니 서둘러 가자고 했다.

 

사람 좋은 걸로 정평이 난 당시 뉴미디어센터장 K 선배와 필자는 영문도 모른 채 함께 KBS 본관 6층, 뉴미디어본부장실로 불려갔다. 방으로 들어가 인사도 채 건너기 전에 A4용지 다섯 장이 날아왔다.

 

A4용지 다섯 장과 함께 날아든 사자후(獅子吼).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대충 뜻은 이랬다. 이제 막 의욕적으로 시작해 잘해보려는 조직을, 그것도 KBS 경영을 책임진다는 경영협회가 이렇게까지 조져대면 어쩌자는 것인가?

 

나도 기자들 시켜 귀 협회의 부정적인 부분만 쏙 빼 기자협회를 시켜서 지적해대면 귀 협회는 어떻겠는가. 뭐 이런.

 

그때 필자는 얼마나 놀랐던지, 그 어떤 반박도 못 하고 첫 번째 보인 행동이 바닥에 아무렇게나 날려진 A4 다섯 장을 허리를 숙여 주섬주섬 집어 들고는 고개를 푹 숙이는 거 말고는 달리 그 어떤 말도, 행동도 하지 못했다. 당연히 그 시론은 38호에도, 그 이후에도 실리지 않았다.

이후 시간은 흐르는 물처럼 흐르고 또 흘러, 2009년 11월 김인규 선배는 KBS 제9대 사장으로 취임한다.

 

이어 2010년 G20 서울 정상회의 주관방송을, 2012년에는 서울 핵안보정상회의 주관방송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며 국제 방송사로서의 위상을 확인했고, 또 아시아태평양방송연맹(ABU) 회장에 선출되는 등 한국 방송인의 외연을 크게 넓히는 계기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공영방송 사장의 자리는 언제나 무겁고 쉽지 않다. 김인규 사장은 당시 격변하는 미디어 환경과 복잡한 내부 상황 속에서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섰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그가 남긴 결정들에 대한 흔적과 평가는 다양한 기억으로 남아 있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가 공영방송의 책임을 짊어진 자리에서 결코 물러서지 않았고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지켜가며 KBS를 위해 최선을 다해왔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김인규 사장은 퇴임 이후에도 그의 발걸음은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았다. 경기대학교 총장으로 재직하며 교육 현장에서 후학을 길러냈고, 한국장애인재활협회 회장, 한국전쟁기념재단 이사장 등을 맡아 사회적 약자와 공공의 가치를 위한 활동을 이어갔다. 결국 언론 현장을 떠난 뒤에도 ‘공공성’이라는 화두는 끝내 내려놓지 않았던 셈이다.

 

김인규 전 KBS 사장은 대한민국 방송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또 국내 중심에서 세계 무대로 확장되는 변곡점을 만들어가면서 그 시간의 대부분을 현장에서 함께한 언론인이었다. 얼핏 보기에 그의 삶은 화려한 영광의 순간들로만 가득 차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 이면엔 늘 고뇌하며 번민할 수밖에 없었을 공영방송 수장으로서의 책임의 무게감 또한 꼭 함께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제 그는 그가 그토록 아끼고 사랑했던 공영방송 KBS 본관 정현관 계단 앞에서 KBS와 KBS 후배들과 영원한 이별을 하게 될 것이다. 수많은 현장에서, 또 뉴스 관리자와 보도 책임자로서 부득이하고 불가피한 결정을 마주했던 한 언론인의 삶의 여정은 이제 역사 속으로 들어간다.

 

사장으로 취임 후 우연히 복도에서 마주친 김인규 선배, 당연히 나를 기억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가볍게 목례 만으로 지나치려던 필자를 불러세우고선, 옅은 미소와 함께 으레 그 큰 목소리로 “유용욱 국장, 요즘도 다른 임원들 그때처럼 조지나?”

 

다시 한번 머리 숙여 고인의 명복을 빌며, 그가 평생 지켜내고자 했던 언론의 가치와 공적 책임이 오늘의 언론 현장에서도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 유용욱 주필

- 1993년 KBS 공채 19기
- KBS 전략기획실 성과평가부장
- KBS 법무실장
- KBS N 경영본부장
- 현 인싸잇 경기 편집국장 및 공동발행인

유용욱 주필 macgyveryo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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