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셀럽] “젊은 보수화 배경, 86운동권 부모 세대 있어… 나도 한 사람” - 박민영 국민의힘 대변인

  • 등록 2026.02.06 11: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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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초대 셀럽, 박민영 국민의힘 미디어대변인
“토론대회로 정치 입문한 오디션 출신… 정책이 좋아 시작”
“준비가 진짜 토론… 데블스 에드버킷으로 실력 다져”
“남 탓이 아닌 내 몫을 감당하는 보수가 돼야”
“정치는 시민단체식 문제 제기가 아닌 제도권 언어로 승화하는 일”
“청년·당원과 함께 성장하는 정당 만들겠다”

인싸잇의 정치 섹션 코너 ‘정치셀럽’은 정치권에서 얼굴과 이름이 알려진 ‘유명인과의 인터뷰’를 다룹니다. 인터뷰 대상은 전현직 국회의원이나 정당인 등에 국한하지 않고, 정치 분야에서 대중에 영향력 있는 유튜버, 법조인, 언론인, 학자, 기타 일반인 등의 셀럽을 포함합니다. 이들과 현 시국, 정치 철학, 목표, 개인사 등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며 ‘갈등과 화만 돋우는 정치’가 아닌 ‘흥미롭고 배울 게 많은 정치’를 조명하고자 합니다.

 

인싸잇=백소영 기자 ㅣ 박민영 국민의힘 미디어대변인은 국회 브리핑룸을 넘어 방송과 유튜브 등 다양한 플랫폼에서 보수 진영의 언어와 논리를 능동적으로 재정비하고 있다. 90년대생으로 86세대 운동권 집안에서 자란 그는 스스로 학비를 벌기 위해 시작한 토론대회에서 12관왕을 차지한 입지전적인 이력을 갖췄다.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 청년보좌역으로 활동하며 실무 경험을 쌓았고, 지금은 당의 메시지 전략과 발신을 책임지는 미디어대변인으로 활약 중이다. 박 대변인은 “플랫폼이 없으면 직접 만들고, 남 탓이 아니라 내 몫을 감당하는 보수가 돼야 한다”는 목표 아래, 당 차원의 공식 플랫폼이 부족한 현실을 지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스스로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다. 이를 통해 필요한 메시지를 직접 기획·발신하고 있다. 인터뷰 내내 그는 “역시 대변인 답다”는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로, 모든 질문을 집중해 듣고 확고하고 정제된 언어로 답변했다. 총 20여 개의 질문이 오갔음에도 한순간의 막힘과 흐트러짐이 없었고, 이에 1시간 정도의 인터뷰임에도 지금까지 그가 겪어온 고민과 신념 그리고 목표와 철학 등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었다. <인싸잇>은 박민영 대변인의 성장 배경, 정치 입문기, 대변인으로서의 전략과 역할 그리고 정치인 이전에 대한민국의 한 30대 청년으로서 품는 미래 목표까지 다양한 질문으로 심도 있게 이야기를 나눠봤다.

 

 

- 최근 언론, 유튜브, 방송 등 다양한 미디어에서 활발한 활동이 눈에 띄는데 언론사 경력은 있는지 궁금하다. 또 본인 스스로의 정체성은 정치인, 대변인, 소통자로서 어디에 가깝다고 보는가.

 

“언론사 근무 경험은 없다. 레거시 미디어는 논평 위주고, 유튜브는 우리가 직접 의제를 주도하기 위해 시작했다. 국민의힘은 자체 플랫폼이 거의 없어 외부에 스피커를 맡기는 구조인데, 민주당은 여러 플랫폼이 있어 이런 의존도가 낮다. 이걸 극복하려 유튜브 운영을 시작했다. 정체성은 하나로 규정하기 어렵다. 지금은 대변인 역할에 집중하고 있지만, 선거 국면에선 정책·전략기획 등 실무에도 무게를 둘 예정이다. 필요에 따라 스피커와 실무자 역할을 병행하며, 당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데 힘쓰고 있다.”

 

- 개인적인 성장 배경이나 가족사도 종종 거론된다. 특히 어머니가 지역 언론사를 운영했고, 과거 정치 활동 이력도 알려져 있다. 본인의 정치관·가치관 형성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

 

“부모님 세대는 86세대, 나는 90년대에 출생했다. 제 또래는 부모님이 운동권의 86세대인 경우가 많아, 이념 성향이나 행동 방식이 비슷한 점이 있다. 그럼에도 최근 2030세대를 보면 보수적 이념을 지향하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고, 저도 그중 한 사람이다. 지금 젊은 세대가 보수화된 배경에는, 50대는 민주당, 20대는 보수 성향인 가족 구조가 흔한 점도 작용했다. 저는 좌파가 남의 책임엔 목소리를 높이지만, 자기 책임은 회피하는 걸 자주 보아왔다. 이런 무책임한 태도를 경멸했고, 스스로 책임지고 바꿔 나가야 한다는 가치관을 갖게 됐다. 그런 인식이 쌓이며 자연스럽게 보수화됐다. 지금의 젊은 보수층은 감정이 아니라, 충분한 근거와 경험에서 나온 확고한 신념으로 보수 진영을 지지한다고 본다. 나 역시 그중 한 사람이다.”

 

- 본격적으로 정치에 입문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무엇이었나. 그 가운데서도 ‘대변인’이란 자리를 선택한 배경에 대해 설명해달라.

 

“정당 활동 이력은 바른정당에서 처음 시작했다. 당시에는 정치를 해야겠다는 생각보다 토론대회에 많이 참가해 12번 정도 우승했다. 그 과정에서 바른정당이 실험적으로 토론 배틀을 열었고, 상금이 있다고 해서 참가했는데 우승하면서 흥행까지 됐다. 이후 청년 대변인을 맡아보라는 제안을 받으면서 정당 활동을 시작했다. 다시 말해, 당직을 먼저 받고 당적이 생긴 일종의 오디션 출신이다. 그런데 원래 정책 분야를 더 선호했기에 제3당에서 논평을 쓰는 일은 취향과 적성에 맞지 않았다. 심지어 군 입대를 계기로 정치와 거리를 두게 됐다. 전역 후 대선 국면이 열리면서 원희룡 캠프에서 다시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따라서 본격적인 정치 행보의 시작은 국민의힘으로 돌아와 대선 캠프에서 활동한 시점부터로 보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

 

- 고2 자퇴 후 검정고시를 거쳐 연세대와 고려대에 복수합격했다. 그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과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고 느낀 계기가 있었다면 무엇이었나.

 

“자퇴를 결정하기까지의 시간이 가장 힘들었다. 당시 상황은 매우 불확실했고, 가정 형편이 크게 어려웠다. 정상적으로 공부할 수 없는 환경이었고, 생활 자체가 불안정했다. 그럼에도 부모님은 학업을 이어가길 원하셨고, 자퇴를 통해 결과로 증명하겠다는 일종의 배팅을 했다. 부모님을 설득하고 기숙학원을 직접 알아보는 등 자신이 정한 길인 만큼 스스로 개척해야만 했다. 그 과정에서 능동적으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태도를 배웠다. 힘든 상황이었지만 오히려 공부에 집중할 수 있었고, 5~6등급에서 전 과목 1등급 수준으로 성적을 끌어올렸다. 수능에서도 최상위 백분위를 기록해 연세대와 고려대 두 곳만 지원했고 모두 합격했다. 이후 대학에 진학했지만 가정 문제로 학업을 지속하기 어려워 휴학했고, 과외와 토론대회 상금으로 학비를 충당하며 스스로 생계를 책임졌다. 토론대회는 학비 마련과 동시에 실력을 쌓는 계기였고, 이 경험을 통해 정치권으로 들어오게 됐다.”

 

- 2016년 tvN <대학토론배틀> 우승을 계기로 대중에 알려졌다. 당시 토론 실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사용했던 본인만의 훈련 방식이나 준비 과정이 있었는지 묻고 싶다.

 

“토론회에서 보여지는 것은 20~30분 정도의 일부 시간이고 진짜 토론은 준비할 때 하는 것이라고 본다. 특히 파트너와 데블스 에드버킷 방식으로 내가 원하지 않는 입장도 대변할 수 있을 정도가 되려면 찬반을 바꿔가며 스파링해야 한다. 진짜 토론은 무대가 아니라 준비 과정에서 이뤄지는데, 늘 파트너와 찬반 입장을 바꿔가며 스파링했다. 언론 기사·논문·KDI 보고서 등 각종 자료를 깊이 공부했다. 학력주의 등 포괄적 주제도 국내외 제도와 현황까지 조사해 대안을 만들었다. 이런 치밀한 준비 덕분에 실전에서 논리와 깊이를 갖춘 토론이 가능했다.”

 

 

- 청년보좌역 시절 ‘윤찢남’ 별명까지 얻으며 후보 결정 과정에 실질적 영향을 미쳤다. 청년 정치인의 이런 경험이 본인에게 어떤 의미였나. 당시 청년 정치인이 후보에게 직접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어떤 의미였고, 그 경험이 이후 정치 행보에 어떤 계기가 됐는지 묻고 싶다.


“당시에는 절박감이 컸고, 청년보좌역 자리가 생긴 것 자체가 스스로에 기적이었다. 정치권 문법을 잘 몰랐기에 직함과 권한이 주어진 만큼 능동적으로 움직였고, 후보에게도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이런 순수한 열정과 실무적 자세가 오히려 받아들여졌고, 실제로 정책 발표·콘텐츠 제작까지 직접 맡았다. 그 경험을 통해 실무 능력을 인정받아 대통령실까지 이어지는 계기가 됐다.”

 

- 청년 보좌역으로서 실질적인 역할을 하며 보람도 컸을 것 같은데, 동시에 가장 크게 체감했던 어려움이나 한계, 이른바 ‘벽’은 무엇이었나.

 

“선거 기간에는 굉장히 절박했고 능동적으로 일했기 때문에 오히려 즐겁게 일했다. 그런데 선거가 끝나고 나서부터 어려움이 찾아왔다. 적과의 전쟁이 끝나면 내부의 싸움이 시작된다는 말을 그때 실감했다. 누가 어떤 자리를 맡느냐, 인사와 권한을 어떻게 조율하느냐에 따라 내부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일이 외부와 싸우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는 것을 느꼈다. 나 역시 이준석 계파라는 이유로 배척을 당한 경험이 있었고, 그래서 인수위 초기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이준석 대표 체제가 당에서 무너지면서 나중에 합류하게 됐다. 그런 일련의 과정들을 겪으며 내부 정치가 정말 어렵다는 것을 체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진정성을 인정해주는 사람들이 더 많았고, 그 덕분에 제도권 안에서 계속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 윤석열 대통령 후보 시절 간담회에서 전달했던 세 가지 조언, 즉 ‘검찰총장 윤석열로 돌아와라’ ‘국정을 잘해야 한다는 강박을 갖지 마라’ ‘페미니즘을 멀리해라’는 조언이 현재 시점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보는가.

 

“당시 세 가지 조언은 시대정신과 유권자 지형을 반영해 진심으로 드린 것이었다. 윤 후보에게 기대했던 것은 소통이라는 이름의 기득권 구조 타파와 좌파 카르텔 해체였다. 페미니즘 이슈 역시 당의 정체성과 부합하지 않았다고 봤다. 다만 지금은 사회 담론보다 경제·정치·외교 이슈가 더 중요한 국면이고 시대정신이 달라졌으므로, 그 조언의 대상이 누군지에 따라 유효성은 달라진다고 본다.”

 

- 대변인이 보는 현 정치권의 가장 큰 현안과 사회를 관통하는 이슈는 무엇인가.

 

“가장 중요한 현안은 단연 경제다. 이란, 베네수엘라, 네팔 모두 정권 붕괴의 출발점은 경제였다. 경제 위기가 대중의 불만을 촉발했고, 독재 정권이 공권력 남용, 부정선거, 언론 통제로 사태를 덮으려 했지만 결국 정권 붕괴로 이어졌다. 모든 시작은 경제였다. 지금 한국도 다르지 않다. 정책 방향 자체가 잘못됐는데 이를 규제와 통제로 억누르고 대통령이 ‘시장은 정부를 이길 수 없다’는 식의 경제관을 들고 나오는 상황이라고 본다. 현재의 KOSPI는 실물 경제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고, 수출·환율·물가·성장률 등 주요 거시지표는 적신호다. 증권사 해외 주식 권유를 막고 국민연금 해외 투자 지분을 국내 주식으로 전환하는 식의 정책으로 지수를 끌어올린 것일 뿐, 경제 펀더멘탈이 강해진 것은 아니다. 이 착시가 사라지면 정권의 경제정책 실패가 분명해질 것이고, 그 시점이 야당이 방향성을 제시할 기회가 될 것이다.”

 

- 당내 화두인 이른바 ‘윤어게인’ 현상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그리고 청년 정치인의 시각에서 이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묻고 싶다. 만약 당 대표라면, ‘윤어게인’ 논란과 관련해 어떤 메시지를 공식적으로 내놓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가.

 

“‘윤어게인’ 현상은 이념적 이분법이 아니라, 지지자들이 ‘윤석열은 뭔가 했는데 국민의힘은 뭘 했느냐’는 단순한 문제 제기다. 정치인은 이를 비난하거나 재단하기보다는 요구의 기조를 읽고 설득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당대표라면 지지자들을 판단하지 말고, 우리 당의 실질적 행동을 돌아보자고 메시지를 내야 한다. 핵심은 다양한 지지층을 결집시켜 승리를 만드는 전략을 고민하는 것이며, 이분법 프레임에 빠지지 않는 것이 정치의 본질이라고 본다.”

 

 

- 정치 활동 중 가장 힘든 순간, 본인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개인적인 스트레스 해소법도 궁금하다.

 

“나는 사실 당을 떠나고 싶었던 입장이었고, 대통령실에서 나온 뒤에도 정치권을 떠날 생각이 많았다.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이 책임져야 할 순간에 기성 정치인들은 빠지고, 젊은 사람들에게만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을 보며 큰 절망과 분노를 느꼈다. 하지만 이후 큰 사건들이 이어지면서 ‘나라의 한 축이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생겼고, 그 때문에 다시 당의 부름을 받아 복귀했다. 나는 개인적 영달보다 정당 조직문화와 기초 체력을 바꾸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욕을 먹고 비판을 받더라도 누군가는 당원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나를 버티게 하는 힘은 ‘조직이 어떻게 바뀌어야 한다’는 신념과, 이를 지지해 주는 당원들과 지지자들의 존재다. 스트레스는 게임을 하거나 고양이를 돌보면서 푼다. 정치를 하며 큰 무력감을 느낄 때는 일상의 행복을 찾는 쪽으로 마음을 돌리려 노력하고 있다.”

 

- 게임을 즐긴다고 했는데, 게임 플레이 스타일은 어떤 편인가. 또 게임에서 가장 견디기 힘든 팀플레이 유형은 무엇인가. 현재 국민의힘 상황을 게임에 비유한다면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과거에는 팀플레이 경쟁 게임도 했지만 지금은 하지 않는다. 경쟁이 과도한 게임은 오히려 스트레스를 준다고 느꼈다. 게임은 스트레스를 해소해야 하는데 팀플 게임에서는 갈등이 생기고 서로를 비난하게 되는 구조가 되기 쉽다. 그래서 지금은 혼자 즐길 수 있는 잔잔한 게임이나 혼자 플레이하는 RPG 위주로 한다. 국민의힘은 게임 그 자체보다는 게임 운영 상황에 비유할 수 있다. 팀플 경쟁 게임으로 치면 트롤이 한 명 섞여 있는 상황이다. 그 트롤이 판을 망쳐놓고도 수습할 생각은 하지 않고 내부의 다른 팀원들만 공격하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는 팀 전체가 제대로 움직일 수 없다. 차라리 트롤이 없는 4인 팀이 더 강력할 수 있다는 문제의식을 떠올리게 하는 상황이다.”

 

- 이상형을 여성 정치인 스타일로 비유한다면, 나경원(잔다르크형)·류호정(자유·파격형)·추미애(보수의 어머니형)·용혜인(개성파) 중 누구에 가깝나. 또는 본인만의 기준이 있다면 설명해달라.

 

“선택지 중에서는 고민할 필요도 없이 나경원 의원이다. 나경원 의원처럼 조직에 대한 관념이 강하고 보수 정치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확고한 신념을 가진 정치인은 드물다. 당원들의 니즈와 의사를 대변하려는 대중정치의 태도 역시 본받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다른 선택지에 해당하는 인물들은 정치적 색깔이 나와 많이 다르고, 기존 질서를 존중하면서 통제 가능한 방식으로 점진적인 변화를 만들어가는 정치와는 거리가 있다. 현실 정치 경험 없이 시민단체식 문제의식만을 그대로 표출하는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정치는 시민단체의 문제 인식을 제도권의 언어로 승화시키는 과정인데, 배지를 달고도 여전히 시민단체식 주장만 반복하는 정치에는 공감하기 어렵다.”

 

- 지금 시점에서 박민영 대변인이 이루고자 하는 현실적인 목표와 장기적인 꿈은 어떻게 되나.

 

“가장 큰 목표는 국민의힘이 상벌 체계와 원칙이 바로 선, 명확한 우파 정당으로 정상화되는 것이다. 우리 당은 자유민주주의 건국과 산업화, 주요 복지 시스템을 만들어온 자랑스러운 역사와 레거시가 있는데, 이를 부채처럼 여길 것이 아니라 자부심으로 삼아야 한다고 본다. 개인적으로는 외부에서 들어와 당을 남의 일처럼 평가하는 정치에는 동의하지 않으며, 먼저 당원들에게 인정받고 당원들의 의사를 대변할 수 있을 때 선출에 나서는 것이 건강한 정당 정치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단기적으로는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원들의 직접 선택을 받고 싶고, 장기적으로는 정책을 직접 기획하고 반영하는 정치인의 길에서 보람을 찾고 있다. 경제·외교·사회·문화 전반에서 국민의 날것의 문제의식을 제도권 언어로 조정하고 연결하는 것이 정치인의 본분이라고 본다. 이를 통해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확대하고, 더 잘 사는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이 제 목표다.

 

- 30년 후 자신에게 편지를 쓴다면, 반드시 남기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30년 후면 제가 60대가 될 텐데 그때도 분명 힘든 일들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생이라는 게 결국 번뇌와 결핍의 연속이지만, 힘든 순간마다 과거로 돌아가고 싶냐고 스스로에 물으면 저는 그렇지 않다고 답해 왔다. 돌이켜보면 나쁜 일도 있었고 좋은 일도 있었지만 지금보다 명확하게 더 좋았던 과거가 있었느냐고 하면 그렇지도 않다. 결국 오늘의 자신이 가장 많이 성장해 있는 시점이고, 30년 후의 저는 지금보다 더 성장해 있을 것이다. 그래서 과거의 자신에게 미련을 두기보다는 지금 가진 것과 성장을 바라보며 현실에 집중할 때 더 좋은 일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30년 후의 나에게는 이 마음을 잊지 말자고 말해주고 싶다.”

 

- 마지막으로 지금 국민의힘 당원들과 청년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요즘 당원분들께서 느끼는 상처가 정말 많다고 생각한다. 우리 당은 지금도 당을 위해 헌신한 분들조차 ‘당원은 일부에 불과하다’는 식의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정당이기 때문에, 저 역시 당직자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당원으로서 상처를 받는다. 그래서 당원들께서 기성 정치인들에게 느끼는 허탈감과 실망감을 충분히 공감하고 있고, 저 또한 당원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 당의 조직 문화를 바꿔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결국 당원들 스스로 누군가는 나를 대변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야 정당에 대한 일체감도 생기고 지지율 상승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저는 당원들과 함께 가는 동지로서, 우리가 조금 더 성장하는 정당이 될 수 있도록 앞장서기보다는 함께 노력하겠다. 그 과정에서 당원 여러분께서 같은 길을 가는 동지로서 지지와 응원을 보내주셨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백소영 기자 mkga.gij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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