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킨잔이 ‘강제노동’의 피해지였다는 한국측 반발에 대해, 조선 연구자인 니시오카 쓰토무 씨는 1월 26일자 산케이신문을 통해 킨잔에서 일한 조선인 노동자와 관련해 “응모가 쇄도했다”, “대우도 나쁘지 않았다”라고 반론하고 있다. 이는 옛 아이카와마치(相川町)가 편찬한 ‘사도아이카와의 역사ー통사편(佐渡相川の歴史・通史編)’(1995년)에 의거하고 있다. 그러나, 공산당의 시이 가즈오(志位和夫) 위원장은 1월 29일 담화를 통해 같은 책에 있는 “사도광산의 비정상적인 조선인 연행”이라고 쓰인 부분을 인용하며, 부(負)의 역사에도 눈을 돌리라고 설파했다. 아이카와마치사(相川町史)에 앞서 간행된 ‘니가타 현사·통사편 8·근대 3(新潟県史・通史編8・近代3)’(1988년)에는 더 직접적인 기술이 있다. “쇼와 14년에 시작된 노무동원계획은, 명칭이 ‘모집’, ‘관 알선’, ‘징용’으로 변화한 반면, 조선인을 강제로 연행한 사실에 있어서는 동질”이었다고 한다. 지자체의 자체적인 편찬물인 만큼, 강제연행은 없었다고 생각하고 싶은 일본 정부로서는 불편한 공적 통사(公的通史)인 것은 분명하다.
아시아-태평양 전쟁 말기, 사도킨잔에서 당시 일본의 식민지배하에 있던 조선인의 강제노동이 행해진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니가타 현이 편찬한 ‘니가타 현사・통사편 8・근대 3’은 “조선인을 강제로 연행한 사실”을 지적하고, 사도의 옛 아이카와 초가 편찬한 ‘아이카와의 역사 통사편・근현대(相川の歴史 通史編 近・現代)’는 킨잔에서 조선인 노동자들의 상황을 상술한 뒤, “사도광산의 비정상적인 조선인 연행은 전시산금국책(戦時産金国策)으로 시작되어, 패전으로 겨우 끝난 것”이라고 기술되어 있다. 이 역사를 부정하는 것도, 무시하는 것도 용서받지 못한다.
조선에서 마치 눈사태와 같은 타관벌이(出稼ぎ)의 도항이 이어졌는데, 이들을 전쟁 수행에 필요한 사업장에 질서있게 보내려 했던 것이 전시동원이었다. 이는 ‘강제연행’, ‘강제노동’ 등과는 상반되는 역사적 사실이다(자세한 내용은 니시오카 쓰토무(西岡力) 편집 ‘조선인 전시노동의 실태(朝鮮人戦時労働の実態)’ - 산업유산국민회의(産業遺産国民会議)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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