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사년 봄날에 꾸어보는 도원(桃源)의 꿈

  • 등록 2013.05.01 16:3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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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사년 봄날에 꾸어보는 도원(桃源)의 꿈

관세음보살님이 상주하면서 때때로 세상이 어려울 때마다 성인(聖人)을 내어 세상을 구한다는 다는 전설이 대대로 전하여 오고, 박지원의 열하일기 피서록에 신선(神仙)의 땅으로 알려진 전남 곡성군 곡성읍 주산인 동악산(動樂山)에는 원계동(元溪洞) 고반동(考槃洞) 청류동(淸流洞) 서계동(西溪洞) 삼인동(三仁洞) 청계동(淸溪洞)이라는 6개의 수려한 골짜기가 부챗살처럼 동쪽으로 펼쳐나가 성인(聖人)의 강이라는 순자강(鶉子江 섬진강)으로 들어 남해 바다로 간다.

1700년 전 마한(馬韓) 당시 법화사상이 이 동악산(옛 이름 성출산(聖出山)으로 들어와 인접한 성덕산(聖德山)으로 전래되어, 우리민족 효행사상의 교본인 심청전의 근원이 된 이래, 6개의 골짜기마다 고유한 역사와 문화를 가지고 있어, 예로부터 수많은 도인들과 선비들이 끊임없이 찾아 들었고, 해동(海東) 무이산(武夷山)이라 하여, 주자학파(朱子學派)들이 도통을 전하였으며, 실학의 비조(鼻祖)로 일컬어지는 반계(磻溪) 유형원(柳馨遠, 1622~1673) 이후 조선의 실학자들이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실학사상을 전해오고 있는 산실이 되었다.

특히 한반도 남부 내륙의 중심에 있는 이 동악산에는 원계동(元溪洞) 고반동(考槃洞) 청류동(淸流洞) 3개의 골짜기에 구곡(九曲)이 있는데, 이 가운데 원계동에는 조선 실학파들이 호연지기를 하며, 실학사상을 전한 것으로 유명하다.

원계동을 거슬러 오르다보면, 유형원(柳馨遠 1622∼1673).허생(許生).성호(星湖) 이익(李瀷 1681∼1763).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 농암(農巖) 김창협(金昌協 1651~1708))과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1653∼1722)이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르며 학문을 연마했다는 기록들이 암벽에 새겨져 있어 옛 사람들의 자취를 말해주고 있다.

동악산 산골 나무꾼의 사견이지만 이 원계동 백미는 구곡(九曲) 활연대(豁然臺)다.

팔곡(八曲)에서 우측 암벽을 돌아 올라가는 길을 따라 가거나, 계곡의 물을 거슬러 코앞에 있는 산굽이를 돌아가면, 반석을 흘러내리는 작지도 높지도 않은 그림 같은 폭포가 있고, 폭포 위 가운데에는 마치 신선들이 물놀이를 하다가 잃어버린 신발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 바위를 구곡(九曲) 활연대(豁然臺)라 이름하고, 현석(玄石) 박세채(朴世采 1631∼1695)와 쌍호(雙湖) 김재해(金載海 1658~1720)가 은거하며 수양한 곳이라고 새겨져 있고 그들 선비들이 머물렀던 터가 우측에 있는데, 매번 이 동악산 나무꾼을 홀리게 하는 선경(仙境)이다.

아마도 옛사람들이 골짜기의 이름을 원계동(元溪洞)이라 이름 한 것은, 도학을 깨달은 학자나, 무식한 이 산골 나무꾼이나, 가난한 사람이나 부유한 사람이나, 남녀노소 누구나 골짜기를 흘러내리는 맑은 물을 거슬러 오르다보면, 마치 신선(神仙)이 되어 선계(仙界)로 들어가는 것 같은 기운을 느끼게 하는데, 천지의 큰 덕, 만물을 살리는 큰 기운이 이 골짜기에 흐르기 때문일 것이다.

골짜기를 흘러내리는 물길을 거슬러 오르며, 화려하고 위엄이 있는 벼슬아치의 관모(冠帽)와 신발을 차례대로 벗어놓고, 구곡 활연대(豁然臺)에 올라, 툭 터진 하늘과 땅 사이에서 홀연히 깨달아 얻는 자유로움은, 말 그대로 세상의 모든 영욕과 온갖 탐욕으로부터 벗어난 자유로운 신선이었을 것이다.

덕지덕지 온몸에 달라붙어 있는 속세의 부귀와 명리는 물론 왜 살고 왜 죽어야 하는지, 나고 죽는 생과 사의 의문마저도 버리고, 자연으로 돌아와 구곡(九曲) 활연대(豁然臺)에 앉아 미소하는 옛 선인(先人)들의 모습이 동악산 산골 나무꾼의 눈에 선하다.

여전히 동악산 산기슭에 앉아서, 세사(世事)에 얽매이며 헤매고 있는 몸이지만, 머지않아 세간의 남은 일들을 정리하는 그날, 생각속의 생각까지도 툴툴 털어버리고, 활연대에 올라 몸을 씻을 꿈을 늘 꾸어보지만, 글쎄..... 당장의 현실은 갑자기 누옥의 정적을 깨뜨리는 핸드폰 벨소리에 놀라며 반응하는 내가 우습기만 하다.

하하 우습다.

정말 우스운 봄날이다.

하하 우스운 봄날, 신돈복(辛敦復 1692∼1779)이 쓴 학산한언(鶴山閒言)에 전하는 쌍호(雙湖) 김재해(金載海)가 도학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이야기 하나를 여기에 싣는다.

부솔(副率) 김재해(金載海)는 학문으로 이름을 날렸다. 일찍이 한 집을 샀는데 그 값이 5, 60량이었다. 본래 그 집의 주인은 과부였다. 김재해가 그 집으로 이사하여 무너진 담장을 축조하려고 땅을 파다가 큰 항아리 하나를 발견하였는데, 그 안에는 족히 200량에 달하는 금이 들어있었다.

과부가 그 집의 옛 주인이었던지라 김재해는 처에게 명하여 편지를 써 연고를 말하고 그 금을 돌려주도록 하였다. 이에 과부는 그 사실에 크게 감동하고 또 괴이하게 여겨 몸소 김재해의 아내를 찾아가 말했다.

“이 금은 비록 나의 옛집에서 나왔지만 실제로는 오랫동안 매장되 있었던 물건이니, 내가 어찌 그 사실을 숨기고 내 물건으로 취하겠습니까. 서로 반절씩 나누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김재해의 아내가 대답했다.

“내가 만일 반분해 가질 마음이 있었다면 곧 바로 가졌지 어찌 집의 본 주인에게 돌려주었겠습니까? 저 역시 부인의 물건이 아니리라는 것은 알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밖에 남편이 있어 그가 족히 집안을 다스리므로 이 물건이 없어도 가업을 보존할 수 있지만, 부인에게는 달리 집안을 지탱해 줄 사람이 없어 경영하기가 힘들 것이니 돈에 관한 일은 바라건대 사양하지 마십시오.”하며, 김재해의 아내는 한사코 사양하며 받지 않았다.

과부는 감히 또 다시 말을 꺼낼 수 없는지라 비록 그 물건을 도로 가지고 집으로 돌아갔지만 김공의 덕이 지극히 깊음에 감동하여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하였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김재해는 1658년 2월 1일 출생하여 숙종 말년인 1720년 3월 14일 사망하였지만, 그의 생전을 보면, 저명한 성리학자인 박세채(朴世采)의 문인이었고, 동악산 원계동 암벽에 이름이 새겨진 김창협(金昌協)과도 교제한 성리학자이며, 세자익위사(世子翊衛司) 부솔의 직책을 맡았었고 쌍호초고(雙湖草稿)라는 경서를 해설한 저작을 남긴 유명한 선비다.(쌍호 김재해의 생몰일자는 본인 동악산 나무꾼이 경주김씨 족보에서 확인한 것임,)

부연하면, 동악산 나무꾼의 사견이지만, 학산학언에 전하는 이야기가 구체적인 것으로 보거나, 김재해의 도학사상으로 보아서는, 어느 때, 어느 곳에서 있었던 일인지 알 수는 없지만, 조금의 차이는 있겠지만, 허구가 아닌 사실을 바탕으로 한 논픽션이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인 것 같다.

글쎄......재미있는 사실은 200여 년 전 김재해(1658~1720)의 직계 후손들이 동악산 원계동 입구 언동(彦洞 선비의 마을)마을로 이주하여 터를 닦아 대를 이어오고 있는데, 김재해의 후손들이 처음 동악산으로 들어와 상량(上樑)을 올린 이유가 가문의 선조(先祖)가 말하기를 이곳으로 가면 가만히 있어도 복이 들어올 것이라고 하였다는 것인데, 이로 보아서는 어딘지 알 수 없는 담 밑에서 금 항아리가 나왔다는 과부 집이 있었던 마을이 이곳이 아닌지..... 다음에 활연대에 올라가서 김재해의 혼령을 만나면 한번 물어보아야겠다.

어찌됐든 주역에 달통하여 우주를 꿰뚫었고, 땅속을 훤히 보았으며, 호남 의병장 기우만 등과 창의를 논하는 등 구한말 불운의 시대를 살다간 비운의 천재(天才) 오강(梧岡) 김정호(金正昊)가 쌍호 김재해의 7대 손이고, 지조를 지키며 가난을 벗 삼는 선비 김정호에게 조병순과 정순태 두 가문에서 쌀과 돈을 가져다주었고 후생들을 살폈으니, 이는 돈과 쌀이 스스로 든 것으로, 김재해의 후손들을 위한 명당이라는 말은 맞은 것 같다.

끝으로 대한민국의 모든 공직자들이 다 쌍호(雙湖) 김재해(金載海)와 같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지만, 최소한 국정을 이끌어가는 고위공직자들과 그의 부인들이 금덩어리가 가득한 항아리를 옛 집주인인 과부에게 돌려준 김재해 부부의 철학을 가졌다면, 우리 사는 대한민국은 참 맑고 좋은 세상이 될 것인데......

계사년(癸巳年) 봄날, 동악산 산골 나무꾼은 100년 전 항일의병과 민족독립운동을 이끌어갔던 애국지사들이 동악산 청류동 구곡(九曲) 암벽에 새겨둔 도원(桃源)의 꿈을 꾸어본다.

부정부패 없는 참 맑은 세상을 위하여

2013년 5월 1일 동악산에서 박혜범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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