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인싸잇은 각종 언론·영상 미디어 등을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보며,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현 사회 현안, 미래 발전 방향 등을 논하는 여론의 창(窓)입니다. * 영상 미디어 비평의 경우, 일부 내용(줄거리·인물·장소 등)에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인싸잇=한민철 기자 | 어릴 적부터 부모님과 선생님, 책과 영화, 드라마, 심지어는 대중가요를 통해서도 “외모로 사람을 차별하는 건 좋지 않다”는 말을 누구나 수없이 들어봤을 것이다.
실제로 외모지상주의는 현대 사회에서 인간이 가진 최악의 사상 중 하나로 불리며, 외모를 잣대로 사람을 차별한다면 이는 도덕적 비난을 넘어 법적 책임을 지우게 하는 세상이다.
그런데 외모지상주의 앞에서 사람은 솔직해지지 못한다. 이제부터 솔직해져 보자. 입 밖으로는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거나 차별하지 말라며 훈계조로 떠들면서도, 예쁘고 멋있어지고 싶은 게 우리 모두의 본모습 아닌가.
예쁘고 멋있어지고 싶은 욕망이 없다면, 왜 명품 브랜드 매장에 줄을 서서 고가의 옷과 가방을 구매하고, 여러 종류의 비싼 화장품과 성형, 다이어트, 피부 및 헤어 관리 등에 돈을 쏟아붓는 것인가.
사실 어느 시대에서도 인류는 외모지상주의에 순응하며 살아왔다. 기원전 300년대 사람인 아리스토 텔레스조차 “외모가 수려한 사람은 어떠한 논란도 잠재울 수 있다”는 명언을 남겼다고 하지 않는가.
이처럼 옛날 옛적부터 외모는 인간의 가치를 차별적으로 부여하는 수단이다. 다만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고 차별하는 게 사회적으로 나쁜 일이라는 걸 통념처럼 받아들여 왔으니, 겉으로 티를 내지 못해 왔을 뿐이다.
필자도 마찬가지다. 상대방에게 ‘쓰레기’로 불리지 않고 원만한 대인 관계 형성과 사회생활을 위해 사람의 외모를 평가하지 않는 척을 하고 살아왔을 뿐이다.
이에 외모지상주의를 비판하거나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는 지적은 언제나 진심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속으로는 스스로와 크게 다를 바 없이 그저 쓰레기가 되기 싫어하는 사람들의 표리부동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최근 넷플릭스를 통해 접한 한국 영화 <얼굴>(2025년 작(作), 감독 : 연상호)은 우리 사회를 살아온 그리고 여전히 살고 있는 그 쓰레기의 전형을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쓰레기’ 등장인물의 연속인 영화
영화 <얼굴>은 시각장애인이지만 나무를 조각칼로 파내 도장을 만드는 명인 임영규(배우 권해효)와 그의 아들 임동환(배우 박정민)의 다큐멘터리 촬영에서 시작한다.
촬영을 조기에 마친 뒤 영규와 집에 돌아온 동환은 경찰로부터 정영희(배우 : 신현빈)라는 사람에 관한 뜻밖의 전화를 받는다. 동환을 정형희를 모른다고 했지만, 경찰로부터 그가 40년 전 실종된 영규의 아내이자 자신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동환은 얼굴조차 모르는 모친이 백골 상태에서 발견됐고, 이에 살해 당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이야기를 경찰에게 들었다. 그러면서 동환은 아버지의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는 PD 김수진(배우 : 한지현)과 함께 어머니의 과거 행적을 추적하게 된다.
이렇게 도입부를 마친 영화는 이후 총 5개의 인터뷰로 나뉘어 과거와 현재를 오간다. 그 과정에서 과거 영희를 만났던 모든 이들은 그에 대해 “못생겼다”고 입을 모은다.
동환은 여전히 얼굴을 알지 못하는 영희의 장례식에서 처음으로 만난 그의 자매, 즉 이모들에 “어머니의 사진이 있냐”고 묻는다.
이에 대해 동환의 이모는 “영희가 사진찍기를 좋아하지 않았다”면서, 그 이유를 “못생겨서”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영희가 딱히 장애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냥 괴물 같이 생겼고, 멍청했다”는 것이다.
이후 수진의 권유와 스스로 어머니가 누군지 알고 싶다는 마음에 동환은 과거 영희와 같은 공장에서 일했던 동료들을 만나러 간다.
그런데 이제는 노인이 된 그들조차 영희에 대해 “얼굴이 못생겼다”고 회상하며, 그를 ‘똥걸레’로 불렀다고 태연하게 웃으며 말한다.
실제로 시간을 40년 전으로 돌린 과거에서도 “못생겼다”는 소리를 밥 먹듯이 듣는 영희가 주변인들에 쓸모 있는 건 그저 쉬지 않고 일할 줄 안다는 것뿐이다.
일 처리가 늦다며 구박하는 관리자로 인해 화장실에 가고 싶어도 꾹 참고 있다가 결국 모두의 앞에서 바지에 지려버리면서 똥걸레로 불리게 된 것이다.
이미 주변 모두에게 영희는 여자로서 그 어떤 사정을 봐주지도 않는, 즉 “못생긴 사람이기에 막 대해도 되는, 그래서 똥걸레가 되더라도 상관없는 인물”이라는 인식이 깔린 것처럼 느껴졌다.
다만 영희를 사람이자 여자로 친절하게 대해주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의 공장 앞에서 도장 파는 일을 하는 젊은 영규였다.
맹인인 영규는 영희의 얼굴을 알지 못했고, 그의 상냥한 말투와 손길, 무시와 차별만 받고 살아온 자신을 인간적으로 대해 준 것에 끌려 결혼하게 된다. 영규는 그런 영희가 ‘얼굴도 예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결혼 생활을 이어갔고, 둘 사이에 동환이 태어나면서 부족하더라도 나름 행복한 가정을 꾸려갔다.
그러던 어느 날 영희는 공장의 사장인 백주상(배우 : 임성재)이 자신을 시다(보조)로 두고 일하던 진숙을 강간했다는 사실을 듣게 되고, 이를 참지 못해 주상에 직접 따지거나 공장 곳곳에 관련 사실을 퍼뜨린다.
하지만 공장 내 어느 한 명도 영희의 편이 되지 않았다. 평소 주상은 공장 안팎에서 인사성 밝고, 직원 월급을 떼어먹지 않으며, 사진찍기를 좋아하는 젠틀맨으로 불렸기에, ‘못생기고 막 대해도 상관없는’ 영희의 말을 믿어줄 사람은 누구도 없던 것이다. 심지어 진숙마저 영희에 욕을 하며 뺨을 때리면서 영희는 절망에 빠진다.


그 과정에서 주상은 영규를 불러 술을 대접하며 영희에 대한 심한 험담과 협박을 일삼는다. 하지만 영희의 주상을 향한 폭로는 끊이지 않았고, 영규는 영희가 주변 사람들로부터 “얼굴이 못생겼다”는 조롱을 듣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얼굴을 볼 수 없는 자신에게 영희는 절세 미녀의 여자일 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주변 사람들에게 못생겼다는 조롱을 듣는 얼굴이었고, 돈 많고 젠틀맨인 공장 사장 주상을 상대로 소란만 반복해 일으킨다는 사실에 격분한 영규는 영희를 살해하고, 집 인근 산속 비탈에 그를 내던져 버린다.
동환은 집으로 돌아와 영규에 40년 전 이야기를 묻는다. 영규는 영희를 죽인 걸 시인하면서도, 그가 “괴물처럼 못생겼다”는 말을 들었다는 걸 떠올리며, “아름다운 건 존경받고 추앙받고, 추한 건 멸시 당한다”고 말한다.
맹인인 자신을 받아준 그리고 자신의 아이까지 낳아준 사람이지만, 자신에게 못생겼다는 사실을 숨겼다는 게 그가 아내를 살인한 이유였다.
그러면서 영규는 자신을 살인자라고 말하는 동환에게 “공소시효가 다 지났다”며 자신은 눈이 보이지 않지만 장인으로 불리는 기적이라고 큰 소리친다.
솔직하지 못한 ‘쓰레기’의 속마음을 파낸 걸작
그동안 많은 영화를 보면서 이렇게 이야기를 전개하는 내내 ‘쓰레기’같은 인물이 끊임없이 등장하는 작품도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골이 돼서 수십 년 만에 만난 동생을 향해 “못생겼다” “괴물같다”고 말하거나, 과거 일터에서 함께 땀 흘렸던 동료들조차 외모를 지적하며 ‘똥걸레’라는 멸시적 별명을 웃으며 떠올리고 있으니.
또 겉으론 좋은 사람인 척하면서 온갖 나쁜 짓만 몰라서 한 사장 그리고 눈이 보이지 않는 자신에게 못생겼다는 사실을 숨겼다는 이유로 아내를 죽였음에도 공소시효 운운하는 남편까지.

쓰레기와 쓰레기의 연속이었다. 영화의 클로징 코멘트 부분에서는 동환과 수진 두 사람이 카페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드디어 쓰레기가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고 기대했다.
여기서 수진은 이제는 무일푼이 돼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늙은 주상으로부터 영희의 얼굴이 나온 개인 사진 한 장을 받아왔다. 이 사진은 주상이 40년 전 영희가 신입직원으로 입사했을 때 직접 찍은 사진으로, 수진은 이를 봉투에 넣어 동환에 전달했다.
동환은 천천히 봉투를 열어 사진을 꺼냈다. 그렇게 카메라 앵글은 동환의 뒤로부터 향했고, 영희의 얼굴이 담긴 사진이 등장한다.
머뭇거림도 잠시, 영희의 얼굴을 보고 엄청난 충격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영희의 얼굴이 매우 평범하게 생겼기 때문이다. 물론 현대 시점에서 예쁜 얼굴은 아니며, 못생긴 축에 속한다고 볼 수 있는 얼굴이다.
다만 영화 내내 쓰레기들로부터 “못생겼다” “괴물이다” “똥걸레다” 등 온갖 조롱과 멸시로 외모 비하를 받았던 사람인데, 그저 일밖에 모르는 평범하지만 어두운 얼굴인 가진 여성에 불과한 것이었다.
‘혹시라도 내가 얼굴을 자세하게 보지 못한 것일까’라는 생각에 리모콘의 뒤로 가기 버튼을 눌러 동환이 사진을 보고 있는 장면으로 다시 돌아와 영희의 얼굴을 자세히 관찰했다. 다시 봐도 40년 전 어느 곳에 있을 만한 평범한 여성의 얼굴이다.
순간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고 생각했던 주인공 동환에 대한 필자의 감정이 바뀌었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영규를 위해서라도 과거를 잊으려 했지만, 자신도 어머니의 얼굴이 꽤 궁금한 것이었다.
아니, 정확히 ‘어머니가 정말 얼마나 못생겼는지’를 보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가 지극히 평범한 얼굴을 하고 있기에, 자신의 한심함과 어머니의 불쌍한 죽음에 눈물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제 동환에게 느낀 감정이 필자 자신에게도 돌아왔다. 나 역시 영희의 얼굴, 정확히 영희가 얼마나 못생긴 사람이었는지 확인하고 싶어 끝까지 영화에 몰입했다.
그리고 사진을 통해 영희의 얼굴을 보자, 과연 못생긴 것이 맞는지 자세히 관찰하기 위해 영상을 재차 뒤로 돌려 재생했다.
필자도 그의 얼굴이 얼마나 못생겼는지 보고 싶은, 즉 동환을 포함해 다른 등장인물과 같이 결국 영희의 ‘못생긴 얼굴’이 궁금했던 쓰레기에 불과한 것은 아니었을까.
만약 마지막에 동환이 영희의 사진을 공개하는 장면이 없이 스토리를 마무리했다면, 이 영화는 평범과 허무함 사이를 오가는 작은 반전의 미스터리 창작물에 불과했을 것이다.
하지만 영희의 얼굴을 끝까지 숨기다 결국 공개하면서 등장인물과 주인공, 심지어 필자와 영화를 본 모두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영화는 외모지상주의에 사로잡힌 등장인물들을 쓰레기라고 욕하지만, 실제 결국 관객 자신도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려 한, 솔직하지 못한 우리 모두의 속마음을 파낸 걸작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 (주)인싸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