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양택 교수 특별기고]‘세월호 참사’로 본 한국사회에 대한 所懷

박종덕 본부장 blue6543@daum.net 2014.04.29 15:00:23


T. S. Eliot(1888∼1965)는 「황무지」(The Waste Land, 1922)에서 “4월은 가장 잔인한 계절”이라고 읊었습니다. 그 이유는 눈 덮힌 大地를 뚫은 4월의 강한 생명력의 소생을 역설적으로 노래한 것입니다. 이와 같은 詩心으로 민족시인 尹東柱 선생은 「봄」에서 “三冬을 참아온 나는 풀포기처럼 피어난다”고, 청록파 시인 朴木月 선생은 「4월의 노래」에서 “돌아온 4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 든다”고 각각 읊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들어 한국의 4월은 실로 ‘잔인한 계절’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미래 역사의 주인공들인 경기도 안산 단원고 학생들을 비롯하여 300여명이 거센 바다에 수장(水葬)되어 전남 진도군 앞바다는 ‘통곡의 바다’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무쪼록, 필자는 “빛 되신 주님께서 기적을 베푸시어 어두운 바다를 밝혀주시고 구원의 닻줄을 내리시어 그곳의 어둠과 싸우는 우리의 자녀들 한 생명까지도 구원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 그 바다가 요나의 뱃속 같게 하시어 한 사람도 헛되이 희생당하지 않게 하시고, 주의 구원을 노래하는 날 되게 하소서.”라고 필자는 기도합니다.

사실, 한국사회는 청소년들에게 ‘미래의 희망’을 주기는커녕 ‘현재의 생명’조차 보전할 수 없는 국가안전시스템의 수준을 보여 주었습니다. 한국인은 모두 슬픔과 허탈에 잠겨있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한국인을 분노케한 주요 포인트들은 다음과 같이 2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승객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선장과 승무원들은 사고 당시 무책임과 무능력으로 일관했으며 잘못된‘대기’ 지시에 마냥 순종했던 어린 학생들은 꽃다운 목숨을 잃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세계적으로 수치스러운 사건입니다. 즉, 세월호의 선장과 대부분의 승무원들은 어린 학생들 325명을 버리고 도주했으며, 그 결과 현재 시각으로 사망자 171명, 실종자 131명으로 각각 보도됐습니다. 실소를 금치 못할 것은 당국의 장시간 조사를 받느라고 오랫동안 앉아 있었던 세월호 선장은 엉덩이가 아프다고 하소연 했다는 점입니다.

‘세월호 참사’ 계기로, 한국의 청소년들은 어른들을 원망 및 증오하는 세대간 갈등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임시 합동분향소가 마련된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 안산올림픽기념관 실내체육관의 벽면이 부족하자 그 옆 한쪽에 급히 설치된 2대의 대형 화이트보드에 “대한민국이 정말 싫다”, “두 번 다시 이 땅에 태어나지 마세요”, “형이 나쁜 어른들과 끝까지 싸워 다시는 슬픈 일이 없도록 할게” 등의 메시지가 붙기 시작했습니다(연합뉴스, 2014. 04. 24).

참고로, 1912년 4월 빙산에 충돌해 1,500여 명이 사망한 타이타닉 호의 에드워드 스미스 선장은 침몰 직전까지 승객 구조를 위해 노력하다가 배와 함께 최후를 맞았습니다. 또한, 플라잉 엔터프라이즈라는 화물선의 헨릭 컬트 칼슨 선장은 1951년 12월 태풍으로 배가 기울어지자 승객과 승무원들이 모두 구조될 때까지는 물론, 배를 인양해갈 예인선이 올 때까지 5일간이나 배에 남아 있다가 생환되었습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2012년 1월 암초에 부딪혀 32명이 사망한 유람선 코스타 콩코르디아호에서 탈출한 선장은 직무유기죄로 2,697년 형이 구형됐습니다.

둘째, 정부의 위기대응능력 부족이 국민의 신뢰를 붕괴시켰다는 점이다. 세월호의 선장은 못 배워 무식해서 그렇다고 하더라도 훌륭한 교육을 받은 고위 공직자들이 보여준 작태는 더욱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Anton Schnack(1892∼1973), Jugendlegende Begegnungen am Abend, 1941년)입니다. 왜냐하면 분노가 도(道)를 넘어 “아 내가 이 나라의 국민이구나”하고 슬퍼질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청소년을 수장(水葬)시키는 나라를 어떻게 국가라고 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과정을 잠시 돌이켜보면, 정부 부처마다 대책본부를 차려 각개 약진하더니 사고 이틀이 지나서야 국무총리 지시로 ‘범정부 사고대책본부’가 발족됐습니다. 그러나 사고대책 본부장은 국무총리에서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바뀌었습니다. 이것마저 사리에 맞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개정안(재난안전법)의 법안심사 보고서에 국가재난대응 체계도를 보면 청와대 국가안보실이 대통령 바로 밑에 위치해 안전행정부 장관을 본부장으로 하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와 주무부의 장관(선박사고의 경우 해양수산부 장관)을 본부장으로 하는 중앙사고수습본부를 지휘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즉, 청와대 국가안보실이 주무부처의 보고를 받아 대통령에게 전달하는 컨트롤타워인 것입니다. 이것은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2013년 4월 국회운영위원회에 출석하여 스스로 증언했던 내용입니다.

한편, 중국의 예를 들면, 2008년 5월 12일 중국 쓰촨(四川)성에서 발생한 규모 8.0의 초대형 지진으로 사망ㆍ실종자가 8만 명을 넘었을 때,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는 늦은 밤 현장에 도착해 안전모를 쓰고 확성기를 든 채 구조를 독려했습니다. 고아가 된 아이들을 붙잡고 “울지 마라. 내가 원자바오 할아버지야. 정부가 너희들을 집에 있는 것처럼 보살펴 주마.”라며 눈물 흘리는 장면은 TV를 통해 중계돼 중국 국민들을 안심시켰습니다. 이것은 평소 그분의 愛民·爲民 정신의 표출인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의 고위공직자는 사망자 명단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어느 장관은 유족들이 울부짖는 실내체육관에서 의전용 의자에 앉아 컵라면을 먹으면서 자신의 시장끼를 달랬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일본의 예를 들면, 2011년 3월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고 당시 에다노 유키오(枝野幸男) 일본 내각 관방장관은 100시간 넘게 잠을 안 자고 일했습니다. 보다 못한 일본인들이 “잠 좀 자라”고 하기에 이르렀고, 누군가 ‘edano_nero(에다노 자라)’라고 트위터에 글을 올린 뒤부터 ‘edano_netekure(에다노 잠 좀 자요)’등의 응원이 잇달았습니다. 사고 나흘 만인 3월 15일 그가 일단 집에 간다고 하자 ‘edano_oyasumi(에다노 잘자)’라는 애정을 담은 표현이 등장했습니다. 왜 한국엔 일본의 에다노와 같은 고위 공직자가 없습니까? 원래 ‘못난 한국인’(Ugly Korean)이기 때문인가요?

정부의 위기대응 시스템의 부실과 ‘컨트롤타워’의 부재에 대한 비탄 속에서, 취임 후 짧은 기간 동안 많은 업적을 쌓았던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안타깝게도 하락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얼미터의 이택수 대표는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진도 방문 직후인 4월 18일(금) 71%까지 상승했으나, 이번 주 들어 67.0%(월), 61.1%(화), 56.5%(수)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고 밝혔습니다(연합뉴스, 2014. 04. 24).

급기야, 어떤 사람은 페이스북에 “세월호는 대한민국이고 선장은 박근혜고 선원들은 공직자들이고 선내 방송은 정권의 시녀가 된 언론이고 승객들은 국민”이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한편, 필자(임양택)의 부산고등학교 선배님이신 김성우 시인 김성우은 며칠 전 ‘나라가 나라가 아닙니다’라는 詩를 읊조렸습니다.


"박근혜 대통령님,
지금 우리나라가 나라입니까.
나라가 나라가 아닙니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지 못하는 나라는 나라가 아닙니다.
대통령님은 세월호 안의 생명을 한 사람도 구해 내지 못한
나라 아닌 나라의 대통령입니다.
세월호와 함께 나라가 침몰하고 있습니다.
오 선장님! 우리 선장님!
온 국민을 실망과 통곡과 분노에서 어떻게 구출하려 하십니까.
대통령님,
제발 우리 국민을 국민이고 싶은 나라의 국민이게 해 주십시오."


이젠, 세월호 참사 충격을 직접 받은 당사자들은 우울, 분노, 억울함, 죄책감 등으로, 일반 국민들도 한국사회가 정의롭지 못하고 신뢰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허탈감과 울분으로 인하여 심각한 트라우마(Trauma)와 이로 인한‘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PTSS: Post Traumatic Stress Syndrome)을 겪고 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국민들의 내상(內傷)을 치유할 수 있을까요?

한국사회가 ‘선진사회’가 되려면, 개인의 윤리적 판단, 성숙한 자기 원칙(이타심, 도덕성, 책임감 등)에만 의지하고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한국사회가 너무 복잡해졌기 때문입니다. 소위 ‘선진국’이란 ‘사회(국가)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는 국가’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필자(임양택)의 저서 : 「한국의 비전과 국가경영전략」(나남출판사, 2007년)에서 한국의 비전을 ‘선진 복지사회’라고 규정한 바 있는데, 접두사 ‘선진’의 뜻이 단순히 국가의 경제발전이나 정책 입안 및 추진의 메카니즘에 있는 것이 아님을 필자(임양택)는 크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차제에, 정부 당국자들을 비롯한 한국인 모두가 현재 뼈를 깎는 아픔을 느끼면서 깨달아야 할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입니다. 즉, 불과 10여년 전인 1993년 10월 전북 부안군 위도 앞바다에서 서해 훼리토 침몰 사고로 292명의 사망자(생존자 70명)가 발생했습니다. 서해 훼리호 침몰 사고 후 약 7년 후 백령도 근처 해상에서 한국의 초계함인 천안함 피격 및 침몰 사건(2010. 03. 26)이 발생한지 1년 후 「천안함 피격사건 백서」(2011. 03. 26)가 발간되었는데, 이 백서는 초기대응 및 국가위기관리대응체계 보완의 필요성을 지적하였고 처절한 반성을 촉구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3년 동안 재난대책 훈련 없이 무사안일로 흐른 다음, 또 다시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2014. 04. 16) 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상기 백서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소 잃고 외양양간 고친다’는 속담마저도 적용이 안되는 사회가 바로 대한민국인 셈입니다.

한편 기획재정부는 ‘2013∼2017 국가재정운용계획’을 통해 공공질서·안전분야 투자에서 2017년까지 재난관리 부문 예산을 연평균 4.9%씩 감축하기로 했습니다. 그 이유는 2003∼2007년에 연평균 재난피해액이 1조7767억원에 달했지만 2008∼2012년에는 연평균 5345억원으로 크게 감소했다는 배경 하에서“기존 하드웨어 중심의 재해시설 투자 기조를 시스템 투자로 전환, 효과를 확대하기 위한 것”이라고 기획재정부는 설명했습니다.

이 결과, 재난관리 예산은 안전행정부, 소방방재청 등의 재난예방안전관리, 재난안전기술연구개발, 재난안전교육, 재난상황 등에 투입되는 것인데, 재난관리 예산은 2013년 9840억원에서 2014년 9440억원으로, 2015년 8610억원, 2016년 7830억원으로 감소하게 됩니다.



여기서 분명히 강조되어야 할 것은 재난관리란 돈이 아니라 사람이 하는 것이며, 재난관리시스템이 제대로 항상 완비되어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그 시스템에 따른 재난관리 훈련을 반복함으로써 재난관리 당국이 ‘기본을 갖추고 원칙을 지키는’주어진 매뉴얼에 익숙되어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일반상식이긴 하지만 시스템의 운영은 사람이 하는 것이므로, 우리 마음의 자세가 매우 중요합니다. 그 마음 자세는 평소에 문·사·철(文·史·哲)의 교육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 나라의 교육은 출세위주의 대학입시 용도로 전략되었고 본연의 교육 시스템은 이미 붕괴된 지 오래입니다.

이제, 스스로가 자신을 가르치지 않으면 안되는 시대에 진입했습니다. 초·중·고 교사 및 대학 교수들을 제쳐두고, 이젠 자신의 인생의 師表가 되어 줄 수 있는 스승을 찾아 그분께 ‘先生님’이라는 칭호를 올렸던 옛 선비들의 삶을 이어받아야 할 시대가 도래하였습니다.

그러나 淸貧儉約하고 薄己厚人하며 知行合一하고 先公後私하는 ‘현대판 선비’가 과연 몇 분이 계실까요? 先生은커녕 塾師(초등학교에서 小學을 가르치는)라도 몇 분이 계실까요? 나아가, 한국 정치판에 格物致知하고 誠意正心하며 修身齊家함으로써 治國할 수 있는 정치지도자가 얼마나 있을까요?

여기서 유의할 것은 선장과 대다수 승무원들이 도주한 가운데, 한명의 제자라도 구하려고 필사적으로 사투했던 인솔교사 13명 중 10명이 희생됐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필자는 지난 35년 동안의 先生으로서 살아온 제 인생의 한 조각에 대한 자긍감을 갖게 됩니다. 아무리 척박한 한국사회이지만, 역시 선생님의 정신은 살아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세월호 침몰 당시 승객을 구하다가 함께 숨진 28세의 연인도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아직 義人들이 곳곳에서 건재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필자는 믿고 있습니다.

이번호 세월호 참사와 관련하여 유의할 것은 대량 인명을 앗아간 것은 비단 세월호만이 아니며 이보다 더 많은 인명을 앗아간 것이 바로 ‘금융사고’라는 점입니다. 세계 경제사에 기록된 모든 ‘금융사고’의 근본적 원인은 바로 인간의 탐욕(Greed)이었습니다. 세월호의 참사의 근본적 원인도 ‘황금만능주의’가 빚어낸 탐욕이었습니다.

그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대충대충 융통성있게 일하고 ‘나만 잘살면 된다’는 극한적 이기주의가 독버섯처럼 번성 및 풍미해 왔으며, 그 결과 선량한 시민들이 많이 희생되어 왔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필자(임양택)의 저서 중 일부를 인용합니다.


"회고해 보면, 1997년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자살자 수가 897명 이었다. 사실, 단 한 명이라도 사람을 죽인 자는 살인자이듯이, 1997년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1,492명의 자살을 유발시킨 당시의 정책 당국자들은 비록 ‘간접적 대량자살 방조범’들이라고 칭할 수는 없더라도, 한국의 인구감소 추세에 크게 기여한 분들이다. 그들이 아직도 부끄러움과 죄의식을 못 느끼고 백주에 활보하고 있으니 한국사회의 도덕과 사회정의는 이미 죽은 것 같다.

2003년의 경우 가난을 비관한 자살이 731명, 사업실패를 비관한 자살이 426명(1998년 595명)이었다. 2006년에도 하루 35.5명이 자살하였다(중앙일보, 2007. 9. 10). 2006년 자살 사망자 수가 1만 2,968명에 이르렀는데, 이는 같은 해 교통사고 사망자 수(6,327명)보다 2배나 많다.

한편, 2008년 하반기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한국의 자살자 수가 2009년에는 무려 약 1만 5,413명으로 전년 대비 19.9% 증가했다. 1997년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자살자 897명에 비하여 2008년 하반기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자살자 수가 그보다 17배인 1만 5,413명이라는 것은 최근의 경제위기가 얼마나 혹독한가를 말해준다. 실로, 한국은 “하루 평균 약 40명이 자살로 삶을 마감하는 ‘자살공화국’인 셈이다”(중앙일보, 2011. 2. 1).

여기서 유의할 것은 2006년 자살 사망자 중 61세 이상의 ‘황혼 자살’ 비율이 33%이며, 여성의 자살 비율이 31.9%로 매우 높고 또한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빈곤과 외로움, 질병에 시달리는 노인과 소외감을 느끼는 여성이 급증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득 없이 병들고 소외된 노인들이 자식에게 부담이 되기 싫다는 눈물겨운 마음으로 자살을 선택한 것이다. 경제적 빈곤 때문에 65세 이상 노인 자살률이 10만명당 82명이다. 이 비율은 다른 나라 평균보다 2.4배에 이르고 미국과 일본의 노인 자살률보다 4∼5배가 더 높다. 실로 부끄러운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의 현실이다. "
(중간 생략)
(계속)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이 말한 ‘건전한 사회’(a sane society)란 인간의 욕구와 일치하는 사회, 즉 인간이 자기 욕구라고 느끼는 것과 모두 일치하는 사회가 아니라(병적 욕구까지도 주관적으로는 가장 원하는 것이라고 느껴질 수 있기 때문에) 객관적인 욕구와 일치하는 사회이다.

또한, 인간이 자신의 생활의 주인임과 동시에 사회생활에 능동적이며 책임감을 가진 참여자가 되도록 허용하는 사회이다. 그리고 인간의 단결을 증진하고 사회구성원이 서로 사랑하도록 허용할 뿐 아니라 사랑하도록 조장하는 사회다. 마지막으로 모든 사람이 자기 일에 생산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조장하며 이성의 개발을 촉진시켜 집단적인 예술이나 의식을 통해 인간의 내면적인 욕구를 표현할 수 있게 하는 사회다.

상기한 에리히 프롬의 ‘건전한 사회’이론에 의거하여, 한국 사회는 과연 건전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통계청이 발표(2013. 6. 20)한 <2012 한국의 사회지표>에 의하면, 2011년 범죄 발생건수는 190만 3천건으로 인구 10만 명 당 3,750건의 범죄가 발생하였으며 주요 범죄 중에서 절도가 28만 1,501건으로 가장 많으며, 절도와 강간 등의 범죄는 매년 증가 추세라고 한다.

한편, 안정행정부가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2천 1백 명을 대상으로 안전 체감도를 조사한 결과, 10명 중 2명만이 우리 사회 전반에 대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 중 대다수가 성폭력과 학교폭력에 대한 불안감을 토로하며 이를 정부가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았다."


아! 언제, 이 땅에, 찰스 다윈(Charles Robert Darwin, 1809~1882) 의 약육강식에 바탕을 둔 금융자본주의(Financial Capitalism)가 다산(茶山)의 실학사상에 근간을 둔 신(新)실용주의(Neopragmatism)로 변환될 수 있는 것인가?

얼마나 많은 참사(해양사고이든 혹은 금융사고이든 간에)를 더 겪어야 인본주의적 자본주의(Human Capitalism)이 愛民·爲民으로 뿌리내릴 수 있을 것인가?

우리 모두 ‘기본’으로 돌아가는(Back to Basic) 원칙을 세우고 시베리아아와 태평양으로 향하여 虎視 牛步千里의 正道를 걸읍시다!
임양택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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