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팬포워드] 공격받고 있는 사도광산의 실제 역사

“사도광산에 강제노동은 없었으며 조선인들은 더 나은 급여와 풍부한 일자리를 찾으려고 자발적으로 일본의 섬으로 갔던 것”

미디어워치 편집부 mediasilkhj@gmail.com 2022.05.01 11:07:08



※ 본 칼럼은 일본의 영자지 ‘재팬포워드(JAPAN FORWARD)’에 2022년 4월 22일자로 게재된, 제이슨 모건(Jason Morgan) 레이타쿠(麗澤)대학 교수의 ‘공격받고 있는 사도광산의 실제 역사(The Real History of Sado Gold Mine is Under Attack)‘를 제이슨 모건 교수와 ‘재팬포워드’ 측의 허락을 얻어 완역게재한 것입니다. 사진과 캡션도 원문의 것을 그대로 가져오거나 번역했습니다. (번역 : 최인섭)



공격받고 있는 사도광산의 실제 역사 

(The Real History of Sado Gold Mine is Under Attack)



지난 3월 하순의 어느 흐린 날, 필자는 도쿄 관공서의 회색 건물과 검은색 건물 사이를 지나 한 평범한 호텔로 향했다. 호텔의 회의실 호수만을 알고 있던 필자는 그렇게 일본 역사인식문제연구회(歴史認識問題研究会)가 사도광산(佐渡金山)을 주제로 진행하는 심포지엄 장소를 찾았다.


회의실 밖에서는 두 사람이 방문자 명단에서 내 이름을 확인하고 있었다. 출입 허가를 받은 사람만 들어갈 수 있었다.




심포지엄은 왜 비밀리에 진행되어야만 했을까?


니가타 현 앞바다의 일본해(Sea of Japan)에 위치한 사도섬의 금은광 단지는 1980년대 후반에는 생산을 중단했다. 사도광산은 약 9세기 전 헤이안(平安) 시대(794-1185년)부터 귀금속을 생산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광산은 굳이 별도의 보호가 필요치 않아 보이는 외진 곳에 있다.


다만 우리가 보호해야 하는 것은 사도광산의 역사다. 사도광산은 유네스코(UNESCO)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예정이다. 하지만 일부 한국인들은 과거 조선인들이 사도광산에서 강제노동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도섬의 실제 역사가 공격받고 있는 엄혹한 상황인 것이다.


일본 역사인식문제연구회는 니시오카 쓰토무(西岡力) 레이타쿠(麗澤)대학 교수의 주도 하에 올해 3월 심포지엄을 개최, 사도섬과 그 광산의 역사에 대한 사실관계를 밝혀냈다. 심포지엄은 사도섬에서 강제노동(Forced labour)이 있었다는 것은 거짓임을 폭로했다. 아울러, 그곳에서 고임금 일자리를 위한 동등한 기회가 존재했다는 사실, 조선인들이 사도섬에 자원해서 이민을 온 것이라는 사실도 규명했다.




일본에서 일하려고 무더기로 자원한 조선인들


거의 3시간 동안 진행된 이 심포지엄에서는 한국에서 온라인으로 접속하여 참여한 두 사람을 포함하여 총 여섯 사람의 연사가 연단에 올랐다. 


먼저 니시오카 쓰토무 교수는 1910년부터 1945년까지는 지금의 한반도(당시 조선반도)가 일본의 일부였으며, 조선인도 역시 일본의 국민이었던 그 병합 기간 동안에 시행되었던 노무동원 문제와 거주이전 문제에 대해 설명했다. 현재 일각에서는 조선인들이 속아서 사도섬으로 갔다거나 강제노동이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당시 주요 문헌들을 살펴 보면 전혀 다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니시오카 쓰토무 교수는 1933년부터 1938년까지 72만 7,094명의 조선인이 자발적으로 당시 조선반도 지방경찰서에 일본으로의 도항 허가를 신청했다가 거절당했었다는 조선총독부의 통계자료를 인용했다. 1939년부터 1942년까지 태평양전쟁의 일부 기간 동안에만 약 2만 2,800명의 조선인들이 조선에서 일본으로 무단으로 도항한 후에 결국 일본에서 체포되어 조선으로 송환되었던 사실이 있었던 것이다.


니시오카 쓰토무 교수에 따르면, 1939년부터 1945년까지 2,378,232명의 조선인이 일본으로 건너갔는데 이 중 약 4분의 1(604,492명)은 전시노무동원 차원에서 건너간 것이다. 하지만 4분의 3(177만 3,740명)은 순전히 자발적으로 일본에 건너갔다. 


다시 말하자면, 조선인들에게 일본에서 일하라고 강요할 이유가 없었다. 어차피 수십만 명의 조선인들이 스스로 일본으로 건너가 일하기를 원했던 것이 당시의 상황이기 때문이다. 





박경식과 가짜 한일 근대사의 기원  


이런 역사적 기록은 명백한 사실이며 부인할 수 없다. 병합 기간 동안 조선인들은 일본 본토로 가겠다고 자원했다. 봉급도 일본이 더 높았고, 일자리는 훨씬 더 풍부했다.


그렇다면 ‘강제노동’이라는 거짓말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1965년에 재일교포 박경식 씨가 ‘조선인 강제연행의 기록’이라는 책을 일본어로 출간했다. 3월 심포지엄 두 번째 발표자는 메이세이(明星)대학 전 교수인 카츠오카 칸지(勝岡寛次)(사진) 씨로, 그는 “모리타 요시오(森田芳夫)가 쓴 사실에 근거한 다큐멘터리 역사 저작에 대한 반론으로 박경식 씨가 내놓은 책 ‘조선인 강제연행의 기록’이 당시 조선반도에서 조선인이 집단으로 납치돼 일본으로 끌려갔다는 속설의 근원”이라고 밝혔다. 


박경식 씨의 책 내용은 실제 사실과 거리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좌파 학자들과 한국의 좌파 학자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박 씨가 만든 픽션에 편승했다. 


불행하게도 “강제노동”이라는 상상 속의 이야기는 계속되고 있다. 3월 심포지엄의 세 번째 발표자로 나선 야마모토 유미코(山本悠美子) 나데시코액션 대표는 유엔 국제노동기구(ILO) 기록을 통해 강제노동이라는 픽션의 근원을 추적했다. 


야마모토 유미코 대표가 지적하는 정말 심각한 문제는, 일본 정부가 수년 동안 이 픽션을 사실인 것처럼 인정하는 듯 태도를 보였으며 심지어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해서 사과까지 했었다는 것이다. 야마모토 유미코 대표에 따르면, 일본 정부가 공식 보고서를 통해 조선인의 사도광산 강제노동 주장을 반박한 것은 최근인 2019년이다.


야마모토 유미코 대표는 타이밍이 미묘하게 겹친다는 점도 지적했다. 1990년대 초에 일부 한국인들이 과거 일본에서 강제노동을 했다고 주장하자 다른 한국인들은 위안부들이 강제연행됐다는 주장도 하기 시작했다.



전쟁 전후 사도섬에서의 생활

 

네 번째 발표자인 나가타니 료스케(長谷亮介) 역사인식문제연구회 연구원은 제2차 세계대전 이전과 전쟁 중 사도광산에서의 생활이 어떠했는지를 밝히기 위해 다양한 1차 자료들을 제시했다. 나가타니 료스케가 제시한 자료 데이타에 따르면, 일본 본토 노동자(일본 거주 조선인 포함)의 급여가 당시 조선반도 노동자의 급여보다 훨씬 높았다. 

 

예를 들어 1940년 7월 일본광업협동조합이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일본에서 광업 노동자의 평균 임금은 66엔 77센이었다. 같은 해인 1940년에 조선에서 남성 교사의 평균 임금이 15엔 96전, 남성 은행원은 30엔 80센을 받았다.(1센은 1/100엔)  


일본 광산 노동자들의 임금이 워낙 높았을 뿐만 아니라, 사도 광산은 다른 사업장에서 보기 드문 특별한 편의 시설을 제공했다. 예를 들어, 일본 측은 사도 광산에서 근무한 조선인 남성들에게 아내와 아이들을 데려와서 광산에서 살 수 있도록 장려했다. 


식비와 숙박비는 급여에서 공제되었지만, 일본과 한국의 근로자들 모두가 여전히 높은 급여를 받았다. 광산에서의 일은 확실히 위험했다. 그러나 좋은 생활 조건과 높은 급여가 바로 채굴로 인한 위험에 상응하는 것이었다. 




높은 급여와 풍족한 음식  


사도광산의 근로조건이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한국인 노동자들이 도망쳤다. 왜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일본에는 훨씬 더 높은 급여를 주는 다른 직업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다섯 번째 발표자인 이우연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박사)이 지적했다. 이 연구위원은 일본 내 광산에서 일하는 한국인 노동자들의 급여가 높았고, 당시 조선반도보다 생활 여건이 좋았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1차 자료를 깊이 연구했다. 


예를 들어, 이 연구위원은 한 문서를 확인한 결과 1940년에 71엔 95센을 벌었던 광산 근로자가 식비로 월 임금의 21.2%, 저축으로 18.6%, 기타 재화·서비스로 16.4%를 공제받아 총 56.2%가 공제된 것을 확인했다. 해당 근로자는 수입의 34.5%인 24엔 84센을 조선으로 송금하고 임금의 9.3%(6엔 72센)를 용돈으로 보관했다.


월급의 3분의 1이상을 집으로 보내고서도 월말에 돈이 남아 돌았다는 것은 일본 내 광산에서 일하는 조선인 근로자들에게 매우 유리한 조건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급여만 좋은 것이 아니었다. 이 연구위원에 따르면, 조선과 일본의 평균적인 광산 근로자들이 하루에 소비할 수 있는 칼로리의 양을 보면 일본에서 조선인들의 생활 조건은 상당히 좋았다. 예를 들어, 1941년에 당시 조선반도 남부에 사는 어느 근로자는 하루에 평균 1,799 칼로리를 소비했다. 반면 후쿠오카(福岡) 현 미쓰이(三井)광업소 야마노(山野) 탄광에서 일하는 조선인 노동자는 같은 해 하루 평균 3,224칼로리를 소비했다. 일본에서의 근무는 조선인들에게 좋은 일이었다.


이 연구위원은 이 자료와 다른 다양한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사도광산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하는 데 문제는 없다”고 결론지었다.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 진실을 위한 공동 투쟁  


사도광산 심포지엄의 여섯 번째이자 마지막 발표자는 한국의 언론인이자 연구자이며, 한국의 언론을 감시하는 언론인인 황의원 미디어워치 대표이사였다. 황 대표는 한국 언론들이 사도광산과 관련해 1차 사료에 근거한 분석은 무시하고 오직 한국 좌파의 반일 서사에 힘을 실어주는 인물과의 인터뷰만 내보내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황 대표는 필자와의 후속 인터뷰에서 “한국내 주류 언론들은 위안부 문제나 징용공 문제와 관련해 진실을 밝히는 어떤 증거나 어떤 증언도 자국 국민들에게 보도하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고 밝혔다. 이어 “따라서 일단 일본은 한국에 자신들의 입장을 있는 그대로 전달할 수 있는 소통 채널부터 구축해야 한다”며 “일본은 한국의 반일 엘리트들이 아니라, 한국의 일반 대중들과 소통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황 대표는 “무엇보다도 일본은 진실을 추구해야 한다”며 “일본이 ‘진실’보다 ‘우의’를 더 우선시한다면, 그때문에 오히려 한국과의 좋은 관계를 맺는 일에 실패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한국의 반일 엘리트들과 달리, 한국의 일반 대중들은 반일 선동에 굳이 참여해야 할 동기가 없다. 따라서 일본 측은 한국 국민들은 언젠가 진실을 받아들일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서 그들을 계속 설득해야 한다. 그러면 한국의 거짓말 세력은 결국 무너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말하자면 2022년 3월 도쿄에서 열린 사도광산 관련 심포지엄은 한국과 일본의 연구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황 대표가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던 제안대로 진행됐던 것이다. 그리고 이 자리는 니시오카 쓰토무 역사인식문제연구회 회장의 그간 연구결과를 정리한 자리이기도 했다. 


니시오카 쓰토무 회장은 자신의 가장 최근 저서인 ‘나의 체험적 코리아론(わが体験的コリア論)’에서 역사적 진실을 찾기 위한 양국 공동의 노력만이, 일본과 한국이 더 이상의 반목을 극복하고 상호 존중으로 나아가도록 도울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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