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의 음란물 보고서가 감춘 진실은?

음란물은 성범죄를 증가시키는가 억제하는가

강석하 사이언티픽크리틱스 편집장 kang@scientificcritics.com 2013.01.12 01:10:15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먼저 진단이 정확해야 한다. 진단이 틀렸으면 처방이 효과를 내기 어려울뿐만 아니라 예산을 낭비하고, 예기치 않은 부작용을 발생시킬 수도 있다.

아동성범죄를 막겠다고 아동음란물을 단속하는 대책이 나왔는데 과연 이 방법이 올바른 진단에 근거했는지, 효과를 기대할만한 방법인지에 대한 성찰을 보기 힘들다.

어떤 이유로 여기에 대해 언론이 한 치의 의심도 안 보이는지 모르겠다. 이달 초 아동성범죄와 아동음란물에 대한 언론의 보도를 살펴보자. 모두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법무부의 의뢰를 받아 성폭력 범죄로 수감된 수형자 288명과 일반인 170명을 상대로 조사한 보고서를 근거로 하고 있다.
 



위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대부분의 언론이 아동음란물이 아동성범죄를 유발하는 요인이 되는 것처럼 보도하고 있다. 근거가 되는 보고서는 확인하지 않은 채 법무부 인권국 여성정책팀이 적어준 보도자료를 그대로 인용한 것으로 추측된다. (보고서는 행정안전부의 PRISM에서 볼 수 있다. 링크에서 나타나는 목록의 맨 위에 있는 보고서다.)


“아동음란물을 시청한 비율은 아동 성범죄자가 16%로 일반 성범죄자의 7%보다 2배 이상”

“성범죄 직전 아동 음란물을 2회 이상 시청한 비율 역시 아동 성범죄자 13.7%, 일반 성범죄자 5%”

(편집자주: 보고서에는 성범죄를 저지른때부터 7일 전까지를 "성범죄 직전"으로 설정했다.)

“성범죄자의 17%가 아동폭력음란물에 대해 성적 충동을 느낀다고 답해, 일반인 11.8%보다 높아”


과연 이것들이 근거가 될 수 있을까? 조사 방법은 과학적으로 빈틈없이 설계되었을까? 여기 언급되지 않은 결과들도 같은 결론을 지지하고 있을까?

보고서를 살펴보면 아동음란물이 아동성범죄와 관련이 있다고 주장하기 위해 대부분의 분석결과는 무시하고 몇 가지 작은 부분들만 뽑아서 내세웠음이 드러난다. 이 점을 드러내기 위해 보고서의 자료를 가지고 아래 첫째와 둘째 가설을 지지하는 입장을 펼쳐보겠다. 셋 중에 어떤 가설이 가장 타당하고 근거를 갖추었는지는 각자가 판단해보자.


가설 1. 아동음란물은 아동성범죄를 억제한다.
가설 2. 아동음란물과 아동성범죄는 관련이 없다.
가설 3. 법무부와 언론의 주장대로 아동음란물이 아동성범죄를 유발한다.


아동음란물은 아동성범죄를 억제한다.

사람들은 종종 현실에서 얻을 수 없는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다른 수단을 이용한다. 드라마나 소설의 주인공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거나 다큐멘터리나 영화를 통해 가보기 힘든 멋진 장소를 구경하지 않는가.

불행하게도 보통 사람들과 달리 아동에 대해 성욕을 가진 사람들은 이를 현실에서 충족시킬 방법이 없다. 이들이 욕구를 이룰 수 있는 수단은 범죄와 대리만족 둘 뿐이다. 아동 음란물을 보면서 자위를 하는 등의 방법으로 성욕을 해소하고 일상생활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른다.

보고서의 결과도 이를 지지한다. 아래 표에 보이는 것처럼 성범죄자들은 성범죄를 저지르기 1년 전동안 음란물을 보지 않았거나 5회 미만 시청한 경우가 일반인이 최근 1년간 경험한 비율에 비해 6.7배 가량 높았다.
 



아래 결과는 더 강력한 근거가 된다. 음란물을 보며 자위를 한 경험이 한 달에 한 번 이상 있는 경우는 일반인의 64.8%에 달했지만 성범죄자는 37.9%에 불과했다. 일반인들은 대리만족과 자위를 통한 욕구해소로 남을 해치지 않으며 성욕을 제어하지만 성범죄자의 경우 이런 활동이 부족해 욕구가 쌓여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아진다.
 



아동음란물과 아동성범죄는 관련이 없다.

먼저, 보고서에서도 해외의 선행연구결과들을 검토해 내린 결론이 다음과 같다.


“아동 음란물 범죄자가 향후 피해자를 접촉하여 얼마만큼 실질적으로 성범죄를 저지르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알려진 바가 많지는 않다.”


쉽게 말하자면 아동음란물 범죄자라고 해서 성범죄를 저지르는 것과 관계가 있다는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보고서에서 언급한 연구들은 단순히 아동 음란물을 소지한 정도가 아니라 ‘범죄’로 적발될 정도인 사람들인데 이런 사들조차도 실제 성범죄와 관련이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가상과 현실을 혼동하지 않는다. 총을 쏘는 게임을 즐긴하고 해서 총기를 탈취해 난사하는 것도 아니고, 스마트폰으로 동물을 터뜨리는 게임을 한다고 해서 동물들을 모아다 터뜨리는 것도 아니다. 나는 최근 레이싱 게임을 즐겼지만 차를 몰때 레이싱게임처럼 몰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 적은 없다.

마찬가지로 음란물을 봤다고 해서 남을 해치면서까지 따라할 사람들이 있을까?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극소수의 정신병자를 막겠다고 음란물을 단속하자면 총 쏘는 게임, 격투 게임, 레이싱 게임도 모두 금지시켜야 한다.

한달에 한 번 이상 아동 음란물을 시청한 빈도도 성범죄자 21.6%, 일반인 17.1%로 큰 차이가 없었다.

오히려 성범죄와는 뚜렷한 관련이 없어 보이는 음란물 시청 장소, 시청 매체 등이 성범죄자와 일반인 사이에 유의한 차이를 나타냈다.

음란물로 인한 성적충동을 조사한 결과에서는 오히려 성인 음란물 이용 후 누군가와 섹스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 비율이 성범죄자의 64.9%, 일반인의 77.5%로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일반인이 높았다. 음란물을 통해 성적충동을 느끼는 비율이 성범죄자보다 일반인이 높지만 성욕이 범죄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아동음란물과 성적충동은 두 집단간에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가 없었다.)
 



보고서의 분석결과들은 거의 대부분 관련이 없음을 지지하고 있다. 음란물 접촉 뒤 성적충동여부에 대해서는 일반 성범죄자와 아동 성범죄자 간에 비교했지만 아동 음란물, 성인 음란물, 폭력 음란물 세 가지 모두 두 집단 간에 성적충동이 발생하는 정도에 차이가 없었다.

아동음란물이 아동성범죄를 유발한다.

마지막으로 보고서와 언론에서 내리는 결론인 세 번째 가설에 대해 보고서에서 든 근거와 결론을 살펴보자.


“아동음란물을 시청한 비율은 아동 성범죄자가 16%로 일반 성범죄자의 7%보다 2배 이상”

“성범죄 직전 아동 음란물을 2회 이상 시청한 비율 역시 아동 성범죄자 13.7%, 일반 성범죄자 5%”
(편집자주: 보고서에는 성범죄를 저지른때부터 7일 전까지를 "성범죄 직전"으로 설정했다.)

“성범죄자의 17%가 아동폭력음란물에 대해 성적 충동을 느낀다고 답해, 일반인 11.8%보다 높아”


위는 언론에 주로 소개된 내용이다. 보고서의 결론 부분에서는 아동음란물을 보며 1주일에 1번 이상 자위하는 비율은 성범죄자가 더 높다는 근거도 들고 있다.

몇 안 되는 근거들조차 거의 모두 통계적 의미가 없는(뚜렷한 차이가 아닌 우연한 정도의 차이라는 의미) 버려야 할 데이터임에도 보고서는 이를 근거로 혹은 근거 없이 다양한 결론을 쏟아낸다.


"성범죄자들의 경우 일반인보다 인터넷 사용에 대한 정보력이나 접근성이 높지 않을 것임에도 불구, 아동 음란물 이용에 대한 욕구는 높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어, 인터넷을 통한 아동 음란물 단속에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함을 알 수 있다."

"스마트폰앱상에서의 아동 음란물 역시 기기 소지율이 높지 않은 현시점에서 집중 단속하지 않는다면 갈수록 늘어나게 되어, 웹하드 방식처럼 독버섯처럼 기승을 부리게 되어 뿌리를 뽑는 것이 매우 힘들게 될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아동 성범죄자는 아동 음란물에 뚜렷한 기호를 가지고 있으며, 아동 음란물을 사용하여 그러한 기호와 관심을 더욱 강화시켜 결국 성적 자기 조절이 실패할 경우 아동 성범죄와 같은 범죄적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결과"

"아동 음란물이나 폭력 음란물 등의 불법 음란물 감상은 성범죄행위의 전조요인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결과"

"기존의 집중 단속보다는 상시적 단속이 이뤄져야 하며"

"능동적인 수사를 통해 상습적으로 음란물을 감상하고 이를 실질적 성폭력이나 성매수 행위와 연결시키는 사람들을 색출해낼 필요가 있을 것"


법무부 주장에 대한 반박

이런 법무부의 주장은 언론을 통해 자세히 보도되었으니 여기에 대해서는 한 번 반박을 해보자.

아동성범죄자는 보통 사람과 달리 아동에게 성욕을 느끼는 성적 취향을 가졌을 가능성이 일반인이나 보통의 성범죄자보다 높을 것임은 당연하다. 그러니 아동을 상대로 성폭력을 저지르지 않았겠는가?

동성애자들은 음란물에 대해서도 동성애에 관련된 음란물을 선호할 것이다. 따라서 동성을 상대로 한 성범죄자들도 당연히 동성애 관련 음란물을 보통 사람들보다 많이 봤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아동 성범죄자가 아동 음란물을 선호하는 특성이 그들의 범죄적 성향과 관련이 있는지, 소아성애적(아동에 대한 성적 기호) 특성과 관련이 있는지는 서로 다른 문제이다. 그럼에도 보고서에는 이런 점을 무시한 채 아동 음란물이 마치 아동 성범죄와 직접 관련이 있는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

아동에 대한 성적 기호, 아동 음란물, 아동 성범죄 세 가지가 서로 연관이 있으리라는 점은 누구나 추측할 수 있는데 보고서는 이 중 어떤 점이 다른 결과를 낳는 원인이 되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즉, 아동 성범죄자는 사동에 대한 성적 기호가 있는 사람들이라서 아동 음란물을 많이 보았을 뿐일지 모른다. 이 경우 아동 음란물 시청은 원인이 아닌 결과이기 때문에 음란물 단속이 범죄예방효과를 가져다주지는 못 할 것이다.

연구의 가장 큰 결함은 서로 비교한 집단의 구성원들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점에 있다.

예를 들어 학교를 다닌 적 없거나 중졸 이하의 학력자는 성범죄자 그룹에서 37.7%에 달했지만 일반인에서는 전혀 없었다. 성범죄 전 직업이 있던 비율은 81.2%, 없던 비율은 18.8%인데 반해 일반인 그룹은 직장인 41.4%, 무직 2.9%, 대학생 54.7% 였다. 결혼상태는 성범죄자가 52.6%만이 미혼이고 나머지는 기혼이거나 이혼 등 결혼 경험이 있었지만 일반인은 83.5%가 미혼이었다.

이렇게 완전히 다른 성격의 사람들로 구성된 집단을 비교해서 의미있는 결과를 도출하기는 힘들다. 두 집단간의 차이가 학력 차이에서 비롯되었을 수도 있고, 직업 때문일 수도 있고, 결혼상태 때문일 수도 있다.

성범죄를 저질렀느냐 아니냐는 두 집단의 여러가지 차이점 중 하나에 불과하기 때문에 분석결과에서 어떤 것들이 범죄성향의 차이에 관련이 있는지를 가려내기가 불가능하다. 보고서에는 이를 보정하기 위한 작업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일단 저질러 놓고 보자?

보고서를 분석하면서 조사를 의뢰한 법무부와 연구를 수행한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결론을 이미 정해둔채로 눈가리고 아웅 하는 식의 연구를 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 점을 쉽게 보여주기 위해 나는 보고서의 근거들을 바탕으로 서로 다른 결론을 이끌어내는 과정을 보였다.

보고서의 연구방법과 결과 해석대로라면 학술지에 발표조차 불가능해 보인다. 동료 연구자들이 연구설계의 결함과 결과 해석의 비합리성을 문제삼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보고서에 국민의 세금이 들어갔고, 앞으로 많은 세금을 투입해야 할 정책을 펼치겠다니.

학술지에 발표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정책의 근거로 활용할 보고서를 이렇게 허술하게 작성하는 문제도 전문가들이 나서서 지적할 필요가 있다. 정책 하나하나는 수많은 예산을 필요로 하고 부작용을 비롯해 여러가지 여파를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사회문제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진단이 선행되어야 한다. 아동 성범죄를 막겠다고 하면서 (보고서 및 해외 연구사례에서) 별 관련이 없는 아동 음란물을 단속하는 건 국민을 기만하는 행태다. "우리가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쇼일까?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공무원들이 국민을 위해 해야할 일이 아닌, 하고 싶은 일 또는 하기 편한 일을 위한 엉터리 근거자료를 만들어낼지 모른다. 보고서에서 분석결과와는 달리 "상시적 단속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던 부분을 상기해보라. 컴퓨터 앞에 앉아서 아동 음란물 다운받는 사람이나 감시하는 일이 가장 편해서인지, 막을 방법을 모르겠는데 뭐라도 하는 척을 해야 월급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학계의 전문가들이 이런 문제점을 인식하고 정책이 올바른 방향을 잡을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언론은 정부의 보도자료를 그대로 전달하는 도구가 되지 말고, 비판적인 시각을 잃지 말아야 한다. 국민들 또한 자신들의 책임을 하지 못하는 정부와 언론에 대해 감시하고 건설적인 비판을 해야 아동성폭력 문제를 비롯해 산적한 사회적 문제들로부터 우리 스스로를 지킬 수 있지 않을까.



강석하 사이언티픽크리틱스 편집장 kang@scientificcritic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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