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초상화의 미소와 군화 소리 사이, 엘살바도르

부켈레 정부 집권 이후
엘살바도르 센트로 이스토리코에서 본 ‘안전’의 얼굴

강인준 기자 kij727060@gmail.com 2026.01.24 16:35:35

인싸잇=강인준 기자 산살바도르 공항에 내리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국가의 얼굴이었다. 출국장 벽면에 걸린 대통령 나이브 부켈레와 영부인의 사진. 카메라를 들고 잠시 머뭇거리자 공항 경비원이 웃으며 다가왔다. 



“사진 찍어드릴까요?” 그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셔터를 눌렀다. 공항의 첫 인사처럼 친절한 장면이었지만, 이 나라가 지금 어떤 상태에 놓여 있는지 알고 있던 내게 그 미소는 묘한 대비로 남았다.

한국 대사관이 보낸 입국 안내 메시지는 관광객의 안전 수칙을 넘어선 경고에 가까웠다. 

엘살바도르는 지난 2022년 3월 시작된 ‘비상사태(국가비상조치)’가 여러 차례 연장되며, 상황에 따라 영장 없이 체포·구금이 가능하니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되지 말라는 취지의 안내였다. 실제로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도 이 비상조치가 2022년 3월 도입된 뒤 “정기적으로 갱신”돼 왔다고 설명한다.



 10m마다 총, 그러나 밤 8시의 가족들

숙소가 있는 산살바도르 센트로 이스토리코(도심 역사 지구)로 들어서자 광장의 풍경은 더 선명해졌다. 10m 간격으로 보일 만큼 촘촘히 배치된 경찰과 군인. 완전무장한 인력이 ‘광장’을 둘러싸고 있었다. 낯선 도시에서, 더구나 중남미의 밤을 떠올릴 때 익숙한 장면은 아니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건 그 다음이었다.

밤 8시가 가까웠는데도 광장에는 사람이 가득했다. 어린아이, 젊은 여성, 가족 단위의 군중이 산책하듯 오갔다. 

겨울에 방문했지만 기온은 30도 안팎. 땀이 날 정도로 덥고, 그 열기 속에서 사람들은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아이는 뛰어다녔다. 

총을 든 군인과 웃으며 걷는 가족이 같은 프레임에 들어오는 도시. ‘부켈레 이후의 엘살바도르’가 나에게 보낸 첫 문장은 아마 이것이었다. 안전은 돌아왔고, 그 안전은 국가가 눈에 보이게 관리하고 있었다.



떠났다가 돌아온 사람

밤중에 만난 우버 기사(신원 보호를 위해 익명 처리)는 내게 이 도시의 변화를 개인사로 번역해 줬다. 

그는 예전 엘살바도르를 떠나 미국 필라델피아에 살았다고 했다. “너무 불안정했어요. 여기서는… 살기 힘들었죠.” 그러다 부켈레 집권 이후 치안이 나아지면서 다시 귀국했다고 말했다.

그가 내린 진단은 단순했다. “지금은 갱단을 다 감옥에 잡아넣어서 길거리에 깡패들이 많이 사라졌어요.” 실제로 엘살바도르 정부는 갱단 단속 이후 살인율이 급락했다고 주장해 왔고, 미 국무부 산하 해외안보자문기구(OSAC)도 2023년 살인율(인구 10만 명당 2.4, 154건)과 2024년 중반의 낮은 수치를 언급한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2024년 114건(인구 10만 명당 1.9) 수준, 2025년 82건(1.3) 수준까지 내려갔다는 정부 발표도 이어졌다.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부켈레를 비판할 수 있나요?”

그는 잠깐의 간격 뒤,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지는 못해요.”

그 대답이 흥미로웠던 건 ‘검열’이라는 단어를 꺼내지 않았는데도, 차 안의 공기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안전이 가져온 안도감과, 말의 경계가 동시에 존재하는 느낌. 그가 귀국을 선택하게 만든 ‘개선’과, 그가 선을 긋는 ‘침묵’이 한 사람 안에 함께 있었다.

총질이 멎었다는 상인, ‘관광’이 늘었다는 상인


다음은 광장 주변에서 만난 상인의 말이었다. 그는 과거를 이렇게 설명했다. “전에는 두 갱단이 서로 싸우며 총질을 해대니까 거리를 걷는 게 너무 무서웠어요.” 부켈레 이후 사정이 좋아졌느냐는 질문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관광객이 늘어난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이 “관광객이 늘었다”는 체감은 정부·기관의 숫자와도 이어진다. 엘살바도르 관광 당국은 2024년 국제 방문객이 390만 명으로 전년 대비 17% 증가했다고 발표했다는 보도들이 있다. 치안 개선과 관광 붐이 ‘부켈레 모델’의 양면으로 함께 언급되는 분석도 잇따랐다.




달러의 편의, 비트코인의 간극


엘살바도르는 ‘달러라이제이션’ 국가다. IMF 자료에 따르면 2001년 1월 1일부터 미국 달러가 법정통화가 됐다. 


여행객 입장에선 환전 부담이 줄어든다. 여기에 더해 이 나라는 2021년 비트코인을 법정통화로 밀어붙이며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그러나 센트로 이스토리코의 밤거리에서 비트코인은 ‘전설처럼’ 느껴졌다. 


국민들이 쓰는 치보(Chivo) 앱은 신분증 등록 등 절차가 필요했고, 외국인인 나는 실제로 사용이 쉽지 않았다. 상인들도 “그건 엘살바도르 국민들이 주로 쓴다”고 말했다. 


이 간극은 최근의 정책 조정과도 맞닿아 있다. IMF는 엘살바도르가 법·제도 개정을 통해 민간의 비트코인 수용을 ‘의무’에서 ‘자발’로 바꾸고, 세금 납부는 미 달러로만 하도록 하는 등의 조치를 언급한다. 


로이터도 IMF 합의 이후 비트코인법 개정 및 치보 지갑의 매각 및 중단 가능성 등을 보도했다. '비트코인 국가’의 브랜드는 여전히 남아 있지만, 길 위의 현실에서 그것은 선택지이거나 상징에 더 가까워 보였다.




숫자가 말하는 것, 숫자가 말하지 못하는 것


부켈레 이후 엘살바도르의 변화는 한 문장으로 환원되곤 한다.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나라 중 하나가, 가장 안전한 나라 중 하나로 바뀌었다.” 실제로 정부 발표와 여러 기관 자료는 살인율의 급락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그 변화의 바닥에는 ‘비상사태’가 깔려 있다. 미주인권위원회(IACHR)는 비상사태가 반복 연장되는 상황과, 2022년 3월 이후 누적 구금 규모에 대한 우려를 공개적으로 표명해 왔다. 휴먼라이츠워치(HRW) 역시 자의적 구금, 증거 조작 의혹, 경찰의 남용 등 문제를 보고하며 제도적 견제 약화를 비판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버 기사의 말—“비판은 못 한다”—는 통계표 밖에 남는 감각이었다. 살인율이 내려간 도시에서, 사람들은 밤 8시에 광장을 걷고 아이는 뛰어다닌다. 동시에, 권력에 대한 말은 차 안에서 멈칫한다. 완전무장한 군인과 가족 산책이 공존하는 도심에서 내가 본 것은 ‘안전’ 그 자체보다, 안전이 어떤 방식으로 유지되는지였다.


공항에서 경비원이 웃으며 찍어 준 사진 속, 나는 낯선 여행객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 프레임 바깥에서 엘살바도르는 지금도 시험 중이다. 공포의 거리에서 관광의 광장으로, 그 변화를 가능하게 한 힘이, 이 나라의 다음 문장을 어디로 데려갈지. 센트로 이스토리코의 밤은 뜨겁고 밝았지만, 그 밝음의 비용을 묻는 질문은 아직 남아 있었다.


강인준 기자 kij72706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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